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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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얼빈>을 만나 미래로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해 올 해 마지막 날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곧 새로 만들고 채워가야 할 새해다. 거듭 호명하고픈 분들이 가슴에 꽂히듯 담겼다.

 

안중근이 아닌 하얼빈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김훈 작가의 책은 어릴 적 외운 이름과 사건으로부터 그를 살았던 존재로 청년으로 만나게 해주었다. 엄격할 정도로 간결하고 담담한 문장들은 절통한 심정이 들어도 눈물이 되어 흐르지 못하게 했다

 

해야 할 일을 하러 떠난 청년들의 단호함에 놀랐고 부끄러웠다. 안온한 일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삶이 내게 간절하고 귀중한 만큼, 확실하게 죽음이 예고된 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어땠을지 아프다. 남은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헤졌을지, 피로 썼을 편지에 담긴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 없는 이토의 시선과 생각에서 당황했고, 네 속이 무엇이었는지 보자며 읽었다. 주체가 아닌 제국주의의 대리자로 움직이는 프로젝트처럼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 체온도 고민도 없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잔인하고 무도한 이가 비극을 가동한다.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멈추지 못한다.

 

안중근의 결기에 애가 탔다. 다가오는 대풍을 예감하며 고요의 바다에 잠긴 듯 글을 이어가는 문장들이 두려웠다. 흉내를 못낼 거사를 치르려는 이들 앞에서 너무 쉽게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정좌한 기분으로 계속 읽었다.

 

김훈 작가는 그 차분함을 원하셨을까. 후기에 담은 내용들을 미리 만났더라면 더 뜨겁게 뇌가 달라 올라 결국 화를 발산했을 것이다. 인간 안중근의 모습과 곁에 있던 이들의 생각을 섬세하게 구분하며 생각해보는 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 수 있기 위해 자식이었고 아비였고 세례명을 가진 포수였던 젊은 목숨이 바쳐졌다. 후손인 우리가 애통해 물으면, 누구면 어떠냐고 누구라도 그리 해야 했다고, 그저 인간이라 그랬다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대답을 돌려주실 듯하다.


 

1910326일 오전 10, 대한의군 사령관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한 그가 떠나고, 국권이 회복되면 옮겨 달라던유해는 아직 못 찾았다. 하지 못한 동양평화를 위한 만세 삼창은 동양에서 실현되지 못했고, 민족의 참극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정당한 일임에도 국가가 하지 않은 일은 많고, 개인들이 애써 기억하려는 노력은 가늘게 이어진다. 내가 느끼는 작금의 시대는 겨울보다 어둡고 암울하다. 부끄러움과 부채의식만으로는 바라던 세상을 만들어갈 수가 없다. 어른보다 현명한 젊은이들이 해줄까. 죄송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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