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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
도나 프레이타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제목을 보고 시기, 질투, 부러움이 솟구치던 작품이다. 아홉 가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니. 그런 1차원적 감정에서 벗어나니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에 생각이 닿는다. 아홉 번의 아픔을 고민을 좌절을 보게 될까 무서워졌다. ‘로즈 나폴리타노’
한국 문학도 아니고, 원작은 2020년인데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빠졌다. 여전히 년도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세상도 더 낫게 변할 것이라는 망상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올 해, 미국에서 로 앤 웨이드 판결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았으면서도.
약속을 깨는 것도 모자라서 제 부모와 더불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하는 루크라는 인물이 너무(x100) 싫다. 로즈의 선택은 여러 옵션이 있지만 내 격한 감정은 한결같아서 결국 오독을 할지도 모르겠다.
“루크는 내 마음을 잘 알았고 그걸 거듭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최소한 나는, 거듭 예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
숫자가 진실 전반을 알려주는 건 불가능하고 누락된 사례들도 많을 것이고, 내가 겪은 삶도 내가 아는 이의 삶도 다 이해하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숫자가 확실히 보여주는 진실은 분명하고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면 보이는 진심도 있다.
소멸로 향하는 출생률은 한국 사회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원인을 복기하는 것은 구구단 2단을 다시 외워는 것처럼 지겨운 일이지만, 누군가들은 여전히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하기 싫고, 그저 이기적인 젊은 여성들을 비난하고 싶을 지도.
다른 무언가보다 아이를 원한다고 간절하고 절실했던 루크(놈)은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로즈에게 자신의 외도를 감추려는 목적으로 억지스럽고 과장된 애정을 퍼붓는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출산 후 양육에 루크가 별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도 않다.
소설(픽션)을 논픽션으로 읽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작품 자체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일뿐더러, 2022년의 현실도 갑갑함이 가득하니까. 임신과 출산이 여성이 하고자 하는 일에 결정적인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모든 이야기는 가스라이팅이다. 더 고달픈 것은 길고 긴 양육이다.
“결코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라며 내게 억지로 강요했던 그 남자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어서 (...) 천만다행이다. 그는 나로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쩌면 진실은, 그로는 내게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출산을 한 여성들에게도 출산을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비난과 욕설에 가까운 압박감은 쏟아진다. 부모였던 이들 모두가 부모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생각하다보면 걷잡을 수 없이 슬프다. 원하지 않은 부모 역할, 좌절, 분노로 자신도 자식도 학대하게 된 가정의 모습도 흔하다. 변명이나 이해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생각해본다.
“저 바위를 지고 다니지 않았어도 됐는데.”
다면적으로 삶과 사람을 보라는 작품인데, 격한 감정에 휘둘려 읽었다.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는 힘이 세고 의미도 크다. 불편하게 느끼고 머물러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기회가 되는 것도, 현실에서 힘들어하는, 뭐라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편에 서있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