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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평점 :
어제 기록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밤’은 낮에 잃은 것들을 돌려 달라 청하는 대상이다. 낮에 잃은 것들이 무엇일까. 밤에 그것들을 어떻게 찾는다는 것일까. 예전이라면 막막하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를 이 구절이 이제는 좀 다르다.
우주는 ‘밤’이 디폴트,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낮의 빛에 잠시 눈을 멀어 우리가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낮에 활동하도록 진화된 특정 주파수만 볼 수 있는 인간은 그래서 생존에 중요한 것들을 모두 망치고 있는 것일지도.
낮에는 보인다는 이유로 서로를 상처내고 해치고 갈라 칠 수 있다. 어둠이 오고 밤이 되어야 이 모든 활동을 잠시라도 멈추고 회복과 재생의 잠에 들 수 있다. 그러니 밤에 안 자고 깨어있는 모든 활동은 사건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일은 커진다.
술과 밤, 정신을 잃기 좋은 조건이다. 술고래지만 이미 무의식에 이끌리는 주인공의 걸음과 반응은 그대로 작품의 분위기와 전개에 일치한다. 그러니 이해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걸어 다니며 보는 수밖에.
모든 게 다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고, 술주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어지러운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혹은 망상이나 상상. 다행인 것은 요란함과 소란함이 잦아들어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더 오래 전인 것 같은데 2017년 개봉작이다. 이것도 꿈같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59834
있는 줄 몰랐던 원작 소설은 처음 읽는다. ‘아가씨’처럼 계속 걸어서 교토의 고서 연구회, 납량 헌책 축제장에 도착한다. 꽃나무와 바다가 함께 있던 곳. 헌책들이 가득하던 곳. 책들은 정말 다 이어져 있을까. 아니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다 이어져 있는 것일까.
“모든 책은 이어져 있어. 헌책의 바다는 그 자체가 한 권의 커다란 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