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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2일
“젊은 여자들에게서는 자신을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젊은 여자가 유난히 표적이 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지나가는 차를 세울 테고, 차도로 뛰어 들어갈 테고, 소리를 지를 테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위험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을 존중할 테고, 그 상황을 벗어나도록 해줄 법한 행동이라면 뭐든지 취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렸다. 우리는 젊은 여자라면 소란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고, 무엇이 괜찮은 상황인지는 남들이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심지어 무엇이 현실인지도 남들이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신화 속 여자들은 줄곧 다른 것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여자로 존재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프네는 아폴론을 피해 달아났다가 월계수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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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권이라 생경했던 일들 중에서도 더 인상적인 것들이 있다. 영국이라고 성차별이 없고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미지가 없을 리 만무하지만, 거리에서 목격한 한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I am big enough for you.”
남성과 체격이 그리 다르지 않은 여성이 그래, 덤벼봐라, 상대로 알맞네, 하고 도발하는 말이었다. 청순가령, 저체중, 얌전, 조신 등등으로 마치 여성의 심신을 가능한 최대로 허약하게 키우는 게 목표인가 싶은 한국과는 당시(2000년대)의 내가 느끼기에 천양지차였다. 이전에는 그런 장면이나 대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살다 보면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사회화가 거세도 근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저만 그런가요...) 근육이 모자라면 무슨 일을 해도 힘이 더 들고 통증이 오래 간다. 근손실이 심하면 근육 없이 뼈로 몸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관절도 아프다.
심장 등의 장기의 근육이 줄어들면 생명이 위협 받는다. 특히 혈관 곳곳으로 쉬지 않고 혈액을 보내야 하는 심장 근육은 체중을 줄이겠단 목표로 몸을 말리면 타격을 심하게 받는다. 고령이 될수록 체중 감소가 위험한 이유도 장기 근육 손실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근육을 없애고 달리기도 못하고 걷기 힘든 신발을 신고 움직이기 어려운 옷을 입고... 이래서야 위협이 닥쳐도 도망조차 못 간다. 저 먼 그리스 신화 시대보다 여성의 움직임은, 운동 능력은 퇴화했을 지도 모르겠다.
근절된 적이 없는 신체적 약자들을 향한 폭력이, 전쟁 중에는 더욱 극악스러워지는 폭력이 진행 중이다.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쟁 일기>와 더불어 김하나 작가님의 문장이 거듭 떠오르는 시절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