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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전 세계의 자산과 권력을 차지한 남성권력자들은 친절하게도 여성들의 할 일을 남겨 주었다. “우리를 돌보라!” 현실의 바다생물을 쓸어가는 거대 원양 해양 업체들은 남성의 일이고, 맨 몸으로 숨을 참는 채집은 ‘해녀’들의 일이다. 우주 바다에서 한국의 해녀들이 유영하며 채취한 희토류는 어느 남성 권력의 연료가 될까.
우주의 시공간을 통과한 조우처럼 1961년의 <솔라리스>가 서윤빈 작가의 <루나>의 세계에 섞여들었다. ‘충격을 받으면 점액질로 환원되는 충격적인 의태와 명멸’, 지구로 보내진 바다의 조각, 위성의 이름을 가진 우주를 떠다니는 존재...
“지구에 가면 네가 찾는 것도 있을 거야. 그가 헬멧을 대고 말하곤 했다.”
왜 구했나 싶게, 태도도 말도 마음에 들지 않은 켈빈을 따라갈 셈이냐고 루나를 말리고 싶어 안달을 내며 읽는다. 역사란 그렇게 돌발 행동을 하는 존재로 인해 풍성하고 다채로워지기도 하지만, 대신 네가 원하는 삶이 있으리란 약속은 믿지 말라고...
“네가 뭘 찾는 진 모르겠지만, 거기엔 없어.”
내 심정을 나눈 듯 명줄이라는 단호한 상징을 버림으로써 진심을 전한 이오가 있다. 전 존재를 건 사랑이 맞다. 불안과 과절과 견딜 수 없는 상실과 외로움, 이오는 루나가 떠나기 전 상상 속에서 이미 고통과 죽음을 맛보았을 것이다. 너무 처절해서 문득 설렜다.
적어도 루나에겐 제안도 삶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정말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다? 엄마? 자신의 시원? 사랑? 혹은 어쩌면 자신의 꿈과 기대가 실재할 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채워지는 순간?
루나는 켈빈의 소설을 다 읽지 않고 덮었다. 정해진 결말을 모르고도 괜찮다. 결말이 곧 답은 아닐 수도 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연들을 인간은 굳이 서사로 만든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인간이 찾아낸 확률은 확률적 의미가 없다.
작품 속에 머무는 동안 어두운 공간을 들여다보는 벌을 받는 듯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두려웠다. 모두가 미쳐버린 것이 진실일까. 존재기 찰나일 뿐이라면 잠시 떠올랐던 환영이나 망상과는 뭐가 다를까. 무한은 무한한 두려움만을 낳는다.
보이지도 않은 가련한 행성 지구에서 우리가 소속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주 언어로 표현하면 ‘궤도에 들다’일 지도. 잠시 잠깐 유영을 멈추고 어느 궤도를, 궤도 사이를 반복하는 것이... 의식을 가진 생명체들의 사랑이고 삶의 전부일지도.
지구 안에 살면서 지구 밖을 올려다보고, 우주를 상상하며 알지 못하는 것을 그리워하고, 우연과 의미 없음이 우주의 미학인가 보다고, 인간인 나는 기어이 뭐라도 명명하고 싶어진다. 현실보다 아름다운 여성공동체... 달이 없어진 지구가 꾸는 꿈 같아 슬프다.
배운 대로 살 수 없다는 건 아주 오래된 절망이다. 그렇게 사는 이들도 많으니 이건 내 절망이다. 신기하게도 30년 전 만난 경고대로 세상은 망해가고 있다. 존경하는 학자들마다 인간의 힘으로 돌릴 수 없는 티핑포인트를 예견하고, 짧게는 5년 남았다고 한다.
보고서와 발표에 충분히 설득되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체력의 대부분을 쓰는 일이다. 이 일상을 바꾸어야 미래가 있다는데, 모순과 이율배반의 날들은 날마다... 고민하는 이들만 상처 입힌다.
인간은 육지에서 살지 말 걸 그랬다. 형제자매를 모두 살해하고, 제 호흡을 넘어서는 욕망을 집어 삼키며, 제 깜냥을 모르고, 인간을 제외한 모두를 제물삼아……. 인간이 바다생물로 살았다면 누구의 삶도 쓰레기로 뒤덮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돌아오는 것이다.”
인간은 돌아올 곳이 없다. 이전에 살던 대로 살아 이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 현실의 선택은 과거보다 못하니 기다릴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제 형체를 잃어버리고 빛나지 못할 별이 될 것이다. 한국은 가장 빨리 그 미래를 만날 거라고 영국의 학자는 확언한다.
우주의 시공간 속에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