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6
듀나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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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작가의 초기 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즐겁고 기쁘게 작품들을 반긴 독자치고는 상당히 오랜 기간 잊고 살았다요즘엔 며칠 전 기억도 흐릿하지만그때 그 시절도 희미해진 무심한 팬으로서 반갑고 조금은 미안한 감정으로 단행본을 펼쳐본다듀나의 세계 입장!

 

아무리 젊고 예쁜 몸을 챙겨 입어도 늙은이들은 티가 난다늙음이란 깨끗한 피부와 탱탱한 근육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반대로 AI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인간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다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둘의 정신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한참을 읽지 않아서 오독인가... 듀나 작가는 한편에서 인간과 AI의 정신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고 하고다른 한편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선이 흐릿하다고 하는데이는 결국 인간을 학습하는 것으로 세상을 배우는 AI는 인간 정신이 확장된 영역이라는 것일까.

 

웬만한 순수 인간보다 더 톨스토이 주인공처럼 구는 기계와 웬만한 순수 기계보다 더 냉담한 인간들도 얼마든지 있다.”

 

어쨌든 인간과 AI가 혼재하는 가상현실폭발사고로 몸의 대부분을 읽어도 재생이 가능한 환경양로원이라 불리는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다른 방식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복제 가능한 기억의 본래성(authenticity), 인간성이란 인간과 별개일 수 있는지... 기이하고 독특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재밌는 듀나 작가의 세계관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양로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유령들보다 더 무서웠다. (...) 우아하게 안개처럼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지만절반 이상은 덜컹거리며 글리치 단계를 거친다하지만 그런 늙은이들의 정신이 부서져가는 걸 구경하러 머나먼 소행성을 찾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그들에겐 죽음이소멸이그 과정 중 발생하는 불쾌한 현상이 재미있는 것일까?”

 

자본이 상품화할 수 없는 건 없다는 말은 고전이자 일상이 되었다이 세계에서는 정신이 소멸하여 죽음이 이르는 순간이 관광 상품이 되었다과거를 촘촘히 돌아보고 분석하지 않고 눈앞만 보고 사는 시간이 많아서 때론 잊어버리지만격세지감이라 불릴 일들은 많았다.

 

2022년에도 내게는 전혀 현실이 아닐 것 같은불쾌한 농담이 현실이 되는 장면을 목격하며 산다그러니 미래에 어떤 일이 가능할지 어떻게 짐작하고 혹은 확실하게 부정할 수 있을까인간은 더 철저하게 개별자로 존재하고더 이상 누구도 현상에 대해 성실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요구하지 않고 어느 순간 트렌드’ 이외의 보편은 가치의 영역에서도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 소행성에 사는 대부분 시민이 허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우린 불안하고 문제 많은 실제보다 더 나은 어린 시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인본주의자들은 이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왜 불행한 진짜 어린 시절이 행복한 허구의 어린 시절보다 더 좋다는 거지요?”

 

이 발언이 SF적이거나 과장이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글쎄명분 상 치료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갖가지 미용성형이 시행된 지가 벌써 몇 십 년이다피부를 바꿈으로써 열등감과 자신감을 교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기억으로 인한 장기간의 괴로움과 치료와 회복의 어려움은 어떤 논리로 막을 것인가. ‘기술이 적절한 안정성을 증명했다면.

 

만약 무언가가 전쟁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쟁입니다.”

 

톨스토이 읽을 계획이 없었는데 읽어야할 것 같은 기분... 이 지나갈 때까지 잘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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