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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지음, 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년 6월
평점 :
정신질환은 투병이 아니라 치병과 동거라는 걸
경험하신 분들은 이 책을 믿고 읽으셔야 합니다.
더 나은 책은... (당분간, 한동안)없습니다.
분명 누군가들의 인생을 조금씩 구원할 책입니다.
최초의 상담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들쑥날쑥 하는 질환들과 함께 사는 당사자이자 독자로서
심각하게 공감하고 드리는 감상평입니다.
읽으면서 읽고 나서 정신도 두 손도 살짝 떨리네요.
“병은 제일 먼저 당신의 신념, 믿음 체계, 그리고 사고방식을 공격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쥐고 있는 그 아이디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혁신적이고 혁명적이며 창조적인 방식이라고 여겨지겠지만, 이는 높은 확률로 함정이다. 이 매력적인 함정에 발을 들이면 당신은 목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사상, 믿음, 사고방식, 가치관과 조증이 사이좋게 앉아 야광봉을 흔들며 동조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말이다.”
“우울증과 홀로 싸우는 일은 쉽지 않다. 우울증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우울증에 대해 항상 오해할 것이다.”
“정신병은 역사와 대적한다. 정신병은 가장 먼저 시간을 부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따위를 모조리 상관없게 만든다. (...) 병증으로 기인한 상태를 병에 의존해 타개하려 한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조증은 원래부터 너라는 존재는 가치가 없었다는 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그러면 나는 뭘 하느냐, 긴긴 우울증을 앓으면서 조증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 내가 현실 세계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현실에 남기로 마음을 정한 뒤에는 조증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조증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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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가 담보가 되기는커녕 신체의 병이 마음의 병과 손을 잡고 함께 행복의 나라로 가버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 당신의 사고장애, 정신증이 생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몸과 결합해 여러 이상 사고를 야기한다.
- 육체의 질병을 해결해야만 정신의 짐도 덜 수 있을 거라는, 정신병의 초기와 반대의 작용하는 생각을 키워나가는데, 문제는 육체의 고통이 사라지더라도 정신에 생겨난 얼룩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 긴 투병, 투병과 투병들 사이의 중첩은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포기하게 유도한다.
- 병이 낫지 않는 사람들은 울적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새로운 질병이 생긴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사소한 것, 이를테면 위장장애 같은 것에도 쉽게 견디지 못해 한다.
- 언제나 문제는, 이유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면 해소되는 일이 아닌, 병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좌절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내용들은 제 상담 내용이 유출되었단 환각에 시달릴 법한 내용입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책을 힘주어 쥐고 다시 읽느라 손가락이 뻣뻣해졌습니다.
이런 책도 출간되는 뜻밖에 귀해진 2021년...
양극성장애 환자 본인이 직접 쓰고 정신과 의사가 감수한 책입니다.
저는 주 중에 시간이 안 되지만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북토크 신청 링크 올립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h_rZuzs2iJ9O2StAw6j-AZ7cNI8EPiQE5T5T4DVsf8hvXw/viewform
“천사처럼 날아오는 자살, 게다가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자살, 자살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내가 죽어야만 증명되는 것이라면 한 번쯤 자살과 당신이 공모해 만든 이 기이한 고리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아마 언젠가 당신은 자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며, 그런 조건과 환경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시 존재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괜찮은 축에 들게 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강가에 앉아 구경하는 놀이를 해보자. 강가에 앉아 여울을 피해 유영하는 오리들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3년 전에 만날 수 있었다면, 친구에게도 도착할 수 있었다면...
혹시라도... 란 생각은 늘 슬프고 아픕니다.
잘 이해할 수 없어 입을 다물지 말고 계속 그냥 옆에 있다는 말만이라도 전할 것을.
제 자그마한 깜냥을 스스로 미워하진 않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품이 어른으로 살기에는 턱 없이 좁아서 종종 아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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