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울산에서 만난 한민족의 뿌리
김진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서울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가장 먼저 한반도 선서문화의 첫 장면과 마주한다.
바로 반구대암각화이다.
비록 모조품이지만 이것의 반구대암각화는 현장보다 더 생생한 인류의 이동경로를 암호처럼 펼쳐 놓고 있다.
문제는 이 그림판 앞에 선 사람들이 반구대암각화의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하고 독보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고대사의 숨은 그림판에 매료되지만 이 그림판이 어디에 있는지,
울산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구대암각화는 가치를 이해하지도 감상하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수십 번 지나갔을 것이다. 울산은 현대의 도시, 라는 문구로만 기억했다. 몇 해 전 그린피스에서 연락을 받고 고래 고기 관련 이슈를 접했을 때도 자료만 읽었지, 울산이라는 도시와 살고 계신 분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진 못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를 견디기 위해 찾아온 온기와 격려처럼 울산에 사시는 참 좋은 분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울산도 살고 계신 분들도 생명과 색채와 소리와 형태를 지닌 존재들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하는 뵙고 싶은 분에 대해 글로 먼저 배우는 기분으로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의 가득한 목차를 보다 보니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작가께서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국토를 떠올릴 때도 사람들은 서울 중심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고. 그런 사고의 경직도 염려되고 본인이 대구 영남대 재직 중이기도 하고 영호남 갈등도 반드시 극복해야할 일이라 생각되어, 첫 번째 답사기를 땅끝마을 해남으로 정하고 영남의 대학생들과 다녀왔다고. 크지도 않은 나라, 지역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이렇게 없어서야……. 제 이야기입니다.
본격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에 소개 글만 읽어도 지리적 텍스트로서의 문화유산, 역사, 사람들이 살아 온 흔적과의 연계를 쏙 빼먹고 뭐했나 싶어 아차, 싶은 지적들이 많다. 숙종과 반계서원, 거북이 머리 반구대와 정몽주의 유허비. 사냥과 어획의 삶을 살던 선사시대의 사람들. 근처의 공룡발자국들……. 몇 가지 사실들로 잠시 떠올려본 상상의 세계와 시간에 두근거린다.
지난 2004년 영국 BBC 인터넷 판이
“인류 최초의 포경은 한반도에서 시작됐고, 그 증거는 반구대암각화”라고 보도했다.
사냥의 과정과 고래의 생태까지,
반구대암각화는 거의 고래 백과사전급으로 구성된 고대 인류문화의 타임캡슐이었다.
급이 다른 암각화를 확인한 노르웨이 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고래잡이의 원조라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은 보편화된 이야기지만 반구대암각화는 바다와 육상생물을 모두 새겨 놓은 진귀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래를 알려주는 비밀지도다.
반구대암각화의 학술적 가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인류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목차를 본 누구라도 저자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지역사를 공들여 기록해 주고 전달해 주려는 뜻이 느껴질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절이 오고, 살아남았다면, 울산 사는 참 좋은 분과 이 책을 통해 배운 울산과 반구대암각화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보고 싶다.
논농사의 첫 시작이 증명된 울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육지부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 울산 땅 간절곶이다.
태양이 가장 먼저 뜬다는 것은 아주 오래 전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태양의 기운이 모든 에너지의 출발로 여긴 북방계 인류의 한 무리는 그들이 신성시한 태양의 시작점을 쫓아 대륙의 끝으로 이동했다. 그 끝자락이 울산이다.
어쩌면 그 무렵 남방고래류의 이동 경로를 따라 북으로 향한 폴로네시안계 해양문화권 인류가 귀신고래를 만나 정착한 땅이 울산인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이든 전쟁을 경험한 폐허가 된 장소들은 갈아엎어지고 생경하고 생뚱한 기능성 건물들로 대체되면서 단절과 망각의 땅이 되고 만다. 그대로 폐허로 뒀어야 한다거나, 죽임과 가난이 창궐할 때에도 정밀한 문화 복원을 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당시 때려 부순 것들은 정말은 무엇이었을까, 시멘트로 발라 버린 아래에 묻힌 것들은 무엇일까, 눈에서 멀어져 기억으로부터도 완전히 잊힌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한반도 인류의 기원이 깃든 땅이 울산, 나만 몰랐어.
시간을 거꾸로 돌려 몇 만 년 전으로 올라가보면 더 신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울산은 인류 이동의 증거물이 암각화로 남아 있고
한반도 첫 석기생활도구 제조공장과 동북아 최초의 벼농사 시설이 발견된 지역이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육로나 해로를 따라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으로, 나는 가본 적 없는 울산박물관에 가면, 서생면 신암리 유적,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라고 쉽게 말하지만, 역사 이전pre-historic의 시기의 울산은 어땠을까, 아주 활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 이전에 공룡들이 놀고 살던 자리에 인간들이 들어와서 움막집 짓고, 고래잡이하고, 반구대암각화를 그렸다. 세계 동물학회에서는 인류와 고래의 관계를 연구할 때 그 출발로 반구대암각화를 제시한다고 한다. 학자들은 무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인류가 고래를 잡았고 그 증거가 울산의 반구대암각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뜻한 남쪽, 풍요의 땅'을 찾아 해 뜨는 땅, 동쪽으로 이동하다 도착해서 머문 곳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울산이고, 고대인들이 산에서 바위에 고래를 새기고 해가 떨어지는 시간 샤먼의 주술에 따라 다음날 바다에서 큰 고래를 사냥할 수 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는 것이 반구대암각화에 남긴 이야기라 한다.
옛 울산 땅은 우시산국이었다.
시(尸)를 이두식으로 풀어 발음하면 우시산은 울뫼로 읽히고 이는 다시 울산이 된다.
우시산국의 도읍지가 지금의 검단 지역일 가능성이 높고 우시산국은 검단분지에 기반을 둔 부족국가로 보는 것이 옳다. 기록에도 나와 있다.
우시산국은 삼국사기 권44, 열전 거도(居道)조에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우시산은 삼한시대 고마족(濊貊族)이 건설한 성읍국가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회야강 둔치 아리소를 기점으로 우시산국 축제를 열고 있다.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와 검단리, 아래로 양산 웅상까지 세력이 뻗었던 옛 울산지역의 작은 나라 우시산은 이렇게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울산에 세계 최초의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이것도 나만 몰랐어.
7천 년 전에 이미 가죽배와 나무배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벼농사 유적을 가지고 있다. 1998년 울산 남구 무거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청동기 시대의 논이 거의 원형 상태로 드러났는데, 이는 기원전 7세기의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수전유적이다. 물론 이 밖에도 울산에 간직된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무수하다.
2009년 전후로 울산 신항만 연결도로가 곳곳에 개설되기 시작하면서 땅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고래 뼈가 출토되었다. 이 '골촉 박힌 고래 뼈' 매장물은 신석기인들이 사슴 뼈를 뾰족하게 가공한 골촉으로서, 논란이 되어 왔던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에 실물 증거이다. 그리고 인근 성암동 패총에서 신석기인들의 생활 폐기물이 쏟아져 나와, 울산이 고래잡이 문화의 원형이자 남방계 인류가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 증거물들, 고래사냥과 어로도구, 수렵과 사냥법이 반구대 바위그림에 도록으로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 중부지역에서 출발한 최초 인류의 무리들이 바다 쪽으로 진출해 인도양과 남태평양을 근거로 해양문화를 일으켰고, 그 문화의 흔적이 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 등에 근거를 둔 폴로네시안 문화권인데, 그 중에 한 무리가 나무배나 가죽배를 타고 고래를 따라 북으로 이동해 새 터전을 삼은 곳이 울산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90년에 발굴된 검단리 유적의 가치이디.
이 곳에서 100여 기에 달하는 집자리와 고인돌, 그리도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마을을 감싸는 도랑 - 환호(環濠)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 이전까지는 환호 형태의 마을 유적은 일본에서만 발견된 취락구조이며, 이것이 바로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일본 역사가들이 한반도보다 문명이 앞선 증거로 채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울산 검단리에 수천 년 동안 파묻혀 있던 환호가 발견되자,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던 일본 사학계가 비로소 검단리 환호 취락지역을 자신들의 취락구조의 뿌리로 인정하게 되었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라 읽는 즐거움도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저자의 지역에 대한 애정 역시 듬뿍 느끼면서 여러가지 부러운 심정도 든다. 지역에 이토록 집중해서 강렬하게 어필하는 책을 처음 읽은 듯하다. 앞으로 울산에 대한 책!이라면 이 한 권이 생각날 것이다. 다만 발췌만으로도 끝없이 길어질 것 같아 내용면에서나 애정면에서나 500분의 1이나 될까 싶은 내 글은 이만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