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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씨저 ㅣ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씨저>라는 텍스트는 정치의 정당성과 조건에 관해 묻고 따지는 작품이다. 줄리어스 씨저의 살해 동기와 브루터스의 몰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치는 늘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 정당한 근거 위에서만 정치는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다. 줄리어스 씨저는 왜 죽었는가? 그가 너무 ‘오만’했기 때문이다. 브루터스에게 씨저의 오만함은 로마공화정의 전통적 덕, 다른 말로 로마의 정신을 형성하였던 요소에 대한 부정으로 비춰졌고, 로마의 통치자로서 씨저가 가진 정치적 권한의 정당성을 넘어선 일이었다. 캐씨어스는 씨저가 신처럼 되려고 한다면 못마땅해한다.
“나 자신 하나만 놓고 본다면,
나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자를 두려워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일세.
나 씨저 못잖은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자네도 그래.” (1막 2장 93~96행)
이 부분은 씨저의 오만에 대한 캐씨어스의 개인적 원한 감정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보다 넓게는 정치적으로 씨저의 비극을 만든 원인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씨저의 오만함에 근저에는 그의 권력이 자리 잡고 있다. 씨저는 어느 순간 신과 같은 절대권력을 누리게 되었고, 아직 압제자로서의 횡포를 보인 적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2막 1장 10~34행 참조). 이런 정치 형태는 전통적 공화정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도자로서 씨저가 킹십(kingship)을 상실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캐씨어스는 바로 이 점에 입각하여 브루터스가 암살 모의에 참여하도록 설득한다. 캐씨어스는 ‘로마의 기백’, 즉 로마의 전통을 거론한다. 씨저로부터 로마의 공화정적 전통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이들의 대의명분이다.
암살의 동기가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이든(캐씨어스), 공공의 대의이든(브루터스)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씨저의 전제적 정치를 비판하며 그를 살해했고, 따라서 씨저 암살자들은 로마공화정의 회복이라는 대의명분으로써 씨저 암살을 정당화해야 했다. 그리고 정당성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브루터스라는 도덕적 우월성과 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의 존재는 매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 텍스트는 초반에 정당한 정치에 대해서 물으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반(反)씨저 동맹이 기여한 부분은 딱 거기까지이다. 씨저를 죽인 다음, 그들은 분열하며 옥테이비어스와 안토니에게 패배하고 브루터스와 캐씨어스는 자결한다. 왜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여 자신들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했던 것일까?
씨저에 대한 적대감을 제외하면 반(反)씨저 동맹을 묶어주는 어떠한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캐씨어스가 씨저 암살을 계획한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같은 인간이면서 꼭 신처럼 행세하는 씨저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공공의 대의를 위해 나선 브루터스와는 애초에 동기가 달랐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씨저 사후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4막 3장에서의 브루터스와 캐씨어스의 논쟁은 단순히 ‘속물적인’ 캐씨어스와 ‘영웅적 덕성’의 브루터스 사이의 갈등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씨저의 질서를 대신할 통치 질서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해 생긴 혼란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너무 조급했다. 씨저라는 권력자를 죽인 뒤 필연적으로 생길 정치적 공백을 어떻게 해결할지, 씨저 사후 로마를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어떠한 고민이나 합의도 없이 그들은 그저 씨저를 죽이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불확실한 예언의 날짜에 맞추어 그를 암살했다. 사실 이 지점에서 그들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브루터스는? 브루터스는 로마공화정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이미 작품 곳곳에서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브루터스의 이러한 의도는 외적으로도 공인받은 것이다.
브루터스는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다. 역자 이성일이 말하는 대로 브루터스는 이상주의자였다. 브루터스의 덕성에 대해서는 그의 정적인 안토니의 대사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이분은 저들 중에서 가장 고매한 로마인이었소. 사해 모의자들 모두가 –이분만을 제외하고- 위대한 씨저를 시기하였기에 그 짓을 하였소. 오직 이분만은, 사심 없는 명예로운 명분과 모두를 위한 공공의 선 때문에, 저들의 일원이 된 거요. 이분의 생애는 고결한 것이었고, 인성의 기질들이 이분 안에 조화를 이루었기에, 대자연마저도 일어서서, 온 세상을 향해 말하리오: ‘이 사람 사나이였다!’라고.” (5막 5장 68~75행)
브루터스는 로마의 전통적 공화주의 덕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로마의 공화정을 신앙처럼 여긴다. 그가 씨저 암살 모의에 참여한 것도 씨저를 죽이고 로마공화정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의 의도나 순수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브루터스 자신도 자신의 ‘올바름에 대한 자각’을 확신한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로마 인민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했다. 연설에서 왜 씨저를 죽였는지 설명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를 새로운 “씨저로 받들자”는 것뿐이었다. 반면에 안토니는 탁월한 정치적 혜안과 수완으로 로마인의 지지를 받는다. 브루터스는 이상만 앞섰지, 현실 정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절대 권력자를 살해했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장과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로마인의 지지 확보 실패이다. 공화정의 회복이라는 브루터스의 대의명분은 현실에서 실효적 힘을 가지지 못했다. 다른 하나가 씨저에게 충성을 보였던 안토니를 죽일 기회가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씨저 암살은 결과적으로 브루터스의 정적 안토니와 옥테이비어스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뿐이었다.
정치 정당화에 대해, 플라톤처럼 초월적 근거를 통해서 정치 정당화 근거를 마련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를 찾으라는 마키아벨리도 있다. 또 막스 베버처럼 정치 권력을 소명(beruf)으로 여기고 그 소명에 합리적인 정당화 근거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할 수도 있다. 정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다른 말로 덕스러운 목적과 이기적인 목적 사이에서 작동한다. 한쪽의 독트린만을 교조적으로 따를 경우 정치 사회는 치명적 결과를 맞는다.
이 작품을 다시 정의하자면, 정치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여 조급한 이상주의자의 파멸로 끝맺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터스’가 보여주는 것은, 이상주의적이기만 한 정치가 가져올 파멸적 결과이다.
여담으로,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상은 <줄리어스 씨저>와 <맥베스> 사이에 유사성이 꽤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줄리어스 씨저를 <맥베스>의 덩컨 왕에, 브루터스를 맥베스에 대입해보자. 그러면 우선 부하가 왕(씨저는 왕이 아니긴 하지만)을 죽인다는 플롯이 유사하며, 그 이후 맥베스의 파멸도 브루터스의 몰락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씨저> 2막 1장에서 브루터스가 씨저에 대한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와 공공의 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은,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할지 말지 망설인 부분과 겹친다. <씨저>의 예언자와 <맥베스>의 마녀 등 <맥베스>가 연상되는 부분은 이 외에도 많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씨저>의 플롯과 주제 의식을 한층 더 농축하여 발전시킨 작품이 <맥베스>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정치와 정당성’이라는 관점에서 <맥베스>를 다시 읽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