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에이브러험 링컨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한데, <데어 윌 비 블러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링컨 역할로 출현했다고 하여 바로 보기로 결정했다.
한국인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을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는다면, 미국에서는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리고 에이브러험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다. 특히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제13조 통과의 주역이었으며, 남북으로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여 미연방,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링컨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신화화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링컨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면서도 링컨에게 드리운 신화의 구름을 걷어내어 역사 속 인물이자 현실적 정치인 링컨을 묘사해낸다.
영화는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라는 링컨의 정치행적과 생애를 다룬 대중역사서를 영화로 제작하였다. 스필버그는 링컨 전생애를 다루는 대신, 1865년 1월부터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기까지 수정헌법 13조가 하원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복합적인 국면과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링컨이 바라는 대로 노예제 폐지 조항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하원의원 재적의 3분의 2를 확보해야 한다. 즉, 링컨이 속한 공화당표를 제외하고 민주당에서 20표를 더 얻어야 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 정국이 링컨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다.
링컨을 고민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남북전쟁이었다. 1865년 들어,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북부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북전쟁의 종결와 노예제 폐지는 동시에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전쟁이 끝나 남부 대표와 평화협상이 진행된다면, 의회에서는 남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예제 폐지를 기각해야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질 것이다. 전쟁의 빠른 종결은 애초에 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었던 흑인 노예 해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링컨은 다소 현실적인 접근을, 아니 어떻게 보면 상당히 마키아벨리즘적인 면모까지 보인다. 링컨은 매관매직을 하여 민주당 의원들을 포섭하는 한편, 공화당 내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화당 급진파(흑인 노예 해방은 물론 흑인 투표권까지 주장)의 주장을 온건화하여 수정 헌법 13조의 목표를 '법적 평등'으로 조정하였다. 더 놀라운 행동은 평화협상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더 질질 끌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링컨의 정치적 행보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라는 이미지와 모순된다. 우리가 알던 링컨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스필버그가 보여주는 링컨은, 자신의 고결한 도덕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비도덕적 행위까지도 서슴치 않던 현실 정치인이다.
정의로운 이념과 목적(노예제 해방)을 위해 온갖 부정의한 수단(매직, 전쟁)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질문이다. 초월적 이념과 정의 따위는 버리고 통치의 수단만 신경쓰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적 정치이다. 동양에서는 한비자, 상앙 등 법가가 비슷한 스탠스에 있다. 그 반대로 정의와 이념에 봉사하는 것을 정치의 제일 목표로 간주하는 이들이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공맹 등이다. 나는 정치 규범에 있어서 목표를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정당화된다는 마키아벨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줄리어스 씨저>의 브루터스처럼 이상주의자나 급진적 운동가/혁명가들도 믿지 않는다. 정치란 마키아벨과 브루터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을 막스 베버식으로 이해한다면,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버는 행위결과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이 궁극적으로 올바르다고 추구하는바를 실천하는 신념윤리에 지나치게 경도된 정치를 경계한다. 베버의 말처럼 정치는 고상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더럽다. 정치인은 모든 폭력성에 내재된 악마적 힘들과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운동가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어쩌면 정의를 위한 부정의한 수단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어쩔 수 없는 본질일 수도 있다.
스필버그의 링컨은 정치의 악마적 힘들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링컨은 도덕적 이상과 현실적 타협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당대의 어느 정치인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링컨에게 있어서 최선은 민주당도 자신의 신념을 인정하여 하원의회에서 손쉽게 통과되고 그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줄이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니, 그는 차선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링컨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도덕적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베버는 악마적 행위로서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고 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신념윤리를 배제하지 않는다. 이념과 대의에만 경도된 것을 비판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베버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것에 적합한 수단을 고려하는 책임 윤리 못지않게 신념윤리 또한 정치인의 소명(beruf, 직업이라는 뜻도 있음)임을 강조한다.
베버의 정치 윤리론을 보면, 링컨은 악마적 힘과 계약을 맺은 정치가의 행위의 결과와 정의로움과 순수함에 대한 굳은 신념을 균형있게 고려하고 적절히 조화한 인물이었다. 수정헌법 13조 통과 투표에 대해 '부패로 통과되고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 추진한 19세기 가장 위대한 입법'이라고 한 새디어스 스티븐스(토미 리 존스)의 평가는, '정치와 윤리'라는 주제의 중요한 물음들을 함축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치에서 비열하고 부도덕한 행위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도덕적 열망과 악마적 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취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베버가 말한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링컨에게서 그런 정치인의 이상을 보게 된다.
영화와 같이 보면 좋을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