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작 과정이 기가 막힌다. 무려 120명이 넘는 화가들이 10년 동안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직접 유화로 그려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빛을 발한 영화인 것이다. 이들의 장인정신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 영화는 모든 컷이 고흐의 화풍으로 제작되어 보는 이의 즐거움을 자아낸다.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최상의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고흐의 명작들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내가 아는 그림이 나올 때마다 '오! 저거다!'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도 고흐의 그림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서 이 애니메이션은 마치 고흐의 모든 작품을 하나로 연결해서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준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고흐의 그림이 살아있다 같은 느낌.


영화의 내용은 고흐의 전기는 아니고 아르망 룰랭이 고흐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추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 아르망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살던 곳으로 온다. 그는 그곳에서 고흐의 주변인물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단순히 이상한 예술가인줄만 알았던 고흐의 다른 면모를 알아가게 되는 한편, 고흐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고 그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실 고흐는 일반적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매독으로 인한 병사 또는 타살까지 논란이 조금 있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동네 청소년이 쏜 총에 맞은 고흐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처럼 위장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흐 타살론의 근거는 총상의 각도가 자기에게 총을 쏜 사람에게서는 불가능한 각도라는 것. 영화도 타살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아르망도 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타살에 확신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동네 청년 르네가 범인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고흐의 죽음의 정확한 진상에 대해서는 영화는 침묵한다. 이것이 추리극으로서의 성격을 다소 흐지부지하게 만든다. 좀 김 새는 느낌. 그리고 아르망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도 별다른 긴장감이 없어 지루했다. 아무래도 인물들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다보니 추리극으로서의 흥미진진함은 덜한 편이다.


영화 후반부에 아르망은 가셰 박사의 딸 마르게리트와 대화를 나눈다. 흥분하며 고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아르망에게 그녀는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고흐가 이미 죽은 이상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이제 와서 더는 의미가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무덤에 꽃을 바치는 것뿐이라고 마르게리트는 말한다. 마르게리트의 대사는 마치 감독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유명인의 죽음은, 그것이 고흐처럼 비극적이었다면 더더욱, 슬픔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가십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만약 고흐가 '천재였으나 자살로 생을 마친 비운의 화가'로만 기억된다면, 우리는 마르게리트의 말처럼 그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그의 삶과 예술에는 무지하여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박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르게리트처럼 그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의 삶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정작 영화가 고흐의 말년 행적에만 집중한 것은 흠이다)


마르게리트와의 대화 이후, 영화는 우리가 고흐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가셰박사와 만나고 아르망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만나다. 아르망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흐의 편지 한 구절을 읊고, 화면은 밤하늘을 비추며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고흐의 모습이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이런 구절이 나온다.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I want them to say: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 빈센트 반 고흐.


외로운 삶을 살았으나,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고, 예술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내용이나 형식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그런 그에게 헌정하는 작품으로서 훌륭한 영화이다.



*예전에 구매하려다 말았던 빈센트 서간집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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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0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본다본다하는게 자꾸 미루게되는데 김민우님의 후기도 보았으니 이번 연휴에는 꼭 봐야할 듯 하네요!ㅎ 즐건 하루되십시요!

김민우 2021-10-08 13:28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좋은 감상 되셨으면 좋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