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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베케트의 소진된 인간은 존재의 거짓한계인 가능한 것을 소진하며 스스로 소진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한 것을 잠재성의 역량으로 전화시킨다. 이 잠재성의 현실화라 할 존재의 마지막 미학적 사건이 바로 이미지를 만들다이다. 소진된 인간은 스피노자가 인간들만큼이나 많은 인간적 이미지들로 형성됐다고 말한 신체적 가능성의 한계에서 자신의 개체 원리를 증언하는 어떤 하나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생성(되기)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기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소진된 인간만이 결국 이미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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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란 이렇게 내용의 숭고함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형식, 내적 긴장에 의해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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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미지를 우뚝 세워 보여주고자 하는 정신

 

 

거칠게 요약하자면,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말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인간 삶의 실현 정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개체 원리를 증언하는 하나의 이미지, 단 하나의 스타일을 생성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 자신만의 스타일을 생성하는 일은 거짓 한계인 가능성을 전부 소진하는 것임을.

 

 

 

 

 

기분전환이 필요했어.

KTX 안에서 기분 좋게 읽었더니 어두운 에너지가 줄어든 기분.

KTX 차량 한 가운데 가족석에서, 우는 애를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 갈 신경질이 꺼져서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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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8-2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TX 를 자주 타는데요. 한 번은 어쩔수없이 특실에 탄 적이 있거든요. 일반이 매진이라.. 일반보다 훨씬 비싸서 잔뜩 기대했어요. 혹시 재벌 아들과 눈 맞는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 근데 타고보니 특실칸 안의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더라고요 ㅠㅠ KTX 를 말씀하시니 갑자기 그 특실의 슬픈 추억이 ㅠㅠ

dreamout 2013-08-28 23:17   좋아요 0 | URL
저도 특실이든 일반실이든 옆좌석에 아리따운 분이 좀 앉았으면... 하는 생각은 자주 해요. ^^; 그쪽 사정은 생각도 않하고 말이죠. 그쪽도 근사한 옆좌석 남자를 원할텐데... ㅎㅎㅎ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 치는 자

해야 할 무엇보다 하고 싶은 무엇을 찾는 데 더 집중하는 자,

 

보다 가볍고 담백하게, 심플하게 그 몸부림을 쳐 보고 싶다.

복잡한 문장이 복잡한 마음을 내비치는 날.

 

 

 

 

 

어떻게 덜 제약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 가 아니라

우리 역량을 약화시키는 제약은 어떤 것이며

역량을 증대시키는 제약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말고 환경을 바꿔라.

 

스스로에게 짜증 낼 필요가 없다. 의무가 아닌 욕망에 보다 충실하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가지씩 바꿔보는 것.

거대한 것은 잠시 제쳐두고 다시 가까운 것들에 눈길을 돌릴 시간.

 

 

 

 

 

개인이 다룰 수 있는 맞춤한 양()인 두 팔 안에 머무르는

아름이란 자연을 알려는 태도를 넘어 하나가 되려는 태도.

 

내가 잴 수 있는 정도, 내가 담을 수 있는 정도,

내가 다룰 수 있는 정도,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정도.

그게 아름다움.

 

 

 

 

 

견고성(solidity)이 아닌 다공성(porosity)이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한다.

20세기 이전의 세계는 견고한 것이 공간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세계를 유동하는 패턴, 다공성의 점막, 혼합물의 구성으로 인식한다. 마이크로파가 우리의 몸과 고밀도의 석조 벽을 관통하고, 아이디어는 공공의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작업실에서 상점으로,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이동한다. 정보든 물질이든, 개념과 정서를 봉쇄하는 것은 어렵다.

 

결국 미술작품을 본다는 것은 미술 장르만 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매체는 다른 모든 매체에 영향을 미친다.

 

 

 

 

 

메신저 화면에 내가 보낸 메시지가 노랗게 떠있다. 보낸 시간은 오후 2:59.

오후 3:17.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다.

멜랑콜리한 18. 갤러리 플라토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야한 인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극히 평범해 지나치기 쉬운 것들 속에 미래의 기회가 있다.

특이한 것에 눈이 가기 마련이지만, 통찰이 필요한 지점은 평범해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말.

 

즉각적인 판단을 앞세우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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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디지언트(가상세계 속에서 사는 디지털 존재(AI))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애나와 데릭의 대화는 기묘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소설 속 디지언트의 비즈니스모델은 대략 이렇다. 먼저 원본 디지언트를 학습시킨다. 주인의 말에 잘 따르고 사랑스럽게(외양은 동물의 의인화된 모습). 그런 과정을 거친 디지언트 중 학습능력과 상품성 등이 우수한 품종을 가려내어 원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회사는 그 원본 디지언트의 복사본을 고객에게 판매한다. 디지언트 자체는 복사기나 정수기와 같다. 복사기와 정수기 자체가 수익의 핵심이 아니라, 복사용지나 토너, 채워 넣는 생수로 돈을 벌 듯 소프트웨어 회사의 수익은 디지언트들의 식사 아이템이나 기타 액세서리 등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구조다. 현재의 인터넷게임과 거의 비슷한 비즈니스모델. 그런데 디지언트들은 물론 복사기나 정수기와는 다르다. 인공지능이므로 주인은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다마고치처럼.

 

애나와 데릭은 디지언트를 만든 회사의 직원으로 초기부터 개발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그리고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지언트들에 애정을 쏟는다. 디지언트들이 점차 성장해 가는 와중에 애나와 데릭은 처음으로 디지언트들에게 숙제를 내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데릭이 이렇게 말한다. 디지언트들은 다운 증후군을 닮았다고. 디지언트의 다른 주인들은(애나를 포함해서) 디지언트를 천재적인 유인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데릭은 인간 아이로. 그렇지만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간 측에서 볼 때 디지언트를 유인원이라고 인식하면 문제는 단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인이 인공지능 객체를 인간 아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인공지능은 다음에 무엇을 바랄 것이고 주인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 것인가.

 

사랑 받는 애완동물이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유기되는 애완견들이 있고, 작동을 멈추게 정지시켜버리는 인공지능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법인화되어 유산을 상속받기도, 자기의 이름으로 돈을 버는 다운 증후군을 닮은 인공지능이 생길 수도 있고, 다운 증후군도 있으니.. 천재 아이를 닮은 디지언트 변이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인공지능과 사회에서 경쟁해야 할 인간 아이들도 생길 것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돌고 돌아 같은 말만 한 것 같다. 요컨대 문제와 문제해결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객체(인공지능)라기 보다는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즉 인간에게 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제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집단을 구분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순서대로 보자며 혁신 수용자, 조기 수용자, 전기 다수 수용자, 후기 다수 수용자, 지각 수용자가 있고 그 바깥에 비수용자가 있다. 인공지능은 감성/지성 복합 객체이기에 애완동물이나 거의 인간과도 같은 법적 보호를 받게 될 개연성이 있다(소설에서는 인공지능의 법인화가 다뤄진다). 그런데 제품은 사람들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다. 기술을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만일 스마트폰처럼 인공지능 객체가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곧 시장에는 보다 진화된 신제품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고(초기 디폴트가 우수한 종), 그것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애정을 갖고 키운 구형 인공지능 객체를 폐기하는 빈도를 증대시킬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애정을 갖고 대해야 할 상대방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 이혼이 전보다 빈번해지고 연애의 기간이 짧아지듯이. 순간 순간적인 관계들의 영역이 보다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그러한 짧은 사이클의 인간관계가 아이에게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탄생과 그 인공지능을 애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곧 그 애정이 식어갈 사람들, 새로운 인공지능에 열광할 사람들…. 은 결국엔 인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키지 않을까. 설사 자기가 낳은 아이일지라도 무책임하게 대하는 사람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지 않을까. 자기 아이인데 그렇기야 하겠냐고? 과연

 

사랑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짧아진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처럼 가벼워진 감정적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을 폐기하는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총알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전 SF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감정이 이성보다 인간에게 먼저이고 인공지능이더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와 실제로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인터넷/모바일 비즈니스모델이 속속 등장하는 요즘을 볼 때, 어두운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은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윤리의식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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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 다른 방 트루먼 커포티 선집 1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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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부러진 세계의 속살이 나를 푹 감쌌다. 조엘은 마녀의 사악한 거울에서 떨어진 유리 조각이 눈을 감염시켜 시각이 온통 뒤틀리고 심장은 쓰디쓴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린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 나오는 소년 카이가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뒤틀린 시각, 쓰디쓴 심장은 기이하게 빛을 내뿜는 이 소설의 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른다.

 

 

2.

거대하지만 이제는 퇴색해져 버린 저택. 버려진 마을 같은 눈시티에서도 또 한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스컬리스 랜딩. 조엘은 태어나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여정을 밟는다. 환상과 현실이 뒤틀려 섞여버린 것 같은 이상한 장소로. 눈시티에서 스컬리스 랜딩으로 가는 수레를 끈 이는 늙은 흑인 하인 지저스 피버였고, 붉은 머리 아이다벨과 아이다벨의 언니 플로라벨 톰킨스를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저기로. 경계를 넘어서는 그 대목을 읽어가며 벌써 나는, 이 소설은 책장 맨 위칸으로 가겠구나. 했다. 반딧불이를 허공에 날리는 밤, 산딸나무 향, 조약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우는 소리, 늙은 노새가 끄는 수레, 헤르메스의 분신 아닐까 생각되는 지저스 피버(그이는 정말로 깃털 달린 중산모를 쓰고 있다), 붉은 머리 여자 아이, 어둠 속에서 셋이 함께 부르는 노래. 이 강렬한 이미지는 숨막히는아름다움을 선사한다.

 

 

3.

고딕. 이라는 장르로 분류되어 있었다. 서던 고딕(Southern Gothic). 비슷한 부류의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 카슨 매컬러스, 플래너리 오코너, 유도라 웰티, 테네시 윌리엄스, 하퍼 리 등등코맥 매카시, 카슨 매컬러스, 하퍼 리를 읽어본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분류였지만, 윌리엄 포크너라면 과연. 이라고 끄덕거릴 수 있었다. 포크너의 미친 작품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서 느꼈던 기이하고, 어떤 면에서는 엽기에 가까운 인물, 사건, 분위기를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깊고 어두운 밤 질척거리는 강물, 흐물거리며 흘러가는 물가에 외로이 웅크려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내내 따라다녔다. 에드거 앨런 포의 세계에 근접한. 그 무엇. <<배트맨>>의 세계관과도 호응하는 그 무엇.

 

그러나 에드거 앨런 포와는 다르다. 포의 단편들을 읽은 후 내게 남은 것은 지독한 물의 이미지인데 반해, 커포티는 과 싸우는 의 이미지에 가깝다. 지독한 물에 잠긴 재(ash)의 왕국으로의 입성과 출성. 재에서 다시 태어나 날아오르는 불새의 신화가 내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4.

랜돌프, 랜돌프, 랜돌프. 스컬리스 랜딩의 기이한 주인. 기모노를 입고 있는 언캐니(uncanny)한 인물. 동성애적인 코드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파국을 만들어내고야 말지만, 그 파국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의 인물 하나하나는 모두 극적으로 과대 표현되고 있어, 그래픽노블의 캐릭터처럼 느껴지고야 마는데 아마도 이런 느낌을 적확히 표현해 줄 말이 고딕. 이라는 말 밖엔 없겠구나. 하고는 끄덕.

 

 

5.

모든 기도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중략)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불확실하고 의미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 제가 사랑 받게 해 주세요.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리. 소년(조엘)의 저 바람이 이 소설의 전부고, 저 기도가 내 중심부에 있음직한 무언가를 결국 흔들리게 만들고야 말았다. 무너지는 소리.

 

 

6.

소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성장소설이라는 카피는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의 데뷔작 중 가장 아름다운 소설. 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거기에 한 표를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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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학의 단편들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안보옥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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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읽기, 단어의 흐름 속에서 갑작스런 시적 돌출을 항상 주의 깊게 파악하는 책읽기. 방향성 없이 뻗쳐나가려고만 하는 산만한 내 정신을 잡아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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