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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베케트의 소진된 인간은 존재의 ‘거짓’ 한계인 ‘가능한 것’을 소진하며 스스로 소진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한 것을 잠재성의 역량으로 전화시킨다. 이 잠재성의 현실화라 할 존재의 마지막 미학적 사건이 바로 ‘이미지를 만들다’이다. 소진된 인간은 스피노자가 “인간들만큼이나 많은 인간적 이미지들로 형성”됐다고 말한 신체적 가능성의 한계에서 자신의 개체 원리를 증언하는 ‘어떤 하나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생성(되기)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소진된 인간’만이 결국 이미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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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란 이렇게 내용의 숭고함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형식, 즉 ‘내적 긴장’에 의해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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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미지를 우뚝 세워 보여주고자 하는 정신
거칠게 요약하자면,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말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인간 삶의 ‘실현 정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개체 원리를 증언하는 하나의 이미지, 단 하나의 스타일을 생성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 자신만의 스타일을 생성하는 일은 거짓 한계인 ‘가능성’을 전부 소진하는 것임을.
기분전환이 필요했어.
KTX 안에서 기분 좋게 읽었더니 어두운 에너지가 줄어든 기분.
KTX 차량 한 가운데 가족석에서, 우는 애를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 갈 신경질이 꺼져서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