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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디지언트(가상세계 속에서 사는 디지털 존재(AI))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애나와 데릭의 대화는 기묘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소설 속 디지언트의 비즈니스모델은 대략 이렇다. 먼저 원본 디지언트를 학습시킨다. 주인의 말에 잘 따르고 사랑스럽게(외양은 동물의 의인화된 모습). 그런 과정을 거친 디지언트 중 학습능력과 상품성 등이 우수한 품종을 가려내어 원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회사는 그 원본 디지언트의 복사본을 고객에게 판매한다. 디지언트 자체는 복사기나 정수기와 같다. 복사기와 정수기 자체가 수익의 핵심이 아니라, 복사용지나 토너, 채워 넣는 생수로 돈을 벌 듯 소프트웨어 회사의 수익은 디지언트들의 식사 아이템이나 기타 액세서리 등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구조다. 현재의 인터넷게임과 거의 비슷한 비즈니스모델. 그런데 디지언트들은 물론 복사기나 정수기와는 다르다. 인공지능이므로 주인은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다마고치처럼.
애나와 데릭은 디지언트를 만든 회사의 직원으로 초기부터 개발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그리고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지언트들에 애정을 쏟는다. 디지언트들이 점차 성장해 가는 와중에 애나와 데릭은 처음으로 디지언트들에게 숙제를 내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데릭이 이렇게 말한다. 디지언트들은 다운 증후군을 닮았다고. 디지언트의 다른 주인들은(애나를 포함해서) 디지언트를 천재적인 유인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데릭은 인간 아이로. 그렇지만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간 측에서 볼 때 디지언트를 유인원이라고 인식하면 문제는 단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인이 인공지능 객체를 인간 아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인공지능은 다음에 무엇을 바랄 것이고 주인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 것인가.
사랑 받는 애완동물이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유기되는 애완견들이 있고, 작동을 멈추게 정지시켜버리는 인공지능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법인화되어 유산을 상속받기도, 자기의 이름으로 돈을 버는 다운 증후군을 닮은 인공지능이 생길 수도 있고, 다운 증후군도 있으니.. 천재 아이를 닮은 디지언트 변이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인공지능과 사회에서 경쟁해야 할 인간 아이들도 생길 것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돌고 돌아 같은 말만 한 것 같다. 요컨대 문제와 문제해결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객체(인공지능)라기 보다는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즉 인간에게 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제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집단을 구분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순서대로 보자며 혁신 수용자, 조기 수용자, 전기 다수 수용자, 후기 다수 수용자, 지각 수용자가 있고 그 바깥에 비수용자가 있다. 인공지능은 감성/지성 복합 객체이기에 애완동물이나 거의 인간과도 같은 법적 보호를 받게 될 개연성이 있다(소설에서는 인공지능의 법인화가 다뤄진다). 그런데 제품은 사람들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다. 기술을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만일 스마트폰처럼 인공지능 객체가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곧 시장에는 보다 진화된 신제품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고(초기 디폴트가 우수한 종), 그것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애정을 갖고 키운 구형 인공지능 객체를 폐기하는 빈도를 증대시킬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애정을 갖고 대해야 할 상대방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 이혼이 전보다 빈번해지고 연애의 기간이 짧아지듯이. 순간 순간적인 관계들의 영역이 보다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그러한 짧은 사이클의 인간관계가 아이에게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탄생과 그 인공지능을 애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곧 그 애정이 식어갈 사람들, 새로운 인공지능에 열광할 사람들…. 은 결국엔 인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키지 않을까. 설사 자기가 낳은 아이일지라도 무책임하게 대하는 사람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지 않을까. 자기 아이인데 그렇기야 하겠냐고? 과연…
사랑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짧아진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처럼 가벼워진 감정적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種)을 폐기하는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총알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전 SF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감정이 이성보다 인간에게 먼저이고 인공지능이더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와 실제로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인터넷/모바일 비즈니스모델이 속속 등장하는 요즘을 볼 때, 어두운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은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윤리의식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