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 님의 침묵,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날이 오면, 모란이 피기까지는, 광야, 쉽게 씌어진 시
한용운 외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19년 3월 1일, 대한의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로 부터 2019년 지난 3월 1일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에 따라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글들도 접했더랬다. 그러다 눈에 띈 시집이 이 시집이다. <독립운동 100주년 시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에 활동한 시인들 중 대표적 시인 여섯 사람의 시를 실어 놓았다. 이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 대표시인 여섯 명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용운을 제외한 다섯 명의 시인은 모두 1900년이 지나 태어났다. 1910년 우리의 국권이 강탈되었던 해에 한용운을 제외한 그들은 코흘리개 어린아이였을 뿐일텐데, 윤동주는 1917년생이니 한일병합 후 태어난 시인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에선 절절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자기마다 표현의 색채만 다를 뿐 피끓듯 올라와 가득하다. 머리글로 시작된 '기미독립선언문'도 의미 깊게 읽었다. 온몸으로 이 시집이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집임을 머리글에서부터 각인시킨듯 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의지를 가지고 활동한 시인이 이들 여섯만은 아니지만 이들 여섯을 대표시인이라고 할 때 트집잡을 이는 정말 없을 듯하다. 기미독립선언문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한용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고 노래한 <그날의 오면>의 심훈, 일제강점기 그 시기를 '독을 차고 선선히' 가겠다는 <독을 차고>의 김영랑, 두 말 할 필요없는 이육사와 윤동주이니 말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익숙했던 시인들의 익숙하지 않은 시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시인들의 각 대표시들이 떠억 하니 실려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 여섯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흡족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는 이상화의 <통곡>이, 심훈의 <고독>에서 방안으로 굴러든 낙엽을 보며 '...어루만져 재우나 바스락거리며 잠은 안 자네'라고 한 표현과 마지막 행 '밤중이면 이불 속에서 그 울음을 깨물어 죽이네'라는 표현이, '항상 앓는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껼에' 뜬다는 이육사의 <파초> 첫 연이,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 입을 벌리고 독한 술잔으로 들이붓는다./ ...(중략)... / 아아,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 뜻이 굳지 못한 청춘들의 골(腦)를 녹이려 한다. / 생재목(生材木)에 알코올을 끼얹어 태워버리려 한다.'는 심훈의 시는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한 편의 시로 적어 놓은 듯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읽어내리는 그들의 시가, 그들이 목놓아 부르는 저항적 의지와 독립의 열망이 새삼 더욱 새록새록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물 혁명 - 인류의 미래, 식물이 답이다! 혁명 시리즈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김현주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얘기해보라고 하면 '미모사'이다. 아홉 개의 챕터로 나누어서 식물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첫 번째 챕터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미모사'다. 자극때문에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실제로 여러 번 식물관에서 보기도 했다. 직접 손으로 건드려서 움츠러드는 잎을 관찰하기도 했으니 '미모사'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첫 번째 챕터 타이틀이 '뇌 없이 기억하는 식물의 신비한 능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르네 데폰테이누의 독창적인 '미모사' 실험과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일본 동료와 함께 했던 '추락하는 상황에 놓이'게 만들어 관찰했던 미모사 실험은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미모사의 자극과 반응에 관련된 글을 읽는데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떠올랐다. '자극과 반응'이라는 단어에 늘 동물을 떠올렸던 터라 식물에서 그 반응 실험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된 '미모사''라는 표현처럼 식물 앞에 '훈련'이라는 생소한 어휘 표현 글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익숙하지 혹은 예상치 못한 데서 만난 단어들이 주는 신선함때문이리라. '미모사'가 더욱 나를 기막히게 한 것은 미모사의 기억력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자극상황을 기억하고 반응하지 않는, 그러니까 학습되어 기억하고 있는 표준 기억시간이 40일 이상이라는 점이다. 정말 놀랍지 않는가! 


두 번째 챕터도 흥미진진하다. 뿌리끝의 놀라운 특성을 알게 된 챕터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보퀼라'라고 불리는 또다른 희한한 녀석을 만났다. 이녀석은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는 '진정한 식물계의 젤리그'란다. 책에 실린 사진 자료가 별로 없고 실제 다양한 변화 모습은 보고 싶기도 해서 구글 검색까지 하게 만든 녀석이다.

네 번째 챕터에서는 '세열유럽쥐손이' 씨앗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만났다. 그 씨앗의 구조, 습도에 따른 움직임 등이 번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식물이 가진 특성을 접목하여 어떻게 다른 분야의 과학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지 등을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챕터에서도 '미모사' 만큼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있다. 식물과 개미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인데 특히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인 '아카시아' 이야기가 그랬다. 원인을 몰랐던 원주민들에게 '악마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원형 공터들이 사실은 개미가 아카시아 나무를 위한 적극적인 방어로 인해 생긴 서클이라니~~. 더더군다나 그 개미를 조종한 것이 식물인 아카시아 나무란 사실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동적인것과 능동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대목이다.

여섯 번째 챕터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동물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는 식물의 능력(?)을 이야기한다. 특히 꿀벌의 춤이 의사소통의 방식 중 하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단지식의 하나로 문제해결력에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일곱 번째 챕터에서는 식물과 건축의 이야기다. '빅토리아 연꽃'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물들과 대기의 수분을 응결하여 물을 생산하는 와카 워터 등 식물의 형태와 기능을 본 뜬 건축물이 그 기능을 그대로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기술 혁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란 기대된다. 

여덟 번째 챕터에서는 무중력 상태에서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마지막 챕터에서는 담수없이 채소를 생산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 챕터 하나 놀랍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다. 말그대로 놀라운 식물의 능력을 알 게 해주는 책이다. 

책에 수록된 컬러풀한 선명한 사진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좀 더 많은 사진이 실렸음 하기도 했다. 또하나 책을 읽다보면 타임랩스 영상을 찾아서 보고픈 내용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은 물론이고 파생되는 호기심과 궁금증은 또다른 확장된 지식정보를 찾도록 유도한다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사람의 역사 -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만남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헬게 헤세 지음, 마성일 외 옮김 / 북캠퍼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더 기다리지 못했다. 곧 마차에서 내려 말을 타고 남은 거리를 달렸다. 피렌체Florenz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근처에 사는 그는 집에 있는 아내와 이제 막 태어난 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난해 만난 한 사람과의 재회를 앞두고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lo Machiavelli(1469~1527)는 기대에 가득 차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본문 57쪽


<두 사람의 역사>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야기를 풀어 내고 있는 챕터의 첫 부분이다. 발췌한 부분처럼 서사적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도입부가 쉽게 읽히고 흥미를 돋아 '두 사람'의 만남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한 페이지들을 쉽게 따라 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와 같은 서사적 도입으로 인하여 읽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는 부분도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생각했던 일반적인 인문도서의 구성과 문체를 생각해서인지 이런 도입부가 꽤 독특하다 느꼈다. 물론 도입부처럼 모든 글들이 서사적으로 펼쳐지고 있지는 않다. 도입부를 지나면 각 그들의 생애와 업적등을 설명하고 두 사람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시너지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와 <모나리자>의 다빈치가 엮여져 있을 것이라곤 한번도 생각지 못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익숙하게 엮여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다룬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반 고흐와 폴 고갱, 처칠과 채플린,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등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루고 있는 챕터의 내용이 뻔히 알고 있는 스토리로만 구성하고 있지 않아서 이또한 재미있게 읽었다. 

 

천문학자였던 케플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특히 프로테스탄트였던 케플러가 별점을 봐주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별점을 봐준 발렌슈타인의 별점 내용이 꽤나 잘 맞았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우정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흄과 애덤 스미스가 각 저서 <도덕원리에 관한 탐구>와 <도덕감정론>으로 만난 후에 우정을 어떻게 이어갔는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흄이 사랑했던 부플레르 백작 부인의 행태가 어처구니(?) 없었지만 흄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알수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닐스 보어에 대한 색다른 인상을 안겨주기도 했던 아인슈타인과의 만남 이야기,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외형적인 말과 글솜씨의 비교글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다가 작가 소개를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독일 역사 교양서의 대표 작가라는 말이 붙을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루고 있는 인물의 시대가 고대에서 현대까지라는 점도 그렇고, 담고 있는 인물들도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당대에서 각 분야에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생애가 또 그들의 생각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그로 인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을 작가의 흥미로운 글을 쫓아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 아직도 망설이는 당신에게 스펜서 존슨이 보내는 마지막 조언
스펜서 존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은 지 10년은 된 듯하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마음 깊숙이 강렬함을 남긴 작품이었다. 그책으로 스펜서 존슨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스펜서 존슨의 <선물>, <멘토> 등을 읽으면서 울림을 주는 그의 글들에 내 생활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이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거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해서 읽히는 책이 바로 그책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스테디셀러이다보니 독자층이 두꺼운 스펜서 존슨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혼자 남았던 '헴'의 거취를 궁금해하는 펜들로 인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한다.

그렇게 해서 쓰여진 책이 바로 이책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깜짝 반가움이었다. 치즈를 찾으러 떠나지 않고 그 구역에 혼자 남아있던 '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헴'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 '헴'은 그 구역에서 여전히 치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또한 친구 '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헴'은 치즈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변화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헴'은 치즈를 찾는 중에 또다른 꼬마인간 '호프'를 만난다. '치즈' 말고도 먹을 수 있는 '사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책에서 '호프'의 역할은 꽤 중요하게 느껴진다. '호프'가 '헴'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해 혹은 답변을 통해 '헴'의 사고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사고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물론 '호프'가 던진 질문에도 '헴'이 자신이 옳다 여기고 있던 '신념'을 고수했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만약 '헴'이 '호프'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스로 미로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되었더라도 '호프'와 함께 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정서적 안정감은 물론이고 미로를 벗어나는데 시간을 줄일 수는 없었을 듯하다.  

'호프'를 보면서 멘토 혹은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도 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누구와 함께 행동하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즈'가 아닌 '사과'도 먹게 된 '헴'은 이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미로 밖 세상을, '호프'의 질문을 통해 처음으로 떠올려 보게 된다. 이제껏 먹었던 그 치즈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지? 상황이 바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꼼꼼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아쉽게도 이책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스펜서 존슨의 '마지막 조언'이 되었다. 2017년 7월에 스펜서 존슨이 작고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가 남긴 마지막 조언이 얇은 책이지만 묵직하게 마음판에 흔적을 남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화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 봤다. 우화란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은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를 말한다. 이 정의에서 헤아릴 점은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는 동.식물을 등장시킨다는 것과 '유머 속에 교훈'이라 하겠다. 보통은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 우화로 표현하여 글을 쓰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의 등장은 조금 과장되어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골계미라 하여 뼈가 있는 웃음이라는 점에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유머라 하겠다. 이책의 리뷰를 쓰면서 우화의 사전적 정의를 들먹인것은 이것이 우화집은 맞지만 내가 익숙히 알고 있던 우화집과는 많이 다르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솝우화나 라퐁텐우화에 이제껏 길들여져 있던 탓일듯 하다. 


이책 <여우 이야기>에서 골계미를 찾기 쉽지 않다. 내게는 그랬다. 교훈을 찾는 것 또한 어렵다. 처음 읽으면서 '이 여우는 왜 이럴까'로 시작하다가 삼분의 일쯤 읽었을 때는 도저히 어떤 이유로든 사랑할 수 없는 여우 '르나르'가 되었다. 여우하면 떠올리는 전형적 캐릭터로 묘사되긴 하다. 하지만 그 교활함이 앞뒤 맥락없이 교활해서 한없이 악해 보인다. 미련과 아둔함으로 표현되는 늑대 '이장그랭'은 도리어 인간적으로 느껴져 읽는 중에 내 마음은 '이장그랭'에게 더 쏠렸다. 


삼분의 이쯤 읽었을 때는 '르나르'에게 많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그 여우가 하는 행동들에 더이상 반감은 가지 않았다. 주변 많은 동물들에게 못되게 굴고 자기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처음글에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그 교활함이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르나르'의 캐릭터를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마 이솝우화나 라퐁텐우화에서 만났던 '여우'를 생각했다가 그들보다 좀 더 극단적인 여우 '르나르'를 처음에는 그 캐릭터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제껏 보편적인 우화 속 여우가 주는 캐릭터에 익숙했기 때문일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책은 나에게 우화집에 대한 새로운 시선 하나를 추가해주었다. 이제껏 알고 있던 이솝의 '여우'가 아닌 매우 일관적이고 평면적인 여우 '르나르'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치 않는 '르나르'의 이야기는 책을 덮고나서 더많은 생각을 끄집어내게 했다. 

이책 <여우이야기>의 풍자는 웃음보다는 슬픔을 안겨준다. 당시 봉건 사회 속에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심리가 느껴져 더욱 그러했다. 당시 세태를 살아가기 위해선 여우 '르나르'이야기를 통해 강력한 경고가 필요했던건 아닐까?

이책에는 이솝우화 속 여우이야기와 비슷한~ 조금은 익숙한 장면들도 나온다. 부록으로 이솝우화와 라퐁텐우화를 몇 편 실어놓았다. 비교해 읽을 수 읽어서 부록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