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동주의 문장
윤동주 지음, 임채성 엮음 / 홍재 / 2020년 6월
평점 :
백석의 시집 『사슴』을 옆구리에 끼고 교정을 걷는 윤동주를 떠올려본다. <별 헤는 밤>,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오는 ‘프란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굵직한 두 시인이 모두 사랑하는 시인이었나 보다.
<별 헤는 밤>에 쓰인, 흙으로 덮어 버렸던 시인의 이름은 우리말 이름이었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부끄러워서 흙으로 덮은 그 이름이 일본식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이러저러 이야기들이 있어서 궁금했었는데,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프롤로그’에서 바로 풀렸다. ‘프롤로그’에는 시 한 편이 실려 있다. <참회록>이다. 엮은이는 이 <참회록>을 설명하면서 ‘일본 유학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창씨개명을 해야 유학이 가능함), 그래서 ‘한없이 부끄럽고 괴로운’ 시인의 참담함이 담겨져 있다고 쓰고 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때가 1941년 12월 27일이었고, 그 다음 해인 1942년 1월 29일에 일본 유학 비자를 신청했다 한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마다 시를 쓴 날짜를 기록했다. <별 헤는 밤>이 쓰인 날짜는 1941년 11월 5일이고, <참회록>이 쓰인 날짜는 1942년 1월 24일임을 통해 <별 헤는 밤>을 쓸 당시는 창씨개명 전임으로, 그 시에 쓰인 ‘이름’은 ‘히라노마 도쥬’가 아닌 ‘윤동주’라는 한글 이름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윤동주의 시와 함께 엮은이가 적어 내려가는 짤막한 감상과 그 시에 엮인 배경이야기 등을 소소하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 윤동주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꽤 많았는데, 시인 윤동주의 사랑 경험이나 학교 농구선수로 활약했다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순이’에 대해서 늘 궁금했었다. ‘순이’가 담긴 시가 세 편이 있는 데, <사랑의 전당>, <소년>, <눈 오는 지도>가 그 시들이다. ‘순이’ 자신도 알 수 없도록 사랑했던 윤동주의 감춰진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눈 오는 지도>의 전문을 옮겨 본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힌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혀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은 네 편의 산문과 부록처럼 실린 ‘벗들의 회고’이다. 윤동주 시인의 산문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읽게 되었는데, 산문을 통해서도 윤동주의 ‘부끄러움과 성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