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씨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레코드 팝도 아니고, 티셔츠도 아니고 집요하게 끌어모은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도 방대하게 클래식이 등장한다. 단편 소설 ‘빵 가게를 습격하다’가 유럽의 한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읽히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바그너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빵집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탄호이저’가 계속 흐른다.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읽는다면 더없이 좋다. 바그너는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순수함으로의 분해를 미치도록 표현해 준다. 아쉽게도 이번 클래식 에세이에 바그너는 없다.


그리고 베토벤이 많이 언급된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호시노가 나카타 상이 잠들어 있을 때 한 카페에서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를 듣고 감동한다.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는 오스트리아 대공에게 바치는 베토벤의 곡으로 정말 좋다.


나에게 있어 기적 같은 일이라면 독일 쾰른 음대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친구가 있어서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왕왕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연주회를 몇 번 본 적도 있다. 지금은 한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 번은 책 139페이지에 소개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해 주기도 했다.


1인칭 단수에 실린 ‘크림’ 속에 나오는 모차르트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는데 이 연주는 두 명이 해야 한다. 역시 여기 에세이에는 언급이 없다. 그래도 160페이지에 소개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대미를 장식할 때 흘렀던 곡으로 참 좋았다. 책에서는 그런 영화 이야기 따위 언급은 없지만.


클래식 애호가인 하루키 씨의 클래식을 들여다볼 수 있고 음악을 찾아 들으며 읽으면 더없이 좋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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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https://youtu.be/QAUSsO8_vLo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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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는 조스 스톤의 ‘jet lag’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스 스톤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여자다. 노래 하나만 잘 부르면 되는데 키도 크고 늘씬한 데다 배우이기도 하다. 나는 카페의 창에 붙어 있는 바에 앉아 있었다. 혼자라서 작은 카페의 몇 개 없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기도 뭣해서 창밖으로 거리의 풍경이 보이는 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음에 겨우면 가끔씩 창밖을 쳐다보며 졸음을 공멸시켰다. 사람들과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파랑(wave)이 잔상이 거리에 남았다.


조용한 카페에 여자 두 명이 소란스럽게 들어왔다. 여성들은 테이블에 앉지 않고 내가 앉아있는 자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받아와서 앉았다. 그렇게 길지 않은 바에 나를 비롯해 여자 두 명이 앉으니 자리가 꽉 찼다. 여성들은 가방에서 빵과 과자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비교적 읽은 책 제목 정도는 기억하는 것에 비한다면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어린 시절 내가 차고 다녔던 nappy의 종류처럼 전혀 기억이 없다. 당연하지만 앉아서 읽은 책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내용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분명 옆에 앉아있었던 두 명의 여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두 명은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했고 커피를 마시고 그들이 들고 온 빵과 과자를 먹었다. 여자들이 빵을 먹는 소리가 처음에는 여트막하게 들렸다. 대부분의 로컬 카페는 외부 음식은 반입금지라고 붙여놓지만 이 카페의 주인은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외부에서 조각 케이크를 들고 오던 말든, 빵을 들고 오던 말든, 만두를 들고 오던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니 카페에도 치즈케이크와 티라미수, 블루베리 크림 조각 케이크와 웨하스 정도는 있었지만 주인은 외부 음식 반입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음식을 따로 들고 와서 커피를 주문해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나의 달콤한 졸음도 싹 달아나고 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여성 두 명이 빵을 먹는 소리가 공백을 흔들어버릴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성 두 명이 빵을 씹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나란히 앉은 두 명의 여성 중 구부러진 등을 보이고 앉은 여성 때문에 건너편의, 그 옆에 앉은 여성은 입만 보였다.


어째서 여성의 입이 내 시선에 명확하게 들어왔는지 의문스럽지만 빵과 과자를 입안으로 넣어서 씹는 모습이 보였고 그 씹는 소리가 카페에 흐르는 음악을 압도할 정도로 컸다. 입술을 움직이는 사이사이에 여자의 치아가 보였다. 앞 니 두 개는 대단히 크고 튼튼하고 단단해 보였다. 마치 종마의 앞니 같았다.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꼭 여물을 씹어대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입으로 빵을 집어넣으며 말을 했는데 그 양이 대단하여 착각이라고 생각할 뻔했다. 세상이 멎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놀라운 것은 움직임에는 일정한 리듬이라는 게 정확하게 있었다는 것이다. 빵과 과자는 일정하지 않는 패턴으로 입속에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반면, 음식을 씹는 입의 움직임에는 체계화된 질서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내 사고의 리듬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패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비행하는 파리의 눈알이 되어 여자가 음식을 씹어대는 입술만 확대시켜 쳐다보고 있었다. 패턴인 이렇다.


빵을 손으로 집는다.

입안의 음식물이 다 사라지기 일보 직전에 빵을 입안으로 넣는다.

또 입안의 빵이 다 사라지기 전에 과자를 입속에 넣는다.

그리고 큰 앞니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음식물을 분쇄해서 씹는다.


입술을 좌에서 우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음식물을 분쇄했는데, 정확한 형태와 간격 그에 따른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여자의 입술을 보고 있으니 마치 이 공간은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그 세계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모든 것이 여자의 입에 맞춰지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번 느끼고 나니 지금 앉아있는 현실과 현재의 시간이 바닥에서 붕 떠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카페에 흩어져 있던 의식을 그러모으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여자의 입술은 빵을 먹을수록 더욱 전투적이 되었다. 머리가 잘린 생선의 구운 이리를 씹으며, 죄를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귄터 그라스의 넙치도 생각이 났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카페의 공간에 소리라는 곳이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저 음식물을 끊임없이 씹고 있는 여자의 입에서, 큰 두 개의 앞니에서, 시간을 돌려야 했지만 나는 포르노를 처음 보는 학생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입술의 주름까지 전부 보였다. 봄으로 들어와 버린 계절에 크고 갈라진 입술의 주름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양식의 하나였지만 여자의 입술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빵과 과자가 들어가서 움직이는 입술과 입은 기계처럼 정확한 패턴을 그리며 음식물을 끊임없이 씹어댔다. 여자의 큰 앞니 두 개가 빵을 씹어대는 것에는 어떠한 불길한 정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말의 큰 치아 같은 여자의 앞니 두 개에는 치석이 그러데이션으로 번져 있었다.


치석의 색은 일반론에서 생각할 수 없는 색으로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흩어지고 분열되었던 내 의식은 점점 조밀해졌고 육체는 한순간에 분리가 되어서 바람이 불면 저 끝으로 날려가서 먼지가 될 것만 같았다. 주름이 거대한 입술은 간단없이 움직였고 큰 앞니로 입안에 들어간 빵과 과자를 분쇄하는 행위는 무섭도록 치열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각성을 불렀다.


그래, 각성이었다. 질서를 강요하는 두 개의 큰 앞니는 나에게 각성을 요구했다. 각성하지 않으면 점점 후퇴하여 저만치 달아나버린 자아를 따라잡지 못한다. 여자의 큰 앞니는 말처럼 원을 그리며 자유와 치아를 총제적으로 부단히 분쇄했다. 세계가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하듯이.



Joss Stone - Jet Lag

https://youtu.be/n5Ac5IPk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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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빵 가게 재습격


드라이브 마이카를 통해 하루키의 이야기가 영화화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지만 버닝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헛간을 태우다’는 하루키가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타오르다’를 읽고 쓴 단편소설로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서 어린 종수를 통해 ‘헛간 타오르다’와 어른이 된 종수의 ‘헛간을 태우다’를 절묘하게 녹여냈다. 종수의 부분은 자연광으로 촬영을 해서 아주 어둡고 소량의 빛으로 종수를 말하는 테크닉 역시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 마이카 역시 ‘여자 없는 남자들’ 속 단편 소설을 영화에 전부 녹여냈다. 그리하여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도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역시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레이 만’ 역시 사치를 통해 아들과 남편에 대한 기묘한 감정에 대해서 아주 잘 만들었다. 나는 사치가 남편이 쓰던 헤드폰을 아들을 거치고 자신이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그 변화되는 감정에 깊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토니 타키타니’가 있다. 이 영화는 소설의 문체를 영화로 옮기기 위해 이치카와 준 감독이 한 공간에서 인테리어만 바꾸어서 촬영을 했다. 시종일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영화를 관통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깊은 통주음을 느낄 수 있다. 또 트란 안 홍 감독의 ‘상실의 시대’가 있다. 트란 안 홍 감독을 좋아해서 그의 영화는 대부분 다 봤다. ‘씨클로’에서의 소년 같은 양조위나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의 분노에 미쳐버린 이병헌의 살벌한 모습까지. 그리고 피 같은 나오코와는 다른 녹음이 짙은 미도리에게 내내 마음이 빼앗겼던 상실의 시대까지.


그렇다면 하루키의 소설이 영화가 된 것이 이 정도뿐일까? 아니다. 더 많다. 1980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오오모리 가즈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때를 떠올리며 하루키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오오모리는 효고 현에 있는 아시야 시립 세이도 중학교의 나의 3년 후배이며, 내가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영화화되었을 때 감독을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하루키 에세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나와있다. 씨네 21에서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누적관객이 195명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좋아할 것이다.


2008년 로버트 로지볼 감독, 조안 첸 주연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가 있다. 2010년에는 카를로스 쿠아론 감독,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빵 가게 재습격’이 있다. 이 영화에서 하루키 씨는 원안으로 참여한 것으로 안다. 빵 가게 이야기 1편 격인 ‘빵 가게를 습격하다’는 유럽의 어느 나라의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읽어주는 도서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수술을 받고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조마조마한 환자들은 이 소설을 들으며 회복 기간을 앞당긴다고 한다. 참으로 기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또 유튜브에는 ‘시나가와 원숭이’ 단편 영화도 있다. 이 작품의 설명이 이렇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소설 ‘시나가와 원숭이’를 후거가 각색하고 주연한 중국 마이크로필름.라고 되어 있다. 10분 짜린데 꽤나 재미있다. 또 2008년에는 폼 플린트 감독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해’의 영화가 있다는데 이건 도무지 구글링을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 ##むらかみはるき#村上春樹#むらかみ#はるき#MurakamiHaruki #에세이 #무라카미라디오 #Murakamiradio #무라카미영화 #바람의노래를들어라#herethewindsing#風の歌を聴け #신의아이들은모두춤춘다#AllGodsChildrenCanDance#빵가게재습격#thesecondbakeryattack#시나가와원숭이#品川猿



상실의 시대 미도리 편 https://youtu.be/QRlZTq0jE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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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집 이야기


내가 가끔 찾는 근처의 스시집이 있는데 그곳의 주인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십여 년 전 그 스시집에 처음 갔을 때 주인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무라카미 씨가 처음에 이곳에 오셨을 때, 정말 이 사람이 스시를 먹고 계산이나 할 수 있을까 하며 걱정했답니다”라고 하는 거였다. “아, 그렇게 제가 가난하게 보였습니까?”라고 물으니 “네, 그렇게 보이던데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불쑥 혼자서 스시집에 들어와서 카운터에 앉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히 여행을 갔을 때 왠지 모르게 낯선 가게에 혼자 들어가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확실하게 종종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예약이 꽉 차있거든요”라고 해서 나는 쫓겨난다. 덕분에 텅 비어있는 가게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의외로 그런 가게는 정감이 있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생각지도 않게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 곳이라고 해서 안 좋은 생각을 하거나 바가지를 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은 교토의 작은 요리 집에 혼자 훌쩍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으며 가게 직원과 이런저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산을 했는데 “작가님 계산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직원에게 이야기를 할 때 나에 대해서 전혀 표를 내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교토는 꽤나 깊은 구석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이 디즈니 영화의 주제가를 부릅니다.

while you work(휘파람을 불고), 백설공주 속의 곡입니다. https://youtu.be/awovOmjp9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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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오후 7시부터 55분간 이어진 무라카미 라디오 속의 하루키의 에피소드다. 들어보면 청취자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높임말로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키의 책자처럼 ‘그렇다’로 하였다.


2022년 3월 18일 방송한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하루키는 55분간 특별 프로그램으로 ‘무라카미 라디오 –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음악’을 진행했다. 하루키 씨는 자신이 소장한 음반에서 반전 메시지가 담긴 11곡을 골라서 틀면서 가사와 노래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루키 씨는 처음 곡으로 제임스 테일러의 ‘Never Die Young’을 틀었다. “이 곡은 반전 음악은 아니지만, 젊은이의 죽음에 대한 노래”라고 소개하면서 “어른들이 만든 전쟁에서 젊은이가 죽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슬프다”라며 전쟁을 비판했다.


더 위버스의 ‘Last Night I Had the Strangest Dream'를 틀면서 한국전쟁이 벌어졌던 때의 반전 음악이라고 하루키 씨는 소개를 했다.


존 레넌의 ‘Imagine’을 틀었고 또 아직 살아있는 전설인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e’도 하루키 씨는 틀었다. 하루키 씨는 마지막 곡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곡했다.


하루키 씨는 음악이 없는 생활은 거의 죽음과 비슷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했다. 니체도 음악이 없는 인간의 삶은 실패로 일관될 뿐이라고 했다. 하루키 씨는 음악이 흘러 전쟁으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루키 씨는 마지막으로 “전쟁을 그만두게 하자는 마음이 모여 조금씩이라고 힘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더 위버스의 스트레인지 드림을 들어보자 https://youtu.be/UZEaPOikA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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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6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소설 뿐 아니라 수필, 특히 여행 수필이 좋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한 권 추천 부탁해도 될까요?

교관 2022-03-27 11:58   좋아요 0 | URL
제가 누군가에게 하루키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참 난처해지는데 ㅋㅋㅋ 저에게는 소설이나 장편이나 단편이나, 기록문이나 에세이나 여행기나 받아들여지는 게 비슷하더군요. 눈에 띄는 하루키 책이 있다면 그것부터 시작해보세요 ㅎㅎ

blanca 2022-03-26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말과 글을 듣고 읽으실 수 있다니 정말 부럽네요. 일어를 모르는 게 참 아쉽더라고요.

교관 2022-03-27 12:0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ㅋㅋ 찾아보고 물어보고,를 여러 번 하고, 그래서 적어 넣은 것입니다. 하루키의 대부분의 책이 한국번역으로 나와 있으니 한국말로 된 좋은 책들이 많기에 그것만 읽고 또 읽어도 10년이 훌쩍 지나갈 것 같아요
 

50년 전에 나온 웨스턴 무비가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건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맥베인 부인 역으로 나오는 젊은 카르디날레가 죽은 가족 앞에 섰을 때 흐르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가히 환상적이다. 마초성 웨스턴 무비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제인 폰다의 아버지, 헨리 폰다의 연기며, 아름다운 카르디날레의 모습이며, 주인공인 하모니카 역의 찰스 브론슨까지.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는 영화다.

레오네 감독은 천재답게 초반부터 대사도 없이 그저 얼굴에 붙는 파리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몰입을 시켜 버린다. 마치 그들에게도 연기의 한 부분을 부여 한 듯이. 

그리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3시간 가까이 이어지는데 빠져나올 수 없다. 

아버지는 찰스 브론슨의 팬이었다. 그래서 찰스 브론슨에 대해서는 줄줄 꿰고 있었다. 그 눈매며 손톱의 때까지. 지금은 나의 아버지도, 찰스 브론슨도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영화와 추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찰스 브로슨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찰스 브론슨 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악역인 프랭크 역의 헨리 폰다다. 

거의 50년 전에 나온 영화가 이토록 재미가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세르지오 레오네와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유명한 영화음악이 많지만 이토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에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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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24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도 음악이지만 포스터가 엄청 강렬하네요.

교관 2022-03-25 11:04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봤어요 ㅎㅎ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