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문구가 ‘탕후루 반입금지’라는 문구다. 이 문구가 아이스크림 가게, 스티커 사진 가게, 화장품 가게 앞에 떡 하니 붙어 있다. 요즘은 이 탕후루가 반갑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 탕후루가 인기다. 아이들은 탕후루에 빠져서 엄마를 조르기 일쑤다. 탕후루는 보통 사오천 원 정도 하는데 칠 천 원 하는 곳도 있다.


어떤 전문점에서는 고액의 아르바이트비를 줄 테니 탕후루 직원을 구하는 소식이 뉴스에 뜨기도 했다. 상상 그 이상의 인기를 얻는 탕후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들어가는 설탕이 과하다는 것이다. 설탕에 환장하는 한국이 걱정이라는 말이다. 공중파에서도 탕후루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만 다루면 영상 조회수가 대박을 친다. 그러다 보니 먹방 유튜브 들이 너도 나도 탕후루를 먹는 영상을 올렸다. 이를 본 아이들은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탕후루 전문점으로 달려간다.


이와 더불에 지금 가장 핫 한 소식은 아이폰 15의 발열상태다. 또 떨어트렸더니 깨졌다거나, 티타늄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점을 여기저기서 다루고 있다. 빌어먹을 테크튜브들 전부, 몽땅, 1도 빠지지 않고 아이폰 15에 대해서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있다. 그게 그들의 일이니 뭐 어쩌겠나 싶지만 예전만큼(아이폰 초창기) 기기들에 대해서 인기가 떨어져서 요즘은 설레발들이 늘어났다.


아이폰이니 갤럭시니 새로운 제품이 출시가 되면 언제나 문제점이 영상으로 떠돌아다녔다. 출시가 되면 휘어짐, 구겨짐, 그린끼, 카메라 문제, 고스트 현상, 플레어 등 늘 문제가 생겨났고 그에 따라 유튜버 놈들이 이런 문제를 아주 큰일 난 것처럼 영상을 제작해서 올렸다. 안 그런 유튜버도 있지만 대체로 자극적으로 영상을 만들어야 조회수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안 그런 유튜버보다 그런 유튜버가 더 많았다. 큰일 난 것처럼 영상을 제작해서 올려야 자극이 되고 곧 조회수로 돈으로 연결이 된다. 관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요만한 문제도 이만큼 큰 문제로 영상을 제작한다. 그래야 이슈가 되고 공중파 뉴스에도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아이패드를 지금까지 총 4대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동안 그런 문제점 때문에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구겨지거나 휘어지거나 스크롤올 내릴 때 무슨 문제 같은 것들이 있었냐 하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서브로 아이폰4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이폰 4가 나왔을 때 손가락을 어디에 갖다 대면 안테나가 뜨지 않는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현재 애플에서 아이폰의 새로운 발표를 하면 테크튜브들이 미국까지 건너가서 그놈의 팀쿡 하고 사진 한 번 같이 찍고 성덕인 양 인정하고 누가 누가 더 빨리 소식을 올리냐 내기를 하는 것 같아졌다. 그런데 이거나 그거나 저거나 다 비슷비슷한 내용뿐이다. 정말 현명한 테크튜브 몇몇은 그들처럼 우르르 유행에 딸려가지 않고 좀 시간을 뒀다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된 영상을 올린다. 잘 보면 후자 쪽이 훨씬 인기다. 후자 테크튜브들, 즉 현명한 인간들은 이제 다 안다. 우르르 가서 비슷한 영상을 올리고 팀쿡과 사진 한 번 찍고 좋아하는 따위의 영상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아이폰 3이나 아이폰 4, 5가 나왔을 때만큼 혁신적인 변화가 없으니 그 외의 것들에서 영상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설레발이 늘어나는 것이다.


탕후루도 마찬가지다. 탕후루 달겠지, 나는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탕후루 하나에 들어가는 당분이 콜라 한 잔에 들어간 당분보다 적다고 한다. 그 외 여러 감미료가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일단 과일이라도 들어가잖아. 콜라나 사이다에 과일은 들어가지 않는다. 탕후루는 비싸니까 또 자주 먹지 못할 테고. 아이들 같은 경우 부모가 좀 제재를 해야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달고나. 그 달고나 열풍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달고나 해 먹는 사람이 있을까. 얼마나 열풍이었나. 생각해 보면 굉장했다. 줄 서서 달고나 해 먹고. 근데 2년 정도 지난 지금 달고나 해 먹는 풍경을 볼 수 있냐면, 볼 수 없다. 사라졌다. 거의 없어졌다.


달고나는 그냥 설탕이다. 이 달고나를 먹고 자란 어른들 같은 경우 전부 당분 때문에 지금 고생을 하지는 않는다. 설탕을 가열하여 녹인 다음 소다를 뿌려 먹는 이상한 음식이다. 그냥 설탕을 입에 넣는 수준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어릴 때 몇 번이나 해 먹었다. 그런데 그 당분 때문에 지금 어른들이 전부 골골거리지는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탕후루는 양반이다. 그렇게 유튜브나 뉴스에서 설레발을 칠 거리가 되나 싶다. 이는 깊게 파고들면 사회적 문제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가장한 정치적인 문제에 가까울 수 있다. 설탕 왕창 들어간 코카콜라는 늘 어쩌지 못하면서 탕후루 같은 소규모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지금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은 아닐까. 국감에 탕후루 업체 대표까지 불렀다고 한다. 부르려면 설탕 회사 대표를 불러야지 거기는 대기업이라 손을 댈 수 없으니 늘 만만한 사람들을 불러 조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티브이를 보다 보면 흥이 확 깨지는 게 살인을 하고 딱 서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모자이크가 된다. 이 부분 때문에 몰입이 깨진다. 담배 피우는 게 너무 나쁘고 안 좋다고 해서 티브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흡연장면은 전부 모자이크다. 담배가 인간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은 시청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 보이는 처방이라고 지들은 생각하겠지만 설레발이다.


담배, 물론 인간에게 나쁘지만 따지고 보면 담배보다는 술이 인간에게 더 해롭다. 술을 마시고 만취한 채로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술에 취해 칼부림을 하고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비를 건다. 명절에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가 욱 한 마음에 가족을 찌르기도 한다.


담배는 광고도 없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만 술은 이상하게 권장하는 분위기다. 이상하잖아. 맥주 - 각종 맥주, 하이볼, 소주 광고는 죄다 예쁜 연예인들이 나와서 술이 맛있으니 많이 마시라고 한다. 소주 광고는 이효리 이후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이 광고를 한다. 요즘은 소주병도 예쁘게 만들어서 더 많이 구입하게 하려는 속셈이 눈에 드러난다.


또 술에 관한 드라마도 있다. 술꾼 도시의 여자들처럼 술에 관련된 드라마에서는 술을 찬양하며 미지근한 소주가 어떻다느니, 술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만취해서 꽐라가 되면 세상이 자기 것인 양 이야기가 이어진다. 드라마에서 술 마시는 장면은 너무나 맛있게 이어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크햐. 사람들은 기분 좋아한다. 그러나 담배 한 대는 모자이크다. 아니 피우는 장면도 거의 없다.


담배와 술 중에 타인에게 피해를 더 주는 건 당연하지만 술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로 패가망신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술로 가족이, 가정이, 자신이 망가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영화 속에서 라면에 소주 마시는 장면은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면서 어째서 담배 피우는 장면은 모자이크인가.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건(영상 속 모자이크 처리건) 그것과는 무관하다. 담배연기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는 하나 만취한 사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큼 표층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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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기념우표, 너무 예쁘네 ㅋㅋ


추석에 모인 가족이 전부 카페에 간다고 외출을 하고 드디어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고작 몇 명 안 되는 가족인데 음식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모두 카페에 간 김에 저녁도 먹고 올 듯하니 이 많은 음식은 전부 내가 먹어 치워야 한다.


그러다가 잠이 와서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이 강렬해서 일어났을 때 더 피곤했다. 어린 시절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붓고 아픈 것처럼 피곤했다. 꿈에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건 내가 아니고 곰이었다. 곰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한 번 봤을 법도 꿈에서 본 게 처음이었다. 영화나 뭐 이런 데서 봤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에서 곰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꿈에서 곰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굉장히 무서웠다. 곰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땅으로 떨어졌다. 곰은 자신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곰의 배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내용물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곰이라기보다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일어나니 몹시 피곤했다. 아직 가족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조카는 부쩍 커서 165가 넘었다. 이제 더 이상 삼촌 무릎에 앉아서 놀던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조카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다는 건 주위 어른들이 무럭무럭 나이를 먹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먹기 싫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건 명절에 더욱 느낄 수 있다. 이만큼 차려놓고 요만큼 먹었는데 배가 부르다.


요즘은 ‘힙하게’와 ‘유괴의 날’을 재미있게 본다. 극장개봉작이나 OTT 영화들이나 미드보다 한국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다. 전부 모순적이지만 모순적이라서 좋다. 모순이란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념, 이념 같은 것이다. 인간사회의 가장 모순은 정치인들이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보면

침팬지, 이 침팬지들 중에서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가 모든 암컷 침팬지를 독식하지 못한다. 아니 독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란이 일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는 침팬지들 간의 존경과 복종을 의미한다. 인사를 하는 방식은 인간과는 다르게 제각각이다. 머리를 흔드는 놈이 있고, 허리를 구부리는 놈, 손을 흔드는 놈 등. 다양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한다.


유인원들의 정치를 보면 그리고 인간의 정치까지 모든 정치를 통합해서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우두머리, 권력을 거머쥐면 보안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 이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유전자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행동, 심리적 요인 등 우리의 이런 생물학적 기초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정치적인 행위 즉 인간의 심리가 어떤 생물학적 기초가 있느냐 한다면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가 위계와 서열, 질서를 만드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확립한다. 이게 바로 정치의 시작인 것이다.


서열을 만드는 습성, 이런 행위를 유발하는 심히, 그런 심리와 행동의 기저에 놓여있는 유전자는 침팬지와 인류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는 인류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 서열의 방식은 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이런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하는데 어느 날 한 수컷 침팬지가 인사를 하지 않는데 이게 바로 정권교체의 반란이 시작되는 시기다. 이때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원만하게 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때 유혈사태가 일어나는데 죽어 나가기도 한다. 이럴 때 우두머리는 보안관 행동을 한다. 우두머리가 되면 약자 편을 든다. 약자 편을 들어서 수를 맞춘다. 그런 행동을 많이 하는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가 자손을 많이 퍼트렸다. 우두머리가 되어서 지위를 오래 누릴 수 있고 암컷을 많이 가질 수 있는데 우두머리마다 보안관행동을 하는 빈도가 다르다.


암컷 침팬지들도 리더가 있다. 나이가 많고 친한 암컷이 많은 암컷이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암컷 우두머리도 싸움에 개입을 한다. 그런데 수컷과 방식이 다르다. 수컷은 보안관 행동으로 자신의 지지 침팬지들을 모으지만, 암컷은 공감의 바탕을 둔 개입을 한다. 자기가 친한 침팬지의 편을 든다. 암컷 우두머리와 수컷 우두머리의 싸움 방식은 다르다.


암컷 우두머리는 수컷 우두머리의 음식을 손에서 들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수컷 우두머리가 가만히 있는 경우도 있다. 암컷은 사적이다. 친한 암컷의 편을 드는 정치를 펼친다. 그러나 수컷은 약자의 편을 든다. 80%가 그렇다고 한다. 만약 100% 그러면 내부의 반발이 일어난다는 것을 침팬지가 안다고 한다.


침팬지들도 연합을 잘하는 수컷이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수컷이 도전해 와서 우두머리 자리를 잃게 된다. 사자처럼 1대 1로 우두머리 싸움을 하지 않는다. 1이 2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내줄 때에는 2는 3과 연합을 해서 1을 몰아내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건 살얼음 판이다. 적절한 보안관 행동과 20% 정도로 공감에 둔 정치를 해야 우두머리 자리를 이어갈 수 있다.


우두머리 자리를 수탈하는 과정에서 연합을 해서 우두머리의 고환을 잘라 죽이는 경우도 있고, 강이나 물에 빠트려 죽이기도 한다. 연합을 잃어버리면 권력자의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공감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고립되어서 쫓겨 날 수 있다. 집단동조심리에서 공동체에서, 집단에서 소외되는 공포는 죽음의 공포에 맞먹는다.


정치인 혼자 일 때는 학벌도 좋고, 사람들에게 지지도 많이 받고, 인물도 좋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실력차이가 드러남에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말, 이상한 말, 개소리 같은 말을 내뱉게 된다.

 2005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해리 G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영어 제목으로는 ‘On Bullshit(온 불싯)’이다.


개소리가 넘쳐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광고주는 매출을 올리려고 개소리를 하고,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개소리를 한다. 그들은 어떠한 타당성 있는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거라 생각되는 아무 말이나 혀라 한다. 일단 잘 알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다음 개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개소리를 하는 인간들에게는 어떤 것이 진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거짓말쟁이들은 진실이 아닌 무엇인가를 진실로 대체하여 그것을 숨기려 하지만 개소리꾼 들은 진실을 숨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듣는 이를 조작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관건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개소리가 좀 더 음흉하다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라면 식별이 힘들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갖는다. 알려지거나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개소리는 그렇지 않다. 모호하기만 하다. 뭐가 잘못됐고 어떻게 된 거고 왜 불쾌한 거에 대해서 손가락질하기가 힘들다.


요컨대 마음을 열고 하늘을 한 번 보라는 말에는 옳고 그름의 식별이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은 개소리와 거짓말을 거듭한다. 개소리를 하는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 권력자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것, 공천을 받는 것이지 국민을 위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정상으로 간주되고 받아들여지는 수많은 개소리들이 있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그것들이 진실에 대한 존중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위에 개소리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개소리를 매일 듣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무튼 명절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역시 화살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며칠 전에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와 함께 조금만 걸으니 좀 쉬었다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좀 걷다가 쉬었다가 걷고. 그러기를 반복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우물쭈물하더니 발톱이 몇 개 없다고 했다. 선뜻 그게 와닿지 않았는데 그는 발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깎아야 한다고 했다. 발톱은 손톱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리고 양말 속에 있어서 자주 깎게 되지 않는다. 티브이 예능 라디오스타에서 김국진은 발톱은 6개월에 한 번 깎는다고 했을 정도로 발톱은 자주 깎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발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바짝 깎아 버렸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딘가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발톱이 신경 쓰였다. 한 번은 발톱이 조그만 자랐을 때 바짝, 아주 바짝 깎으면 좀 덜 신경이 쓰일 거라며 바짝 깎았다.


그렇게 발톱을 바짝 깎고 또 깎았다. 그러다 보니 발톱 몇 개가 사라져 버렸다. 발톱 따위 붙어 있으나 마나 한 줄 알았는데 없어지니 걷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발톱은 인체에서 양말과 신발 속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 가장 하찮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잘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발톱이 못 생기면 사람들은 입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못생긴 발톱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또 이상하지만 나이가 들면 발톱의 색이 변하고 모양도 틀어지며 괴상하게 변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발이 예쁘면, 발톱이 예쁘면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해 버리기도 한다.


그는 출장이 잦은 통신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잘 걸을 수 없어서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참고 걸었으며, 발톱 부분에 붕대도 감고 걸었고, 병원에도 갔는데 날이 갈수록 걷는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고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교정전문센터였다. 나는 그를 그곳까지 가는데 같이 가주는 것이었다. 걸음걸이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는 다리의 모양까지 변형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교정 센터를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 밤마다 귀 안에서 벌레가 속삭입니다. 벌레가 말을 해요. 발톱을 깎아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발가락이 썩는다고 했어요. 벌레는 그렇게 매일 밤 나타나더니 요즘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덕분에 잠을 잘 잡니다.


얘기를 듣는 동안 목적지까지 다 왔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약간 이상한 걸음걸이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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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왔다. 다가온다, 로 하고 싶지만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왔다, 로 표기했다. 추석이 다가오는 이 시기가 가장 애매하다. 일 년 중 가장 싫어하는 시기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가장 싫어하는 시기가 붙어 있다. 이런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날이 흐리고 계절의 변화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강한 기시감에 매일 밤 어딘가를 향해 멍하게 시선을 두곤 한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나를 비롯해서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오락가락 오다가 하루 날이 좋았다. 노을을 오랜만에 보았다. 노을은 마치 비 사이를 뚫고 나온 오렌지빛 크림 같았다. 너무나 맑은 오렌지빛이었다. 나를 한참 머물게 만들었다. 3분 정도 노을을 계속 바라보았다. 3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것 같았다. 이 문장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주인공이 16살 소녀를 만났을 때 들었던 감정이다. 애매한 계절에 노을을 만나면 이런 감정이 들곤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얼마 만에 보는 노을인가. 오늘이 지나면 이틀 동안 또 엄청난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진중하고 아름답고 멋진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찰나로 지나가기 때문에 노을이 지는 모습을 진중하게 바라본다. 매직아워의 시간은 계절의 경계에서 더욱 도드라지지만 찰나로 만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다.


하늘이 침착하게 내려앉는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누군가도 지금쯤 매직 아워의 오렌지 빛 하늘을 보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일광의 흔적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밤의 시작이 마주하면 미라클 오렌지 빛이 대기에 물감을 쏟은 것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정중하게 꺼져가는 태양의 깃털처럼 내려앉은 어둠과 만나 소박하고도 화려한 교향시를 만들어 낸다.


이 시간만큼은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듣자. 이 노래를 부르는 그린데이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빌리 암스트롱 녀석. 그린데이는 그냥 신나게 노래나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은 녀석들을 언제나 악동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 달라는 그린데이의 노래를 이맘때 듣고 있으면 언제나 좀 힘들다. 그린데이가 너무 성숙해져서 힘들고, 이제 나 역시 펑크 록에 미쳐있지 않아서 힘들다.


9월은 늘 8월이 꺼져가는 계절이라 힘들다. 이런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가 독립영화였던 ‘9월이 지나면’이다. 영화는 청춘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잘 말하고 있다. 그 속을 벌리면 알 수 없는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도 보게 된다. 조현철이 기타를 들고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부른다. 그때 눈을 감고 노래를 듣던 지연이 천천히 눈을 뜨며 승조를 바라본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8kLEieEFI


제목이 뭐예요?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내 인생의 노래야.  

왜요? 9월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9월은 항상 좀 힘들더라고.

지금도요?

지금은 그냥 그래.


덤덤하다. 그리고 그 덤덤함 속에 덤덤함을 벌리고 다른 감정의 무엇인가가 고개를 들려고 한다. 그게 9월이다. 9월은 그래서 힘들다. 큰 소리로 힘들어! 가 아니라 그냥 좀 그래. 조현철은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들이 나와서 좋다. 특히 안도 다다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작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시간.

사색하는 자들은 운명을 생각하는 시간.

어둠을 향한 긴 호흡을 할 시간.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고독하게 홀로 되려고 준비하고 모두가 시인으로 향해 문을 여는 시간.

낮 동안 잠들어있던 건물들은 이제부터 가장 근사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


이제 곧 어둠 속으로 녹아들겠지. 나는 조깅하러 나왔으니 열심히 땀을 흘릴 것이다. 불청객일 것 같았던 오렌지빛은 어느새 주어가 되지만 이내 자리를 내어준다.


낮과 밤이 주연과 조연을 바꾸는 마법의 시간의 초연함을 자연은 연주한다. 우리는 그대로 그 연주를 마음을 다해 들을 뿐이다.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연은 듣는 이를 위해 연주를 해준다.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설명은 생략한 채.


그린데이의 노래를 들어보자. 빌리 조 암스트롱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만든 노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달라는 그 노래. https://youtu.be/NU9JoFKlaZ0?si=fNBBZhhPnzn1q_4n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속에는 두 사람의 연인이 등장한다. 빌리 엘리엇으로 유명한 제이미 벨과 에반 레이첼 우드. 두 사람은 그야말로 풋풋한 청춘이다. 에반 레이텔 우드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아기아기한 모습의 갓 사랑에 눈을 뜬 소녀 같은 모습이다.


잘 알겠지만 이 두 사람은 이후 진짜 연인으로 발전을 하여 결혼까지 한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웨스트 월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그 안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이었다. 영화 카조니어에서 올드 돌리오로 나온다.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돌리오에게 힘을 내! 넌 행복해야 해! 하게 된다. 너무 좋은 영화였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271


그린데이의 노래를 듣자. 9월이 지나가니까. 9월이 되면 힘드니까. 9월이 지나가면 깨워주세요. 빌리 조 암스트롱도 나이가 들었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는 혀 내밀고 악동의 암스트롱이 언제나 존재해 있다.


https://youtu.be/kTdoKP2QIR4?si=GLutuwRD2wZXkHm_


오렌지빛이여 빛나라


9월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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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날이다.


비가 추적추적 가을비에 맞게 내리고 있다. 그 사이에 가끔 소나기처럼 굵은 빗줄기가 5분 가까이 쏟아지기도 했다. 애매한 날이다. 아직 대기 끝자락에 여름이 매달려 있다. 나는 여름을 믿고 있다. 좀 더 있어도 괜찮아. 나는 여름에게 그렇게 말을 한다. 움직이면 덥고 가만히 앉아서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춥다고 느껴지는 날이다.


움직이면 더워서 카페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한데 10분 만에 체온이 내려가서 춥다고 젠장 하는 그런, 애매한 날이다. 저 창문 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저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비가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얼마일까. 비가 내리는 소리가 다른 소리를 잡아먹고 있다. 날이 밝은데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다. 애매한 날이다. 겨울처럼 흐리고 검게 변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마치 해가 쨍쨍하게 뜬 날처럼 밝은 날에 비가 몹시 쏟아지고 있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이 때 아니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우산을 들었어도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애매한 날이다. 비가 오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와! 비가 이렇게 오다니 같은 말을 하며 건물의 현관에 모여서 비가 좀 잦아들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애매한 비가 내리는 날에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좋다. 가서 비가 더 내린다면 숙소를 잡고 하루 묵고 돌아오는 것 역시 좋다. 낯선 곳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없다.


낯선 곳의 낯선 카페에 앉아 낯선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며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녹차라테를 마시는 것도 좋다. 녹차라테는 기성품이 아니라 녹차잎을 갈아서 직접 만든 녹차라테면 더 좋다. 단맛이 덜 가미된, 좀 더 예스러운 맛이 나는. 비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모든 비가 녹차와 어울리는 건 아니다. 모든 녹차라테가 비와 어울리는 것 역시 아니다.


오늘은 애매한 날이다. 그러는 동안 현관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갔다. 비가 그새 잦아들었다. 마치 해가 떠버린 것처럼 대기가 확 밝아졌다. 오늘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볼 빨간 사춘기의 노래는 좋은데 목소리는 듣기 힘들 때가 있다. 일부러 발음을 뭉그러트려서 노래를 불러서 무슨 말을 하는지 기분 나쁘게 모를 정도가 된다. 라디오에 볼 빨간 사춘기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거나 볼륨을 줄여 버린다.


라디오는 볼 빨간 사춘기를 사랑하고, 볼 빨간 사춘기의 노래는 라디오에 많이 나오고 더불어 나는 더 분주해진다. 볼 빨간 사춘기는 에이미 와인 하우스를 좋아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데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발을 뭉그려트려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가? 그렇지 않은데. 아무튼 애매한 날이다. 에이미 와인 하우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애매한 날에 내리는 애매한 비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해보자.


위의 글을 쓰고 세 시간 정도 지났다. 지금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 문득 든 생각인데 키보드를 바꾸고 싶다. 모든 글은 아이패드로 작성을 하고 있고 만오천 원짜리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는데 참 생각만큼 눌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몇 년은 쓴 것 같다. 고장도 나지 않는다. 배터리도 한 번 넣으면 일 년 가까이 사용하는 것 같다. 왜 고장이 나지 않을까. 매일 글을 적고 있는데 이 정도면 저렴이 키보드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망할 작정으로 만든 것 아닐까. 애매한 날이다. 만오천 원짜리 키보드인데 비닐 커버도 있어서 벗겨내지 않고 사용하느라 입력이 생감만큼 빠릿빠릿하지 않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쳤다. 그러나 네이버 날씨에는 밤까지 비 표시가 있다. 그리고 내일도.


애매한 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다가 시간이 흘렀다. 위의 문장과 이 문장 사이에 조깅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샤워도 했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조깅을 하는데 어떤 미친 사람이 달려와 나의 목을 물었다. 나는 미친 사람을 죽이고 비가 오는 거리로 나와 달렸다. 거리는 숲 길로 이어졌고 나는 계속 멈추지 않고 달렸다. 비가 물린 목덜미의 구멍으로 몸 안으로 들어갔다. 비에는 자연의 바이러스가 스며들어 있었다. 바이러스는 나의 인체에 영향을 주었다. 나는 몸이 뒤틀리더니 까지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적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산을 빌려 달라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우산을 빌려 준다면 목숨을 살려주지. 뭐야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야?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여? 지금 비를 맞으면 죽는단 말이야. 저 비를 봐. 나는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를 맞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몸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지금 이건 나의 의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가 알아서 이렇게 타이핑을 하고 있다. 키보드를 욕했더니 키보드가 알아서 멋대로 글자를 쓰고 있다.


만약 내일까지 비가 계속된다면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날씨가 완전히 얼굴을 싹 바꿀 것이다. 이미 오늘 오전에 차에 기름을 넣는데 주유소 마당에 낙엽이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었다. 계절을 이불 끌어당기듯이 확 잡아당긴 것 같았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세상의 곳곳에 낙엽이 나타날 것이다.


윗줄까지(금요일) 적고 나서 하루가(토요일) 지났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애매한 비가 아니라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세상이 비에 점령될 것만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멀리서도 빗줄기의 선명한 선이 잘 보인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단골 카페 라바짜에 가서 창가 바에 앉아서 크레마 가득한 커피를 한잔 꼭 마셨다. 여기서 라바짜 카페 까지는 천천히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걷는 건 뛰는 거와 달라서 조금 빠르게 걸으면 덥다. 애매한 계절이라 더우면 별로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는 더 애매하다. 더위야 5분 만에 사라지지만 그 이후에는 계속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에 맞서며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런 건 또 별로다. 그래서 애매한 날이다.


이렇게 애매한 날, 이런 날 열심히 도면 그리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다닐 때 디자인 학원을 다녔었다. 이유는 건축과에 갔지만 건축이 내가 하고자 하는 그런 학업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제법 그림이나 스케치, 모형 따위를 잘 만들어서 건축도 그 정도로만 생각했지 구조역학이니 벽돌두께니 따위를 계산하는 건 정말 내가 너무나 멀리하고픈 학업이었다. 캐드나 도면이 중요한데 – 단면도나 평면도를 잘 그려야 하는데 나는 스케치나 투시도. 그 안에 사람을 그려 넣고 컬러링을 하고, 뭐 이런 따위 것들을 좋아해서 따지고 보면 건축보다는 인테리어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워낙에 사진을 찍어 대는 걸 좋아해서 괜찮은 인테리어는 사진으로 담고, 그러다 보니 안도 다다오의 건축 양식을 좋아하고, 우리나라의 노출 콘크리트 양식의 실내를 탐험하러 다니고.


그리하여 디자인 학원을 몇 달 다녔다. 세잔디자인 학원이었다. 세잔은 후에 알았지만 폴 세잔의 이름에서 딴 것이었다. 지금은 세잔디자인학원이 컴퓨터 학원으로 싹 바뀌었지만 전국 규모로 있던 세잔 다지인 학원은 도면 치고, 투시도 그리고, 컴프레서로 컬러링 하고 인테리어 업자 따라다니며 경험도 쌓고 토론도 하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사실 학교보다 더 재미있었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좀 있었지만 학원은 하기 싫음 말고, 같은 분위기였다. 대부분 매달려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모여든 학생들이 전부 열심히 도면 치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학교에서는 별 볼일 없는 놈이었는데 학원에서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다. 어린 시절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델링에 나는 꼭 불려 다녔고, 컬러링, 색감 칠하는 것과 투시도 안에 가구나 인간 따위 그려 넣는 것도 열심히 사람들을 도와줬다.


사실 살면서 내가 이토록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는 걸 몰랐다. 도움을 주고 나면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 반응에 우쭐했다. 학원에는 목수도 있었고 인테리어 업자 즉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실무를 보는 형들도 있었다. 이상하지만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도면 치고 컬러링을 했다. 모두가 친해서 엠티를 가기도 했다. 유명한 작천정으로 갔다. 작천정은 물놀이하기에도 좋고 친목도모 따위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러니까 물도 좋고 경치도 좋은 곳이다. 엠티를 가면 비교적 가까운 작천정으로 갔는데 천막부터 해서 음식까지 규모가 대학교 과에서 가는 엠티보다 더 부티가 났다. 당연하지만 학원생들 중에는 돈이 많이 형들이 많았다. 물론 결혼도 하고 직업도 탄탄한. 대부분이 건축사 사무소 내지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학원에는 머라이어 캐리 광팬 형이 있었다. 매일 머라이어 캐리 음반을 시디플레이어로 들으며 도면을 그리고 공부를 했다. 숫기가 없고 낯을 너무 가리는 스타일인데 머라이어 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야말로 기차화통처럼 멈출 줄 몰랐다. 그 형과 오락실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우리가 가는 오락실에는 주크박스가 있었는데 돈을 넣고 음악을 신청하면 정말 공연장에서 듣는 것만큼의 엄청난 음향을 들려주었다. 오락실 안은 정말 시끄럽다. 뿅뿅 전자오락음부터 사람들의 소리가 혼합되어서 무척이나 시끄럽다. 그게 오락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주크 박스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 그 모든 소음을 싹 소거시켜 버렸다. 그 형은 늘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틀었다. 주크박스 안에는 머라이어 캐리만 음반이 여러 장이었다. 비전 오브 러브부터 히어로, 이모션까지 그 형과 머라이어 캐리를 오락실에서 듣는 이상한 재미가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도 2017년에 120킬로그램까지 살이 찌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무성의한 무대를 선보여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가 실패가 되기도 하지만 실력이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학교에 수업이 없거나 토일요일에 오전에 학원에 가면 저녁이 다 되어서 나오곤 했다. 오늘처럼 애매한 계절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투시도를 그렸다. 학원에는 늘 라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오전에 가면 김기덕의 골든 디스크를 들으며 투시도를 그렸다. 김기덕은 서태지를 참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크리스 크로스의 노래도 자주 틀어 주었다. 김기덕은 김광한에 비해서 아주 깊이 있는 팝스타일은 아니었다. 김기덕은 좀 대중적이고 김광한은 좀 전문적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까지 쓰고 나서 일을 보고 나니 또 몇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위에서 가열차게 쓰려고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만다. 몇 시간 전과 다른 점은 비가 더 거세게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비가 일주일 동안 오락가락하더니 어제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좀 더 세게 내리거나 덜 세게 내리거나. 지금의 바다가 몹시 차갑거나 아주 차갑거나 하는 것처럼. 누군가 이렇게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다녔던지 대역죄인 같은 몰골을 한 채 지나가고 있다. 이 비는 경계를 나타낸다.


밤이 되었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려온다. 이런 비가 한 달 내내 온다면 사람들은 꿈도 희망도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어느 날 비를 맞은 사람들이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하면서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를 맞지 마라! 폰으로 비상상황이라며 정부 메시지가 떴다. 그러나 한 달이나 내린 비를 맞은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비를 맞고 시간은 다르지만 사람들은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하면서 극에 다다른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한 사람들은 잠도 자지 않고 분노했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다른 동물들은 괜찮은데 파충류도 비를 맞고 기이하게 변했다. 역시 분노다. 특히 개인 주탁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악어가 비를 맞고 몸집이 세 배로 커지더니 주인이고 뭐고 전부 물어뜯어 버렸다. 악어는 시간이 갈수록 엘리게이터화 되면서 하수구로 뛰어들었다. 전국의 사람들은 비를 맞은 분노하는 사람들, 비, 악어까지 피해 가며 살아야 했다. 주인공은,,,


자정이 되었다. 배가 고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시간이 가는 게 불안하다. 티브이 광고에도 불안에 좋은 약이라고 약을 팔고 있다. 그 약 먹고 불안이 나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생각해 보면 어쩌다가 불안을 낫게 해 준다는 광고가 나올 정도로 불안이 인간을 파고 들어온 걸까. 무척이나 애매한 날이다. 가장 애매한 일은 엊그제 나를 찾아온 친한 동생 때문이다. 여자이고 서른 초 중반이며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신혼이다. 키도 170에 대학교 때 모델을 했을 정도로 얼굴이 예쁘다. 깨가 쏟아지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찾아와서는 남편과 함께 있는 게 정말 싫다는 거였다. 남편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너무 느껴서 집에 있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 때문에 점점 생활이 망가져서 집에서 밥도 하지 않고 일도 그만두고 그냥 집에 계속 있다고 했다. 남편은 더더욱 그런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의 날씬한 몸매를 좋아했는데 계속 집에만 있고 먹기만 먹다 보니 뱃살이 찐 것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운동을 하고 노력을 해서 예전처럼 마른 몸으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그러기가 싫다고 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왜 이리도 피곤할까. 어째서 늘 불행하고 불만투성일까. 앞으로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더없이 애매하다. 대신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더니 커피도 마시고 재미있게 몇 시간 놀다가 갔다. 그날 밤에도 친구와 함께 있는데 오라고 카톡과 전화가 많이 왔다. 너 신랑이 이러는 거 알면 일 날 텐데.


애매한 계절의 애매한 날에 애매한 비가 쏟아졌다. 아무튼 엄청나게 쏟아졌다. 뉴스에서는 호우 주의, 경보가 발령되었고 장마기간처럼 물난리가 난 곳은 똑같이 난리가 났다. 자정이 지나 배가 고파 가공식품을 좀 구웠다. 애매하지만 가공식품은 애매한 맛이 아니다. 먹자마자 뇌가 쾌재를 부르는 맛이다. 가공식품의 맛은 확고하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왜 이렇게나 맛있을까. 특히 배고플 때 맥주와 함께 먹는 가공식품은 천상의 맛이다.


애매한 날 속에 있다. 이러다가 애매한 인간으로 소멸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은 계속 머라이어 캐리의 엠티브 언플러그드 공연을 본다. Dreamlover를 부르는 머라이어 캐리를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행복충만으로 가득한 것 같다. 그럴 리 없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음을 주는 건 노래다. 내 아이가 첫 발을 디딜 때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미래를 만들어간다. 애매한 날이지만, 애매한 날이라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Mariah Carey - Dreamlover  https://youtu.be/IpFJf4Ov7eo?si=BYWBrgTpW0w1-l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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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샤워를 했다가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이제 끝까지 붙들고 있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다. 나의 내부의 한 부분이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쨍쨍하고 짱짱한 열기 가득한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시기에는 늘 이런 기분이 든다. 마치 오랫동안 옆에서 함께 일어났던 강아지가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여름에는 그렇게 시원하지도 않았던 찬물이 지금은 몹시 차가워서 욕이 나올 뻔했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자. 계란도 하나 넣어서 잘 풀고 휘휘 저어서 맵지 않게 후루룩 먹자.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처음 라면을 혼자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초등학생이었을 텐데, 초등학생 때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었을 텐데, 도대체 처음은 언제 일까. 집에서 끓여 먹었을 것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라면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내가 저학년일 때,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오빠 라면 먹고 싶어. 엄마는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셨고 나는 동생을 돌보고 있었는데 동생이 배가 고프다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호기롭게 냄비에 물을 붓고 난로 위에 올려서 라면을 끓였다. 그런데 물이 팔팔 끓지 않고 조금 뜨거운? 정도가 될 뿐이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물이 팔팔 끓지 않았다. 동생은 배가 고파서 얼굴이 엉망이었다. 나는 그렇게 뜨겁지 않은 물에 면을 집어넣고 스프를 넣었다. 팔팔 끓어야 하는데 면이 조금 뜨거운 물에서 불기만 했다. 그때 어린 나이였지만 좌절했다. 동생이 이렇게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동생을 위해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주지 못했다.


이 세상이 망하고 동생과 둘이 남았을 때 나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짜증이 났고 분노가 났다. 면은 불어서 이상한 라면이 되었다. 그러나 어렸던 동생은 뜨겁지 않아서 좋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게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기만 했다.


엄마가 한참 후에 시장에서 오셨고 나는 억울한 마음을 담아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난로의 불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물이 팔팔 끓지 않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분명 그 이전에 라면을 끓여 먹었을 텐데, 그렇기에 동생에게 라면을 끓여 준다고 라면을 끓였을 텐데 처음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기억은 불조절을 잘못하여 썩 뜨겁지 않은 물에 불리다시피 끓여 먹었던 라면이 자리 잡고 있다.

 

라면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라면이 어른들과 함께 먹는 소고기보다 더 맛있다. 라면 속에는 맛뿐만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과의 유대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어딘가 캠핑을 갈 때 이것저것, 찌개재료나 탕의 재료를 가지고 가더라도 라면은 꼭 챙긴다.


예전에 제주도에 3일 정도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펜션에 머물렀는데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펜션에서는 라면만 끓여 먹었다. 주로 펜션에서 보냈다. 어딘가 구경을 다니지 않았다. 일행도 전혀 싫어하지 않고 마음이 잘 맞았다. 고기를 굽는다던가, 뭔가를 조리해 먹는 다던가, 전부 귀찮다. 라면이 최고다. 배고플 때 라면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우리는 그랬다.  


3일 동안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숙소에 머물면서 일행과 책이나 읽고 선텐이나 하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고 잠 오면 덱체어에서 잠들고. 라면이 지겨울 때면 숙소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일행과 그런 점에서 마음이 잘 맞았다. 둘 다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고, 가지고 갔던 소설이나 읽고 또 읽으며 맥주나 마셨다. 그때 혹시나 해서 차도 렌트를 했지만 거의 몰지 않았다.  


모텔에서 라면을 먹는 맛도 좋다. 어딘가를 가서 숙소를 모텔로 잡아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생수기기가 있어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모텔은 아무리 잘 꾸며도 모텔만의 냄새가 있다. 모텔만이 가지는, 모텔의 기운이 깃든 냄새가 있다. 붙박이형 대형 티브이, 햇빛완전차단의 커튼, 깨끗하고 갓 세탁한 듯 보이는 하얀 시트와 이불, 그러나 어쩐지 찜찜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일회용 세면도구와 모텔이라 알 수 있는 인터폰과 국밥집 전화번호 따위들.


그런 모텔만의 냄새가 있지만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다. 잠시 모텔만의 냄새를 잊게 만든다. 몇 종류의 컵라면을 먹어봤지만 모텔에서 이상하지만 왕뚜껑이 제일 맛있었다. 왕뚜껑을 먹을 때에는 악착같이 단무지를 같이 사 와서 먹어서 그런지, 왜 다른 날에 다른 컵라면으로 먹을 때에는 단무지를 같이 먹지 않아서 그런지 왕뚜껑이 맛있다. 단무지도 왕뚜껑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왕뚜껑을 가장 많이 먹었을 때가 군대 있을 때다. 피엑스 병을 하면서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거기서는 단무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라면을 후루룩 먹을 뿐이다. 그러나 참기름과 고추장을 조금 풀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정말 끝내주는 맛이다. 끓여 먹는 라면보다 더 맛있었다. 면회 오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왕뚜껑을 해주니까 다들 맛있어했다.


뽀글이도 많이 해 먹었다. 이번 신병 2에서 비빔면 뽀글이 뜨거운 물에 해줬다가 강찬석 상병이 표정이 변했다. 그때 분위기 살벌했다. 그런데 우리는 비빔면 뽀글이는 늘 뜨겁게 해 먹었다. 비빔면 뽀글이 뜨겁게 해서 케첩을 뿌려 먹으면 맛있는 스파게티의 맛과 똑같다. 요즘도 나는 비빔면을 뜨겁게 해서 먹는다. 신병 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서 재미는 떨어졌다. 그러나 인간대 인간으로 감정에 대해서 감동적인 부분은 더 좋아졌다. 최일구가 이병 시절 구 막사였는데 막내 시절에 많이 두드려 맞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딱 그 구 막사 시절이었고 엄청 구타를 당했다. 맞다가 안경까지 부러졌다. 그 정도로 구타가 심했다. 그러나 신병 시즌 2에서처럼 막내 때 힘들다고 울지는 않았다. 울고 자시고 할 정신이 없다. 잠잘 때에도 군기가 들어 있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관등성명을 대면서 발딱 일어났다. 어딘가에 숨거나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고 할 뭐 그런 게 없었다. 신병 시즌 2에서는 코믹요소가 많아졌다. 가장 코믹 캐였던 소대장에 마지막에 중대장에게 한 마디 할 때에는 꽤 멋졌다.


영화 속에서도 라면 먹는 장면이 다른 음식보다 월등히 많다. 아니다 국밥이 많은가? 아니다 라면 먹는 장면이 가장 많다. 이병헌의 라면 먹방, 차승원의 라면 먹방, 요즘 나락으로 간 임창정의 라면 먹방은 영화 속 라면 먹방으로 인기기 최고다. 영화 속 다른 먹방보다 훨씬 맛있게 보인다.


현재 맛있는 라면이 아주 많다. 신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고, 대형마트에서도 자체 상품으로 천 원 미만의 라면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의 후기가 꽤 좋다. 새로운 라면이 출시되면 예전처럼 티브이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나가는 먹방 유튜버에게 광고를 넣는다. 신제품을 먹방하고 그걸 리뷰를 한다. 어떤 먹방 유튜브는 이건 이래서 별로라고 거짓 없이 말을 하기도 한다.


사실 라면은 대체로 다 맛있다. 그렇지 않을까. 신제품 라면들은 좀 더 맵거나. 좀 더 면이 꼬들하거나, 이런 차이일 뿐이지 맛이 없을 수는 없다. 라면 종류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은 것이 아니라 선뜻 새로운 라면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여러 종류의 라면 속에서 나는 늘 먹던 라면만 먹는다. 나는 라면의 세계에서만큼은 확증편향 적인 편이다. 먹던 라면만 먹는다.


그리고 추억의 절반이 맛이라고, 라면도 자꾸 추억 속의 라면 맛을 찾으려고 한다. 그 예전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그 애와 같이 앉아서 먹었던 컵라면의 맛. 나는 분명히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의 선곡은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다. 90년대 초중반의 머라이어 캐리는 정말 예쁘고 노래가 굉장했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음악 감상실에 달려가서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무척 큰 화면으로 신청해서 입을 벌리고 보곤 했다. 엠티비 언플러그드가 강세였다. 팝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열과 성의를 다해 찍었다.


바야흐로 듣는 음악에서 온몸으로 즐기는 음악으로의 도약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손동작 하나하나에 우와우와 했다. 헤어스타일과 표정 무엇보다 그 돌고래 같은 목소리가 독보적인 머라이어 캐리였다. 입을 이렇게나 크게 벌리는데도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다. 특히 이모션을 부를 때 머라이어 캐리는 예쁜 얼굴이 도망가지 않으면서 돌고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저 대단했다.


그렇게 오 밤중에 음악 감상실에서 기어 나온 우리는 늘 가는 다운타운의 분식집으로 갔다. 거기 라면이 기가 막혔다. 라면에 당근이 채 썰여서 들어가고 반찬으로 김치와 단무지가 나왔다. 단무지가 라면에 잘 어울렸단 말이야.


Mariah Carey - Emotions https://youtu.be/h4abd6m71hk?si=E7CDn040d3VvSJ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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