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8월 16일, 화요일) 배철수의 음캠을 듣는데 휴가를 떠난 배철수 디제이 대신 디제이를 보는 자우림의 김윤아가 청취자의 신청곡을 틀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신청곡입니다. 샘 스미스의 스테이 윗 미.라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 아니 무슨 초딩이 벌써,라고 했다가 생각해보니 나도 초딩시절부터 가요보다는 팝을 많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처음 접한 팝은 아바의 노래였고 용돈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아바의 앨범 한 장을 구입해서 닳고 닳도록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이 유행을 따라가고 음악적 취향은 집 안의 누나나 형이 그 유행을 어딘가에서 끌어당겨와서 자연스럽게 막내에게도 스며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위로 형이나 누나가 없었다. 내 친구들은 전부, 싹 다, 거짓말하지 않고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그녀들은 고작 두 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어린놈의 자식처럼 대했고 학교에서 유행하는 가요와 패션을 고집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은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와 티브이 속 유행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답습이 어려웠다. 나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버스정류장과 다운타운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팝에 꽂혔다. 그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되도록 덜 질릴 수 있는 노래, 한 번 듣고 바로 버리지 않을 수 있는 노래, 될 수 있으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노래에 마음과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팝을 들었다. 비교적 밖에서 보다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실컷 들을 수는 없었다. 어떤 디제이는 팝가수에 대한 가십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임진모, 박은석 같은 음악평론가가 칼럼을 기고한 것을 읽고 와서 거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백배는 재미있었다. 요컨대 곤센 로즈의 엑슬 로즈가 이번에도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팬들이 찾아오니까 2층에서 1층으로 의자를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같은 이야기들.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팝을 들었다. 일단 가사 내용을 모르니까 리듬이 좋으면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꼭 반항아 기질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주로 록음악이 많았다. 세바스찬 바가 있던 스키드 로우,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 데프 레파드, 건스 앤 로지즈, 본 조비의 여러 앨범, 노 다웃, 오비츄어리, 바쏘리, 미스터 빅 등. 하지만 나탈리 임부룰리아, 조지 마이클, 브라이언 아담스 같은 앨범도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밴드는 없을까 하면서 듣다 보니 블랙홀의 앨범도 좋고, 시나위의 앨범도 좋았다. 블랙홀이나 시나위의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강력한 록을 하는데 거기에 얼굴까지 잘생긴 밴드가 많았다. 신데렐라가 그랬고(작년인가 기타리스트였던 제프 라버가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밴드 멤버가 죽으면 그렇듯이 사망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만 기사를 내보낸다), 포이즌도 그랬다. 좌아아아알 생겼다. 머틀리 크루의 뒤를 잇는다는 밴드였는데 머틀리 크루도 잘생겼다고 할 수 있다. 지구에서 제일 골 때리는 악동, 정말 상상 이상의 짓을 많이 했던 머틀리 크루도 이제는 할아버지 대열에 끼게 되어서 아쉽다. 머틀리 크루의 영화 '더 더트'가 있는데 꼭 보자. 음악 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가 제일 골 때리고, 제일 이상하고, 제일 재미있음.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가 엄청난 비주얼인데 여자들도 굉장했음. 영화를 보면 엘튼 존의 영화처럼 다 까발려준다.


밴드 넬슨 역시 얼굴이 어우 잘생겼다. 넬슨은 단지 얼굴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미 아버지 때문에 10살 때부터 쌍둥이들이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연주했다. 본조비의 존 본조비 역시 얼굴이 끝내줬다. 노래 부르다가 밑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윙크를 살며시 하면 관객들은 그저 죽어 넘어갔다. 또 역시 얼굴 하면 스키드 로우의 세바스찬 바가 있다. 190이 넘는 피지컬로 목이 터져라 내지르며 록을 하는 모습은 뭔가 신성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도 잘생겼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바스찬 바의 조각 같은 얼굴보다 에릭 마틴의 소년 같은 얼굴이 나는 좋았다. 에릭 마틴의 얼굴은 꼭 케이트 블란쳇의 소년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얼굴에 장난기가 발동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에릭 마틴의 이 목소리가 정말 좋다. 에릭 마틴의 이력을 보면 재미있는 게 하나가 보이는데, 에릭 마틴은 60년 생인데 70년부터 85년까지 ‘에릭 마틴 밴드’를 했다. 그러니까 10살부터 밴드를 했다는 말일까.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목소리도 예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허스키 하면서 맑고 뻥 뚫려있는, 그런 목소리로 록을 한다.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다.


미스터 빅의 드러머 팻 토페이는 2018년에 안타깝지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의 록밴드는 일본에서 대체로 사랑을 받았다. 미스터 빅도 그랬다.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영상을 찾아보면 빌리 시한이 드릴 기를 들고 기타 연주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에릭 마틴이 져스트 텍 마이 하트~할 때 그 표정은 은유가 가득한 것 같아서 좋다.


이런 음악적 시끄러움과 난잡하지만 흥미 있는 이야기가 어렸던 나의 몸과 마음을 대체로 꽉 움켜쥐었다. 친구들은 좋았지만 어울릴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뭔가를 하다가 맞지 않으면 그것대로 받아들였다. 괜히 고집부리고 말을 해봐야 어차피 시간낭비라는 걸 알아버렸다. 미스터 빅이 중국에서는 ‘대선생악대’라고 불린단다. 미스터 빅, 이 앨범의 ‘데디, 브러더, 러버, 리틀 보이’가 좋은데 제일 유명한 ‘투 비 위드 유’를 들어보자. 에릭 마틴의 얼굴이 블랏쳇과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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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선생악대! 대단하네요 ㅋㅋㅋ 저도 가요보단 팝송을 좋아했죠. K 팝이 저 때도 인기를 끌었다면 팝송을 들었을까 의문스럽기도하고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팝송을 안 들을까 싶기도 해요. 저는 조하문이 이끌었던 마그마란 밴드 좋아했어요. 그양반 지금은 목사님 됐지만. ㅋ

교관 2022-08-19 11:58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중고생들, 특히 여학생들과 자주 접하는데요, 팝 많이 들어요 ㅋㅋㅋ 주말씨(위캔드), 찰리 푸스 - 찰리 푸스는 이번에 방탄의 정국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앤 마리는 뭐 떼창수준이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잉크냄새 2022-08-18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미스터 빅의 wild world를 좋아했는데,대학 시절 동인천 뒷골목 라이브 카페에서 주로 들었어요. 무명의 듀엣 남자 그룹이었는데 담배연기 자욱한 무대 바로 앞에서 귀가 얼얼하도록 들었죠.
졸업하고 나중에 직장 다닐때 동인천 대화재가 발생해 많은 학생이 죽었죠. 그때 문이 잠겨 학생들이 나오지 못한 라이브 카페가 바로 그 곳인데 학생들이 죽은 장소가 저 무대 앞, 제가 술 마시며 노래 듣던 자리였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참 잊히지 않는 곡이 되었네요.

교관 2022-08-19 11:59   좋아요 0 | URL
와일드 월드 좋죠 ㅎㅎ. 이 곡도 리메이크 곡인데. 노래로 옛 추억이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노래란 노래를 감싸고 있는 여러 가지 은유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