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는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밖에서까지 찌개를 사 먹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사 먹는 찌개는 맛있다. 찌개는 어려운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식당 찌개는 집에서 한 찌개보다 이상하지만 훨씬 맛있다. 집 밖에서 먹는 찌개는 뭐든 맛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특히 구치소 찌개는 아주 맛있었다. 구치소에서 군 생활을 한 나는 구치소에서 점심에 찌개가 나오면 꼭 한 그릇씩 더 먹었다. 한 그릇이라고 해봐야 밥그릇보다 약간 크다. 따지고 보면 구치소에서 나오는 음식은 전부 맛있었다. 추어탕도 미꾸리가 아닌 고등어를 갈아서 만든 추어탕인데 아주 맛있었고, 복날에는 갈비탕이나 반계탕이 나오는데 역시 맛이 좋았다. 모든 반찬과 음식을 형을 살고 있는 여자 기결수들이 하는데 집밥처럼 맛있었다.
식사 양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먹고 싶으면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된다. 뷔페식이며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 같은 음식으로 나온 적이 없다. 그런 것을 보면 요즘에 군인들의 부실한 식사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안타깝고 이해할 수가 없다. 오래전에도 이렇게나 우리는 군생활을 하면서 잘 먹었는데. 또 구치소에서 나오는 찌개에는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구치소 군생활은 법무부 소속이고 육군 내지는 공군이나 해군은 국방부 소속인데 어떻든, 어디든지 비리는 있지만 예전부터 국방부의 비리가 가장 심하다, 라는 말이 요즘 인터넷의 군인들 식사를 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
찌개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냉면처럼 어딘가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집집마다 맛이 다른 김치나 깍두기가 있으면 그것을 넣어서 끓이면 된다. 거기에 고기, 채소, 두부 따위를 넣고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도 같이 넣어서 끓이면 된다. 냉장고의 반찬을 처리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찌개를 끓이는 것이다. 자취방에 모여 소주 한 잔 돌리기에 찌개만 한 것도 없다. 찌개에 치약을 넣어서 끓이지 않는 이상 찌개는 뭘 어떻게 해도 맛이 좋다.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남으면 다음 날에 다시 거기에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각종 채소와 마늘과 이것저것 넣어서 끓이면 기묘하지만 그 전날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다. 그리고 탕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찌개에 밥을 말아먹었다.
살이 찌니 어쩌니 해도 추운 겨울날 뜨거운 찌개에 밥을 말아 후후 불어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래서 티브이 화면 속에서 찌개가 가장 맛있게 보이는 영상은 추운 겨울날 먼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어선에서 찌개를 팔팔 끓여 둘러앉아 후루룩 먹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삶이 있다. 거기의 찌개는 별미가 아니라 생존이다. 살아남기 위해 추위를 이겨가며 후후 불어 찌개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는다. 나는 찌개는 안 먹어, 맛이 없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는 아마도 젊은 시절 찌개가 생존에 바짝 붙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찌개는 한국인에게는 소울 푸드다.
캠핑을 가면 마지막은 찌개를 먹었다. 물놀이 후 식은 몸을 데워줄 만한 좋은 음식이 찌개다. 반쯤 건져 먹은 후에 라면을 넣어서 다시 폴폴 끓인다. 찌개는 다시 한번 태어난다. 우리는 모여들어 푸릅푸릅 찌개를 먹었다. 찌개를 먹으면서도 온통 끓인 찌개 얘기뿐이다. 그 얘기를 채우는 건 맛있다는 말이 전부다.
어린 시절 연탄불에 팔이 들어가 한쪽 팔이 쪼그라든 김 씨 아저씨를 만난 건 구치소의 취장 계호를 맡으면서였다. 492번이었지만 취장에 같이 있을 땐 김 씨 아저씨라 불렀다. 김 씨 아저씨는 한쪽 손이 어린아이처럼 작고 쪼그라들었지만 그 손으로 취장에 들어온 각종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잘도 썰었다. 보고 있으면 꼭 마법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김 씨 아저씨는 미결수만 있는 구치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 기결수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김 씨 아저씨는 사기를 당해 그만 들어오게 되었다. 사기를 당해서 사기를 저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가담하게 되었다. 취장은 새벽 5시 전에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취장 근무자들은 굽은 등을 이끌고 겨울의 차가운 취장으로 온다. 냉기가 가득한 취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은 김 씨 아저씨와 음식을 만드는 재소자들이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몸이 땀으로 전부 젖는다.
취장은 재소자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일종의 공장이다. 음식 공장의 가동이 김 씨 아저씨와 취장 근무자들에 의해서 열심히 돌아간다. 우리는 계호를 한다지만 사실 크게 두 눈을 뜨고 계호를 할 것이 없다.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잠이 솔솔 오기에 팔짱을 끼고 그만 스르륵 잠이 든다. 그동안 취장, 공장은 열심히 돌아간다. 스팀기로 돌아가는 대형 찜통에서 쌀이 밥이 되고, 각종 나물 요리와 국이 만들어진다. 김 씨 아저씨는 티브이에 나온 스라소니 역의 그 배우를 닮았다. 말 수가 적었지만 잘 웃고 같이 일하는 취장의 근무자들을 챙겼다. 구치소의 재소자들 아침식사는 8시에 일괄 시작된다. 그전에 음식이 전부 만들어지면 샘플을 담아서 보안과장에게 가서 검시를 맡는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각 사방으로 음식들이 올라간다.
드르르륵 음식을 실은 거대한 바퀴가 굴러간다. 보안과장에게 올라갈 때 김 씨 아저씨는 졸고 있는 나를 깨운다. 우리는 일어나서 김 씨 아저씨가 따로 만든 찌개를 같이 앉아서 먹는다. 오전을 알리는 명멸하는 빛이 취장에 난 작은 창으로 비치고 안개와 같은 수증기가 취장에 한가득 피어난다. 우리는 그 사이에 식탁을 마련해서 둘러앉아 찌개를 먹는다. 김 씨 아저씨는 연신 맛있다는 소리에 수줍어하며 고기가 많은 부분을 우리 그릇에 덜어준다. 김 씨 아저씨의 앞주머니에는 딸의 사진이 들어있다. 딸은 이제 초등학생으로 아주 귀엽게 생겼다. 작고 쪼그라든 손으로 딸의 사진을 쥐고 나갈 날 만 기다리는 김 씨 아저씨가 만든 찌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찌개였다. 겨울의 구치소 취장 한 구석 테이블을 마련해 둘러앉아 먹었던, 한 손이 쪼그라든 김 씨 아저씨의 찌개.
요즘은 찌개가 조금 천대받고 있다. 살이 찌는 주범이고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소울 푸드는 건강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가끔씩 맛있게 먹는 찌개는 맛과 추억을 다 머금고 있다. 누구나 찌개에 관한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는 분명 눈물이 나는 기억도 있고 행복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지만 불편한 사람과는 찌개를 먹지 않는다. 찌개를 빙 둘러앉아서 같이 먹는 사이라면 분명 많은 것을 나눠도 좋을 관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