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 - 35개국을 여행하며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바뇨별(정반효)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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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인력거>에는 '토레쿠시 토리검'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금은 행복하게, 조금은 슬프게'라는 뜻으로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인생의 황금률'이라고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바뇨별(정반효)은 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졸업, 책과 음악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나눔'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총 다섯 개 챕터로 구성된 책은 여행의 원동력이 되어준 인연(챕터1), 경계를 넘어 마주한 다채로움(챕터2), 여행지에서 완성한 나만의 이야기(챕터3), 삶의 깊이를 더해준 감정(챕터4), 여운과 함께 남은 흔적(챕터5) 등을 통해 여행 중 처음 만난 인연들, 여행으로 인한 확장과 경험, 나만의 이야기, 여행에서 느낀 감정, 여행의 흔적들을 소개한다.


먼저 영화 <오래된 인력거>부터 얘기해보려 한다, 이 영화는 기쁨의 도시 캘커타에서 지열 70도의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달리는 인력거꾼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인데, 1999년에 이성규 감독이 인도 여행시 인력거를 끄는 '샬림'에게 감동받아 10년을 준비 끝에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아내의 병원비, 가족의 생활비를 벌면서 틈틈이 돈을 저축하고 있는 샬림의 꿈은 하루 빨리 가족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일이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인샬라’를 마음에 새기며 그는 매일 뜨거운 아스팔트,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를 뚫고 맨발로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차도가 없고, 설상가상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돈을 벌려고 뭄바이로 떠났던 큰 아들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 그런 줄거리이다. 이 영화 속엔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알게되는 '인생의 황금률'(조금은 행복하게, 조금은 슬프게)이 담겨있다.


책은 저자의 해외여행 이야기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이던 브루스 리(이소룡)의 출신지인 홍콩 여행을 소개한다. 과거 홍콩은 미국 할리우드 못지 않은 영화 생산지였으며, 이소룡 외에도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유덕화, 왕조현, 매염방 등 무수한 스타들을 배출했다.(사진,이소룡동상)



나도 중학생 때 홍콩 영화 한편이 신세계를 맛보게 했었다. 외팔이 검객 왕우였다. 이후 상영된 여러 편의 검술 영화를 감상했었다. 감흥이 시들해질 즈음 성룡이 등장, 권법 스타일 영화를 선보였다. 특히, 취권은 나를 온갖 무술에 입문하도록 만들었다.


다음 여행지는 '예술 섬 나오시마',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도시 다카마쓰를 경유해 배(페리)를 타고 이동했다. 나오시마는 과거 제련소가 있었던 곳으로 산업이 쇠퇴하자 거주민들도 점차 떠남에 따라 낙후된 소도시가 되었다. 일본 베네세 코퍼레이션이 이 섬을 매입해 많은 투자금을 들여 예술 섬으로 변모시켰다.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곳 명물은 '땡땡이 호박'이다. 빨간색 점박이 무늬가 매력적인 작품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사진을 촬영하는 스팟이다. 이 섬엔 또 하나의 점박이 무늬 호박이 있는데, 노란색의 호박은 이 섬의 시그너처 예술 작품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한 강연에서 만난 그림에 꽂혔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다. 흔히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화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빠져들다가 결국 이 화가의 고향인 네델란드 델프트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관련 여행정보를 입수하다가 뜻밖의 인물을 알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였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가였기에 네델란드에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줄 미처 몰랐던 거다. 이 미술관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화가를 묶은 예술 기행을 계획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인근 헤이그로 곧장 이동,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헤이그 도시를 거닐며 대한제국의 '헤이그 특사'를 떠올렸다. 1박 후 다음 날 찾은 곳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려 있기에. 그림 속 소녀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 날 헤이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도시 델프트를 방문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평화로운 곳이었다. 과거 페르메이르가 이 풍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전날 찾은 미술관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외에도 화가의 또 다른 대표작 '델프트 풍경'을 감상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다시 헤이그로 돌아와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해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했다. 오직 고흐의 작품만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화상', '해바라기' 등 교과서에 보았던 작품들을 실제로 목격했을 때의 감동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음 날 고흐를 주제로 삼아 그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크롤러 뮐러 미술관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밤의 카페테라스'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나 화가 고흐는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 것으로 짐작됐다.(사진,85/87)




저자는 또 다른 예술 기행을 계획했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가 떠올라서다. 네델란드 여행을 마친 뒤라 인접한 국가인 벨기에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들이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 때 배웠던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패키지로 묶은 여정이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도착, 왕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나폴레옹 군대가 모은 각종 예술품들로 포화 상태인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대신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특히, 14~19세기 회화 작품들이 유명하다. 저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옆 건물에 있는 '르네 마그리트' 작품이었다.


감상을 마치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그랑 플라스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선 각종 공연이 펼쳐졌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해기 지자, 광장은 황금빛 옷을 입은 것처럼 화려하게 변신했다. 관광객들 모두 야경에 취해 있었다.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다음 날 기차를 타고 근교의 작은 도시 안트베르펜으로 갔다. 화가 루벤스 작품을 감상할 목적이었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줄거리는 네로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우유 배달히던 중 학대를 당해 버려진 개 파트라슈를 구해 정성껏 돌보며 친구가 된다. 외할아버지가 죽은 후 화가를 꿈꾸던 네로는 한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쓰게 된다. 평소 루벤스를 동경했던 네로는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을 보려고 파트라슈와 함께 성당으로 간다. 둘은 루벤스 계단 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네로와 파트리슈 조각상을 감상했다.


만화 '프란다스의 개' 속엔 루벤스의 두 작품이 등장한다. 하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인데, 평소 커튼 뒤에 숨겨 놓고 '금화 한닢'을 지불해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행히 저자가 방문한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성당 문이 열려 있어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성모승천'이다. 네로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성당 안에서 죽어갈 때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루벤스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모든 아픔을 짊어지고 하늘로 떠나는 네로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와 겹쳐 보였다. 과연 네로는 루벤스 그림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35개 국가를 여행한 인생 이야기


짧은 지면에 고故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에서부터 일본의 예술 섬 나오시마, 네달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반 고흐 미술관, 크롤러 뮐러 미술관, 벨기에 왕립 미술관, 안트베르펜 대성당까지의 예술 기행까지 소개했다. 저자의 모든 여행기를 소개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예술 작품과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추천 #여행에세이 #조금은슬프게조금은행복하게 #바뇨별 #정반효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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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59분, 신호등이 바뀔 때
고경수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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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격변의 상황 속에서 글과 인간의 관계 짓기가 멀어질까 두렵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전할 수 있는 울림의 여백을 알기에 부족하지만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게 됩니다. 부디 한 사람의 소박한 몸부림이 지친 당신의 마음 곁에 작은 별빛 한 점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고경수는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사람과 삶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 왔던 작가이다. 시집 <흐린 날의 기다림>, 산문집 <부지깽이>, <나를 찾아서, 마음 여행>, 교육 에세이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은 아이로 키우고 싶나요> 등을 출간했다. 


총 7부로 구성된 책은 마음을 세우는 시간(1부)에선 자기만의 그릇, 나눔과 비움의 행복 등 16편의 글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2부)에선 '왜'라는 질문, 겸손의 가치 등 16편의 글을, 행복을 향한 걸음(3부)에선 23시 59분, 흔들림의 의미 등 16편의 글을, 관계를 배우는 시간(4부)에선 참된 우정의 가치, 나를 위한 용서 등 16편의 글을, 삶을 지탱하는 가치(5부)에선 중용의 삶, 성공의 법칙 등 16편의 글을, 일상에서 찾은 선물(6부)에선 투자와 투기, 여백의 숨결 등 16편의 글을, 마음이 머무는 풍경(7부)에선 나이 듦의 미학, 사춘기 공부 등 16편을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긴다.


"문학도 하나의 선택이며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한다면 허황된 행복의 의상을 벗어 버릴 수도 있고 저 얼음의 나라, 사막 속의 땀과 누더기의 의미도 삶의 치열함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 삶과 생명, 스스로도 그러한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다산책방,2025) 중에서


나는 주로 새벽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도 새벽 시간이다. 최근 내린 가을비로 이어진 밤 기온의 하락 때문에 감기 몸살을 앓게 되었다. 젊은 시절엔 며칠 동안 밤을 꼬박 세워도 몸이 생생했는데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의사의 말이 '휴식이 보약'이라 했다. 역시 휴식 후 몸이 서서히 회복되어 이젠 독서와 글쓰기에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마음을 세우는 시간


우리들은 삶에 관해 이런저런 이유들을 단다. 그런데, 결국 이들 모두는 행복이란 두 단어로 모아지는 것 같다.이 무색무취無色無臭한 단어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먼 곳에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내 삶에 내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 말이다.


저자는 이런 글로 행복을 표현했다. "행복은 자기 그릇에 어울리는 자기만이 담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간직할 때 찾아오게 됩니다."(15쪽) 이 대목에서 우린 자기 그릇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릇은 뭔가를 담는 용기容器를 말한다. 모양도 다양하고 용도 또한 제각각이다. 간장, 고추장, 양념, 반찬 등처럼 말이다.


그런데, 걸맞는 쓰임새를 무시하면 흘러 넘치거나 조금밖에 채울 수 없기도 하는 것이 바로 그릇이다. 우리들이 머리 속에 떠올리는 그런 그릇이 각자의 내면에도 있다. 이게 '자기 그릇'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분수'에 가깝다. 과거 내가 고용한 펀드 매니저의 중대한 실수로 큰 손실을 입어 화병火病이 나서 큰스님으로부터 마음 공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큰스님은 내가 처한 결과는 내 그릇 탓이라고 가르쳤다. 처음엔 내 탓이란 말이 너무 억울해서 108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를테면 내 그릇에 어울리는 펀드 매니저를 고용하지 못한 나의 과오임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난 내 그릇 키우기에 몰두했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 정찬주,<법정스님 인생응원가>(다연,2019) 중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쉽게 얻게 된 것은 그만큼 쉽게 가치를 잃게 되고 어렵게 얻게 된 것은 그만큼 오래도록 곁에 남습니다. 그것은 결과보다 그 과정 속에 담긴 노력과 인내가 더 소중한 가치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 간절함의 힘' 중에서(63쪽)


반도체를 포함한 일부 산업의 호황이 한국 경제 전체를 대변하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자영업자의 주름살은 점점 깊게 패이고 있다. 버티다 버티다 금리마저 인상되니까 이제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현 모습이 이러함에도 민생 경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정치판을 보노라면 화부터 난다.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니까 말이다.


청년 세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생횔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단기 알바에 내 몰리며 점점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경제가 호황이라야 일자리가 많이 늘 것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현재 정치판은 과연 이를 해결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경제는 어려워짐에도 그저 반도체 경기에 숟가락만 걸친 채 부동산 규제 강화로 청년 세대들의 내집 마련은 이젠 헛 꿈인 실정이다. 이미 자영업을 영위 중인 4050 이후 세대들도 금리 인상이란 새로운 고통이 늘어나 폐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 또한 "정치의 방향이 자꾸 올 곧게 서지 못함은 정치政治를 하고자 정치인이 된 것이 아니라, 권력權力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85쪽)이라고 일갈한다.



행복을 향한 걸음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조건을 가진 금수저 출신일지라도 지나친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며 만족할 줄 모른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참된 행복은 비록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를 감사하게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 달린 것이다. 비록 흙수저 출신일지라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가운데 일상의 소소한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의 크기는 외적인 대상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 '행복의 이중주' 중에서(129쪽)


관계를 배우는 시간


개인적으로 산울림의 노랫말 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란 가사를 매우 좋아한다.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타인의 존재도 마땅히 있다. 내가 남에게 존중받는 바와 같이 상대방인 남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관계'이다. 우리 모두는 무수히 많은 관계에 연결된 유기적인 인격체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관계를 배워야 하며, 특히 인간관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계란 꽉 찬 내 안에 상대방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빈 마음에 상대방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 '여백의 숨결' 중에서(253쪽)


한국에 존재하는 직업은 대략 일만 육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의사, 한의사, 교사, 이발사, 청소부, 농부, 어부, 소방관, 경찰,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트롯 여가수 윤수현이 부른 '천태만상'에도 약 60개의 직업을 나열하며, 직업엔 귀천貴賤이 없음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교육계의 풍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현실엔 희망이 없다. 


1, 2, 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 5, 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 8,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저자는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이란 글에서 학교는 오늘도 성적과 등수等數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고 심지어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정해 주고 있다고 비판적인 말을 한다. 세계적인 교육자 하워드 가드너가 '다중지능이론'에서 밝혔듯이 사람들은 각자가 부여받은 재능이 있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삶을 지탱하는 가치


꿈이 없다는 것은 내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감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죽는 순간까지 늘 가슴속에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 '꿈의 가치' 중에서(188쪽)


히말라야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신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어떻게 그 험준한 산을 오르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산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라고 말했다. 험한 산을 오르다 보면 앞서 가는 사람을 쫓게 된다. 이 사람을 이기고 싶어서 자신의 페이스를 벗어나 앞선 이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면 체력이 바닥나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머무는 풍경


결국 노력이나 성실함이 아니라 인맥과 학연, 지연이 결탁한 권력에 의해 무언가를 더 많이 가져가게 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게 된다는 불편한 사실이 길의 의미를 묻습니다. - '길의 의미를 묻다' 중에서(263쪽)


삶은 속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느림의 풍성함 속에 돋아나게 됩니다. - '느림의 미학' 중에서(267쪽)


바람이 부는 날은 애써 피하지 말고 그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바람이 전하는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 '바람의 인사' 중에서(269쪽)


말이 없다는 것은 모르거나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새기기 위한 여백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 '침묵의 가치' 중에서(279쪽)



나이듦은 이별을 위한 행진 


칠십대 중반의 독거노인인 나는 꿈자리가 뒤숭숭하거나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오르면 요양원에 계신 노모老母(100세)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청력이 매우 부실해서 보청기에 의존하지만 작은 아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말씀하신다. 한 해가 지날수록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워낙 고령인 탓에 얼마 전 요양원에선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물어왔다. 형제들과 단톡방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다 삶을 마감했던 아버지의 사례를 떠올리며 형제들 모두 노모의 편안한 죽음을 원했다. 올해 겨울이 가장 큰 고비일 듯하다. 나이 든다는 건 이처럼 이별을 위한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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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환율 무작정 따라하기 - 경제의 두 축을 알아야 돈 버는 진짜 투자가 시작된다 ㅣ 무작정 따라하기 경제경영/재테크
조원경 지음 / 길벗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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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저금리 시대는 서서히 지는 느낌이다. 이제 투자자라면 고금리 시대라는 투자 환경에 걸맞는 투자 전략의 수립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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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법 - 설계된 세상을 읽어내는 7가지 수학 도구
노아 지안시라쿠사 지음, 김성훈 옮김 / 청림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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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과 AI가 세상을 장악하면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다. 이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보는 콘텐츠에서부터 사회생활을 하는 방식, 일자리를 구하는 방식, 직장에서 하는 업무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알고리즘과 AI 시스템은 세상을 숫자로 바라보고 공식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수학적 창조물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수학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역량을 갖추는 데 필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노아 지안시라쿠사는 브라운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벤틀리대학교 수핫학 교수이자 하버드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로서, 최근 벤틀리대학교의 연례 교육 혁신상 및 우수 학술 공헌상을 수상했다. CNN, BBC 라디오 등에 출연했고, 워싱턴포스트와 타임 등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인기 수학 팟캐스트 'Breaking Math'를 진행하고 있다.


총 여덟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숫자로 가득 찬 어느 하루(1장), 순위를 믿을 수 있을까(2장), 프로처럼 예측하기(3장), 확률에 대한 기대(4장), 위험을 계산하는 법(5장), 더 명확한 사고를 도와줄 도구(6장), 소셜미디어의 비밀 공식(7장), 거대 테크기업에 맞서는 수학(8장) 등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우리들에게 쓸모 있는 수학을 쥐어 준다.


숫자로 가득 찬 일상 


수치화數値化가 요즘에는 그 규모가 정말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크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그리고 자동차에 탑재되어 있는 앱이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하고, 활동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엄청난 양의 개인 데이터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데이터가 좋은 수학적 재료로 활용되어 권력자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예측하고, 최적화하며, 이윤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성과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현재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우리를 조작하고 착취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이 수학적 도구를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고 믿는다.


순위 선정 방식의 의미


개인 맞춤형 순위 선정을 할 때는 가중치를 이리저리 바꾸어보면서 승자가 1위 자리를 얼마나 견고하게 수성하는지 눈여겨보기 바란다. 다양하게 가중치를 조절해 봐도 어는 것 하나가 꾸준히 1위 자리를 지킨다면 그것이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고 확신해도 될 것이다.

 

자유롭게 개인 맞춤형 순위 선정 방식을 실험하며 즐거움을 느껴보자. 비평가나 대중의 평점만 따를 게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따져가며 관람했던 영화나 가봤던 식당의 순위를 매겨볼 수도 있다. 다음에 어디로 이사 갈지 결정해야 한다면 도시들의 순위를 매겨보자. 어떤 요인을 포함할지 결정할 때는 겁내지 말고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해 보자. 날씨, 음악적 환경, 먹거리 환경, 대중교통, 생활비 수준, 일자리 전망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런 각각의 요인에 대해 개별적으로 도시의 순위를 매기는 작업은 보통 크게 어려울 게 없다. 그리고 가중합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개별 순위를 모두 합쳐서 하나의 전체 순위를 산출할 수 있다.

집에 강아지 한 마리를 새로 들일까 고려 중인데, 어떤 견종犬種이 가장 적합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후보를 세인트버나드, 골든리트리버, 요크셔테리어 등 세 가지 종種으로 범위를 축소하고,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안전할 것, 집을 잘 지킬 것, 산책을 자주 시킬 필요가 없을 것' 등 세 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이래와 같이 순위를 매겼다.


세인트버나드는 온순하고 참을성이 좋아 아이들이 찌르고, 기어오르고, 꼬리를 잡아당겨도 잘 참는다. 하지만 70kg짜리 물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체구가 작은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세 가지 요인에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세인트버나드가 최종 승자이지만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안전에 가중치를 더 부여하면 골든리트리버가 선두로 뛰어오른다.

그렇다. 획일적인 순위 평가는 가중치 선택에 반영된 우선순위가 본인의 우선순위와 부합되지 않을 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베스트셀러 <대량살상 수학무기>(2017년, 흐름출판)에서 캐시 오닐은 다양한 기관이 동일한 평가 기준에 부합코자 노력을 집중하다 보면 결국엔 모두 비슷비슷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오닐은 순위 선정 시스템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조작의 유혹도 그만큼 커진다는 문제점도 제기했다.  

내 삶에 가중평균을 활용하는 법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선택할 때는 여러 가지 주식이 어느 수준까지 오를지, 다양한 산업이 얼마나 성장할지 등을 알고 싶을 것이다. 케이블 TV, 경제신문, 웹사이트, 투자앱 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예측은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이들 예측 간엔 상당한 차이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보통은 가중평균을 이용하면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돈에 대해서만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주말 날씨를 알고 싶은데, 스마트폰 기본 날씨 앱, 웨더언더그라운드, 아쿠웨더 같은 사이트의 일기예보가 제각각일 수 있다. 야외 결혼식을 하기로 했든, 골프 코스를 돌기로 했든, 그 주말이 특별히 중요한 주말이라면 한 가지 정보 출처만 믿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몇 가지 다른 예보를 찾아서 최고 기온을 평균 내고, 최저 온도를 평균 내고, 강수 확률도 평균을 내자.

기댓값을 언제 믿고, 언제 내려놓아야 할까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손실 확률에 손실 가능한 액수를 곱하고, 이익 확률에 이익 가능한 액수를 곱해서 둘을 더하라. 우리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대값 공식으로, 이를 사용하면 가치 있는 투자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직장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보통 두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시골길인데, 안정적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또 하나는 고속도로 이용인데 보통은 15분 걸리지만 막힐 땐 45분 소요된다. 기댓값을 이용하면 어느 쪽 길이 나은 선택인지 결정할 수 있을까?

이 경우에 기댓값을 계산해 보면, 고속도로가 막히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면 시골길이 나은 선택이고, 그렇지 않다면 고속도로가 나은 선택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가 막히는 경우가 25퍼센트라면, 고속도로로 출근할 때의 기댓값은 0.75×15+0.25×45=22.5분으로 30분 걸리는 시골길 출근보다 짧다. 

이것은 기댓값을 합리적으로 이용한 경우다. 위에 나열한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똑같은 출근길을 자주 사용하고, 양쪽 선택지에 대해 필요한 것은 모두 정량화할 수 있고, 걱정해야 할 복잡한 장기적 영향도 없다. 반면 아침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있는데 시간이 빠듯하다면 저자는 공식을 버린다. 급할 때는 보통 교통체증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몇 분 눚더라도 안정적인 30분 출근길을 선택한다. 수학을 잘한다는 것은 때로 수학에 기대지 않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다.

드문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오기 때문에 위험 관리의 수학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까지 나와 있을 정도이다. 책 속엔 긴 방정식으로 가득함에도 보험회사 경영진과 헤지펀드 매니들은 이런 도서를 탐독한다. 위험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굳이 수학적 용어로 정의한다면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수학을 이용해 이런 위험을 다룰 수 있다. 

평균이 전부가 아니다. 미지未知의 것에 잘 대비하려면 분포와 히스토그램(도수분포표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런 도구는 분산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분산은 데이터가 얼마나 흩어져 있는지를 측정하며, 이를 통해 예상 밖의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투자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분산共分散이 가장 낮은 선택지들을 선택하여 신중하게 분산해야 한다. 돈과 관련해서 결정을 내릴 때는 로그를 기억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자릿수의 변화와 두 배 증가다.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지를 저울질할 때는 폴 로머의 비용-편익 분석 레시피를 시도해 보라. 켈리 공식을 기억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는 핵심 원리는 기억해라. 뭔가가 잘 풀릴 확률이 높을수록, 거기에 더 크게 베팅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드문 일이라도 실제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는 모순도 역설도 아니다. 수학이다.

알고리즘은 반응을 먹고 자란다

‘좋아요’는 1점, 하트 이모티콘은 5점, 댓글은 30점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당신의 친구 중 한 명이 방금 입양한 강아지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친구는 새 직장을 구했다는 글을 올렸다고 해보자. 두 친구 모두 좋아하지만, 당신은 취업 소식보다는 강아지 사진에 더 끌린다. 

당신이 강아지 사진에 ‘좋아요’를 누를 확률이 50퍼센트, ‘하트’ 이모티콘을 누를 확률이 20퍼센트, 댓글을 작성할 확률이 10퍼센트라고 한다면, 강아지 게시물의 점수는 1×0.5+5×0.2+30×0.1=4.5이다. 당신이 취업 소식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를 확률이 20퍼센트, ‘하트’ 이모티콘을 누를 확률은 10퍼센트, 댓글을 달 확률은 5퍼센트라면, 그 게시물의 점수는 1×0.2+5×0.1+30×0.05=2.2이다. 4.5 〉 2.2이므로 강아지 사진의 점수가 높아서 취직 소식보다 피드의 더 위쪽에 배치된다.

알고리즘은 나의 공부 과제

나는 주식투자를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은 사업실패 후 빈약한 자금력 때문에 직접 투자에 참여하긴 어렵다. 일찌기 포트폴리오와 위험관리에 대해선 증권회사에 종사하면서 더 많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알고리즘은 어떤 종류의 게시물이 자신의 시선을 붙잡아 상호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항상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게시물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고리즘을 통제하고 길들일 수 있을까? 나의 관심 사항인지라 이를 앞으로 더욱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일상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수학 #경제이야기 #확률 #리스크계산 #숫자를내편으로만드는법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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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문해력 : 숲에서 세상을 읽다 - 인간은 어떻게 숲을 잃어버렸는가
남효창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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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글을 읽는 법을 배운다. 글자를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이해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힘을 키운다. (중략) 문해력이 글을 읽는 힘이라면, 숲문해력은 숲을 통해 세계를 읽는 힘이다. 하나의 존재를 넘어 관계를 읽고, 하나의 사건을 넘어 흐름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넘어 시간을 읽는 감각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남효창은 생태인문학을 바탕으로 숲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온 연구자이자 학자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숲식생학 석사, 자연환경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40년 동안 숲을 걷고, 관찰하고, 사람들과 숲을 이야기하며 숲의 인문학과 숲교육, 숲치유를 탐구해 왔다.

총 4부에 걸쳐 12장으로 구성된 책은 숲은 멈추지 않는다(1장), 숲은 감각으로 시작된다(2장), 숲의 실체는 관계로 드러난다(3장), 흔적은 숲의 문장이다(4장), 숲은 하나의 텍스트다(5장), 숲의 단어로 존재를 읽는다(6장), 숲의 문장으로 상호작용을 읽는다(7장), 숲의 문단으로 서식지를 읽는다(8장), 숲 전체를 읽는다(9장), 인간은 어떻게 숲을 잃어버렸는가(10장), 숲은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11장), 숲은 마지막 인생 학교다(12장) 등을 통해 숲문해력을 펼친다.

숲은 시간을 저장한다 

숲 한쪽에 쓰러진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을 마친 나무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위에는 이끼가 자라고, 버섯이 몸을 펼치고 있으며, 작은 곤충들이 나무껍질 사이를 오간다.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새로운 삶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가을의 잎은 올해 봄을 떠받치는 흙이 되고, 오래된 나무는 새로운 생명이 살아갈 터전이 된다. 지나간 계절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숲에서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형태를 바꾸며 숲 안에 머문다. 

오랫동안 숲을 지탱했던 한 그루의 나무는 이제 수많은 생명들의 집이 되고, 먹이가 되고, 다시 흙이 되어 또 다른 나무를 키운다. 숲에서는 끝이라는 말이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끝은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 숲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숲에선 사라짐조차 다음 생명을 위한 조건이 된다. 


우리는 설명하는 법을 먼저 익혔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는 세상을 몸으로 만났다.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고, 빗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배웠다. 자라면서 언어와 지식이 더해졌고, 세상을 설명하는 힘도 함께 커졌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감각과 설명을 다시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일이다.

숲문해력은 그 연결을 회복하는 힘이다. 감각은 세계와 처음 만나는 문이 되고, 설명은 그 만남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둘이 함께할 때 우리는 나무의 이름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숲은 길을 선택하며 이어진다

발자국 하나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러나 여러 걸음을 이어 보면 선택이 드러난다. 걸음 사이가 넓으면 서둘러 지나간 것이고, 간격이 좁아지면 속도를 늦춘 것이다. 한곳에 발자국이 겹쳐 있다면 잠시 머물렀던 자리일 수 있다.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면 피해야 할 무언가를 만났거나, 찾아야 할 무언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길은 몸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몸이 내린 선택이 이어진 결과다.


그렇다. 사람은 거리를 줄이려 길을 내지만, 숲의 생명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길을 낸다. 먹이를 만날 수 있는 길, 물을 만날 수 있는 길, 몸을 숨길 수 있는 길이 좋은 길이다. 숲에서 좋은 길은 빠른 길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잎 한 장이 들려준 숲

발밑에 떨어진 앞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자리에 둥글게 파인 자국이 보였다. 누군가 한입씩 천천히 먹어 간 자리였다. 뒷면엔 작은 알 몇 개가 가지런히 붙어 있다. 이 잎은 누군가의 먹이가 되었고, 또 다른 생명에겐 다음 세대를 시작할 자리였다. 하나의 잎이 두 생명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었다.

처음 숲에 들어왔을 때 저자는 잎을 식물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 안에서 수많은 생명의 선택과 시간,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읽는다. 잎은 더 이상 하나의 대상이기 이전에 숲이 오랜 시간에 걸쳐 써 내려온 이야기가 가장 작고도 선명하게 담긴 한 페이지다. 

그 잎을 조용히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잎 한 장만으로도 숲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준다. 그 순간 저자는 하나의 잎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숲이 이어 써 내려가는 문장 속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숲을 읽기 시작한다

숲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꽃 하나를 본다는 것은 꽃의 이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꽃이 피어난 계절과 찾아오는 곤충, 머무는 빛과 토양의 시간을 함께 읽는 일이다. 나무를 본다는 것은 줄기와 잎의 형태를 넘어 지하에서 이어지는 뿌리와 균류, 그리고 장시간 축적된 관계를 읽는 과정이다.


숲은 여전히 설명하지 않는다. 숲은 다만 서로 이어지고, 서로 변화시키며, 자신의 시간을 이어 갈 뿐이다. 우리가 그 이어짐을 읽지 못하는 순간 숲은 하나의 배경이 된다. 그러나 다시 읽기 시작하는 순간 숲은 하나의 세계로 돌아온다.

숲은 지금도 수많은 생명과 시간과 관계를 품고 있다. 그러나 숲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숲이 가르치는 것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각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에게 가장 오래 남겨질 숲의 언어일 것이다.

이전과는 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다시 읽기

숲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다시 읽는 일로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변하고, 관계 속에서 모습을 만들며, 수많은 흐름 속에서 잠시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존재다. 숲은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을 쓰고 있다. 잎은 피어나고, 벌은 이동하며, 열매는 익고, 씨앗은 새로운 자리로 향한다. 숲의 문장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읽기가 멈춰 있었을 뿐이다. 

#인문에세이 #자연과락 #숲문해력 #숲에서세상읽기 #남효창 #책이라는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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