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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59분, 신호등이 바뀔 때
고경수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9월
평점 :
AI라는 격변의 상황 속에서 글과 인간의 관계 짓기가 멀어질까 두렵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전할 수 있는 울림의 여백을 알기에 부족하지만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게 됩니다. 부디 한 사람의 소박한 몸부림이 지친 당신의 마음 곁에 작은 별빛 한 점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고경수는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사람과 삶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 왔던 작가이다. 시집 <흐린 날의 기다림>, 산문집 <부지깽이>, <나를 찾아서, 마음 여행>, 교육 에세이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은 아이로 키우고 싶나요> 등을 출간했다.
총 7부로 구성된 책은 마음을 세우는 시간(1부)에선 자기만의 그릇, 나눔과 비움의 행복 등 16편의 글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2부)에선 '왜'라는 질문, 겸손의 가치 등 16편의 글을, 행복을 향한 걸음(3부)에선 23시 59분, 흔들림의 의미 등 16편의 글을, 관계를 배우는 시간(4부)에선 참된 우정의 가치, 나를 위한 용서 등 16편의 글을, 삶을 지탱하는 가치(5부)에선 중용의 삶, 성공의 법칙 등 16편의 글을, 일상에서 찾은 선물(6부)에선 투자와 투기, 여백의 숨결 등 16편의 글을, 마음이 머무는 풍경(7부)에선 나이 듦의 미학, 사춘기 공부 등 16편을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긴다.
"문학도 하나의 선택이며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한다면 허황된 행복의 의상을 벗어 버릴 수도 있고 저 얼음의 나라, 사막 속의 땀과 누더기의 의미도 삶의 치열함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 삶과 생명, 스스로도 그러한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다산책방,2025) 중에서
나는 주로 새벽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도 새벽 시간이다. 최근 내린 가을비로 이어진 밤 기온의 하락 때문에 감기 몸살을 앓게 되었다. 젊은 시절엔 며칠 동안 밤을 꼬박 세워도 몸이 생생했는데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의사의 말이 '휴식이 보약'이라 했다. 역시 휴식 후 몸이 서서히 회복되어 이젠 독서와 글쓰기에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마음을 세우는 시간
우리들은 삶에 관해 이런저런 이유들을 단다. 그런데, 결국 이들 모두는 행복이란 두 단어로 모아지는 것 같다.이 무색무취無色無臭한 단어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먼 곳에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내 삶에 내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 말이다.
저자는 이런 글로 행복을 표현했다. "행복은 자기 그릇에 어울리는 자기만이 담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간직할 때 찾아오게 됩니다."(15쪽) 이 대목에서 우린 자기 그릇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릇은 뭔가를 담는 용기容器를 말한다. 모양도 다양하고 용도 또한 제각각이다. 간장, 고추장, 양념, 반찬 등처럼 말이다.
그런데, 걸맞는 쓰임새를 무시하면 흘러 넘치거나 조금밖에 채울 수 없기도 하는 것이 바로 그릇이다. 우리들이 머리 속에 떠올리는 그런 그릇이 각자의 내면에도 있다. 이게 '자기 그릇'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분수'에 가깝다. 과거 내가 고용한 펀드 매니저의 중대한 실수로 큰 손실을 입어 화병火病이 나서 큰스님으로부터 마음 공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큰스님은 내가 처한 결과는 내 그릇 탓이라고 가르쳤다. 처음엔 내 탓이란 말이 너무 억울해서 108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를테면 내 그릇에 어울리는 펀드 매니저를 고용하지 못한 나의 과오임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난 내 그릇 키우기에 몰두했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 정찬주,<법정스님 인생응원가>(다연,2019) 중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쉽게 얻게 된 것은 그만큼 쉽게 가치를 잃게 되고 어렵게 얻게 된 것은 그만큼 오래도록 곁에 남습니다. 그것은 결과보다 그 과정 속에 담긴 노력과 인내가 더 소중한 가치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 간절함의 힘' 중에서(63쪽)
반도체를 포함한 일부 산업의 호황이 한국 경제 전체를 대변하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자영업자의 주름살은 점점 깊게 패이고 있다. 버티다 버티다 금리마저 인상되니까 이제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현 모습이 이러함에도 민생 경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정치판을 보노라면 화부터 난다.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니까 말이다.
청년 세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생횔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단기 알바에 내 몰리며 점점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경제가 호황이라야 일자리가 많이 늘 것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현재 정치판은 과연 이를 해결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경제는 어려워짐에도 그저 반도체 경기에 숟가락만 걸친 채 부동산 규제 강화로 청년 세대들의 내집 마련은 이젠 헛 꿈인 실정이다. 이미 자영업을 영위 중인 4050 이후 세대들도 금리 인상이란 새로운 고통이 늘어나 폐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 또한 "정치의 방향이 자꾸 올 곧게 서지 못함은 정치政治를 하고자 정치인이 된 것이 아니라, 권력權力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85쪽)이라고 일갈한다.

행복을 향한 걸음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조건을 가진 금수저 출신일지라도 지나친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며 만족할 줄 모른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참된 행복은 비록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를 감사하게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 달린 것이다. 비록 흙수저 출신일지라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가운데 일상의 소소한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의 크기는 외적인 대상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 '행복의 이중주' 중에서(129쪽)
관계를 배우는 시간
개인적으로 산울림의 노랫말 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란 가사를 매우 좋아한다.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타인의 존재도 마땅히 있다. 내가 남에게 존중받는 바와 같이 상대방인 남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관계'이다. 우리 모두는 무수히 많은 관계에 연결된 유기적인 인격체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관계를 배워야 하며, 특히 인간관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계란 꽉 찬 내 안에 상대방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빈 마음에 상대방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 '여백의 숨결' 중에서(253쪽)
한국에 존재하는 직업은 대략 일만 육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의사, 한의사, 교사, 이발사, 청소부, 농부, 어부, 소방관, 경찰,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트롯 여가수 윤수현이 부른 '천태만상'에도 약 60개의 직업을 나열하며, 직업엔 귀천貴賤이 없음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교육계의 풍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현실엔 희망이 없다.
1, 2, 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 5, 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 8,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저자는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이란 글에서 학교는 오늘도 성적과 등수等數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고 심지어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정해 주고 있다고 비판적인 말을 한다. 세계적인 교육자 하워드 가드너가 '다중지능이론'에서 밝혔듯이 사람들은 각자가 부여받은 재능이 있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삶을 지탱하는 가치
꿈이 없다는 것은 내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감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죽는 순간까지 늘 가슴속에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 '꿈의 가치' 중에서(188쪽)
히말라야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신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어떻게 그 험준한 산을 오르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산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라고 말했다. 험한 산을 오르다 보면 앞서 가는 사람을 쫓게 된다. 이 사람을 이기고 싶어서 자신의 페이스를 벗어나 앞선 이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면 체력이 바닥나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머무는 풍경
결국 노력이나 성실함이 아니라 인맥과 학연, 지연이 결탁한 권력에 의해 무언가를 더 많이 가져가게 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게 된다는 불편한 사실이 길의 의미를 묻습니다. - '길의 의미를 묻다' 중에서(263쪽)
삶은 속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느림의 풍성함 속에 돋아나게 됩니다. - '느림의 미학' 중에서(267쪽)
바람이 부는 날은 애써 피하지 말고 그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바람이 전하는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 '바람의 인사' 중에서(269쪽)
말이 없다는 것은 모르거나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새기기 위한 여백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 '침묵의 가치' 중에서(279쪽)

나이듦은 이별을 위한 행진
칠십대 중반의 독거노인인 나는 꿈자리가 뒤숭숭하거나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오르면 요양원에 계신 노모老母(100세)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청력이 매우 부실해서 보청기에 의존하지만 작은 아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말씀하신다. 한 해가 지날수록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워낙 고령인 탓에 얼마 전 요양원에선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물어왔다. 형제들과 단톡방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다 삶을 마감했던 아버지의 사례를 떠올리며 형제들 모두 노모의 편안한 죽음을 원했다. 올해 겨울이 가장 큰 고비일 듯하다. 나이 든다는 건 이처럼 이별을 위한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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