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부른 아이 1 : 활 마녀의 저주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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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가 사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열 살이 된 아이 중, 동쪽 동굴에 있는 용의 부름을 받은 아이만이 마을을 나갈 수 있다. 한 명도 부름을 받지 못하는 해도 있고, 두세 명이 부름을 받는 해도 있다. 용의 부름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올해 열 살이 된 미아는 자신은 용의 부름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용의 부름을 받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작가 가시와바 사치코는 고단샤 아동문학신인상과 일본아동문학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한 후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을 써 왔으며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노마 아동문예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귀명사 골목의 여름>으로 최고의 비영어권 어린이책에 주어지는 '배첼더상'을 수상,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작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책 속의 삽화들은 판타지 문학과 어린이책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타케 미호가 그린 그림이다. 


판타지 소설이자 판타지 시리즈인 <용이 부른 아이>의 1권 '활 마녀의 저주'는 여덟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용의 부름을 받다, 왕궁으로, 우스즈님의 정체, 모험을 시작하다, 회오리 마을, 몇백 년 만의 재회, 불타는 돌, 미아와 릴리트 등의 이야기가 펼쳐 진다.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아가 사는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하늘로 날 수 있지 않는 한, 결코 이곳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는 특별한 지형이다. 마을 주위엔 산이 있고, 강도 흐르며, 온갖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는 평야도 펼쳐진다. 이런 환경 속에 살았기에 미아는 한 번도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 마을이 죄인들의 감옥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아는 결혼하지 않은 이모의 헌신적인 돌봄 밑에서 성장해 열 살에 이르렀다. 미아의 조상은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왕족의 조상과의 전쟁에서 패한 일족의 후손이다. 비록 이 골짜기 마을이 죄인들의 집합소라지만 몇백 년 전 용과 마녀까지 합세한 그 전쟁에서 미아의 선조들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란 자부심이 가득한 가문인 셈이다. 마을에는 마녀들의 배반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미아는 두 돌이 되도록 서지도 못했고 말도 트이지 않았던 발육이 더딘 아이였다. 아빠가 죽고 혼자서 미아를 양육하던 엄마는 열이 펄펄 끓는 미아를 버려두고 사라졌다. 삶을 비관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마을을 탈출하려 절벽을 오르다가 추락해 죽었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모른다. 지금까지 둘째 이모가 정성껏 돌보았던 열살 미아가 용의 부름을 받았다.



미아는 말타기에 능숙했기에 이후 용을 타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사진. 말을 타고 가는 미아, 이를 바라보는 용) 


언젠가는 용의 부름이 있을 것을 예상한 둘째 이모는 가출(?)한 엄마를 대신해 미아를 어릴 적부터 엄하게 훈육해서 청소, 요리, 바느질, 뜨개질, 읽기와 쓰기, 곱셈 계산, 지도 보는 법, 그림 그리기, 승마, 약초의 효과, 예의범절, 식사예절 등을 두루 가르쳤기에 용의 부름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미아는 할아버지가 내어 준 말을 타고 먼저 인사를 하기 위해 용이 산다는 동쪽 동굴로 나아갔다. 


주요 등장인물 소개 


미아~ 용의 부름을 받은 열살 소녀

둘째 이모~ 친부모를 대신해 미아를 키운다

우스즈~ 저주를 받아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릴리트~ 미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왕궁 여인

은빛 날개 마녀~ 숨은 활 마녀를 찾아 다닌다   


이후 용을 타고 왕궁에 도착한 미아는 익숙치 않은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서서히 적응한다. 릴리트, 저주에 걸려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우스즈, 은빛 날개 마녀 등을 만난다. 미아에게 부여된 일은 사라진 우스즈의 방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사진, 우스즈의 방에 도착한 미아)


한편, 도착한 첫 날은 금방 잠에 곯아 떨어져 몰랐지만 우스즈의 방에선 이상야릇한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로 인해 무서움과 불안감을 갖던 중 당찬 미아는 서서히 이 소리에 적응하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밑이 터진 주머니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걸 알게된다. 이에 터진 곳을 꿰메고 나자 울음 소리가 뚝 그쳤다. 이후 미아는 이 주머니를 소금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은빛 날개 마녀 덕분에 '용의 기사' 우스즈가 활 마녀의 저주를 받아 작은 주머니로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진, 주머니)


(사진, 회오리 마을로 향하는 미아)


이제 주머니를 허리띠에 매달아 휴대함으로써 미아는 '용의 기사' 우스즈와 함께 동행하는 셈이 된 것이다. 왕궁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은 미아는 왕궁 수비대장 아마다의 배려로 약간의 금화를 챙겨 용을 타고 우스즈가 원하는 북쪽 방향에 위치한 회오리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금광이 있었는데, 현재는 미아가 살았던 골짜기 마을과 마찬가지로 죄인의 마을로 변해 있었다. 아무튼 미아는 이렇게 '용의 기사' 우스즈가 타고 다녔던 용을 찾아 모험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과연 우스즈가 잃어버린 용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사진, 릴리트와 미아의 관계)


#판타지 #판타지소설 #판타지시리즈 #용이부른아이 #센과치히로의행방불명 #가시와마사치코 #대형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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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
묘장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불광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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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회기역 연화사蓮花寺 주지인 묘장 스님은 이 책에서 ‘인연’과 ‘생명’이란 주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한다.


(사진, 책표지)


책은 세 개 파트, 즉 ‘후회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사라진다’, ‘끝없이 넓은 세계와 나와 남이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다’라는 소제목하에 총 38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연因緣


<능엄경>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보리심을 얻고 진정한 경지를 체득하는 걸 강조하는 경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의 스캔들이 소개된다. 그는 부처님을 곁에서 모신 시자侍者로 용모가 출중했다고 알려진다.


하루는 홀로 탁발에 나섰던 아난이 목이 말라 강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서 물을 얻어 마셨다. 아난의 뛰어난 외모에 홀딱 반한 여인은 귀가해서 어머니에게 생떼를 부렸다. 첫 눈에 운명의 짝임을 느꼈다며 아난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여인의 어머니는 인도의 하층 계층인 ‘마등가摩登伽’라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기에 아난을 집으로 초대해 공양을 올리고 딸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난은 수행자이므로 결혼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에 이 어머니는 주술을 부려 아난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처님이 급히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구한다. 뒤이어 아난을 찾으려고 마등가 여인은 절 안 곳곳을 뒤지다가 부처님을 마주친다.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아난처럼 삭발하고 출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잘 생긴 아난의 부인이 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이 아난의 외모가 모두 좋아 보이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더럽다고 부정관不淨觀을 설법하자 마침내 마등가 여인은 애욕愛慾을 버리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생명生命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 중에 ‘방생放生’이 있다. 이는 죽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선한 행위이다. 한국불교에선 예전부터 물고기 방생을 많이 해왔다. 지금도 그 전통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오히려 낚시꾼의 밥이 되게 하는 살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이는 그 본질을 왜곡하는 뒤집힌 생각인 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에 나오는 귀절인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을 떠올리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따로 있는데 이를 꾸짖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자를 꾸짖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등을 거론하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탓하는 경우와 같다.


물론 생태교란종으로 평가받는 물고기를 풀어 준다면 우리들이 오래토록 즐겨야 할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로 오히려 비난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일로 인해 방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지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불교의 방생 의식)


#불광출판사서포터즈빛무리 #인연이아닌사람은있어도인연없는사람은없다 #나는절로 #묘장스님 #불교 #인연 #사랑 #독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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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 초보 농사꾼의 고군분투 영농기
김영화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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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였습니다. 이제는 여리여리한 레이스 가득한 옷보다 고무줄 바지가 더 잘 어울리고, 흙이 묻어도, 벌레가 옷깃에 붙어도 별것 아니라는 듯 툭툭 털어냅니다. 진드기마저 익숙해졌습니다. 동물들이 싸고 간 똥을 봐도 찌푸리지 않고 거름 생겼다며 좋아하는 여유를 부립니다. 호미, 괭이, 삽 등 연장 보기를 백화점 명품 보듯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저자 김영화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깊은 산골에 살고 있다. 감, 호두, 벼농사까지 하는 억척스런 아가씨 농사꾼인데 시골에서의 삶을 사랑하며 농사를 통해 얻게 되는 땅의 언어를 글로 옮기고 있다. <농민신문> 영농생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이라는 농사꾼의 사계절로 구성되어 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 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등의 소제목으로 계절별 농사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겨울 이야기를 첫 번째로 넣은 것은 겨울은 농사를 끝내고 쉬는 농한기農閑期가 아니라 오히려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짓는 논은 잘린 볏짚이 흙과 잘 섞이도록 갈아엎어 놓아야 하고, 과일을 맺는 나무들은 가지치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바람과 햇빛과 물 등 환경을 잘 읽어야 하고, 꾸준히 보아야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아직 생계형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풀인지, 작물인지 조금씩 알게 되고 농사가 손에 익어 간다. 땅으로 맺은 인연으로 기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를 들춰본다. 

겨울 

겨울은 추워야 한다. 이 표현은 내가 어린 딸자식을 훈육할 때 늘 사용하던 말이다. 물론 농사꾼과 일반인의 의미가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린 딸 둘은 아빠를 지독한 꼰대로 보았을 것이다. 경상북도 한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추운 겨울철도 무척 좋아서 실컷 즐겼다. 농사는 머슴 형이 하는 일이라 그 시절의 난 편안한 시골생활의 연속이었다. 일보다는 노는 것에 푹 빠져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손을 호호불며 꽁꽁 얼어붙은 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렇게 탐닉하다 결국엔 손에 동상이 걸려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농사꾼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 춥지 않으면 겨우내 죽어야 할 벌레들이 이듬해에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은 농사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이라서 봄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살충, 살균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아가씨 몸으로 이많은 일들을 하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한다. 

3월이 오기 전에 감나무, 호두나무에 기계유제를 살포한다. 기계유제의 기름 성분이 해충의 숨구멍을 막아 해충을 방제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의 새순과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4월 초순경 사용하게 되면 꽃이 피지 못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고 세력이 약해지는 등의 약해藥害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3월이 오기 전에 방제를 마쳐야 한다.

커다란 물통에 500리터 물을 받아놓고 18리터 기계유제를 혼합한다. 그러고는 전기식 분무기를 꺼내와 약을 치려는데 기계가 너무 조용하다. 분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호스가 들어가는 곳에 균열이 가 있다. 대안으로 텃밭에서 사용하는 밀차식 엔진분무기에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 보는데 아무리 시동줄을 잡아당겨도 이것도 시동이 안 걸린다.
 
하필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농기계 수리센터가 쉬는지라 고칠 수도 없다. 기계유제는 물과 혼합해 놓으면 빨리 사용해야 하므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물통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작은 바가지로 퍼서 나무마다 다니며 뿌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계유제들이 흩날리며 골고루 뿌려진다. 물론 처녀 농사꾼도 기계유제를 뒤집어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서야 살포작업은 끝이 났다. '다음부터는 기계 점검부터 먼저 하자'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이처럼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여름

농사꾼 아버지는 예초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었지만 날카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처녀 농사꾼은 낫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초기 사용법을 배워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였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와 진동, 휘발유 타는 메케한 냄새를 벗삼아 풀을 베었다. 

사실 난 예초기 작업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 추석을 앞두고 가족 산소에 벌초작업을 나갔다가 예초기를 돌리던 사촌 자형이 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움켜 잡고 나뒹굴었다. 예초기에 돌이 튕겨 하필 눈을 강타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서 도착했지만 이미 한쪽 눈은 복구 불능상태였다. 무척 나와 가깝게 지냈던 자형은 평생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오고, 손가락은 뚱뚱하게 부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려고 할 때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손가락이 튕기듯 펴지곤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찾은 병원에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예초기나 드릴처럼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란다. 이후 통증을 완화하려고 스키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더니 손등에 땀띠가 났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스키장갑이라니.

가을

소牛처럼 일을 하는데도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계획성 있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농사꾼의 삶이다. 농사가 잘되어도 언제 어떻게 가격이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재해와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요와 공급이 들쭉날쭉해서다.

이 대목에선 신혼 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경남 말양에서 토마토 하우스 농장을 해보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호기롭게 억대 농부를 꿈꾸며 농사꾼이 되었던 일을 소개해 본다. 농촌진흥원에서 필수 교육도 이수하고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이상에 그치고 말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도 문제였고, 판로 또한 걱정거리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토마토의 상등품만 조합에서 매수하므로 출하가 안되는 토마토의 판매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그해 여름 조카 농장에서 토마토를 구매해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농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억대 농부의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그럼에도 저자는 '농사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옹호한다. 즉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그런지 감수성만큼은 갑이다. 제철 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을 이어가면 보이지 않는 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동행해 주므로 비록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농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흘린 땀과 노력은 정직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농사란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을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농사꾼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형편도 아니다. 여름이면 태풍이 몰아쳐 과수 농사를 망치고,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가 엉망이 되기도 하는 불확실한 자영업이다. 나의 조카는 억대 농사꾼의 꿈을 중도에 접었지만 충청도 산골 처녀 농사꾼의 밝은 미래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진다.

#에세이 #시골에서는고기살돈만있으면된다면서요 #김영화 #초보농사꾼 #학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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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이 저술한 자기신뢰를 읽고 있어요. 아직 이 도서 [초역 자기신뢰]가 등록 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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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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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삶의 변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도대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위해 여러 인문학, 철학 책들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야기들은, 좋은 말이지만 ‘영감’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삶에 흡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철학서이면서 실용서입니다. 당장 실천하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실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책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조남호는 라이프코드 대표로 지금까지 여러 콘텐츠와 강연을 통해 '목적주의 탈출, 충만주의 회복'이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네이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가'란 주제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자는 목표로 퇴사했다.


총 3개의 파트에 걸쳐 12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조남호 저자의 강연 콘서트 <공허의 시대>를 책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 강연 영상은 3시간이 넘는 재생에도 불구하고 누적 조회수 310만 회를 기록하며 청년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책은 충만한 삶을 위한 새로운 인생철학을 제안한다.


목적주의란 무엇인가?


누구든 자신의 삶에 대해 허무한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직장생활에 지쳐 '과연 이렇게 살면 어떤 미래가 나를 반길까?'라는 불안한 의구심이 생겼었다. 그 시절 직장인은 누구나 마치 기계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오직 출세만을 목표로 삼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자신의 뜻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보다는 도중에 쓰라린 실패의 맛을 보게 만든다는 거다. 이 헛헛한 마음이 바로 허무감 아닐까 싶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 적이 있을 겁니다. '아.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쎄하게 퍼지는 거대한 허무함. 그런 감정이 간혹 좀 찝찝한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 불행할 지경으로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마 조금씩 정도는 달라도 모두가 느낀 적 있을 겁니다." 


이처럼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다. 이를 저자는 '목적'이라고 명명한다.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큰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목적에 많이 미달하다고 느껴서 그러하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목적주의'이며 이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사진, 목적주의 도식)


그런데, 책은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살펴보자. 목표는 쉽게 말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고 편한 것'으로 예컨대 '1년에 해외여행 다섯 번'이라고 계획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이를 달성하지 못해 불만족스럽더라도 결코 내 인생이 비참하다고는 느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목표는 그저 단순 지표와 같다. 반면, 목적은 '내 삶의 이유'와 연결되므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헛 산 인생'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헛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를 추구한다면 '제대로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잘 세운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심지어 남들이 좋다는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하루하루 온 힘을 다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남는 건 자책감과 허무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목적주의 도식은 애초에 인간의 삶에 맞는 공식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목적주의'라는 삶의 기준이 완전히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의미, 절대적인 목적은 존재할까?'에 관해 질문을 가져왔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오랜 탐구 활동 결과, 하나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즉, 인간은 이러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없다. 


또 진화를 연구해온 진화학의 가장 큰 오해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는 명제이다. 인간이 마치 두 발로 서기 위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고 진화해온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자, 생존의 결과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인생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인류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계획이란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성취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허상일 뿐이다. 동기부여도 마찬가지다. 그때 뿐이다. 잠깐 불타오르다가 이내 불꽃이 사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앞서 살펴본 목적주의 도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치 않은 허점투성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목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 즉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의 영향력은 겨우 최대 3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목적주의에 집착한다면 이는 거의 도박과 마찬가지이다. 목적 달성 또한 허상이다. 


충만주의란 무엇일까?


이에 저자는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목적주의에서 탈피해 충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충만주의란 뭘까?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어떤 일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저 일에 깊게 빠져들었을 뿐인 상황인 것이다. 몸은 다소 피곤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는 우리 모두 잘아는 유명한 격언이다. 목적주의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법한 말이다. 내일 사라질 판에도 불구하고 나무 심기에 올인하는 삶이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목적 없이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 적이 있다. 이럴 때엔 이유 없이 충만했음을 느낀다. 삶을 100%로 살고자 하는 바람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가장 근원적인 의지이다. 


(사진, 잘 살았음을 느끼는 원리) 


“내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 삶부터 제대로 충만하자. 삶은 삶으로 채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대전환되는 공허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자 대응 방식이다. 목적주의와 충만주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를 아래 사진이 잘 보여준다. 



(사진, 목적주의 vs 충만주의)


지금껏 우리들은 거창한 뭔가가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예를 들면 일에서의 거창한 성공, 공부에서의 압도적인 성취, 꿈의 실현 등등.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게 쉽지 않을 거라고 비관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충만주의는 그런 우리를 혁신적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 거창한 것만이 아닌, 그 어떤 경험에서도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적 증명이니까. 심지어 우리가 사소하게 여겼던 일상 경험으로부터 이를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주 가까이, 늘 곁에 있었던 일상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이젠 거창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걸 멈추자.


놀라울 뿐이다. 충만주의는 여태 꿈꾸지도 못했던 의미와 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내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반면에 목적주의는 아무리 자기계발하고 성장하고 성취해도, 결국 공허하고 무너지는 삶을 반복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인생관을 바꾸는 것 하나로 내 삶은 크게 달라진다. 가히 인생 혁명인 셈이다.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정리하자면 목적주의 인생관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결국 다수가 행복하지 않은 ‘공허의 시대’에, 내 인생을 위해 기꺼이 ‘충만한 소수’가 되자. 비록 충만주의는 학문적인 철학 이론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인생철학이다. 이제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공허의시대 #조남호 #라이프코드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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