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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삶의 변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도대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위해 여러 인문학, 철학 책들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야기들은, 좋은 말이지만 ‘영감’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삶에 흡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철학서이면서 실용서입니다. 당장 실천하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실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책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조남호는 라이프코드 대표로 지금까지 여러 콘텐츠와 강연을 통해 '목적주의 탈출, 충만주의 회복'이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네이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가'란 주제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자는 목표로 퇴사했다.
총 3개의 파트에 걸쳐 12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조남호 저자의 강연 콘서트 <공허의 시대>를 책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 강연 영상은 3시간이 넘는 재생에도 불구하고 누적 조회수 310만 회를 기록하며 청년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책은 충만한 삶을 위한 새로운 인생철학을 제안한다.
목적주의란 무엇인가?
누구든 자신의 삶에 대해 허무한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직장생활에 지쳐 '과연 이렇게 살면 어떤 미래가 나를 반길까?'라는 불안한 의구심이 생겼었다. 그 시절 직장인은 누구나 마치 기계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오직 출세만을 목표로 삼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자신의 뜻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보다는 도중에 쓰라린 실패의 맛을 보게 만든다는 거다. 이 헛헛한 마음이 바로 허무감 아닐까 싶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 적이 있을 겁니다. '아.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쎄하게 퍼지는 거대한 허무함. 그런 감정이 간혹 좀 찝찝한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 불행할 지경으로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마 조금씩 정도는 달라도 모두가 느낀 적 있을 겁니다."
이처럼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다. 이를 저자는 '목적'이라고 명명한다.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큰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목적에 많이 미달하다고 느껴서 그러하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목적주의'이며 이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사진, 목적주의 도식)
그런데, 책은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살펴보자. 목표는 쉽게 말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고 편한 것'으로 예컨대 '1년에 해외여행 다섯 번'이라고 계획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이를 달성하지 못해 불만족스럽더라도 결코 내 인생이 비참하다고는 느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목표는 그저 단순 지표와 같다. 반면, 목적은 '내 삶의 이유'와 연결되므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헛 산 인생'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헛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를 추구한다면 '제대로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잘 세운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심지어 남들이 좋다는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하루하루 온 힘을 다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남는 건 자책감과 허무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목적주의 도식은 애초에 인간의 삶에 맞는 공식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목적주의'라는 삶의 기준이 완전히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의미, 절대적인 목적은 존재할까?'에 관해 질문을 가져왔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오랜 탐구 활동 결과, 하나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즉, 인간은 이러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없다.
또 진화를 연구해온 진화학의 가장 큰 오해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는 명제이다. 인간이 마치 두 발로 서기 위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고 진화해온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자, 생존의 결과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인생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인류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계획이란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성취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허상일 뿐이다. 동기부여도 마찬가지다. 그때 뿐이다. 잠깐 불타오르다가 이내 불꽃이 사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앞서 살펴본 목적주의 도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치 않은 허점투성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목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 즉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의 영향력은 겨우 최대 3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목적주의에 집착한다면 이는 거의 도박과 마찬가지이다. 목적 달성 또한 허상이다.
충만주의란 무엇일까?
이에 저자는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목적주의에서 탈피해 충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충만주의란 뭘까?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어떤 일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저 일에 깊게 빠져들었을 뿐인 상황인 것이다. 몸은 다소 피곤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는 우리 모두 잘아는 유명한 격언이다. 목적주의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법한 말이다. 내일 사라질 판에도 불구하고 나무 심기에 올인하는 삶이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목적 없이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 적이 있다. 이럴 때엔 이유 없이 충만했음을 느낀다. 삶을 100%로 살고자 하는 바람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가장 근원적인 의지이다.

(사진, 잘 살았음을 느끼는 원리)
“내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 삶부터 제대로 충만하자. 삶은 삶으로 채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대전환되는 공허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자 대응 방식이다. 목적주의와 충만주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를 아래 사진이 잘 보여준다.


(사진, 목적주의 vs 충만주의)
지금껏 우리들은 거창한 뭔가가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예를 들면 일에서의 거창한 성공, 공부에서의 압도적인 성취, 꿈의 실현 등등.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게 쉽지 않을 거라고 비관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충만주의는 그런 우리를 혁신적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 거창한 것만이 아닌, 그 어떤 경험에서도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적 증명이니까. 심지어 우리가 사소하게 여겼던 일상 경험으로부터 이를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주 가까이, 늘 곁에 있었던 일상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이젠 거창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걸 멈추자.
놀라울 뿐이다. 충만주의는 여태 꿈꾸지도 못했던 의미와 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내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반면에 목적주의는 아무리 자기계발하고 성장하고 성취해도, 결국 공허하고 무너지는 삶을 반복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인생관을 바꾸는 것 하나로 내 삶은 크게 달라진다. 가히 인생 혁명인 셈이다.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정리하자면 목적주의 인생관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결국 다수가 행복하지 않은 ‘공허의 시대’에, 내 인생을 위해 기꺼이 ‘충만한 소수’가 되자. 비록 충만주의는 학문적인 철학 이론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인생철학이다. 이제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공허의시대 #조남호 #라이프코드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