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 <현문우답> 백성호의 이스라엘 마음순례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 글.사진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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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생애를 따라간다. 신자와 비신자를 가려 따지지 않는다. 대신 인간을 따진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따진다.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건네는 예수 이야기다. 신을 품은 인간, 인간을 품은 신, 예수에 대한 이야기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예수에게 가는 길

 

책의 저자 백성호는 <중앙일보>의 종교담당기자이다. 2007년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현문우답'을 통해 종교의 벽을 관통하며 독자들과 소통해오고 있다. 제1회 한국기독언론대상(2008년)에서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기 - 예수의 숨결을 찾아서'로 대상을 수상했다. 제19회 불교언론문화상(2011년)에서 '현문우답'으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현문우답>, <이제, 마음이 보이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생각의 씨앗을 심다>,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등이 있다.

 

저자는 겨울휴가 때 이스라앨을 갔다. 세 번째 순례였다. 단체 일정에 쫓기지 않고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 동안 마음껏 머물고 싶었기에 자동차를 빌려 혼자 운전하며 다녔다. 예수살렘에서 나사렛으로, 다시 갈릴리로, 광야와 사해를 거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올리브 산과 십자가의 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묵상에 잠겼다. 예수를 만나고 싶었기에.

 

그는 2천년 전 예수가 몸을 적셨던 갈릴리 호수에 몸을 담그고, 악마를 물리치며 기도했을 광야에서 눈을 감아 보았다. 또 그는 유년의 예수가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았을 나사렛 골목에서 뛰어도 보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다가 쓰러졌던 그 장소에서 주저앉아도 보았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걸었고 또 성경 속을 걸었다. 이는 자신의 눈을 부수고, 이끼를 걷어내고, 성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살아있는 예수'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그 길에서 만난 예수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이다. 성경 본문의 인용은 가톨릭 성경을 따랐다. 이는 요즈음 보편적으로 쓰는 쉬운 말로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

 

 

 

 

겟세마니 바위

 

예루살렘 동편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올리브 산이다. 이 산엔 옛날부터 올리브 밭과 공동묘지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했다. 오래된 묘비와 석관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곳에 조그만 동산이 잇었다. '올리브유를 짜는 곳'이란 뜻을 지닌 겟세마니(겟세마네)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 예수는 이곳으로 와 땀을 흘리며 기도한 장소이다.

 

이스라엘은 사막 기후다. 낮엔 뜨겁고 밤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예수가 제자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낮보다 10도 이상 떨어지는 차가운 밤이었을 것이다. 당시 예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틀이 지나면 파스카(유월절)인데,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예수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이곳 겟세마니로 왔다. 올리브 산 언덕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빤히 보이는 거리였다. 예수는 도망 대신 기도를 택했다.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그 뜻과 하나로 되려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겟세마니 동산의 올리브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우리도 그렇게 흔들린다. 수시로 기로에 선다. 살다 보면 각박한 일상의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는 몸소 보여줬다. 도망가지 말라고. 마주하라고.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기도하라고. 묵상 속에서, 명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답을 찾으라고. 지금도 예수는 그렇게 역설한다. 

예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 고통이, 이 슬픔 이, 이 불행이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건 우리가 수시로 올리는 기도와 닮았다. 그런데 예수의 기도는 달랐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갔다. 그는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때 에고가 부서져 내린다. 남들이 멈추는 곳, 모두가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 곳에서 예수는 한발 더 앞으로 내디뎠다. 곤두박질칠 줄 뻔히 알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예수의 기도는 각별했다. 그렇게 '나'를 파괴해버린 예수는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신의 뜻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이 겟세마니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예수는 기도하며 땀을 피처럼 흘렸다고 한다.

 

 

혼인잔치 교회

 

예수는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을까? 예수는 이곳에서 첫 번째 기이한 행적을 보였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왔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참석했다. 미루어 보건대 친척쯤 되는 사람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성서에는 결혼식 당사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당시 잔치가 열리고 있는데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유대 사회에서 하객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예수 앞에는 유대인들이 식사에 앞서 손을 씻는 데 사용하는 물독이 여섯 개 놓여 있었다. 예수는 일꾼들에게 물독을 채운 후 이를 잔치를 주관하는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라고 말했다. 과방장은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맛보았다.   

 

그럼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만 신비일까. 내 안에서 길어 올린 두레박의 물이 온갖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신비다. 예수가 보여준 첫 이적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마음을 어떻게 쓸지를 보여준다. 카나에서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객들은 아쉬워하고 혼주는 난감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때 예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 그것을 만들었다. 저자는 거기서 '예수의 마음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

 

"네 안에 신의 속성이 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너는 온갖 마음을 창조할 수 있다. 마치 물을 포도주로 바꾸듯이 말이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마음을 창조해서 써라"

 

 

팔복 교회

 

예수의 영성도 마찬가지다. 안으로 들이마신 다음에는 바깥으로 내쉬어야 한다. 일상을 향해, 현실을 향해, 사회를 향해 내쉬어야 한다.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다시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는 거다. 가난한 마음을 찾는 게 '들숨'이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게 '날숨'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영성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수도修道'라고 부른다. 그 와중에 '에고의 눈'이 '예수의 눈'을 점점 닮아간다.

 

'산상설교''평지설교'로 나누는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의 메시지는 둘로 갈라진 게 아니다. 이는 편을 가르는 데 익숙한 '에고의 눈' 때문이다. '예수의 눈'에서는 그렇게 쪼개질 수가 없다. 들숨과 날숨은 두 가지 숨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숨일 뿐이다. 그럼에도 진보와 보수를 고집하는 이들은 스스로 '반쪽'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예수는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였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 묵시록 22장 13절)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는 뜻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면서 동시에 오른쪽'이고,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며, 좌파 와 우파를 모두 품는다는 뜻이다. 바로 '거대한 중도中道'다. 그게 예수의 정체성이다. 다름 아닌 신의 속성이다. 예수의 칼집에는 좌파의 칼도 있고 우파의 칼도 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칼을 꺼낼 뿐이다. 이것이 '예수의 지혜'다. 그래서 전능全能이다. 어느 한쪽의 칼만 쓰는 건 전능이 아니다.

 

팔복 교회 주위로 풍요로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예수는 이런 풍경 속에서 산상설교를 했다.

 

 

예수는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라고 했다.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는 말이다. 우리의 창고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 그건 바로 '집착attatchment'이다 . 접착제처럼 끈적이면서 내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착이다. 집착할 때 마음의 창고가 가득 찬다. 집착을 비울 때면 창고도 빈다.

 

그 이치를 꿰뚫은 예수가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불교에서는 이를 "마음을 내려놓으라"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불교는 불국토(佛國土, 부처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그 문턱을 넘어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가 서로 닮았다. '마음의 창고를 비워라'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는 왜 생겨날까. 그것은 잣대 때문이다. 잣대의 왼쪽은 선, 오른쪽은 악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원수가 된다. 예수의 말처럼 그 원수를 사랑하면 어찌 될까. 선악을 가르던 잣대가 무너진다. 그 잣대가 무너지면 어찌 될까. 우리는 돌아간다. '선악과善惡果 이전'으로 돌아간다.

 

중국의 혜능 대사는 늦은 나이에 출가해 정식 승려가 되기도 전에 행자(수련생) 신분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스승인 홍인 대사는 그가 다른 수행자로부터 시기를 받을까 무척 걱정되었다.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깨달음의 징표인 가사와 발우를 주며 멀리 도망가라고 했다. 혜능은 밤에 남쪽으로 달아났다.

 

뒤늦게 이를 안 수행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행자 따위가 스승의 법맥을 잇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뒤를 쫓아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 했다. 다들 지쳐 중간에서 돌아가고 말았지만 유독 장수 출신인 혜명은 대유령이라는 큰 고개까지 혜능을 쫓아왔다. 이에 혜능은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놓았다. 그런데, 혜명은 이를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자 이렇게 말했다.

 

"불법佛法을 구하기 위함이지 가사를 빼앗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게 불법을 보여주시오"

 

이에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때 어던 것이 당신의 본래면목(본성)인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불가의 혜능이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라고 한 이유도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선과 악 이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게 '완전함'이다. 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말했다.

 

 

갈릴리(갈릴래아) 호수

 

갈릴래아 호수의 선착장,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끼룩거리며 날아다녔다. 당시의 예수는 말했다.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거기서 그물을 내려라" 예수가 말한 '깊은 곳'은 갈릴래아 호수의 어딘가가 아니었다. 저 푸른 파도의 어디쯤이 아니었다. 그곳은 신의 속성이 잠들어 있는 우리 내면의 심연이다. 그 깊은 마음의 골짜기다. 우리가 다시 돌아갈 고향이다.

 

거기서 그물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데 심연이 어디 인가? 그걸 알아야 갈 게 아닌가" 답은 어렵지 않다. 나의 고집이 무너지는 곳. 거기가 바로 심연이다. 고집에 가려서, 에고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내 안의 깊은 곳이다. 거기서 치유의 비가 내린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던 제자들에게 예수는 사람을 낚으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내가 낚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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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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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은 정이 깊습니다. 음악은 '소리가 그리는 그림'이요, 그림은 '붓이 퉁기는 음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림 속에 박자와 가락이 있고, 음악 속에 묘법과 추상이 있습니다. 게다가 둘 다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지요. 우리 옛 그림과 옛 소리는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다운 정서의 산물입니다. 서로 통해서 어울리고, 어울려서 신명을 빚어내지요. 붓질이 끝나도 이야기와 뜻은 이어지고, 소리가 멈춰도 여운은 남습니다. 모름지기 흥이 나야 신이 나지요. 막상 우리 옛 그림과 옛 소리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마당에서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림과 음악이 서로 스며들어서 만드는 조화와 상생의 시너지를 제가 잘 짚어낼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우면서 한편으로는 설렘으로 가슴이 뜁니다. - '강의를 시작하며' 중에서

 

 

옛 그림 속엔 흥이 있다

 

저자 손철주빼어난 해석과 문체, 해박한 식견과 다정한 입담으로 그림,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옛 그림을 소개하는 데 탁월한 멋을 보여주는 미술평론가이자 명강사이다.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하며 미술에 대한 글을 써왔고, 현재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의 운영위원으로 있다.

 
그의 저서로는 그림 속 옛 사람의 본새까지 읽어낸 <사람 보는 눈>, 옛 그림 68편을 사계절로 나누어 감상하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정다운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예술에 대해 얘기하는 

 

 

 

 

 

 

 

 

조선시대엔 세상의 온갖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세 갈래 있었다. 봉건 전제 사회에도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은 있었을 것이다. 봉건적인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은 일탈을 일삼는 이단아가 되거나 잘못하면 역적이 될 수도 있다. 답답한 봉건사회에서 사회적 통제를 뛰어넘고 시대적 검열에서 안전하게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세 가지 방법을 저자는 '삼척'이라고 명명한다. 즉 첫째, 자는 척하기. 둘째, 숨은 척하기. 셋째, 미친 척하기.

 

은일隱逸, 이는 숨어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즐거움도 추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숨어 산다는 것은 절연絶緣이다. 말그대로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중대한 범죄를 짓고서 체포되면 중형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얘기가 약간 옆길로 샌 것 같다. 아무튼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남겨두다면 이는 숨어 사는 게 아니다. 옛 사람들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어떻게 숨어 지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옛 그림을 내놓는다.

 

아래의 그림은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1545~1611년)의 <월하탄금月下彈琴>이란 작품이다. 그림 속에 둥근 보름달이 떠있고, 험한 절벽처럼 보이는 큰 바위도 보인다. 그리고 비스듬한 길에 도인 스타일의 선비가 무릎 위에 거문고를 올려놓고 앉아 있다. 한편, 차를 끓이는 시중을 드는 아이는 고개를 돌려 선비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거문고에는 줄이 없다. 이를 무현금無絃琴이라고 한다. 뜯을 줄이 없지만 선비는 지금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이에 차를 끓이던 다동茶童도 이제나저제나 연주 소리를 듣을까 하다가 아무 소리도 안나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왜 무현금을 타고 있을까? 옛 그림에서 무현금을 타는 주인공은 바로 도연명(365~427년)을 의미한다. 그는 중국 동진 사람으로 은일거사라고 불리던 시인이다. 유명한 작품이 바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당시 지방의 현령으로 근무하다가 상급자가 위세를 부리며 부당한 지시와 요구를 일삼자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심정이 들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오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일화이다. 그는 고향에서 울타리에 국화를 심어 이로 담근 술을 마시고, 시를 쓰고,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한다.

 

           

 

 

산수화의 의미

 

옛 선비나 은사隱士들이 속세를 떠나 숨은 이유는 "운산만첩雲山萬疊 고예독왕孤詣獨往"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연을 즐기며 살았는지 살펴볼 차례다. 조선 때의 <악학궤범>에는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깃들고, 빈 것에서 발생해 자연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음악의 근본을 자연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은자는 흔쾌히 유오산수遊娛山水를 받아들인다. 우리의 옛 그림에 나오는 산수화가 이를 대변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풍경화 말이다. 책에는 화가 최북(1712~1786년)의 <공산무인空山無人>을 소개한다. 빈 산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깨달음을 칭송하는 <십팔대아라한송>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인용한 말이다.

 

최북崔北은 천출이다보니 양반사회에 저항하는 조선 최고의 삐딱이 화가였다. 그는 '조선의 3대 기인화가' 중 한 명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한 양반이 그에게 돈을 주고 그림을 부탁하길래 산수화를 그려주었더니 맘에 안 든다고 타박을 했다. 이 말에 그는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버렸다. 그림도 모르는 양반이 자신의 작품을 갖고 평을 하는 걸 멈추려면 이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닮게 그리느냐 닮지 않게 그리느냐, 이것은 현대 미술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화두이다. 실물과 똑같이 그려놓으면 모든 사람이 다 신기해한다. '그림은 다 닮게 그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들게 된다. 닮았는지의 여부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기도 하고, 또 그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기도 한다.

 

산수화란 자연의 다툼과 조화를 기록한 그림이다. 그 시대의 산수화란 그 다툼과 조화의 판정을 알아보게 하는 시대적 증거물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원래 인간의 인위와 아무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자족하다"는 선언, 이것이 말하자면 자연을 이해하는 화가의 가장 심오한 통찰인 것이다.

 

 

 

절친은 지음知音이다 

아집아집은 우아한 모임을 의미하는 커뮤니티를 말한다. 즉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인 셈이다. 그 목적은 재물을 탐하거나 음란한 짓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갖춰야 할 아름답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모임에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시시, 서서, 화화, 금금, 기기, 다다, 주주 등이다. 시가 필요하고,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직접 그리거나 남의 작품을 이야기하고, 거문고를 뜯고,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며, 차를 함께 나누는데 여기엔 반드시 음악이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에 백아伯牙종자기鐘子期라는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절친이 되었냐 하면 거문고를 연주하는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정확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즉 백아가 머리로는 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는 "우뚝한 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하는 생각, 꿈꾸는 삶, 하고자 하는 이야기, 허고 싶은 놀이 등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눈 내리는 겨울을 그린 그림을 살펴보자. 이는 이인문의 <설중방우雪中訪友>라는 작품이다. 지붕에 눈이 소복하고, 소나무와 다른 나무의 가지에도 눈꽃이 피었다. 집 우측의 작은 계곡엔 물이 흐르고 두 사람은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주인, 오른쪽은 손님인 것 같다. 소를 타고 친구가 온 모양인데, 그림 하단에 소를 끌고 온 시동이 보인다.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이 그림을 바라보도록 하자. 이 집엔 닫혀 있는 문이 하나도 없다. 문은 죄다 열려 있다. 안과 밖이 다 통한다. 키 낮은 담장은 겨우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 정도이다. 이 집에 사는 아이도 소에 태워 손님을 모시고 온 시동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추운데 집 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라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이에 저자는 소통에 관해 한마디한다.        

 

"요즘 참 많은 사람이 소통을 얘기하지만, 좀 갑갑합니다. 네가 나를 알게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이런 마음으로는 절대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게 소통이 아니라, 내가 너를 알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곧 소통입니다. 이 그림에서처럼 문을 활짝 열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대화를 나누고, 바깥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안으로 맞아들여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나를 알리려고 하지 않고, 내가 이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쩌나 안타까워하다 보면 자연스레 소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미술작품을 보는 안목과 취향

 

우리는 안목眼目취향趣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취향이 축적되면 안목이 될까? 그렇지가 않다. 취향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높고 낮음이나 옳고 그름이 없다. 내가 멘델스존을 좋아하는데 남이 쇼팽을 좋아한다고 해서 서로 삿대질하고 싸울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취향 따라 가는 것이다. 멸치젓보다는 엔초비anchovy가 낫다고 얘기하는 사람보고 "이 사람이 우리 것을 모르는구먼"이라고 탓해 봤자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이처럼 취향에는 시비를 걸면 안 된다.

 

반면에 안목은 시시비비가 가능하다. 옛 사람들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큰 안목을 가지려면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금강안이란 옳고 그름과 미추미추를 단번에 알아보는 눈을 말하며, 혹리수란 혹독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의 손처럼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18세기 선비들의 우아한 취향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단원 김홍도<포의풍류布衣風流>다. 여기서 포의란 베옷이다. 당시 관리들의 복장은 비단옷이다. 따라서 포의란 벼슬에 나아가지 못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림 속에서 사방관四方冠을 쓴 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림 속에는 당비파, 술병, 청동기와 백색 도자기, 파초 잎, 생황, 칼 등이 보인다. 청동기는 제기용 잔인 중국 골동품의 모조품이며, 흰색 도자기도 빙열문氷裂紋이 선명한 중국 가마에서 빚은 도자기이다. 말하자면 고상한 취향을 가진 선비들의 애장품인 셈이다. 주인공의 맨발을 보노라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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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콤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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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집은 지형의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동네에 가면 눈에 띄는 고지대 꼭대기 부근에 있었다. 소개 자료에 적힌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걸렸다. 주변에 인가가 별로 없었고, 몇 안 되는 집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맞아 함석지붕에 녹이 슬고 낡았다. 그래서인지 목조 건물 '테후테후장'은 오래된 유물 같았고, 그것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 '1호실' 중에서

 

 

연립 주택에는 유령들이 같이 산다

 

연립 주택 테후테후장에 입주한 여섯 명의 세입자들은 각자 결핍된 뭔가가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좌절을 맛본다. 시험 울렁증으로 취업에 실패하고, 태생적으로 남상인 외모를 바꿀 수 없으며, 전과 기록은 지울 수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의 결격 사유가 되는 난치병이 찾아온다거나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그런 사람들이다.

 

쉽게 풀리는 일 하나 없는 이들이 모든 건 세상 탓이라고 등을 돌려 버리는 모습마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같은 방에 사는 유령들은 그들에게 위로는커녕 저마다 입바른 소리로 신경을 긁어 댄다. 이만한 정신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다친 마음에 오히려 소금을 뿌리고 질책한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자리가 있고, 그것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면서 말이다.

 

작가 이누이 루카는 홋카이도 삿포로 출생으로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은행과 관청에서 일하다 어머니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녀작 <밤 산책>이 슈에이샤에서 주최하는 노벨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단편 <여름 빛>으로 제86회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 데뷔하였고, 이듬해 소설집 <여름 빛>을 발표했다. 2011년 연작 소설집 <메구루>로 제13회 오야부 하루히코 상 후보에 올랐

 

 

 

 

 

 

 

 

다카하시 신이치는 지금도 여전히 구직 활동 중이다. 그는 화장실 겸 욕실, 부엌이 딸려 있는 원룸에서 산다. 다다미 8장 짜리 작은 방(약 4평)이다. 인근에는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지하철 역이 있다. 이 방은 월세 7만엔, 관리비 5,500엔인데, 벌써 졸업하고 거주한 지는 석 달이 좀 더 지났다.

 

그는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다. 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시험 울렁증이 심해서 필기시험 때마다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 정도도 발휘하지 못했다. 운좋게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면 늘 손에 땀이 흥건했다. 졸업한 지 반년이나 지났건만,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받은 불합격 통지서가 무려 세 자릿수를 넘겼다. 그는 이제 무기력에 빠져 봄부터 취직은접고 단기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인력 시장에 나가 그날그날 먹고 살았다. 하루는 다녔던 대학의 학생부에 들러 하숙집이나 연립 주택을 소개하는 열람 자료를 살펴보았다. 방세가 싼 집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월세:13,000엔

구조:방 2개와 부엌

보증금:없음

관리비:없음

 

비고란에 적힌 연락처를 등록한 후, 그 방을 찾아 나섰다. 동네 근처에서 바로 보이는 고지대 꼭대기 부근에 있었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40대 후반의 남자가 나왔다. 관리 사무실로 안내했다. 여섯 장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남녀, 노인과 아이를 포함한 얼굴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누가 좋은지 취향을 물어왔다. 아가씨로 보이는 여자 사진을 택했다. 1호실로 향했다. 이 방의 유령은 시라사키 사야카다.

 

 

2호실의 이다 미쓰키는 삼십 년 가까이 남자 손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모태 솔로다. 그녀의 마음속에 한줄기 빛처럼 들어온 남자가 있다.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화장도 하고 멋도 내 보지만,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녀는 슈퍼에서 선어鮮魚 매장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그녀는 이 방에 입주한지 1년 석달이 지났다.

 

그녀의 방에는 유령인 엔도 도미지 씨가 산다. 슈퍼에서 사 가지온 맥주를 함께 마셨다. 유령이 술을 마신다니 정말 신기하다. 아무튼 술을 좋아하는 유령이다. 그녀는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방한용 후드티를 입고 있는 엔도 아저씨를 만나고선 이틀 동안 고민했다. 유령임을 알고서 계약을 해지할 지를. 숫자 2를 행운으로 여기는 그녀이기에 둘이서 생활해보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3호실의 나가쿠보 게이스케는 사기 전과범, 여자 등쳐먹는 제비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많다. 이 방에도 유령이 산다. 이시구로 사치코는 빨간색 잠수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약 2년 전에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곳에 입주했다. 가족도 없고, 가진 돈은 쥐꼬리만큼도 안 되면서, 심지어 전과 기록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8년 간의 형기를 마치고 막 출소한 때였다. 그는 집주인이 내민 사진 중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 대신에 이시구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테후테후장에 입주한 이래 지금까지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출소 후 발바닥이 닳도록 고용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력서 심사단계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때 만난 감방동기가 대마 재배를 제안받았다. 받아주는 곳 없이 하루하루 벌어먹기 힘든 현실 속에서 예전처럼 쉽게 돈 버는 편법을 취하고 싶다. 그래, 사람을 죽이는 일도 아닌데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유령의 반대로 그는 이를 포기했다.

 

 

4호실의 히라하라 아키노리(유령은 미나토야 가오루)하늘을 날아오르는 파일럿이 꿈이지만 유혹에도 약하고, 체력적으로도 이미 한계치다. 이번 생은 그럭저럭 끝내도 되지 않을까? 내게 더 이상 희망이 있을까?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 5호실의 마키 마유미(유령은 마키 유타로)는 눈에 보이는 것, 실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노파심도 딱히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미리 고민해 봐야 손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6호실의 요네쿠라 미치노리(유령은 야마자키 쇼타)는 걱정 자체를 딱 요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테후테후장에 살고 있는 여섯 유령은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늘 점진적이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미련이 남은 생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더 크게 웃고, 즐기면서 산다. 같은 방에서 사는 세입자들의 고민을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입자들은 현실을 공감하지도 못하는 유령들과 당연히 다투기 일쑤다. 이에 유령들의 존재를 밀어내지만 유령들은 그마저도 웃어넘긴다.

 

 

 


다른 면으로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에게는 위로에 말을 전하고, 겉모습에 치중하는 여성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또 범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에게는 호된 질책을, 인간관계에 대한 의심을 품는 젊은이에게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알려 준다. 주어진 삶에서 바닥을 칠지언정 치열하게 살라고 다그친다.

 

 

"지금의 너, 있는 그대로를 믿어!"

 

길을 잃고 멈춰 선 사람들에게 다시 걸어갈 용기를 준다. 이런 월세방이 있다면 나도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 - '아마존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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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 홍익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 사회를 묶어두었던 각종 고정관념과 편견의 벽이 차례로 무너졌다. 남녀의 구분도, 차별도 한결 엷어졌다. '남자답게'나 '여자답게'라는 말의 무게도 한껏 가벼워졌다. 전보다 엄청 잘 살게 되었다지만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다. 여자든 남자든 힘들기는 마친가지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이 더딘 남자가 더 힘든 것 같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저자 안경환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했다. 1987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법과 문학'을 강의했다. 그동안 런던 정경대와 미국 남일리노이대학 및 산타클라라대학 방문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1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선천적으로 변화의 인지와 그에 따른 적응 능력이 부족한 남자는 시대 흐름을 읽기는커녕 자기성찰도 벅차다. 이런 남자들을 위해 저자는 인문학과 사회학을 넘나들며 21세기 남자가 갖추어야 할 '남성다움'을 제시한다. 위트와 시니컬함을 함축한 단어는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남성과 대한민국 사회를 꿰뚫어보게 한다.

 

남자들은 영웅적인 삶을 추구하고, 권력욕이 대단하지만, 공감과 소통능력이 부족한 존재이자 성욕에 집착하고, 성행위에서 자신의 만족과 위안을 찾는 존재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러한 남성에게 21세기 사회는 여러 모로 불리하다. 여성이 뛰어난 사회적 지능, 공감과 소통 능력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를 갖추고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남성은 남성중심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남성도 적극적으로 변화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돋보기를 들이댄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기기의 발달이 몰고 온 사회문화적 현상, 군복무가산점 제도의 논란에서 비롯된 사회적 쟁점들,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겪는 문제 등 굵직한 시대적 흐름을 읽어주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울 수 있도록 조언한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

 

인간의 뇌는 좌우에 각각 두 개를 가졌다. 좌뇌와 우뇌이다. 그런데 각가의 기능이 다르다. 즉 우뇌는 직감과 감성을, 좌뇌는 언어와 사고를 가각 담당한다. 두 뇌의 사이에는 정보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뇌량腦梁'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매끄럽고 균형을 갖고 사용한다고 한다. 

 

남자 뇌는 동시에 여러 소리를 듣기 힘들다. 카페에 들어가면 남자는 애인의 목소리만 들린다. 그러나 여자는 반경 10미터 내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부분 듣는다. 여자는 읽기와 듣기를 동시에 집중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옆 사람이 솔깃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여자는 책을 읽으면서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복수의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소위 멀티태스킹은 여자 뇌만 가능한 일이다. 휴일에 남편은 소파에 앉아서 TV만 시청할 뿐, 그 옆에 마른 빨래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 같아도 싱글태스킹인 남자에겐 불가능하다.

 

 

남자의 영웅적 삶

 

"남자들에게서 대의大義를 빼앗아버리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는 오래된 독일 속담이다. 예로부터 남자는 영웅의 삶을 갈구한다. 영웅은 결코 침대에서 죽지 않는다. 대의를 찾아 집밖을 나서 온갖 고난과 모험을 극복하고 돌아와 승리의 영광을 공동체와 나눈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에서나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웅담은 거의 다 이런 식이다. 

 

남성성의 생물학적 핵심은 추진력과 한 인간과 남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의지로, 한마디로 말해서 '남자다움'이다. 그 남자다움의 행태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기희생이다. 가족과 주변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강력한 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최악의 행태는 잔인하고 주변사람에게 수치심을 주며, 파괴적이고 위험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개인적 가치와 힘을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남자들이 직장 업무를 끝내기 전에 가족을 직접 돌보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 결혼을 관성과 체념으로 채우다

 

"서로 사랑하기는 쉽지만 함께 살기는 어렵다"

 

중국 속담이다. 우리들은 사랑이란 열정보다 테크닉이란 것을 살아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혼은 적당한 수준의 거짓말을 서로가 견디고 참아내는 기술이다. 20세기를 연 위대한 철학자 니체'결혼제도는 열정의 본질에 어긋나는 제도'라고 단언했다. 즉 불타오른 사랑으로 결혼한 커플에게 영원한 사랑의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는 열정의 본질에 어긋난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가장 슬픈 합의 중 하나가 바로 결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알면서도 어떻게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수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결혼생활의 본질은 '관성'과 '체념'이다. 관성이란 부부 간에 축적된 편한 상태다. 둘 사이가 편해지려면 서로 양보해야 한다.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 항상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한두 가지 면에서는 때때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부 사이의 사랑의 본질은 원래 '관성과 체념'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남성 중심의 세계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라서 모든 종교는 타 종교의 교리와 신앙을 존중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사회는 종교 간의 갈등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일부 맹신도들이 사찰에 방화하는 몰상식한 일을 빼고선 말이다.

 

가끔 의연한 자세로 죽음을 맞는 종교인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준다. 평생 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던 사람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종교에 귀의하는 일도 늘어난다. 막상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인간은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삶이 각박해서일까, 아니면 허무해서일까?

 

전형적인 종교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세계였다. 신은 언제나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사제도 물론 남자다. 유혹에 저항할 힘이 약한 여자를 순치馴致와 제도를 넘어 희생의 제물로 삼았다. 남자는 여자보다 광신도가 적다고 한다. 여자만큼 순수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원불교와 같이 탄생 당시부터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높은 토속종교가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인터넷에서의 남녀간 논쟁

 

인터넷은 이제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동시에 여론의 극단화 현상을 이끄는 '네트워크의 악마'로서의 이빨로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영국왕립학회가 말한 다음 말이 바로 인터넷 마당에 놓여져야 할 좌우명이다.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치열한 논쟁은 대체로 남자의 패배로 종결되기 십상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의 메시지는 남자보다 훨씬 더 정서적인 호소력이 강하다. 일례로 여성의 메시지에는 이모티콘이나 넓게 비워둔 행간이 많다. 읽을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친절함이다. 여자 뇌의 특징인 '공감'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남자 뇌는 문자나 언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여자에 비해 극심한 속어와 비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신빙성을 약화시킨다.

 

 

우는 남자는 비정상이 아니다

 

잘 우는 남자가 실제로는 여자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는다. 모성보호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우는 남자라면 여자는 그 곁을 떠나고 만다. 왜 그럴까?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자는 여자 앞에서 맘대로 울지도 못한다. 여성 앞에서 울음을 보인다는 것은 다정다감하다는 것 보다는 스스로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어서다.

 


흔히 우는 남자는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남자가 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단 두 가지 경우뿐이라는 말이 있다. 발기불능일 때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기 위해서, 즉 자신이 정상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만큼 남자들은 자신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는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심리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우선 자기 내면을 보기가 두려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이유는 자신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구나 과도기를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연탄재처럼 뜨거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밑불이 위로 새로 놓이는 연탄에게 불꽃을 넘겨주듯이 20세기의 연탄은 21세기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역사는 파괴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연속적인 발전과정이다. 때로는 잠지 제자리에 머뭇거리거나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이내 추슬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의 걸음이다.

 

태곳적부터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았지만 항상 더불어 산 것은 아니었다. 20세기까지는 대체로 남자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세기는 이제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남성들이여, 이젠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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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 변화하고 싶다면, 새롭고 싶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김창옥의 인생특강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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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과거 실패와 좌절의 경험으로 자기 한계를 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들 수 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 머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몸이 실제로 해낼 수 있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힘이 생기려면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한두 개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힘들 때 그만두거나 힘들기 전에 딱 그만둡니다. 그러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발전도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김창옥의 인생 특강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하지만 어떤 삶, 어떤 변화, 어떤 준비인지에 관해선 막막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를 확장시키고자 좋은 책을 읽고, 유익한 강의를 듣고, 심지어 멘토를 찾아나선다. 이런 필요성이 절실할 때 고맙게도 우리들에게 용기를 갖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도닥여주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바로 스타강사, 소통의 달인, 강사들의 롤모델, 힐링 퍼포먼스의 일인자 등 숱한 수식어를 지닌 책의 저자 김창옥이다.

 

그는 tvN <어쩌다 어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 <아침마당>, <여유만만>, EBS <60분 부모> 등에 출연해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리는 명강사로 유명하다. 그의 강의는 유튜브 누적뷰 3,000만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정신과의사, 컨설턴트, 강사, 교수 등도 그를 찾아 듣는다. 이 책은 그의 명강의 35편을 담고 있다.

 

그의 강의는 이미 많은 이의 삶을 변화시켰고, 가장 먼저 변화한 건 그 자신이다. 제주도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가 꿈을 놓지 않고 뒤늦게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열등감과 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 공고 나왔잖아요. 제가 성악을 공부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제가 강연할 거라고도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저는 재수를 했는데도 지방에 있는 전문대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이유라도 알고 싶어 학교에 전화했더니 '모든 불합격자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제 머릿속에는 '불.합.격.자.'라는 단어만 크게 들어와 박혔습니다. 저는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대학, 그게 뭐 대수라고요.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대학을 세울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지금 친구가 가진 열정적인 에너지는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괴롭히는 마음을 조금 열어주고, 그 마음에 바람이 시원하게 들고 나면 좋겠습니다"

 

이는 재수 중인 한 남학생에게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이 재수생은 실력은 충분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가려고 하는 외국 대학을 가지 못해, 자신의 내면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상을 좇아갈 용기가 있느냐?"는 질문이 들려왔고, 뒷걸음치며 부모님을 원망하던 자신이 부끄럽고 못마땅했다고 한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삶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여러 가능성을 안고 흘러갈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뜻은 너무 한정적이어서

세상에는 내 뜻을 벗어난 좋은 일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꿈을 이루기 전까지의 삶은 내 삶이 아닌가요?

 

저자는 지금껏 5천여 번의 강의를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는 강의가 끝날 때마다 후회한다고 한다. '아까 그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걸 왜 그런 식으로 말했니, 그 표현을 듣고 누군가는 불쾌했을지 몰라'라고 말이다. 그가 5천 번의 강연을 했다는 건 5천 번의 실수를 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자주 본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공사 중이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다. 5천 번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을 모른 척하고 한 번에 안 되는 것에만 집중해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뭔가를 이루고 나서 인정받겠다는 강박이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자기 삶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면 모든 게 끝나던가? 그렇다. '다음 것도 돼야 하는데, 안 되면 어쩌지'라고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된다. 안 되면 안 되니까 힘들고, 되면 그걸 빼앗길까 봐 힘이 든다. 따라서 현명하다면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쉽진 않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는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붙어 있는 그 가죽을 벗겨내 제품을 만든다면,

최상의 상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뱀이나 악어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뱀 가죽이나 악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벨트를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 분명히 무서워하는 동물임에 틀림 없지만 그들의 가죽을 벗겨내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렬히 환영한다. 열등감이나 상처, 우울함 등이 마치 자신의 피부처럼 완전히 붙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외모 콤플렉스, 학력 콤플렉스, 부모의 이혼 콤플렉스 등 자신에게 붙어다닌다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뱀 가죽의 가치는 높이 사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피부처럼 붙어 있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세상과 삶에 완전히 등지고 구석에서 살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 가죽을 벗겨 최상의 상품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삶의 새로운 언어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언어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이는 오랜 시간 강의 끝에 저자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것을 바꿔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건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자신의 일상 언어로 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언어를 터득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바꾸고 싶다면 각오가 필요하다. 작은 소망에서 시작해도 좋다. 다만 변화하고 싶다는 자각과 대가를 지불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언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나라에서 살아보거나, 또는 그 나라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시킨다고 유학을 보낸 자녀가 현지인들과는 어율리지 않고 동병상련의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려 이도 저도 아닌 투자였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이 많다.

 

"뭔가 바꾸려면 가장 먼저 환경을 바꿔야 한다"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사실 사람 사는 거 되게 비슷하다. 깻잎 한 장 차이이다. 저 사람이나 나나 다 비슷하게 산다. 그런데 누구는 상처를 꽁꽁 감춘 채 사는 거고, 누구는 상처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자유롭게 사는 거다.

 

상처나 열등감을 지켜야 할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놓고 문 앞에 덩치 좋은 문지기를 둔다. 내면에 자리잡은 열등감과 우울함을 남이 자신에게 공격해올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계속 감추고 지키려고만 한다. 그러고는 그 안에 갇혀 상처, 열등감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상처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 문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문이 된다. 다른 상처 입은 자를 이해하고 그를 만날 수 있는 문이 된다. 그러니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만날 문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히려 상처가 많음에 감사할 수 있는 단계가 온다. 그렇다고 누구 상처를 받고 싶겠는가? 삶의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열등감과 우울함이라는 공에서 빠져나와 그 공으로 저글링을 하라.

 

 

위로, 상처받은 이를 공감하고 곁을 지켜주는 일

누군가 상처를 받고, 그 결핍이 에너지가 되어 건강하게 사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하지는 말라.

 

"너의 그 결핍이 오늘의 너를 낳은 거야"

 

즉 타인의 결핍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 위로는 이런 것이다.

 

"너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니"

 

그 공감의 마음으로 상처받은 이의 곁에 있어주는 게 위로이다. 좋은 마음으로든 나쁜 마음으로든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힘을 준답시고 그런 어리석음을 범한다. 진정한 위로는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하는 것이지, 해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참된 마음으로 감싸주라. 그것이 위로인 것이다.

 

 

부모님들에게

 

조금 멀어져 내 향을 좋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멀어짐으로써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하면, 그들의 공간을 내주라. 그것이 자녀와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가까워지려고 부모가 애쓰면 애쓸수록 자녀는 더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멀어질 것이다. 방문을 잠그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 전에는 그냥 듣던 음악을 헤드폰 끼고 들을 것이다.

 

좀 놔두라. 그래야 돌아온다. 움켜쥐면 폭발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자기 자신만 모르고, 거리 측정은 자기만 못 한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미 독립된 성의 성주이다. 그들의 공간을 인정해주라. 아이로니하게도 자기 아이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인 경우가 많다. 섬을 떠나 봐야 섬이 보인다. 자녀를 믿고 그들의 땅을 떼어주라. 그리고 성주로 인정해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두렵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사랑을 하면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고 무섭지 않다는 것은 환상이다. 사랑의 확진은 '두려운데도 하고 싶어'이다. 그것이 더 사랑에 가깝다. 사랑은 '그래서 사랑해'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가 더 큰 사랑이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넌 이렇게 두려운데도 그 길을 가고 싶니?"

만약에 대답이 "안 되겠어, 하고 싶지 않아"로 나타나면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즉 사랑이 아니다. 반면에 "아니야, 두려워도 하고 싶어"라고 답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사랑인 것이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힌다

 

시련을 겪을수록 더 높이 튀어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회복탄력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에서 시련이나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극복하는 사람만이 더욱 강해져 간다. 저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우리들의 회복탄력성에 힘을 보태준다. 그는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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