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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 변화하고 싶다면, 새롭고 싶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김창옥의 인생특강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10월
평점 :
사람은 과거 실패와 좌절의 경험으로
자기 한계를 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들 수 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 머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몸이 실제로 해낼 수 있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힘이 생기려면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한두 개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힘들 때 그만두거나 힘들기 전에 딱 그만둡니다. 그러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발전도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김창옥의 인생 특강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하지만 어떤 삶, 어떤 변화, 어떤
준비인지에 관해선 막막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를 확장시키고자 좋은 책을 읽고, 유익한 강의를 듣고, 심지어 멘토를 찾아나선다. 이런
필요성이 절실할 때 고맙게도 우리들에게 용기를 갖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도닥여주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바로 스타강사, 소통의 달인, 강사들의 롤모델, 힐링 퍼포먼스의 일인자 등 숱한 수식어를 지닌 책의 저자
김창옥이다.
그는 tvN <어쩌다
어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 <아침마당>, <여유만만>, EBS <60분
부모> 등에 출연해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리는 명강사로 유명하다. 그의 강의는 유튜브 누적뷰 3,000만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정신과의사,
컨설턴트, 강사, 교수 등도 그를 찾아 듣는다. 이 책은 그의 명강의 35편을 담고 있다.
그의 강의는 이미 많은 이의 삶을
변화시켰고, 가장 먼저 변화한 건 그 자신이다. 제주도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가 꿈을 놓지 않고 뒤늦게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열등감과
실패를 여러 차례 딛고 일어선 그는 자신이 좋아졌음을 경험한 만큼 타인들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삼성전자, LG, 포스코, GS, 한화 등 다수의 기업과 정부기관,
학교, 단체 등 2,000여 곳에서 강의했으며 서울여대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과정에 출강하고 있는
그는 오늘도 누군가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 그의 강의를 만나 보도록
하자.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 공고 나왔잖아요. 제가 성악을 공부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제가 강연할 거라고도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저는 재수를 했는데도
지방에 있는 전문대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이유라도 알고 싶어 학교에 전화했더니 '모든 불합격자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제 머릿속에는 '불.합.격.자.'라는 단어만 크게 들어와 박혔습니다. 저는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대학, 그게 뭐 대수라고요.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대학을 세울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지금
친구가 가진 열정적인 에너지는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괴롭히는 마음을 조금 열어주고, 그 마음에 바람이 시원하게 들고 나면
좋겠습니다"
이는 재수 중인 한 남학생에게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이 재수생은 실력은 충분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가려고 하는 외국 대학을 가지 못해, 자신의 내면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상을 좇아갈 용기가 있느냐?"는 질문이 들려왔고, 뒷걸음치며 부모님을 원망하던 자신이 부끄럽고 못마땅했다고 한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삶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여러 가능성을 안고 흘러갈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뜻은 너무 한정적이어서
세상에는 내 뜻을 벗어난 좋은 일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꿈을 이루기 전까지의 삶은 내 삶이
아닌가요?
저자는 지금껏 5천여 번의 강의를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는 강의가 끝날 때마다 후회한다고 한다. '아까 그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걸 왜 그런 식으로 말했니, 그 표현을 듣고
누군가는 불쾌했을지 몰라'라고 말이다. 그가 5천 번의 강연을 했다는 건 5천 번의 실수를 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자주 본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공사 중이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다. 5천 번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을 모른 척하고 한 번에 안 되는 것에만 집중해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뭔가를 이루고 나서 인정받겠다는 강박이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자기 삶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면 모든 게 끝나던가?
그렇다. '다음 것도 돼야 하는데, 안 되면 어쩌지'라고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된다. 안 되면 안 되니까 힘들고, 되면 그걸 빼앗길까 봐 힘이
든다. 따라서 현명하다면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쉽진 않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는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붙어 있는 그 가죽을 벗겨내 제품을 만든다면,
최상의 상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뱀이나 악어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뱀 가죽이나 악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벨트를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 분명히 무서워하는 동물임에 틀림 없지만 그들의 가죽을
벗겨내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렬히 환영한다. 열등감이나 상처, 우울함 등이 마치 자신의 피부처럼 완전히 붙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외모 콤플렉스, 학력 콤플렉스, 부모의 이혼 콤플렉스 등 자신에게 붙어다닌다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뱀
가죽의 가치는 높이 사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피부처럼 붙어 있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세상과 삶에 완전히 등지고 구석에서 살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 가죽을 벗겨 최상의 상품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삶의 새로운
언어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언어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이는 오랜 시간 강의 끝에 저자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것을 바꿔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건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자신의
일상 언어로 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언어를 터득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바꾸고
싶다면 각오가 필요하다. 작은 소망에서 시작해도 좋다. 다만 변화하고 싶다는 자각과 대가를 지불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언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나라에서 살아보거나, 또는 그 나라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시킨다고 유학을 보낸 자녀가
현지인들과는 어율리지 않고 동병상련의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려 이도 저도 아닌 투자였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이 많다.
"뭔가 바꾸려면 가장 먼저 환경을 바꿔야
한다"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사실 사람 사는 거 되게 비슷하다.
깻잎 한 장 차이이다. 저 사람이나 나나 다 비슷하게 산다. 그런데 누구는 상처를 꽁꽁 감춘 채 사는 거고, 누구는 상처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자유롭게 사는 거다.
상처나 열등감을 지켜야 할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놓고 문 앞에 덩치 좋은 문지기를 둔다. 내면에 자리잡은 열등감과 우울함을 남이 자신에게 공격해올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계속 감추고 지키려고만 한다. 그러고는 그 안에 갇혀 상처, 열등감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상처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 문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문이 된다. 다른 상처 입은 자를 이해하고 그를 만날 수 있는 문이 된다. 그러니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만날 문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히려 상처가 많음에 감사할 수 있는 단계가 온다. 그렇다고 누구 상처를 받고 싶겠는가? 삶의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열등감과 우울함이라는 공에서 빠져나와 그 공으로 저글링을 하라.
위로, 상처받은 이를 공감하고 곁을 지켜주는
일
누군가 상처를 받고, 그 결핍이 에너지가 되어 건강하게 사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하지는
말라.
"너의 그 결핍이 오늘의 너를 낳은 거야"
즉 타인의 결핍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 위로는 이런 것이다.
"너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니"
그 공감의 마음으로 상처받은 이의
곁에 있어주는 게 위로이다. 좋은 마음으로든 나쁜 마음으로든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힘을 준답시고 그런 어리석음을 범한다. 진정한 위로는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하는 것이지, 해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참된 마음으로 감싸주라. 그것이 위로인 것이다.
부모님들에게
조금 멀어져 내 향을 좋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멀어짐으로써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하면, 그들의 공간을 내주라. 그것이 자녀와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가까워지려고 부모가 애쓰면 애쓸수록 자녀는 더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멀어질 것이다. 방문을 잠그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 전에는
그냥 듣던 음악을 헤드폰 끼고 들을 것이다.
좀 놔두라. 그래야 돌아온다. 움켜쥐면 폭발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자기 자신만 모르고,
거리 측정은 자기만 못 한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미 독립된 성의 성주이다. 그들의 공간을 인정해주라. 아이로니하게도 자기 아이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인 경우가 많다. 섬을 떠나 봐야 섬이 보인다. 자녀를 믿고 그들의 땅을 떼어주라. 그리고 성주로
인정해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두렵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사랑을 하면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고 무섭지 않다는 것은 환상이다. 사랑의 확진은 '두려운데도
하고 싶어'이다. 그것이 더 사랑에 가깝다. 사랑은 '그래서 사랑해'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가 더 큰
사랑이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넌 이렇게 두려운데도 그 길을 가고
싶니?"
만약에 대답이 "안 되겠어, 하고
싶지 않아"로 나타나면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즉 사랑이 아니다. 반면에 "아니야, 두려워도 하고 싶어"라고 답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사랑인 것이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힌다
시련을 겪을수록 더 높이 튀어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회복탄력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에서 시련이나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극복하는 사람만이 더욱 강해져
간다. 저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우리들의 회복탄력성에 힘을 보태준다. 그는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