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콤마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그 집은 지형의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동네에 가면 눈에 띄는 고지대 꼭대기 부근에 있었다. 소개 자료에 적힌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걸렸다. 주변에 인가가 별로 없었고, 몇 안 되는 집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맞아 함석지붕에 녹이 슬고 낡았다. 그래서인지 목조 건물 '테후테후장'은 오래된 유물 같았고, 그것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 '1호실' 중에서

 

 

연립 주택에는 유령들이 같이 산다

 

연립 주택 테후테후장에 입주한 여섯 명의 세입자들은 각자 결핍된 뭔가가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좌절을 맛본다. 시험 울렁증으로 취업에 실패하고, 태생적으로 남상인 외모를 바꿀 수 없으며, 전과 기록은 지울 수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의 결격 사유가 되는 난치병이 찾아온다거나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그런 사람들이다.

 

쉽게 풀리는 일 하나 없는 이들이 모든 건 세상 탓이라고 등을 돌려 버리는 모습마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같은 방에 사는 유령들은 그들에게 위로는커녕 저마다 입바른 소리로 신경을 긁어 댄다. 이만한 정신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다친 마음에 오히려 소금을 뿌리고 질책한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자리가 있고, 그것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면서 말이다.

 

작가 이누이 루카는 홋카이도 삿포로 출생으로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은행과 관청에서 일하다 어머니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녀작 <밤 산책>이 슈에이샤에서 주최하는 노벨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단편 <여름 빛>으로 제86회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 데뷔하였고, 이듬해 소설집 <여름 빛>을 발표했다. 2011년 연작 소설집 <메구루>로 제13회 오야부 하루히코 상 후보에 올랐

 

 

 

 

 

 

 

 

다카하시 신이치는 지금도 여전히 구직 활동 중이다. 그는 화장실 겸 욕실, 부엌이 딸려 있는 원룸에서 산다. 다다미 8장 짜리 작은 방(약 4평)이다. 인근에는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지하철 역이 있다. 이 방은 월세 7만엔, 관리비 5,500엔인데, 벌써 졸업하고 거주한 지는 석 달이 좀 더 지났다.

 

그는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다. 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시험 울렁증이 심해서 필기시험 때마다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 정도도 발휘하지 못했다. 운좋게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면 늘 손에 땀이 흥건했다. 졸업한 지 반년이나 지났건만,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받은 불합격 통지서가 무려 세 자릿수를 넘겼다. 그는 이제 무기력에 빠져 봄부터 취직은접고 단기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인력 시장에 나가 그날그날 먹고 살았다. 하루는 다녔던 대학의 학생부에 들러 하숙집이나 연립 주택을 소개하는 열람 자료를 살펴보았다. 방세가 싼 집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월세:13,000엔

구조:방 2개와 부엌

보증금:없음

관리비:없음

 

비고란에 적힌 연락처를 등록한 후, 그 방을 찾아 나섰다. 동네 근처에서 바로 보이는 고지대 꼭대기 부근에 있었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40대 후반의 남자가 나왔다. 관리 사무실로 안내했다. 여섯 장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남녀, 노인과 아이를 포함한 얼굴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누가 좋은지 취향을 물어왔다. 아가씨로 보이는 여자 사진을 택했다. 1호실로 향했다. 이 방의 유령은 시라사키 사야카다.

 

 

2호실의 이다 미쓰키는 삼십 년 가까이 남자 손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모태 솔로다. 그녀의 마음속에 한줄기 빛처럼 들어온 남자가 있다.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화장도 하고 멋도 내 보지만,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녀는 슈퍼에서 선어鮮魚 매장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그녀는 이 방에 입주한지 1년 석달이 지났다.

 

그녀의 방에는 유령인 엔도 도미지 씨가 산다. 슈퍼에서 사 가지온 맥주를 함께 마셨다. 유령이 술을 마신다니 정말 신기하다. 아무튼 술을 좋아하는 유령이다. 그녀는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방한용 후드티를 입고 있는 엔도 아저씨를 만나고선 이틀 동안 고민했다. 유령임을 알고서 계약을 해지할 지를. 숫자 2를 행운으로 여기는 그녀이기에 둘이서 생활해보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3호실의 나가쿠보 게이스케는 사기 전과범, 여자 등쳐먹는 제비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많다. 이 방에도 유령이 산다. 이시구로 사치코는 빨간색 잠수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약 2년 전에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곳에 입주했다. 가족도 없고, 가진 돈은 쥐꼬리만큼도 안 되면서, 심지어 전과 기록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8년 간의 형기를 마치고 막 출소한 때였다. 그는 집주인이 내민 사진 중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 대신에 이시구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테후테후장에 입주한 이래 지금까지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출소 후 발바닥이 닳도록 고용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력서 심사단계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때 만난 감방동기가 대마 재배를 제안받았다. 받아주는 곳 없이 하루하루 벌어먹기 힘든 현실 속에서 예전처럼 쉽게 돈 버는 편법을 취하고 싶다. 그래, 사람을 죽이는 일도 아닌데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유령의 반대로 그는 이를 포기했다.

 

 

4호실의 히라하라 아키노리(유령은 미나토야 가오루)하늘을 날아오르는 파일럿이 꿈이지만 유혹에도 약하고, 체력적으로도 이미 한계치다. 이번 생은 그럭저럭 끝내도 되지 않을까? 내게 더 이상 희망이 있을까?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 5호실의 마키 마유미(유령은 마키 유타로)는 눈에 보이는 것, 실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노파심도 딱히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미리 고민해 봐야 손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6호실의 요네쿠라 미치노리(유령은 야마자키 쇼타)는 걱정 자체를 딱 요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테후테후장에 살고 있는 여섯 유령은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늘 점진적이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미련이 남은 생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더 크게 웃고, 즐기면서 산다. 같은 방에서 사는 세입자들의 고민을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입자들은 현실을 공감하지도 못하는 유령들과 당연히 다투기 일쑤다. 이에 유령들의 존재를 밀어내지만 유령들은 그마저도 웃어넘긴다.

 

 

 


다른 면으로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에게는 위로에 말을 전하고, 겉모습에 치중하는 여성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또 범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에게는 호된 질책을, 인간관계에 대한 의심을 품는 젊은이에게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알려 준다. 주어진 삶에서 바닥을 칠지언정 치열하게 살라고 다그친다.

 

 

"지금의 너, 있는 그대로를 믿어!"

 

길을 잃고 멈춰 선 사람들에게 다시 걸어갈 용기를 준다. 이런 월세방이 있다면 나도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 - '아마존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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