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삼국지 경영특강 - 조조와 유비에게 배우는 2천 년 경영불패 법칙
청쥔이 지음, 김지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의 문화를 "어부 문화" 와 "정원사 문화" 로 구분하고 있다. "어부 문화" 는 약탈과 소유를 숭배하는 문화이며, "정원사 문화" 는 양성과 창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분류에 의거하여 "어부 경영학""정원사 경영학" 이 파생된다면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두 영웅인 조조와 유비를 대비하면서 경영의 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삼국지]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읽히는 이유는 책 속에 조직관리와 경영의 기본을 제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구도에서 리더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부 경영학을 대표하는 영웅 조조와  정원사 경영학을 대표하는 영웅 유비를 상호 비교하면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

 

청나라 시대의 문학 평론가 김성탄은 "어려서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 고 했다. 저자는 삼국지에 숨겨진 진정한 의(義)를 읽지 못한다면 오히려 해가되고 위험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삼국지에서 거론되는 군벌들의 권모술수, 책략 등의 지혜가 경영 기술로 잘못 둔갑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영의 지혜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삼국지]의 두 리더, 조조와 유비를 비교해 보자.

조조는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할아버지는 환관의 우두머리를 지냈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양자로 고위 관직을 지냈기에 그는 풍족한 집안의 후손이었다.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에 비하면 그는 도덕적 교양이 뒷받침되지 않고 제멋대로 성장한 부잣집 아들에 불과하다.

 

후한말 헌제를 등에 업고 제후를 호령하던 동탁의 비위를 맞추던 조조는 동탁을 시해하려 했고, 동탁의 수배령을 피해 도망가던 중 아버지의 친구 여백사의 일가족을 잔인하고 살해하면서 "내가 세상 사람을 버릴 지언정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란 비정한 말을 남겼으며, 동탁에 맞서는 대항군으로 거짓 포장된 이미지를 활용해 황건군 30만명을 거느리는 실력파 군벌이 되어, 헌제가 혼란한 시기에 도움을 요청하자 흔쾌히 군사를 이끌고 입궁하여 군사독재자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 유비는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다. 아버지가 작은 고을의 현령을 지냈지만 일찍 죽어서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이후 돈을 모아 당대의 대학자 노식의 문하생이 된뒤, 노식을 따라 황건군 토벌에 나서 공을 세워 작은 벼슬을 얻었다. 이후 그는 동문인 공손찬의 도움을 받아 평원현 현령을 맡아 평판이 좋았다. 이 때 마을의 유평이란 자가 유비를 시기하여 자객을 보냈다. 그런데, 자객이 유비의 인품에 반해 차마 거사를 실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평의 음모를 고변하고 떠난다. 또한, 서주의 도겸은 유비의 인의와 충직함을 높이 사 임종 직전  아들대신 유비에게 서주를 맡겼다. 일개 평민에서 현령으로, 현령에서 서주 최고 군정장관이 된 것이다.

 

[삼국연의]에는 두 마리의 명마가 나온다. 적토마와 적노마이다.

적노마는 주인을 해친다는 전설이 있었다. 적노마는 얼굴에 흰색 반점이 있는 말인데, 유비가 두 번째 주인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전설을 전하자 유비는 "사람의 생사는 운명에 달려 있거늘, 어찌 말을 탓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적토마는 뛰어난 장수 여포를 매수하기 위해 동탁이 선물한 말로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여포는 동탁을 배신하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다 조조에게 붙잡혔다. 여포는 오히려 기세 등등하게 조조 휘하에서 열심히 일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동탁의 배신을 거론하는 유비의 의견을 듣고 여포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서주에서 유비가 반 조조의 깃발을 내걸자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서주를 쳤다. 유비의 군대는 전멸했다. 유비는 도주했지만, 그의 처자식과 관우는 조조의 포로가 되었다. 조조는 관우를 편장군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여포의 적토마도 선물로 주었다. 인물을 알아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관우는 조조를 위해 공을 세워 더 높은 지위를 받았지만, 조조가 내린 모든 하사품을 머물던 대저택에 남겨 둔 채 말을 타고 옛 주인인 유비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천리나 달려갔다. 높은 급여로 인재를 살 수 있겠지만, 충성심은 결코 살 수 없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개미가 코끼리를 쓰러뜨린 패러독스가 바로 적벽대전이다.

거대한 중국 대륙의 2/3를 평정하고 나머지 남방을 차지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던 조조는 100만 대군을 앞세워 강남의 손권을 쳤다. 이에 유비와 손권은 제갈공명의 외교술로 연합군을 편성하는데, 병력은 불과 3만여 명 정도였다. 역병이 돌아 조조가 전쟁에서 패했다고 사료에 기록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조조의 인력 운용 프로세스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베스트 셀러 [실행에 집중하라]의 공저자 래리 보시디와 램 차란의 이론에 의하면, 실행력은 전략 프로세스, 인력 프로세스, 운영 프로세스의 통합임을 강조하고 있다. 조조의 수군 근거지에 불이 나자 조조군은 허둥거리며 도망가기 바빴고, 이런 소식이 다른 군영에 전해지자 모든 사람은 자기 살길이 급급했던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직원을 의심하고, 또한 그의 직원들도 서로 의심하는 집단이었기에 신뢰와 충성심은 없었던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방법으로 얌전하게 타인의 말을 잘 듣거나, 타인을 얌전한 아이로 만들어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조조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다. 현대의 경영학은 폭력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어부의 경영학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능력인 것이다. 독립이란 자신의 색채와 향기를 가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요구되는 것이다. 유비의 "인애" 경영은 결국 부하들의 충성심이라는 보답을 받았다.

 

요즈음 기업에서 성행하는 직원 인센티브 제도는 더 많이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 함을 유도한다. 향기로운 미끼로 물고기들을 낚아 올리는 어부의 유혹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성과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무너뜨리는 현상이 생기고 나아가 인품을 훼손시키는 일도 만든다. 싸움을 잘하는 여포는 마케팅 담당 경영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포는 자신의 욕망과 이익 추구를 위해 인센티브를 받고도 배신을 쉽게 했다. 비즈니스 사회에서 인간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정원의 묘목이 거름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돈은 거름과 같다" 그러나, 거름이 지나치면 묘목은 금방 시들어 버린다. 따라서, 직원이 자신들의 위치를 찾도록 돕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 바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유비는 우리들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나뭇잎, 이로도리 - 칠순 할머니들이 나뭇잎 팔아 연 매출 30억!
요코이시 토모지 지음, 강지운 옮김 / 황소걸음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너무나 힘든 겨울을 지나 간신히 봄볕이 느껴지는 시절에 이르렀습니다. 올해야말로 좋은 해가 될 거라고 모두 바랐습니다만, 지금 요코이시 님의 심경변화에 우리는 앞선 대한파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중략) 요코이시 님이 없으면 가미카츠는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중략) 지금 한 번만 생각을 돌려 우리에게 살아갈 기쁨과 용기를 주세요" (124쪽)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카츠 마을의 이로도리 생산회 일동이 이 책의 저자 요코이시 토모리에게 전달한 탄원서 내용의 일부이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가미카츠 농협에 영농지도원으로 채용된 후 18년이 지난 1997년 2월 요코이시가 농협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이를 만류하려는 이로도리 생산회 회장 시모사카 미키에가 소속 회원 177명 전원의 집을 밤새 일일이 돌며 서명을 받았다.

 

희망이 사라진 마을

 

1979년 봄, 농업대를 졸업하고 가미카츠 농협에 취직한 요코이시 토모리는 산골마을 한 집 한 집 인사를 나누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가미카츠 마을은 이농현상 때문에 경제가 매우 침체되었고, 60 - 70 대 할아버지 몇 명은 아침부터 음주에다 주정을 부리는 작태까지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모이면 술 마시고 남을 탓하는 일로 소일했다. 요코이시는 인사를 다니며 마을의 개혁을 호소하지만, 그들은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내쫓으려고 했다.

 

가미카츠는 밀감농사가 주업이었다. 1981년 2월 이상 한파가 닥쳐 밀감이 고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전체 재배 면적의 82%에 달했다. 밀감의 매출이 전년의 반 수준인 2천만 엔으로 떨어지더니 이후 계속 격감했다. 밀감은 전멸했지만 유자 등 초귤류에 초점을 맞추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또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여 판매하거나 농한기엔 고구마 말랭이 가공 등으로 농가 수입을 키워나갔다.

 

나뭇잎을 팔다

 

"전화위복" 이란 말처럼, 가미카츠 마을은 역사적인 대재해를 오히려 기회로 이용했다. 그들은 생산 작물의 재편성을 시도했다. 고구마, 실파, 표고버섯 등 새로운 작물 재배를 보급하던 요코이시는 우연히 식당에서 단풍잎이 요리에 활용된 것을 보았다.

섬광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나뭇잎을 팔자!"

 

비록 소량이지만 타 지역의 농협에서 요리 장식용 꽃 상품이 출시된 것을 확인하고 그는 마을의 4 가구의 협력을 얻어 "이로도리" 란 상표를 걸고 1987년 2월부터 나뭇잎을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준비가 부족한 탓에 "이로도리"는 팔리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요리사가 이로도리 상품팩을 보고서 잎과 꽃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이런 상품을 사용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장을 알아야 한다.

 

장식용 나뭇잎, 츠마모노의 주요 수요처가 요정이기에 요코이시는 요정에 손님 자격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월급이 적은 그로선 큰 부담이었지만 이것이 가미카츠 마을을 위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요정을 드나들며 배운 츠마모노의 포인트는 계절감, 좋은 상태, 잎의 크기, 빠른 출하 등임을 파악했다.

 

1986년 4 가구의 협력으로 시작한 이로도리 사업은 1988년 4월에 44 가구로 늘었다. 이후 석 달 만에 91 가구로 급증하면서 판로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요코이시는 이로도리 팜플렛을 만들어 전국의 유명 온천지나 여관 등을 돌았다. 이런 와중에 실수도 있었다. 오사카 나이트클럽에 복숭아꽃을 납품했는데 클레임이 발생했다. 벌레가 나온 것이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과한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상품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백문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1989년 12월 요코이시는 버스를 대절하여 농가 사람들을 오사카에 있는 일류 요정으로 데려갔다. 이후에도 요정 시찰은 1년에 한두 번씩 이어졌다. 백 마디의 가르침보다 현장에서의 한 번의 경험이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비싼 요리에 벌레 먹은 나뭇잎이 없어야함을 실감하는 등 시찰 횟수가 늘면서 마을의 할머니들은 점점 세련되어 갔다.

또한, 이로도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강습회, 연구회 등도 자주 개최했다. 유명 요정의 주인과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을 초청해 할머니들에게 츠마모노의 사용법을 강습하고, 여성 문제 평론가를 초빙해 문화 강연을 통해 여성의 자부심을 길러 주었다.

 

나뭇잎이 변화를 불러오다

 

이로도리가 전국 각지에서 팔리고 새로운 수요처가 증가하면서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밤에 잔업을 처리하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등 마을엔 이미 변화의 큰 물결이 일고 있었다.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뒤다랐다. 1990년 2월, 가미카츠 농협이 농업인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아사히 농업상"을 수상했다. 이후 가미카츠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은 신뢰도가 높아졌다. 가미카츠의 모든 농가는 자신감과 의욕이 충만했다. 더 이상 마을에서 술에 취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요코이시는 결혼 후 생활비 한 번 제대로 아내에게 준 적이 없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던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아버지의 퇴직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란 말이 있듯이, 현재의 적은 월급으론 세 아이의 교육비, 양육비 등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는 사직을 결심한 것이다.

 

요코이시의 고민을 알게된 마을에서는 그를 마을 사무소에 "생산과장 보좌"라는 보직을 부여했다. 그래서, 1997년 4월 그는 농협에서 마을 사무소로 전직했다. 이듬해 농협의 매출이 급락하자 가미카츠 마을도 위기를 느꼈다. 그동안 사비를 들여가며 외부의 담당자들과 인맥을 유지하던 사람이 빠지고 나니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난 것이었다. 궁리 끝에 그는 제 3 섹터 방식으로 주식회사 이로도리를 설립하고 가미카츠 마을이 70%의 지분을 가졌다.

 

1999년 4월 정식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이로도리에 요코이시는 이사로 재직하면서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으로 2000 년부터 다시 매출이 오름세를 탔다. 신문, TV 등 각종 언론 매체에서 앞다투어 이를 소개하면서 마을을 찾는 국내외 시찰자들도 급증했다. 2006년엔 마을 인구의 약 2배인 3957 명이 찾아왔다. 이로도리는 전국 츠마모노 시장 점유율 80%를 유지하고 있다. 계약 농가 190호, 평균연령 70세의 이로도리 농가 할머니들의 수입도 넉넉해졌다.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겨 화장실을 최신식 비데로 교체하거나, 자식과 손자에게 용돈도 주고, 저축도 한다. 나이 72 세에 태어나서 처음 호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할머니도 있다. 이젠 가미카츠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외지로 떠난 사람들도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실천 정신,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경영, 할머니를 극진하게 섬기고, 교육을 통해 능력을 강화시키며,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의 기를 불어넣는 등 요코이시의 리더십을 통해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많은 것을 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쉽게 누구나 다 배우는 비즈니스 이메일 영어
김광훈 지음 / 미래BIZ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직장 생활은 초반부터 영어로 먹고 살아야 했다.

몸 담고 있던 직장이 국내 굴지의 회사였기에 해외 비즈니스가 많았던 탓이다. 지금처럼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지만 당시엔 "텔렉스" 라는 통신 수단을 이용했기에 매일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메세지를 확인하고 답신보내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그런데, 나의 직장 상사는 초년병인 나에게 텔렉스 영어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을 해야함에도 아무런 지침도 없이 막무가내로 일을 맡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이라 상업 영어라는 특별한 교과목을 이수하였고 이후 대학에 진학해서도 비즈니스 영어를 나름 충실히 공부했기에 크게 업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론보다는 실제" 라는 경험을 미리 가르쳐 주었다면 업무에서의 크고 작은 실수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여년간 직장에서 이메일 업무를 담당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여 폭 넓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이메일의 시작, 커뮤니케이션 요령, 방문 관리와 정보 관리, 연락과 소개, 고객 서비스 그리고 IT 및 정보 기밀 등의 여섯 장에 걸쳐 총 121 가지의 주제어 속에 풍부한 예문을 실고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에 다른 풍부한 예문을 실었다.

관련 어휘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메일 에티켓은 물론 비즈니스 에티켓도 풍부히 수록했다.

필수적인 문법, 어법을 추가했다.

 

옛 말에도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 란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기 때문에 생긴 말이며, 시작하기만 하면 성취도 쉽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더구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올바르게 배운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 책은 우리가 범하기 쉬운 문법적인 오류나 외국이라는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잘못된 표현법 등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가정교사같은 존재이다.

 

이메일의 인사법에서부터 메세지의 전달까지 국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직면하는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이메일 영어를 제대로 습득하여 깔끔하고 세련된 일처리를 하는 사람으로 호평받는 인물이 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이청 지음 / 북마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여러 가지 생각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심난했다. 그해 사월 초파일 출가 스님들의 수행 도량인 문경 봉암사를 답사하는 행사가 있어서 행사 차량에 몸을 실었다. 경북 문경군 가은면 희양산 자락, 풍광 좋은 장소에 떡하니 자리 잡은 봉암사의 경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경내를 한바퀴 돌고 전망 좋은 장소에서 사찰 주변의 경관을 내다보니 탁 트인 것이 막히고 얽혀 있던 내 마음자리를 뻥 뚫어 주는 듯했다. 봉암사의 조실 스님이 바로 서암 큰 스님이다.

 

1914년 경북 풍기읍 금계동에서 아버지 송동식의 5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송홍근은 19세에 불문에 들어 2003년 3월 29일 봉암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시봉 제자들이 서암 스님으로부터 열반 게송 한마디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묻자 귀찮아서 한 말이 "그 노인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였다.

 

서암 스님이 조계종을 탈퇴하고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위치한 12 평짜리 오두막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렀다. 이 오두막은 저자가 마련한 처소였다. 이 책은 당시 저자가 스님과 나눈 대화를 근거로 그의 삶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첫째 날 - 꿈

둘째 날 - 유학

셋째 날 - 중도파

넷째 날 - 닭 벼슬

다섯째 날 - 양산박

여섯째 날 - 종정

일곱째 날 -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나?

 

성철 스님이 1993년 10월 4일 열반에 들자 제 8 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직에 추대된 서암 스님은 분란에 휩쌓인 종단을 바로 세우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종단과 문중을 두고서 끊임없이 벌이는 불자들의 세력다툼에 염증을 느끼고 이듬해 4월 자유로운 불자의 길을 위해 과감하게 종단을 떠나고 만다. 스님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자유인이다.

조계종 경북 종무원장, 총무원장, 종정 등의 직무가 주어졌을 때 맡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지만, 아니다 싶을 때면 언제라도 미련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난 인물이었다. 1994년 4월, 종단마저 벗어나 스스로를 "석가종 석가문중" 이라고 칭했다.

 

신라 九山禪門 중의 하나라는 전통의 사찰 봉암사는 희양산 골짜기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 지리산 공비들의 퇴각로였기에 공비는 물론 경찰이 교대로 들락거리는 곳이어서 수행장소로는 부적격한 곳이었다. 1954년 불교정화가 진행되자 힘깨나 쓰는 "깡패스님" 들이 모여들어 "양산박" 이라 불릴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힘만 세지 염불도 모르는 노지심같은 엉터리 중들이 모여 있기에 일반 신도들은 찾아 오질 않았다. 신도가 없으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자 이들은 절 재산 중에서 탱화, 문화재 같은 돈 될 만한 것은 죄다 팔기 시작했다. 봉암사의 이런 문제를 파악한 서암 스님은 험난한 일을 자청하여 봉암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불교는 우리 마음의 정체를 밝히려는 가르침이라고 서암 스님은 강조한다.

"이 우주 만물은 무엇 하나 소멸되는 것이 없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200쪽)

인간의 근본은 불생불멸 무시무종인데, 이런 이치를 모르는 중생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참선을 하여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 그 이전의 내가 어디 있었는지도 훤히 알게 되는 이치 또한 여기 있습니다" (200쪽) 

 

서암 스님을 가까운 거리에서 알고 지낸 저자의 회고를 통해 "서암 불교" 를 조금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다. 서암불교의 핵심은 우주에 비밀이란 없고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마지막 말이 평범하면서도 뜻도 없는 그런 말을 남겼지만 내 마음에 오래 동안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팔과 다리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짧다는 말입니다"  의사가 또 말문을 연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중략) 아기에게 눈이 없습니다" (18쪽)

1988년 3월 10일, 한 아기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 헨리 휴스이다.

 

아기의 부모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두 눈의 안구가 없다. 팔다리가 짧고 심하게 굽어있다. 아들을 얻게 된 오늘이 기쁨으로 충만해야 함에도 오히려 매우 고통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헨리는 선천적으로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현재 그는 루이빌 대학의 마칭밴드의 연주자이다. 한편, 2007년 1월 "오프라 윈프리 쇼" 에 출연한 후 그가 연주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많은 사람들의 접속 조회속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부모는 그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장애아란 비극적인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함은 물론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눈물겨운 분투와 헌신적인 사랑은 금메달감이다. 그는 자신의 탄생을 가족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레몬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세상에 온 것으로 비유하면서 "아마도 우리 가족은 오렌지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오렌지가 더 달고 덜 시니까. 하지만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본들 레몬을 오렌지로 바꿀 수는 없다. 우리 부모님은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든 포기하지 말고 맞서 부딪쳐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라고 말한다. (19쪽)

 

그는 어렸을 때, 여섯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소아과나 안과를 자주 들락거렸다. 엉덩이와 다리 수술엔 실패하고, 곧바로 눈 수술에 들어갔다. 이 때가 막 두 살을 넘겼을 때였는데, 첫번째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네 살 무렵, 두번째 수술을 받고선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열 살 때엔 척추가 S자 모양으로 심하게 굽었기 때문에 이를 수술받았고 이것이 마지막 수술인 셈이다. 이렇게 그의 신체적 장애를 개선키 위해 그의 부모의 사전에는 '포기'란 단어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아기였던 시절, 엄마가 외출하여 아버지가 그를 돌보게 되었다.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만 같았는데, 뭐가 못마땅한지 아기는 목이 터져라 울기만 했다. 흔들의자에서 흔들어 주어도, 노래를 불러 주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그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연주하자 아기는 울음을 뚝 그쳤다. 이후 피아노 놀이는 아버지의 맘에 쏙 들었고 이를 계속했다. 그는 두 살이 되기 전에 멜로디에 화음을 넣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후 힌다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루이빌 대학에 입학해서는 터널 박사가 그에게 트럼펫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대학 전공은 음악이 아니라 스페인어였다.

 

"세상에는 자신을 채워주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찾고 싶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가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찾게 된다. 아마 찾아내는 순간, 자신이 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임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110쪽)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의 아버지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물심양면으로 그의 눈과 다리가 되어 주었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대학교 마칭밴드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열리는 모든 야구 경기를 무료로 관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맡아서 밴드 연습에 참여했다. 연습이 끝나면 그들 부자는 거의 탈진상태가 된다. 켄터키 대학을 상대로 첫 시합을 벌이는 풋볼 경기장에서 마칭밴드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그들 부자는 지나간 그 모든 시간에 감동을 느꼈다. 그의 연주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에선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친다. 때가 되었다. 내 심장이 룸바춤을 추듯 격렬하게 고동친다. 이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넘치는 축복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를 느낀다. 트럼펫을 들어올려 내 입술에 갖다댄다. 나는 가능성이다."

(302쪽)

 

책장을 덮는 순간 TV에서 시청한 적이 있는 가수 이상우의 자폐아 아들의 교육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영화 [말아톤]의 모자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간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장애아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시설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개개인의 재능을 토대로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한번 더 인식하게 되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