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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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오대양 주식회사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사체 32구가 발견되었다.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인데 식당 천장에서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희대의 사건이었다.

조사결과,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한 박순자 대표는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 억원의 사채를 조달했다는 발표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1991년 7월 당시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자수하면서 의문점이 얼마간 밝혀지기도 했다. 경찰이 발표한 집단자살극인지 외부인에 의한 집단타살극인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 [A]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구성된 소설이다. 화자(話者)인 '나'는 머리통이 크고 못생긴 여자로 엄마는 누군지 알지만 아버지는 독자로 하여금 누군인지 추측하게 한다. 이야기는 신신양회의 시멘트 공장 구내식당에서 화자가 출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연의 대청소'시간인 비가 내렸다. 나이가 엇비슷한 일곱 명의 이모들이 식당에서 일을 한다. 엄마는 나를 23살에 낳았다. 나는 엄마의 두번 째 아이였다. 조산사가 도착할 때까지 식당에 딸린 방에 엄마는 혼자 누워 있었다.

 

공장은 어머니라 불리는 여인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녀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1962년만 해도 구획정리되지 않은 논뙈기, 밭뙈기로 겨우 연명해가던 농부들만 있었다. 공장터를 다지고 대형트럭이 드나들면서 일년 넘게 공사를 시작했다. 농부들의 생활패턴이 바뀌었다. 농사는 아내에게 맡기고 공장 현장의 잡역부로 취직했다. 이곳의 상점 이름은 온통 '신신'일색이었다. 신신이발소, 신신문방구, 신신다방, 신신삼겹살 등 마을은 그야말로 신신공화국이었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공예품 공장은 86 아시안 게임을 겨냥해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개입힌 보석함, 한국전통복장을 입은 인형, 유명화가의 그림이 들어간 쥘부채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공예품 공장은 서울에 있었다. 신신양회의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 모두 서울로 진학했다. 교육만큼은 서울에서 받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조때문에 신신의 아이들은 공예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인근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다 대학에 진학했다.

 

"신신이라고 전해주세요. 급히 할 말이 있다구요" (48 쪽)

 

팔월이었다. 다락방에 숨어 지낸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사건이 발생하기 열흘 전부터 어머니와 두 공장 책임자를 포함하여 나와 이모들까지 모두 25 명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19살인 나는 뇌수술후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볼 수가 없었다. 다락방 안은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누군가가 무거운 부대 자루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내 손목을 개구리 잡듯 잡아챘다.

 

"그 앤 그냥 둬. 아무것도 못 봐. 아무것도 몰라. 그냥 둬" (51 쪽)

 

1978년 남미의 가이아나 공화국에서도 어린아이 276 명을 포함한 총 914 명의 사체가 인민 사원에서 발견되었다. 독약을 탄 오렌지 쥬스를 나눠 마시고 교주 짐 존스는 마지막에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었다. 신도들은 교주를 '아빠'라고 불렀다. 

신신양회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았다. 사망자는 모두 24 명이었다. 누구의 몸에서도 저항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비좁은 다락방이 파리떼의 날개짓 소리로 시끄러웠다. 나는 파리떼가 엄마 몸에 알을 슬지 못하도록 연신 파리떼를 내쫓느라고 나중엔 울지도 못했다" (117 쪽)

 

13,000 톤 급의 사일로 증축을 위해 백 억원대의 공사비가 필요했다. 과욕이었다. 사채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채업자들의 성화를 못이겨 다락방에 피신한 사십대의 이모들은 그날, 그곳을 자신들이 죽을 시간과 장소라고 믿었던 것같다. 다락방 모서리에서 어머니는 어딘가로 계속 연락을 취했다.

 

 

"창립 42 주년 기념 행사 개최

 다 모여라 손에 손잡고

 사일로는 넓고 아이들은 부족해" (73 쪽)

 

명함 크기의 광고가 2 주 간격으로 석 달 동안 신문에 나갔다. 신신양회 아이들에겐 쉽게 눈에 뜨일 광고였다. 이미 죽은 이모들의 자식들이 신신을 되찾기 위해 뭉쳤다. 만나기로 한 날, 폭우가 쏟아졌다. 김보라, 서다희, 김준희, 김보람,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매일 아침 독특한 분위기의 처녀들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우르르 나와서 뿔뿔이 흩어졌다 저녁이면 다시 모인다고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단계 판매망의 거점이라느니 신흥 종교 포교자들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어느 날, 벨이 울리고 현관에 기태영이 나타났다. "신신을 되찾았어"

 

6년이 흘렀다. 서울과 신신양회의 딱 중간 쯤에 위치한 기태영이 마련해 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기태영은 재력가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 알아 내었다. 신신출신이라해도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관망세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신신의 몰락을 그들은 보았기 때문이리라.

우린 젊은 피가 필요했다. 젊고 명석하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새 식구가 필요했다. 종족을 불리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많은 남자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아마조네스 부족처럼 신신을 부흥시키기 위해선 사람을 늘려야 했다. 봉투에 주홍글씨로 'A'를 표기한 편지를 보냈다. 잘 나가는 가수 김준에게도 전해졌다. 김준의 의상담당은 안은영 언니였다. 정인 언니의 배가 불러 왔다. 

 

중국 오지에 있다는 여인국 모쒀족 여자들처럼 아이들은 엄마의 성을 따르고 집안의 모든 재산은 딸이 물려 받는 그런 삶을 희망했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아버지'란 단어가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만나고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결혼이 없기에 이혼도 없다. 그에 따른 상처도 없다. 그녀들은 욕심없는 삶을 살아간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이 식으면 그 사랑을 붙잡지 않는다. (164 쪽) 

 

쉰이 한참 넘은 마을 사내에게 저녁밥을 짓다가 부엌에서 봉변을 당했다. 수치를 느낀 그녀는 깔린 채 두 손을 더듬었다. 부엌 칼이 잡혔다. 주저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돌아온 엄마는 피투성이의 이 광경을 목격했다. 딸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서정화는 고작 16살, 여중 3년생이었다. 엄마는 딸을 위해 대신 감옥으로 갔다.

"무슨 일이 있어두 이곳에 오지 말어. 설령 니 엄마가 죽었다고 해도 오지 말어" (225 쪽)

 

기태영은 건설업체 인수계획을 세웠다. 이사회를 소집하고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의 행보가 아슬아슬했지만 정인 언니도 은영 언니도 두 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도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떠오르는 젊은 CEO로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어느 날 한 사내의 자수는 아버지의 도움을 끊게 만들었다. 신문은 특종을 보도했고, 미처 보도하지 못한 기자들이 속속 공장으로 몰려 왔다. 자수한 사내는 살인방조죄로 구속되었다.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죽은 여자들의 자식들이 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우리를 '그 에미에 그 자식'이라는 식의 사교 무리로 생각하는 눈치들이었다. 직원들도 기태영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신신의 화려한 시절은 막을 내렸다. 누가 신신을 무너뜨리려 했는지 그 이유는 숙제로 남았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기태영이 중년 남자와 서울의 한 공원에서 만났고, 이 둘은 고성을 주고 받으며 싸웠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 운동 나온 노인이 양복 차림의 오십대 사내가 죽어있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기태영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발동했다. 다음 해 봄 나는 아기를 낳았다. 머리통이 큰 딸이었다. 아기의 아버지인 기태영은 여전히 잘 도망다니고 있다.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신신양회는 버려졌다. 아무도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는 공동체로 삶을 살았던 신신의 여성들이 천사(Angel)인가, 아마조네스(Amazones)인가, 아니면 간통(Adultery)한 자들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호손의 주홍글씨로 유명한 'A'의 낙인은 평생 품고 살아야 했던 헤스터 프린의 사랑의 증거였다면, 이 소설의 'A'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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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기업 - 위대한 기업을 뛰어넘는
최상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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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소위 유통 선진국인 일본의 소매업체을 벤치 마킹하러 몇 차례 출장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이미 유통업계를 떠났지만 나에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인 셈이었고 익숙한 지명과 당해 

회사와 관련한 기억들이 추억에 묻혔을지라도 오히려 정겹게 다가왔었다.

  

버블 경제의 절정이었던 1989년 말 일본 니케이 평균주가는 3만 8,915 엔이었지만 1999년 말에는 1만 8,934 엔으로

반토막이 되었고, 도심부의 맨션 가격은 그 이상으로 폭락했다. 문제는 이러한 1990년대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종합양판점 등 당시의 주력 소매업체는 신점포 개발을 이유로 오히려 매장 면적을 확대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0 쪽)

 

저자는 세 가지 사항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일본 유통업의 소매업태인 엔터테인먼트형 전문점, 백화점, 편의점, 종합 양판점 등을 살펴보고 다이소, 세븐 일레븐 재팬 등 혁신적인 소매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자의 결단을 분석하여 소개한다.

 

둘째, 가격결정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취함과 동시에 상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관계를 살펴본다.

 

셋째, 혁신적인 소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는데 필요한 투철한 상인정신을 강조한다.

 

 

다이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61 쪽)

 

괴짜 경영인 야노에 의해 창업된 다이소는 경상도 사투리로 온갖 물건이 '다 있소'란 느낌을 갖게 했다. 야노는 본디 처가에 얹혀 어류 양식업을 하다가 망해서 야반도주했다. 이후 길거리에서 싸구려 잡동사니 좌판 행상을 경험으로 현재의 잡화 소매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국내에도 다이소 점포가 많이 늘었다.

 

부부가 처음 시작한 100엔숍 균일점은 트럭에 상품을 싣고 길바닥이나 슈퍼마켓 입구의 공터에서 단기간 개점하는

이동식 판매였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이동식 가게라는 불안감때문에 매상이 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1973년의 오일쇼크와 인플레는 인건비, 운임 등 코스트 푸쉬현상을 가져왔지만, 야노는 좋은 상품을

100엔에 파는 전략을 고수했다. 이후 고객들의 호평과 함께 제조업자들도 직거래시 납입가를 낮추어 주었다.

1977년, 야노는 자본금 300만 엔의 주식회사 다이소산업을 설립하여 가족형 기업에서 탈피했다. 자본도 확충되면서

도쿄, 규슈, 오사카 등지로 영업소를 개설하여 전국을 대상으로 이동판매업을 확대해 나갔다. 한창 때 다이소의 트럭이

90대를 넘기도 했다.

 

상설점포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생겼다. 1987년 종합양판점업체인 유니가 요코하마시에 20평 정도의 상설매장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설점으로 업태를 변경하지 않고 시범점포로만 운영했다. 1991년 '대규모소매점포법'이 개정되어

종합양판점, 슈퍼마켓 등의 영업시간이 연장되자 상설점포를 늘리고 이동점포의 비중을 줄여 나갔다. 이후 1995년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디플레가 도래하자 완전 상설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2008년에 일본 소매기업 30위라는 성적표를 거뒀다.

 

승승장구하는 다이소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불량 재고'의 처리를 신설점포에서 해결했지만 성숙기에 접어든 최근에는 출점 속도가 매우 둔화되었기에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디플레의 시대가 거하고 인플레가 도래하면 100엔숍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다이소는 대형 종합양판점, 슈퍼마켓, 백화점에 상품을 공급하는 벤더로 남는 방안이나 200엔, 300엔 등 다양한 가격의 상품군을 개발하는 등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야노의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 불안 요소라고 하겠다.

 

세븐 일레븐 재팬

 

정치에 꿈이 있던 청년 스즈키는 선배의 충고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사회 초년병은 출판사에서 시작했다. 당시 조사와 홍보업무의 경험으로 이토요카도에 상품관리와 판촉 담당으로 전직했다. 종합양판점 업계의 급성장과 함께 이토요카도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본인의 출장 경험에 의하면 양판점의 특징은 4층 건물에 옥상은 주차장인 일종의 중형 할인점이었다. 1971년 그는 39세의 나이로 홍보 및 인사 담당 이사로 취임했다. 또한, 신설된 업무 개발실의 리더로서 미국의 신업태를 연구하고 있었다. 일본의 상점이 쇠퇴하는 이유가 생산성의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던 그에게 미국의 세븐 일레븐은 구세주같았다. 왜냐하면 오전 7시에 개점하여 저녁 11시까지 영업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내에서의 많은 반대에 봉착했지만 뚝심으로 밀어 부쳤다.

1973년 11월 30일, 이토요카도와 미국 사우스랜드 간에 일본 프랜차이저 방식으로 편의점 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15명의 초보자를 데리고 7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신설회사 요크 세븐(이후 세븐 일레븐 재팬으로 개칭)을 신설했다. 더구나 설립 자본금 1억 엔중 반만 이토요카도가 출자했기에 그는 심복인 시미즈와 함께 자신들의 적금을 해약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개인 출자를 감행했다. 대단한 결단력이다.

 

1호점 개설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주류 판매점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1974년 1월 1일, 그는 시미즈와 함께 눈길을 걸어 이 가게를 찾아갔다. 조선소의 자재 창고와 공장이 드문드문 있을 뿐 거의 공터인 구석에 '야마모토 시게루 상점'이 있었다. 야마모토는 당시 23세로 막 결혼한 부인은 임신 중이었고 홀로 된 어머니와 두 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었다. 야마모토는 전근대적인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주류 판매점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세븐일레븐 기사를 보고 업종 변경을 결심했던 것이다.

 

야마모토 상점은 겨우 24평으로 미국 세븐 일레븐 표준 매장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주차장도 없어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스즈키는 야마모토를 선택했다.

"저희들과 함께 도전해봅시다. 만약 3년 후의 결과가 실패라면 제가 책임을 지고 점포를 원 상태로 돌려드리겠습니다" (96 쪽)

 

1974년 5월 15일, 일본 최초의 편의점 도요슈점이 문을 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자리에서 야마모토는 성업 중이다.

집념으로 완성한 단품 관리 시스템의 개발과 소량 배송 등이 정착되면서 세븐 일레븐의 체인점은 날로 늘어갔다. 겨우 2년이 지난 1976년 5월 당초 목표였던 60개를 훨씬 넘어 100호점이 개설되었다. 미국에선 25년이 걸려 100호점이 생겼으니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1990년 세븐 일레븐 재팬의 점포 수가 4,000 개에 이르렀다. 미국의 사우스랜드가 경영 위기에 처하자 1991년 3월, 이토요카도는 사우스랜드의 지분 70%를 확보했다. '일미역전', 일본 언론들은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파산직전의 사우스랜드는 3 년만에 흑자전환했고, 1999년 사명을 '7 - Eleven Inc.'로 바꾸고, 2007년 7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재상장되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재인 [Creating Modern Capitalism]에 세븐일레븐재팬의 유통혁명이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을 만들어 낸 한큐백화점의 천재적인 경영과 고바야시의 경영비전과 시장 창조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종합양판점 기업인 다이에도 설명되고 있다.

1974년 6월 다이에가 서울에 대형 소매점 출점을 발표했다. 그러나,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다이에의 나카우치 사장에게 이왕이면 백화점 사업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다니며 서울 시민의 쇼핑 습관과 구매력을 분석한 결과, 다이에는 대형 백화점의 출점은 시기상조이며 종합양판점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1976년 4월 롯데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말았다.

 

건실한 기업 경영보다 유통혁명론을 전면에 내세웠던 나카우치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2001년 1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독재자가 되었던 카리스마 경영자의 말로였다. 출장기간 중 후쿠오카 돔에 들러 일본프로야구를 관람했었다. 다이에의 상징인 호크스 동상이 위용을 자랑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에 영향을 받아 유교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심각하지 않았다. 상인이 수행하는 상업기능의 중요성과 이윤취득의 정당성을 가르치는 석문심학(石門心學)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교의가 탄생하여 상인의 지위를 부동의 것으로 인식하였다. 근대 이전의 일본국부의 축적도 상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전후 일본 제조업의 성공도 근면한 일본 상인의 시장개척정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판매의 질곡에서 벗어나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일본 유통연구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과거와 같은 프론티어정신의 회복없이는 상인국가 일본의 실질적인 부흥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소매업태야 말로 일본판 모험상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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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작용 - 복잡한 세상의 단순한 법칙
장순욱 지음 / 창과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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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저녁으로 집 화장실에서 내가 만나는 삽화이다.

매사의 결과는 인과응보의 탓임을 자각하라고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한 때 사업이 잘 나가서 큰 돈을 벌었다. 이후 어찌된 탓인지 꼬이는 일이 많아지고 사기를 당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나의 사업은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호사다마’란 말을 떠 올리며 그러려니 하기엔 너무도 울화통이 터져 뜨거운 콧바람을 연신 불어낼 당시 아내의 권유로 난 모 선원(禪院)에서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이 기간에 많은 것을 깨우치고 모든 것의 결과가 내 탓임을 수용하고 나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반작용’이 내가 경험한 바로 그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가 있다. 말 그대로 새옹의 말에 얽힌 일화이다.

 

새옹은 국경에 사는 노인이란 뜻이다. 어느 날 이 노인의 말이 도망쳐 국경넘어 오랑캐 땅으로 가버렸다.

이에 대해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이게 어떤 안 나쁜 일을 가져올지 모른다’ 정말로 몇 달 후 집나간 말이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번엔 동네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하자 노인은 반대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게 어떤 안 기쁜 일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놀다가 낙상하여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동네 사람이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이게 복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말만 했다. 세월이 흘러 변방에 북소리가 울리고 오랑캐와의 전쟁이 벌어지자 강제 징병이 벌어졌다.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라서 징병을 면했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간 대부분의 아들은 죽어서 돌아왔다. 그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인 셈이다.

 

이미 눈치를 채었을 것이다. 좋은 일은 같은 크기의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반작용을 만들고, 나쁜 일은 안 나쁜 일이 생길 반작용을 생성한다는 의미이다. 길을 가다 길에 떨어진 만원 권 지폐를 한 장 주었다면 추후 1 만원 상당의 재산적 손실이 생기는 반작용을 경험한다는 얘기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는 반작용이 뒤통수를 때리는 일을 만든다. 아픈 아내가 인력거를 모는 남편 김첨지에게 일을 나가지 말라고 해도 그는 그 청을 거절하고 일을 나간다. 오늘 따라 인력거를 타는 손님이 엄청 많아 수입이 꽤나 올랐다. 일마치고 기쁜 마음에 술 한 잔 걸치고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 포장해서 귀가했더니 마누라는 이미 차가운 시신이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코러스]에서도 규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장은 ’작용 - 반작용’의 신봉자이다. 어린 학생들이 사고를 치면 그에 상응하는 체벌을 가했다. 그의 교리는 ’액션 - 리액션’이다. 사리사욕에 치우친 학교 행정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학생도 생겼다. 이러한 행동의 반작용은 교장직에서의 해고라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그토록  숭배하던 ’액션 - 리액션’의 덫에 자신이 걸려 들고 만 셈이었다.

 

한편, 자살을 앞 둔 사람들 대부분은 가장 친한 이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생을 마감하려는 이의 행동이 어째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죽음을 앞두자 생에 대한 욕구가 반작용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수화자가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잘 응대하면 자살을 포기하기도 한다. 국민 여배우 최진실은 정말 안타깝다. 그녀의 마지막 통화 대상자는 코디였다고 한다.

 

"질그릇을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허리띠의 은고리를 내기로 걸고 쏘면 마음이 흔들리고, 황금을 걸고 활을 소면 눈 앞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 장자 (39 쪽)

 

’반작용’은 몇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 동시성을 갖는다. 동전의 앞 면이 있으면 동시에 뒷 면이 있듯이 길거리에서 만원을 줍는 순간 만원을 잃어버릴 반작용을 동시에 들어올린 셈이다.

 

둘째, 잠재성을 갖는다. 영화 [코러스]의 교장처럼 향후 자신에게 피해를 미칠 반작용이 생기게 된다. 잠복기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셋째, 대칭성을 갖는다. 작용과 반작용은 대칭을 통해 변화와 함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한다.

 

넷째, 모순성을 갖는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 空卽是色’이란 말이 있다. 있는 것은 빈 것이고, 빈 것은 있는 것이란 의미이다. 있음 안에 안 있음이란 반작용이 있고, 비었음 안에 안 비었음이란 반작용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까진다’는 속담이 있다. 공짜인 줄 알고 챙겨도 결국 머리카락이란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주는 홍보용 샘플 화장품도 사실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부담하는 가격에 샘플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공짜 점심을 즐기는 회사 동료도 귀빈(귀찮은 빈대)으로 대접받는 반작용을 얻게 된다. 이렇게 반작용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공짜 치즈는 쥐덫 안에만 있다" -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 중에서

 

영국의 과학자 프란시스 골턴 경은 연구과정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키가 평균보다 훨신 크면 아들은 아버지보다 작고, 평균보다 훨씬 밑도는 경우에는 아들의 키가 아버지보다 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평균으로의 회귀’라고 명명하고 신비한 힘이 작용해서 사람의 키를 양극단에서 평균으로 움직이게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평균으로의 회귀’는 일방적으로 키가 자라거나 지능이 좋아지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내 자식이 나보다 못하다고 야단치지 말자.

 

인간은 자유가 주어지면 어딘가에 구속되려 하고 구속되면 자유를 갈망한다. 백수시절엔 노는 것도 지겹다고 취직에 발버둥치다가 막상 취직하고 나면 자유를 부르짖으며 사표를 내려고 까분다. 이것이 바로 반작용이 만든 모순된 삶의 모습이다.

 

오늘 오전 TV 생중계로 박태환 선수가 수영 400 미터 결승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시청했다. 그도 얼마 전까지 나락으로 추락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실패가 바로 안 실패란 반작용을 쌓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오히려 실패를 너무 안하면 망하게 된다.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는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해고 당하는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아이폰 같은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복잡 다난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법칙이 있다. 모든 것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을 만든다.

불행해야 행복하고, 단점이 곧 장점이며, 불안해야 편안하고, 지저분해야 건강하고, 고통스러워야 즐겁다는 것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저자의 통찰력과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든 것이 ..... 나로부터 나와서 나에게로 돌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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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 씽 The Little Big Things - 사소함이 만드는 위대한 성공 법칙
톰 피터스 지음, 최은수.황미리 옮김 / 더난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피터 드러커와 함께 당대의 현대경영의 구루로 평가받는 톰 피터스가 새 책을 들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제목도 멋있는 '리틀 빅 씽 (Little Big Things)'.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사소한 일들이 모여서 위대함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동력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인데 이를 잘 실천하지 못하는

아주 작은 평범하고 기본적인 것이라는 교훈을 던진다. "노적성해,露積成海"란 글이 떠오른다. 한 방울의 이슬이 모이고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하하, 실패작이네요.... 이러면서 배우는 거겠죠?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한 도시엔 '웨곤 휠'이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의 벽면에는 지나간 세월을 짐작케 해주는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다. 우리들이 자주 찾는 식당에도 유명 연예인 또는 정치인이나 스포츠인들의 싸인판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이는 찾는 고객들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웨곤 휠도 사진을 통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손님들은 바닥이 반짝일 정도로 깨끗한 화장실과 식당의 분위기, 진한 커피 향과 종업원의 친절한 배려 등에 이끌려 식당의 전통에 매료된다. 이와 같이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음식의 맛도 좋게 만들고 고객들에게 기품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업경영을 컨설팅하고 강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16 쪽)

 

고객을 배려하는 직원들의 친절한 태도, 상대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 경청하는 태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 등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책은 톰 피터스가 2004년 여름부터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사소한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성공의 법칙' 176 가지 중에서 163 가지를 골라 담았다.

 

사람들의 태도가 탁월함을 만들어 내고, 일하는 방식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열쇠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애플에 열광적일까? 그들은 소비자들을 흥분시키는 탁월함을 창조해 내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웨곤 힐'이라는식당은 화장실이 큰 자랑거리이다. 항상 손님으로 붐비지만 깨끗한 화장실은 손님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고객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습니다"

 

 과거의 식당이야 맛만 좋으면 다른 것은 부족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요사이 식당은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하고 분위기 살리는 음악, 안락한 의자 등의 부가적 서비스를 많이 강화했다. 이런 것 들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톰 피터스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스토리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은 어떠한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공하려면 동화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스토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만약 스토리가 없다면 스스로 미래의 성공 스토리 또는 성공 신화를 창조하라고 주문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정말 사소하다.

우리가 이미 한두 번은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다. 제목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반짝이는 화장실을 만들어라, 꽃의 힘을 빌려라, 넛지의 예술가가 되어라,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 탁월함과 타협하지 마라, 위기의 순간에 기회를 잡아라, 그린 시대를 선점하라 등등.

 

이런 식으로 톰 피터스는 위기탈출법, 기회포착법, 유연성, 인격, 리더십, 네트워킹, 긍정, 열정 등 다양한 키워드를 이용해 우리들에게 성공의 법칙 163 가지를 들려준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사소함이 위대함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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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스탠퍼드대 미래인생 보고서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 엘도라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티나 실그리 교수는 아들이 열여섯 살이었을 때, 조만간 대학생이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이 대학생활과 사회생활 때에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아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컴퓨터에 저장하고 좋은 교훈이 생각날 때마다 여기에 추가해 나갔다고 한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규칙이 실제로 사회에서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인생을 시작할 때 많은 스트레스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학교에서 치루는 선다형 시험이 아니라 사회에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여럿일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라는 강의를 정리한 보고서이다.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사례와 창의적인 방식으로 과제를 풀어 내는 학생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우리 모두의 인생 설계에 유익한 교훈과 도움을 제공한다.  

 

이 책은 진부하고 평범한 아이디어를 송두리째 뒤집는다.

 

5 달러와 두 시간을 주고 이를 자원으로 활용해서 돈을 벌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했다. 당연히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다. 14개 팀에게 종자돈이 든 봉투를 나눠주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시간은 제한하지 않았다. 다만, 일단 봉투를 개봉한

다음에는 두 시간 내에 최대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예상과는 달리, 돈을 많이 번 팀들은 봉투 속의 5 달러를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수익률이 높은 팀을 살펴보면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이 팀은 2인 1조 커플로 여러 맛집에 미리 예약을 한 다음, 이 예약권을 최대 20 달러를 받고 팔았다. 결과는 수백 달러를 벌었다.

 

가장 높은 수익률은 정말 기발한 팀이 차지했다.

월요일 3분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판단하고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재 채용을 희망하는 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이 회사를 위해 3 분 짜리 CF를 제작하여 650 달러의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

 

"구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아무도 정의해놓지 않은 불확실한 길을 가는 동안 힘든 문제들과 마주쳤을 때 그것과 기꺼이 맞붙어 씨름했기 때문이다" (60 쪽)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규칙을 과감히

깨뜨리고 도전하는 자세이다. 최악의 사업 아이디어도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변신을 할 수가 있다.

'남극에서 비키니 팔기'라는 아이디어가 그냥 묻혀 잠자는 신세일 때 이를 '비키니 아니면 죽음을 달라' 란 슬로건으로 각색한 영업팀이 있었다. 날씬해져서 비키니를 꼭 입고 싶은 사람은 남극여행을 데리고 간다는 취지였다. 정말 기발하지 않습니까! 힘들고 고된 남극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뚱뚱한 사람도 당연히 날씬해진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고 올바른 프레임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최악의 아이디어에서도 가치있는 부분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교훈인 것이다.

 

옛날에 골드버그라는 남자가 살았다. 그의 유일한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 동안 기도했지만 골드버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낙담한 골드버그는 신에게 말했다. '신이시여, 정말 너무 하시는군요!' 그러자 갑자기 정적이 깨지며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드버그, 너야말로 너무 하는구나. 적어도 복권은 산 다음에 기도를 해야지!' (102 - 103 쪽)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실행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복권 당첨을 바라면서 복권을 사지도 않는 골드버그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끈기와 인내를 갖고 밀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 옆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그만 두라고 충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 해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통나무에 기름을 부으면 그냥 젖은 통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부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변한다"

(119 쪽) 

 

성공에 이르자면 상승과 하강 사이클을 타게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성공 스토리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가 늘려 있다. 그는 결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확신하건대, 제가 애플에서 잘리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애플에서의 퇴출경험은 정말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곡 필요한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인생은 당신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법입니다"  

   - 2005,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 중에서

 

에디슨의 성공도 1만 번 이상의 실패가 있었기에 백열전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3 M의 '포스트 잇'도 처음엔 잘 붙지 않는 실패한 접착제였으나 동료 직원이 찬송가 페이지를 표시하기에 효과적이란 사실을 우연히 인지하고 개발을 거듭하여 6 년후에 비로소 빛을 본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습관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다른 방법이나 가능성을 지나쳐버리곤 한다. 또한, 우리에게 조언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안전한 길을 가라고, 정해진 길 바깥을 벗어나지 말라면서, 자신이 지나온 똑같은 길을 따라오라고 충고한다. 편하기 때문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으로 남들보다 뛰어나게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경향도 있지만 이 책의 화두는 '당신 스스로를 허락하라'는 것이다.

 

고정관념의 의문을 품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끊이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설계하고, 능력의 한계를 믿지 말고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해도 좋다고 당신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리라는 뜻이다. (24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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