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 위기의 순간, 나라를 살린
신동준 지음 / 북클래스(아시아경제지식센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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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策士란 꾀를 잘 내어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 속의 인물로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이 이에 해당한다. 최고통치자의 리더십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2인자의 보필이다. 하물며 기업경영도 국가경영과 다를 바가 하나 없다. 총수가 뛰어난 식견을 가졌다해도 곁에서 이를 보좌할 사람이 전무하다면 그 힘은 분명 반감될 것이다.

 

역사 속 특히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수많은 영웅호걸과 책사들이 등장하여 그 실력을 겨루었다.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기였다. 이 책에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2인자 8명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을 각각 지신智臣, 양신良臣, 정신貞臣, 현신賢臣, 모신謀臣, 간신諫臣, 능신能臣, 직신直臣으로 나누어 그들만의 독특한 2인자 리더십을 설명하고 있다.

 

관중 - 제나라 지신智臣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은 제나라 사람으로 공자가 매우 존경한 인물이다.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제나라 양공의 이복동생인 공자 규와 소백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어느 날 양공이 피살되어 정국이 소용돌이 속에 빠지자 포숙아는 재빨리 소백을 데리고 제나라 인근의 거나라로 피신했다. 반면 관중은 공자 규가 보위 계승 1순위이므로 그와 함께 도성안에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정국이 수습되지 않고 오히려 쿠데타 세력이 공자 규를 죽이려하자 관중은 규와 함께 규의 외가인 노나라로 달아났다.

 

이후 제나라의 대부들이 합세하여 쿠데타 세력들을 제거한 뒤 정통성를 가진 공자 규와 소백 중 한 사람을 왕위에 옹립하려했다. 빨리 제나라에 도착하는 사람이 왕이 될 상황이었다. 지리적으로 제나라에서 가까운 나라는 거나라였기에 소백이 매우 유리했다. 불리함을 느낀 관중은 규를 왕위에 옹립하고자 별동대를 데리고 제나라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백에게 화살을 날렸다. 소백이 쓰러지자 그는 급히 규에게 입국하라고 연락했다.

 

그러나, 규의 행렬이 제나라 경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소백은 왕위에 오른 후였다. 소백은 자신에게 쏜 화살이 혁대에 맞자 죽은 척했던 것이다. 소백이 바로 후에 춘추시대의 첫 패자覇者가 되는 환공桓公이다. 이리되자 공자 규의 외가인 노나라는 소백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나라에 전쟁을 선포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승전한 소백은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은 제나라로 압송하라고 노나라에 요구했다. 결국 노나라의 장왕은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을 제나라로 압송했다. 관중을 압송하게 된 이면에는 포숙아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필하는 나라는 반드시 패권을 차지할 것이니 그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20 쪽) 

 

관중은 예禮, 의義, 염廉, 치恥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고 재정경제를 튼튼히 하면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를 토대로 제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인재경영 탓이었다. 자신보다 나은 인재를 천거한 포숙아, 자신에게 활을 쏘았던 관중을 발탁한 환공 등의 뛰어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쓸 줄 알던 사람 잠들다"

- 철강왕 카네기의 묘비명 중에서

 

관중은 치국의 길은 반드시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며 '필선부민必先富民'을 주장했다. 창고 안이 충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아는 법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의 부민富民철학은 '중본억말重本抑末'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본本'이란 농, 축, 수산업을 뜻하며, '말末'이란 사치소비재의 생산과 유통, 고리대금업을 의미한다. 즉 1, 2차 산업이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서비스업이 기형적으로 커지면 경제가 파탄에 이른다는 것이다. 농업과 염철 등 1, 2차 산업의 활성화로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성엔 장사꾼들이 구름처럼 몰렸다고 한다. 후대의 학자들은 임치성의 상주인구가 대략 10만여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금융자산의 버블을 우려하여 이를 억제한 그의 정책은 온고이지신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사치하면 국고를 낭비하게 되어 인민들이 가난하게 된다. 인민들이 가난해지면 간사한 꾀를 내어 나라를 어지럽히게 된다" (38 쪽)

 

 

오자서 - 오나라 모신謀臣

 

'오월시대'의 개막은 오랫동안 남방을 호령하던 초나라가 중원으로의 진출에만 신경을 쓰고 내정에는 소홀히 함에 따라 빚어진 현실이었다. 장강 하류 동남쪽에서 신흥세력인 오와 월나라가 급부상했다. 오는 오늘의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 북부의 비옥한 평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월은 절강성 중남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다. 지리적으로 두 나라는 붙어 있었기에 양립이 불가능했다.

 

초나라 평왕에게는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은 지방 장관의 딸 사이에 태어난 아들 건이 있었다. 나이 15살이 되자 비무기의 추천으로 진秦나라에서 며느리를 들였다. 그런데, 웃기는 촌극이 발생했다. 며느리가 될 여인이 워낙 미색인지라 비무기는 초평왕에게 이 여인을 취하고 왕비로 삼게 했다. 비무기는 후환이 두려워 평왕을 설득하여 태자 건을 변방에서 근무하도록 만들었다.

 

비무기의 생각대로 이 여인이 아들 웅진을 낳았다. 그러자, 비무기는 태자 건과 이를 비호하는 오사를 싸잡아 모함했다. 비무기의 모함으로 죽음에 내몰린 태자 건은 잽싸게 송나라로 도망쳤다. 그러자 비무기는 오자의 자식들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오자에게는 자식이 둘있었다. 형인 오상은 동생 오자서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하고 순순히 소환에 응했다. 오자서가 도망치자 평왕은 격분하여 오사와 오상을 저자에서 처형하고 말았다. 오자서의 복수심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오자서는 태자 건이 있는 송나라로 피신했지만, 송의 사정이 매우 혼란스러워 오나라로 향했다. 오자서는 오왕 요의 사촌 형인 공자 광이 딴 뜻을 품고 있음을 알아 채고 자객을 광에게 추천했다. 자객의 이름은 전설제인데 후일 광을 위해 오왕 요를 죽인다. 초평왕이 죽자 왕자 웅진이 초소왕으로 즉위했다.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 오나라는 초를 침공했다. 이는 오자서의 계책이었다.

 

공자 광은 지하실에 무장한 갑사들을 숨기고 오왕 요를 집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공자 광이 자리를 비키자 자객 전설제가 '전어'요리 속에 칼을 감추고 들어가 요리를 올리는 척하며 순식간에 요의 급소를 찔러 죽였다. 공자 광은 매복시켜준 군사를 동원하여 요의 일당을 모두 제압하고 왕 위에 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오왕 '합려'이다. '합려'란 '누추한 오두막 집'을 뜻한다. 이는 후대의 사관이 공자 광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오왕 요의 동생인 공자 두 사람이 초나라로 도주해 오자 초소왕은 오나라와 가까운 땅을 영지로 하사하고 그곳에 머물게 했다. 오왕 합려를 자극했다. 합려는 초나라로 도주토록 만든 서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서나라의 군주도 초나라로 망명했다. 이에 오는 초를 쳐 대승을 거둔다. 그런데, 합려는 급습을 노린 월나라와의 접전에서 사망한다. 뒤를 이어 아들 부차가 왕이 되었다.

 

부차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초나라에서 망명했던 백비를 발탁 인사하고 오자서를 고문 정도의 위치로 밀어냈다. 부차는 회계산 전투에서 월왕 구천을 대파했다. 구천은 부차의 노복이 되어 충성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목숨을 구걸했다. 오자서는 차제에 월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건의는 묵살되고 오히려 백비의 강화론이 채택되었다. 이후 구천의 석방문제를 놓고 또 다시 오자서와 백비는 격돌했다. 이 때에도 오자서의 강경론 대신 백비의 석방론을 부차는 수용했다.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제나라 토벌 문제였다. 백비는 하루 속히 제나라를 치고 부차가 패자의 자리에 오를 것을 부추겼다. 그러나, 오자서는 이것이 월나라 구천의 간교한 속셈임을 알기에 이를 말렸다. 당시 오자서는 제나라의 사신을 자청해 은밀히 자식을 제나라 대부 포씨에게 맡겼다. 부차는 오자서의 이러한 행동을 매국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보검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강요했다. 오자서가 죽은 후 오나라는 결국 월나라에 패망당하고 만다. 백비는 월나라의 태재가 되었다.

 

"나의 무덤가에 가래나무를 심어두시오. 나무가 관을 짤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때면 오나라는 대략 망하고 말 것이오. 자만하며 교만해지는 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게 하늘의 이치요" (167 쪽)

 

'부차'란 '덜 떨어진 일개 사내'란 뜻이다. 충신 오자서를 죽음으로 내 몬 어리석은 군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구천의 간교한 술책을 읽어내고 충언을 서슴치 않았던 오자서를 믿지 않고 그를 죽게 만든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주군을 설득하는 방법이 다소 거칠었다는 오자서와 신하의 충성스런 간언을 무시했던 부차, 이 두사람 때문에 오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고리대금을 하는 자들을 '저축은행'으로 둔갑시켜 주고 뇌물을 받아 먹고, 이를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는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에 이르기까지 한통속이 되어 부정을 저지른 '부산저축은행'의 사태를 생각해보면, 왜 오자서 같은 당당한 관리가 이 시대에는 없는지 아쉬움이 든다. 오자서의 흠이라면 미리 사직을 하지 않은 것이리라. 무릇 사람은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아야 한다.

 

 

인상여 - 조나라 직신直臣

 

조나라는 무령왕 시절 강력한 군사정책을 펼쳐 진나라와 대등한 위세를 떨쳤다. 무령왕이 죽고 혜문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그러나, 인상여란 인물 때문에 나름 선방하고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 중 '염파인상여열전'에 의하면, 인상여는 조나라 사람으로 환자령(환관의 우두머리) 무현의 집사 출신이다. 쉽게 말해 미천한 출신임을 시사하고 있다.

 

'화씨벽'은 조나라에서 생산되는 옥덩어리이다. 진나라에서 15개 성읍과 화씨벽을 교환하자고 제의해 왔다. 혜문왕은 진나라가 화씨벽만 취하고 땅을 주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 때 인상여가 나서서 진의 요청을 거절하면 이는 조의 허물이 됨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직접 사자로 가서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겠다고 혜문왕을 안심시켰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로 입국하자 진나라의 소양왕은 크게 기뻐했다. 화씨벽을 전달받아 감탄을 연발하며 중신들과 돌려보며 구경하면서도 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인상여는 진나라의 속셈을 눈치채고 화씨벽에 미세한 흠이 있다며 돌려주면 그것을 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돌려 받았다.

 

화씨벽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므로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고 '구빈지례九賓之禮'를 행해야만 화씨벽을 바치겠으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바로 부숴버리겠다고 인상여는 소양왕을 윽박질렀다. 워낙 탐나는 보물인지라 인상여의 전략이 먹혀 들었다. 소양왕이 이를 승락하자 숙소로 돌아온 인상여는 수행원을 변복시켜 화씨벽을 조나라로 가져 가도록 했다.

 

닷새가 지나자 인상여는 소양왕에 나아가 진나라는 이십여대 동안 약속을 지키는 군주가 없었음을 상기시키며 화씨벽을 다시 조나라로 돌려보냈으니 자신을 처벌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소양왕은 화씨벽을 얻지 못할 바에야 공연히 나쁜 소문을 퍼뜨릴 이유가 없다면서 그를 빈객의 예로 대우하고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혜문왕은 그가 귀국하자 그를 상대부로 삼았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화씨벽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인상여가 '완벽'의공을 세운지 4년이 흐른 후에 소양왕이 하남 땅 민지현에서 회합을 갖자며 조나라로 사신을 보내왔다. 조나라의 혜문왕은 진나라가 과거에도 회합을 미끼로 다른 나라의 왕들을 인질을 삼았던 사례를 거론하며 민지에서의 회합에 대하여 무척 겁을 냈다.

 

그러자 인상여가 왕을 직접 수행하겠다고 나섰다. 한편, 염파 장군은 인질의 경우에 대비하여 30일이 지나도 귀국하지 못하면 태자를 왕으로 옹립하겠다고 약조까지 받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이 회합에서도 인상여의 기지와 강경한 태도 때문에 동등한 위치에서 조와 진 두 나라는 우호조약을 체결했다.

 

진나라 신하들; "오늘 군왕이 각별한 대접을 받았으니 이 자리를 축하하는 뜻에서 15개 성읍을 우리 진나라에 바치시요"

인상여; "조나라가 즉시 15개 성읍을 바칠 터이니 진나라도 조왕의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함양성을 우리에게 내주시요"

 

민지에서의 회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하자 혜문왕은 인상여의 덕분으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며 그의 공적을 치하하며 상경 벼슬을 내렸다. 조나라에서 제일 높은 벼슬이었다. 염파 장군은 일개 미천한 집사 출신인 인상여 밑에서 벼슬을 하려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인상여를 만나면 욕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인상여는 염 장군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행동에 늘 신중했다. 외출했다가 염 장군의 수레가 보이면 재빨리 하인에게 골목으로 자신의 수레를 숨기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한번은 인상여의 하인들이 염 장군의 눈치를 너무 본다면서 창피해서 대감을 못 모시겠다고 항의를 했다. 그러자, 그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다투면 진나라만 좋아할 일이라며 사사로운 원한보다는 나라가 더 소중하다고 말하자 하인들 모두 이에 탄복했다. 염파가  이말을 전해 듣고 웃통을 벗고서 가시덤불을 짊어진 채 인상여의 문 앞에서 사죄를 청했다.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고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조나라의 안녕을 보호했다 .

 

 

이 밖에도 백성을 먼저 생각한 초나라 양신良臣 손숙오, 공자를 감동시킨 정나라 현신賢臣 자산, 2인자의 모범이 된 제나라 정신貞臣 안영, 토사구팽을 피한 월나라 간신諫臣 범리, 통일의 기반을 닦은 진나라 능신能臣 상앙 등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금세기 현재 글로벌 기업들의 총수는 현량과 모책을 앞세우고 있다. 갈수록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리가 있는 선택이다. 고사성어의 탄생 비화는 덤이다. 8인의 2인자 리더십은 현재에도 유용하다 하겠다. 나는 누구를 닮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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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말고 기업을 사라 - 투자의 신 워렌 버핏의 주주서한
워렌 버펫 지음, 로렌스 커닝햄 엮음, 이건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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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에 관련된 책들이 그간 많이 출간되었다. 기존의 출간 도서와 달리 이 책은 조금 특별하다. 투자기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라 워렌 버핏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차보고서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 편지 속에는 그의 투자 철학과 원칙 등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은 기업의 지배구조, 기업금융과 투자, 보통주의 대안, 보통주, 기업인수합병, 회계와 평가, 회계정책과 세금 등 7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9년부터 2000년까지 22년에 걸쳐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 실렸던 주주서한이 주제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경영진은 주주들의 자본은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관리능력에 따라 그 자본은 증가 또는 감소되거나 심하면 모두 잠식되고 말 것이다. 훌륭한 경영진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주주의 입장을 고려하고 나아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검토할 것이다.

버크셔 종속회사의 CEO들은 기업경영에 있어 단순한 세 가지만 지시를 받는다.

1. 자신이 유일한 주인인 것처럼 경영하라
2. 이 회사가 유일한 자산인 것처럼 경영하라
3. 앞으로 100년 동안 회사를 팔거나 합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라
 
경영진의 성과는 수익성으로 측정해야 한다. 만약 스톡옵션을 제공한다면 이것도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개개인의 성과와 연계해야 한다. 탁월한 경영인이라면 성과에 대한 현금 보너스를 받아 이것으로 주식을 살 것이다. 버크셔는 경영진에 대한 보상으로 스톡옵션을 제공하지 않는다.

기업금융과 투자

가장 혁신적인 투자 아이디어는 개별 종목을 연구하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현대재무이론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주식시세표에 다트를 던져 투자종목을 선정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의 핵심은 포트폴리오이다. 분산투자로 위험을 제거하자는 거인데,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대표격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이에 반해, 버핏은 분산투자 대신 집중투자를 권한다. 왜냐하면, 시장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베타'는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식은 시장보다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하여 전보다 훨씬 싸졌는데도 베타 기준으로는 더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애완용 돌이나 훌라후프 한 가자만 판매하는 회사가 더 위험한지 아니면 모노폴리나 바비인형 한 가지만 판매하는 회사가 더 위험한지를 베타로는 구별하지 못한다.

버핏은 베타를 연구하고 분산투자를 전략으로 채택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투자해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에 성공할 거라고 강조한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 다니는'투자방식을 구사하면 수수료, 세금 등 거래비용이 제법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를 추종할 것이 아니라 마크 트웨인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 잘 관리하라"
- 마크 트웨인의 <바보 윌슨>중에서

버핏은 1950년대에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재학시절에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투자기법을 배웠다. 그레이엄은 '미스터 마켓'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내세워 '가격'과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미스터 마켓은 매일 시장가격에 주식을 사거나 또는 팔고 싶어한다. 그는 변덕이 심해 조울증이 걸릴 정도로 끊이없이 환희와 절망 사이를 오간다. 그의 변덕이 심할수록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더 커지므로 좋은 투자기회가 생긴다.

'안전마진'이라는 소중한 가르침도 주었다. 이에 따르면, 증권가격이 증권의 내재가치보다 훨씬 낮을 때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핏은 이런 강의를 수강한지 4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이 기준을 신봉하고 있다.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가치자'라는 용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치투자'에 의하면,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희망에 배팅하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에 불과하다.

보통주의 대안

1980년대에 투자등급보다 훨신 낮은 정크본드(쓰레기채권)에 투자하는 행위가 성행했다. 정크본드는 높은 이자율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부도의 위험이 매우 높은 채권이다. 정크본드를 신봉하는 타락천사들은 이 시장이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이들은 운전대에 칼이 솟아 있으면 운전자가 더 조심해서 차를 몰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렇게 날카로운 칼이 놓여 있으면 운전자는 극도로 조심할 것이다. 그러나, 도처에 늘린 것이 움푹 파인 웅덩이라서 치명적인 사고의 발생확률이 높다 하겠다.
 
버핏은 이러한 '단검이론'을 이용하여 월스트리트와 정크본드 옹호자들의 논리에 강력하게 반박했다. 과도한 부채를 지고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운전대에 가슴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꽂은 채 운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안전마진'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1990년대 초에 정크 신봉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보통주

버핏이 생각하는 배당금 지급기준은 명확하다. 배당금 지급을 유보할 때 주식의 시장가치가 그 이상으로 상승하면 이익을 유보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익의 유보라는 행위는 그 금액 이상으로 이익을 벌어들일 때만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주식분할도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주식분할은 주식의 회전율이 높아져서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주가 등락에 집중하는 단기 투자자들을 주주로 끌어 들이지만 주주들에게 아무런 혜택이 없으므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기업인수합병

주식시장에서는 무수한 인수합병이 발생한다. 특히, 큰 금액의 프리미엄을 지급하며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버핏은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더라도 프리미엄을 지급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단지 독점적 성격을 가진 기업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린메일도 주식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나쁜 관행이다. 그린메일이란 경영권을 위협하는 주주의 주식을 회사가 프리미엄을 붙여 매수하는 행위이다.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자사주 매입이라면 주식의 가치를 높이겠지만 그린메일은 회사를 강탈하겠다는 저의가 담긴 못된 관행인 것이다.

회계

회계는 형식에 불과하다. 형식이기 때문에 조작될 수 있다. 그레이엄이 풍자적으로 예시한 회계의 속임수는 현재 미국 기업들이 흔히 사용하는 속임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버핏은 재무제표가 첫째 기업의 가치가 대략 얼마나 되며, 둘째 미래의 부채를 감당할 능력은 얼마나 되며, 셋째 경영진이 회사를 얼마나 잘 운영하고 있는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무관련 보고서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CFO는 새로운 회계기법을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버핏은 GAAP가 요구하지 않는 일부 정보도 버크셔 주주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버핏은 회계정보가 투자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것이지만 한계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버핏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예측을 계속 무시하겠다고 한다. 이런 예측들은 투자자의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값비싼 요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베트남 전쟁 확대, 두 번의 석유파동, 소련 해체, 다우지수의 508포인트 폭락 등 크고 굵직한 사건들이 넘쳤지만 이를 이전에 예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놀랍게도 이런 거대한 사건들조차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원칙을 전혀 훼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한 좋은 기업은 이런 사건 속에서도 여전히 건전한 투자였던 것이다.

두려움이 변덕쟁이에게는 적이지만, 원칙주의자에게는 친구입니다 (35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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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잇! Crush It - 소셜 미디어로 당신의 열정을 돈으로 바꿔라!
게리 바이너척 지음, 김정희 옮김 / 틔움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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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행복한 일을 해라

단순하게 생각해라

연구해라

열심히 일해라

앞을 내다봐라

(22 쪽)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SNS)란 온라인 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용자들은 SNS를 통해 인맥을 새롭게 쌓거나, 기존 인맥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킨다. 전 세계적으로 SNS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관련 서비스와 형태도 다양해졌다.

 

IT 기술과 소비자의 요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부응코자 다양한 플랫폼이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소셜 마케팅은 이미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을 뿐더러 그 파워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마케팅 도구를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데 꼭 필요한 항해법과도 같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게리 바이너척은 구 소비에트 연방 벨라루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이다. 아버지의 주류 판매점을 물려받아 이를 크게 성장시킨다. 1998년 와인 매장의 연간 매출액이 4백만 달러에 불과 했지만 7년 후인 2005년에 연간 5천만 달러로 10배 이상으로 키웠다. 그는 자신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소셜 네트워크 도구들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 브랜드의 구축은 온라인 상에서 돈을 벌게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냥 대충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콘텐츠를 차별화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이전엔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잡지, 신문 등을 토대로 개인 브랜드를 구축했지만 신세대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온라인을 토대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개인 브랜드 구축이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리얼 타임으로 생생하게 자신의 이력서에 반영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어떤 콘텐츠라도 한번 입소문을 타기만 하면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고 멀리까지 퍼질 수 있는 환경이다"

(60 쪽)

 

매력적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소셜 네트워크 상에 올려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콘텐츠의 핵심은 바로 스토리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중개인이라면 집에 관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나무만 보도록 하지 않고 숲을 보게 만드는 것과 같다. 고객이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소통한다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콘텐츠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나는 콘텐츠를 만들어 이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포스팅하여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이다. 즉,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관심 분야와 관련 있는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에 의견을 달아 올가미처럼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미 진행된 대화에 끼어들어 대화 참여자들에게 자신을 팔로잉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경쟁에서 이기려면 진심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일을 남이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대충 그 까이꺼'라는 자세는 금물이다. 진정성이야 말로 성공을 위해 정열적으로 일하도록 만들어 주는 힘이다. 하루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닌텐도나 하면서 보낸다면 SNS로 돈 벌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며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콘텐츠 생산은 개인의 브랜드 구축에 있어서 가장 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에 해야 할 '커뮤니티 형성'이다. 이는 대화에서 출발한다. 새 동네로 이사했을 경우 이웃과 저녁식사를 같이하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할 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친해지게 된다. 온라인 세상에서의 커뮤니티도 이와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하며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형성은 많은 사람과의 대화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미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나를 팔로잉하는 친구나 팬의 숫자에 연연하지 마라. 이런 통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참여도와 형성된 관계의 질質이다. 대화의 질이 회원의 숫자보다 더 큰 의미이다.

 

공들여 만든 콘텐츠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방법을 알아 보았다. 초지일관의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대어가 미끼를 덥썩 무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바야흐로 캐시 플로우가 생길 것이다. 즉 광고, 강연, 제휴 프로그램, 상품 판매, 기사 투고, 세미나, 도서 출판,  컨설팅 등에서 수입이 발생한다. 하지만 재정적, 개인적인 성공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성실한 태도, 열정적인 삶이 훨씬 중요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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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별들의 고향>은 당시 대학가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다. 1970년대 초 고도의 경제 성장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소외감이라는 그늘을 안겼다. 반면, 성장의 대가로 지갑이 두툼해진 일부 계층은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다. 새로 등장한 향락산업이라는 거대한 조류는 현대판 기생들을 만들어냈다. 여성들에게 호스티스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된 것이다.

 

착하고 예쁜 처녀 경아는 가난 때문에 다니던 대학교를 1학년 때에 중도 포기하고 만다. 믿었던 남자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잦은 낙태의 경험은 그녀에게 불행의 씨앗이 된다. 낙태의 후유증은 그녀를 후천적 목녀로 만들고 말았다. 결국 남편에게 조차 버림을 받는다. 그녀는 기꺼이 호스티스의 길을 걷는다. 27살에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최인호의 연재 소설을 읽기 위해 신문을 샀을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동안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그는 암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달 여의 항암 치료로 손톱과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매일 20~30 매의 분량의 원고를 써내려갔다. 이 장편 소설이 탄생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K라는 이름의 남자가 3일 동안 겪게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K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마치 가짜 인생인 것처럼 혼란에 빠진다.

토요일 아침 7시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 그는 토요일은 출근을 하지 않기에 어제 밤 고교 동창인 H와 늦도록 술을 마셨고 귀가해서는 아내와 섹스까지 즐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갑자기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맞은 편 거울에 벌거벗은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번도 잠옷을 걸치지 않은 채 나체로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아내도 섹스를 할 때 벌거벗은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헷갈렸다. 면도후 스킨을 사용했다. 그런데,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낯선 제품이었다.

 

지난 밤 아내와의 섹스 때 아내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왔다. 마치 시체를 만지는 기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매주 금요일 밤 둘만의 '전야제'는 오래 전부터의 약속이었고 그렇게 즐겨 왔기에 아내도 분명 섹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몸에서 나오는 냉기는 나를 발기불능 상태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아니 왜 그래요' 

 

 

K는 담배를 피며 어제밤 기억을 다시 생각해본다. 얼마간 필름이 끊겼음을 알게 되었다. 21시 30분부터 23시까지의 기억은 깜깜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12시 호텔 예식장에서 처제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장인이 없다. 그런데, 장모 옆에 왠 남자가 서 있었다. 분실한 휴대폰을 습득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돌려받는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했다. 영화관 좌석에서 주웠다고 한다.  

 

K는 기억에서 사라진 1시간 30분의 행적을 영화관에서부터 찾아 나선다. 이별이란 현실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은 면도후 스킨의 사용같은 일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공간을 의미한다. K는 자신이 알고있는 현실로 돌아가려고 무척 애를 쓴다. 또한, 말투와 행동이 평소와 다른 아내를 통하여 현실이란 잊혀지지 않는 기억임을 그는 깨닫게 된다.

 

선의 화신인 지킬박사와 악의 화신인 하이드가 인간의 마음 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악한 본성을 더욱 악하게 만들 수있고, 선한 본성을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있는 약물을 발명한 지킬박사는 이를 복용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마침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하이드로 변신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도 1시간 30분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K는 또 다른 K를 만난다.

 

환락의 금요일 밤을 지나 처제의 결혼식이 있던 토요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성스러운 성당가는 일요일을 거쳐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월요일 출근에서 끝이 난다.

출근길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 9호선, 월요일 8시 14분, 이곳에서 그는 작별식을 거행한다. 이틀 동안 등장했던 인물들이 하나씩 그에게 인사하며 사라진다.

 

드디어, 나와 또 다른 나는 합체하여 온전한 'K'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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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Power -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힘의 논리
문재철 지음 / 글로세움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권력은 5년마다 바뀐다. 이 책은 정치 일선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저자의 바람에서 이 책이 탄생되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제이다. 시한부 정권이라는 속성 때문에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 

 

"권력이란 지나고 보면 한낱 뜬구름 같은 거죠.... 힘 있다면 벌떼, 아니 똥파리처럼 달라붙다다 힘 빠지면 어느새 그 많던 사람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15 쪽)

 

한때 정권의 실세였던 A씨의 말이다. 힘이 떨어지면 대통령 임기 막판에 장관직을 제의해도 사양하는 것이 권력의 종말에 찾아오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집권 후반기엔 여지없이 배신의 계절이 찾아온다. 권력의 누수, 즉 레임덕이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권력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YS의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이들은 투쟁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어서 6공의 퇴임 권력에 대해선 반격을 가했다. 초대 내각의 인선 원칙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조각의 첫 단추를 구경해보자. YS는 군부와 인맥이 없기에 평소 친분을 유지했던 육사 17기 이병태 전 장군을 장관급인 비상기획위원장으로 내정했다. 당시 호놀룰루 총영사로 근무 중이었다. 한편, 보훈처장으로 당초 내정된 인물이 강력하게 고사하는 바람에 귀국 중이던 이병태 총영사를 차관급인 보훈처장으로 급히 돌리면서 각료직에서 비상기획위원장 자리를 아예 빼버렸다.

 

"비상기획위원장이 빠진 채 문민정부 첫 조각 명단을 발표한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였지요" (55 쪽)

 

3공(박정희)과 5공(전두환) 때의 인물을 제외하고 사람을 찾으려니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그러자, 한완상은 서울대 간판이니 통일부장관으로, 한승주는 영어를 잘하니 외무장관으로... 식으로 조각했다. 내각 인선이 발표되자 언론은 집중포격을 가했다. 서울시장은 그린벨트 내 호화주택 파문, 보사부장관은 부동산 투기 의혹, 법무장관은 자녀의 국적문제 등으로 줄줄이 낙마했다.

 

야권의 총수로 오랜 세월을 보내며 YS는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로지 개혁과 청산에만 관심을 두었다. 군부의 하나회와 과거 핵심 정치인들의 청산, 이후 중앙청 건물의 철거를 감행하는 가운데 YS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급격히 시들어졌다.

 

"수십 년간 야당지도자였다는 특징 때문인지 독불장군식이었습니다"

- 한승주 전 외무장관-

 

문민정부 출범 4년 만에 인기도는 10%대로 급락했다. 이후 퇴임까지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권력은 유리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혼자 차지하면 독재요, 지나치게 쪼개지면 혼란스럽다. 집권 후반기에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이에 늦장 대응하면서 한국은 백척간두의 끝으로 내몰렸다. 문민정부는 이렇게 끝이 나면서 영원한 라이벌 DJ에게로 권력이 이동되었다.

 

 

DJ도 별반 다를게 없었다. 입으론 엄청난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DJ 역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집권 2년차 '옷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레임덕이 일찍부터 왔다.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까지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권 개입의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YS와 DJ는 자식들의 문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형의 문제로..., 결국 친족이 대통령과 정권을 망친 겁니다" (111 쪽)

 

DJ와 YS는 약속을 번복하면서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두 사람은 각각 14대, 1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약속을 지켰다면 DJ는 대통령에 불출마했을 것이고, YS도 내각제 총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과거부터 정치는 약속위반의 연속이었다. 퇴장 약속을 지킨 정치인은 몇 손가락 꼽을 정도이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우리 정치가 발전할 것이다.

 

 

10년 만에 보수진영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MB는 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역대 최대표차인 537만여 표차로 압승을 거두었다. 득표율 48.7%로 기업인 출신에게 표심이 몰린 것은 경제회복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바램이었다. MB는 취임사를 통해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다'하며 자신의 통치 방향을 천명했다.

 

MB정부 또한 출발이 순탄하지 못했다. 2008년 2월 초대 각료 예정자가 발표되었다. 후보자들의 부동산 과다보유, 투기의혹, 논문표절, 재산신고 누락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각계에서 여론이 들끓자 청와대는 일부 인사의 교체 카드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강부자'(강남-부자-자산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등의 정치 유행어가 확산되며 출범부터 상처를 받고 말았다.

 

MB의 의견수렴 과정은 독특하다. 그는 한 사람에게만 특정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홍보 담당이 홍보에만 매달리는 걸 견제한다. 홍보 담당이 있음에도 정무 담당에게 홍보 관련 아이디어를 구하는 스타일이다. MB는 자신을 중심으로 '방사형'리더십을 구사한다. 그래서, 업무 구분이 모호하고 상충되므로 뒤죽박죽인 문제점이 노출된다.

 

'피라미드'형 의사결정은 협의 과정에서 위로 갈수록 불필요한 의견들이 걸러진다. 의사결정이 느려지는 단점이 있긴해도 일단 결정된 후에는 잡음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잡음이 적다는 것은 구성원 간의 갈등요인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사형' 의사결정방식은 어느 쪽이 채택될지 모르는 무한경쟁을 촉발하게 되므로 잡음이 증폭될 우려가 매우 크다.

 

MB측 인수위원회의 원칙은 ABR이었다. 'Anything But Roh, moo-hyun', 노무현과의 단절과 청산에만 집착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정권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이 또 반복되었다. 이는 '내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논리와 동일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막판에 기자실에 대목을 박아 물의를 빚었던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다. 정작 MB는 정부 정책을 홍보할 창구가 없어진 셈이 된 것이다.

 

취임 첫 해에 부실조각, 쇠고기 촛불시위, 종교계 갈등,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 등 악재로 넘쳐났다. 통상 1년차의 난제들이 2년차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더하는 법이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2년차를 맞이 했지만 북한의 대남 위협이 극성이었다. 여기에다 경찰 특공대에 의한 용산참사, 전직 대통령의 자살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정치적으로 여야 간의 대화 부재, 사회적으론 공권력의 운영미숙, 남북관계에선 북의 도발과 위협 등으로 총체적 난국 상황이 재현되었다. 2년차 징크스가 여지없이 찾아왔다. 원망과 성토로 인해 벌써부터 통치권은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88년부터 시작된 대통령 직선제에 의한 '5년 단임제' 권력구조는 노태우-YS-DJ-노무현-MB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5번이나 이어지고 있다. 5년제 단임 정권에서 야기되는 공통된 패턴의 반복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단순한 학습효과로 여겨서는 안되겠다. 화려한 출발과 초라한 퇴장을 반복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민심은 언제나 선거를 통해 권력의 적절한 배분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명제에 충실한 것이다.

 

5년 단임제 때문에 정치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부의 엘리트 공직자와 산업계의 두뇌들도 '권력의 사이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글로벌 시대에 국가 경쟁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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