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별들의 고향>은 당시 대학가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다. 1970년대 초 고도의 경제 성장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소외감이라는 그늘을 안겼다. 반면, 성장의 대가로 지갑이 두툼해진 일부 계층은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다. 새로 등장한 향락산업이라는 거대한 조류는 현대판 기생들을 만들어냈다. 여성들에게 호스티스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된 것이다.

 

착하고 예쁜 처녀 경아는 가난 때문에 다니던 대학교를 1학년 때에 중도 포기하고 만다. 믿었던 남자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잦은 낙태의 경험은 그녀에게 불행의 씨앗이 된다. 낙태의 후유증은 그녀를 후천적 목녀로 만들고 말았다. 결국 남편에게 조차 버림을 받는다. 그녀는 기꺼이 호스티스의 길을 걷는다. 27살에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최인호의 연재 소설을 읽기 위해 신문을 샀을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동안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그는 암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달 여의 항암 치료로 손톱과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매일 20~30 매의 분량의 원고를 써내려갔다. 이 장편 소설이 탄생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K라는 이름의 남자가 3일 동안 겪게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K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마치 가짜 인생인 것처럼 혼란에 빠진다.

토요일 아침 7시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 그는 토요일은 출근을 하지 않기에 어제 밤 고교 동창인 H와 늦도록 술을 마셨고 귀가해서는 아내와 섹스까지 즐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갑자기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맞은 편 거울에 벌거벗은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번도 잠옷을 걸치지 않은 채 나체로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아내도 섹스를 할 때 벌거벗은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헷갈렸다. 면도후 스킨을 사용했다. 그런데,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낯선 제품이었다.

 

지난 밤 아내와의 섹스 때 아내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왔다. 마치 시체를 만지는 기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매주 금요일 밤 둘만의 '전야제'는 오래 전부터의 약속이었고 그렇게 즐겨 왔기에 아내도 분명 섹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몸에서 나오는 냉기는 나를 발기불능 상태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아니 왜 그래요' 

 

 

K는 담배를 피며 어제밤 기억을 다시 생각해본다. 얼마간 필름이 끊겼음을 알게 되었다. 21시 30분부터 23시까지의 기억은 깜깜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12시 호텔 예식장에서 처제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장인이 없다. 그런데, 장모 옆에 왠 남자가 서 있었다. 분실한 휴대폰을 습득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돌려받는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했다. 영화관 좌석에서 주웠다고 한다.  

 

K는 기억에서 사라진 1시간 30분의 행적을 영화관에서부터 찾아 나선다. 이별이란 현실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은 면도후 스킨의 사용같은 일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공간을 의미한다. K는 자신이 알고있는 현실로 돌아가려고 무척 애를 쓴다. 또한, 말투와 행동이 평소와 다른 아내를 통하여 현실이란 잊혀지지 않는 기억임을 그는 깨닫게 된다.

 

선의 화신인 지킬박사와 악의 화신인 하이드가 인간의 마음 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악한 본성을 더욱 악하게 만들 수있고, 선한 본성을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있는 약물을 발명한 지킬박사는 이를 복용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마침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하이드로 변신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도 1시간 30분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K는 또 다른 K를 만난다.

 

환락의 금요일 밤을 지나 처제의 결혼식이 있던 토요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성스러운 성당가는 일요일을 거쳐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월요일 출근에서 끝이 난다.

출근길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 9호선, 월요일 8시 14분, 이곳에서 그는 작별식을 거행한다. 이틀 동안 등장했던 인물들이 하나씩 그에게 인사하며 사라진다.

 

드디어, 나와 또 다른 나는 합체하여 온전한 'K'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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