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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커다란 벌레로 변한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벌레가 된 이유나 배경 설명은 없습니다. 그냥 벌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갑자기 벌레로 변한 상황은 기묘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매우 일상적입니다. 벌레가 된 남자는 여전히 출근을 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가족들은 여전히 하숙을 치며 돈을 법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소소한 사건들, 일상의 느낌을 철학적으로 풀어 쓴 에세이로,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관점에서 해석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일상의 삶에서, 영화를 보면서, 연극을 관람하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전시회를 보면서, 여행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철학적 관점에서 정리했다.
즉 ‘철학은 어떻게 삶의 의미가 되는가’, ‘또 다른 나에 관한 이야기’, ‘평범하게 비범한 우리들의 이야기’, ‘어떻게 세계를 볼 것인가’, ‘세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 총 다섯 파트에 걸쳐서 26가지 스토리가 소개된다.
스토리들 속에는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과학자 등이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헤겔, 니체, 러셀,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프로이트, 라캉 같은 심리학자, 그리고 아인슈타인, 밀그램 같은 과학자의 이론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이를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일상과 연결시키고 있다.
또 소설(이방인, 변신), 연극(고도를 기다리며), 영화(인터스텔라, 토리노의 말, 헤어질 결심, 셔터 아일랜드), 전시회(비비안 마이어展) 등을 통해서 철학 이론을 좀 더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이 편안하게 철학에 다가가고, 일상에 숨겨진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저자는 배려하고 있다. 어쩌면 계산된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저자 김필영은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대생 출신으로 회사원 생활을 거치면서 특이하게도 철학을 공부,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그는 어릴적부터 일상적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불안장애에 시달렸는데 이를 극복하고자 자연스레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부를 통해 불안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서울대, 한국외대, 기업체, 문화센터, 고등학교 등에서 왕성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유튜브 ‘5분 뚝딱 철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
200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프란츠 카프카를 꼽는다. 그의 소설은 스토리가 독창적이고, 분위기는 혼란스럽고, 문체는 독특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소설을 ‘카프카스럽다’라고 평한다. 그만큼 그의 독창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서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줄거리로 <변신>을 마치 다 읽은 것처럼 말하기는 곤란하다. 카프카의 <변신>은 섬뜩한 내용이다. 이는 현실과 판타지 그 중간 지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왜 이 소설에 금방 빠져들게 될까? 이는 정신과 관련된 것으로 우리의 정신이 평범한 의식과 비범한 무의식 사이에 걸쳐 있어서다. 즉 우리의 정신은 의식적이면서 무의식적이고, 평범하면서 비범하기에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둘 수 있다.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한 카프카는 체코인, 독일인, 유대인과 함께 섞여 살았다. 프라하 사람들은 대부분 체코인이었음에도, 유대인인 카프카의 부모는 카프카에게 독일어 교육울 받게 했다. 프라하의 상류사회는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카프카는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겪었다. 그는 체코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니고, 심지어 유대인도 아닌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상인이었으며 체격이 건장한 성공 지향형 인간이었다. 반면에 카프카는 병치레가 잦은 말라깽이로 성공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글이나 쓰고 싶어 했다. 이런 아들을 좋아할리 없던 아버지는 카프카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대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강요로 카프카는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노동보험공단에 취직했는데 이곳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소위 ‘신의 직장’이었다. 퇴근하면 카프카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밤새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변신>의 첫 문장
멘붕에 빠진 가족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방안에 가두었다. 여동생이 방 안에 음식을 가져올 때는 놀라지 않도록 소파 안쪽에 몸을 숨기면서 그럭저럭 살아가자 그동안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 대신에 아버지는 수위로 취직하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일을 했다. 한번은 화가 난 아버지가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져 등에 박히고, 이 사과가 썩어가며 그레고르는 음식을 거의 못먹는 상태가 되어 죽고 만다. 그레고르의 죽음은 가족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셈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대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논평을 했는데,
카뮈와 샤르트르~ 실존주의 소설로 해석
어떤 사람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를 보여준다고 해석
엘리아스 카네티(노벨 문학상)~ 아버지의 권력에 대항
김진영~ 카프카의 글쓰기는 아버지에 대항하는 방식
저자는 카프카의 <변신>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스토리는 닮았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형사 해준(박해일)은 어떤 남자의 추락사를 수사한다. 해준은 사망한 남자의 부인 서래(탕웨이)의 범행으로 의심하지만 자살로 사건을 종결한다.
수사 과정의 잦은 만남에서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게 되고, 서래 또한 해준을 향한 마음이 같았지만 형사와 피의자라는 관계에서 멈추고 만다. 시간이 흘러 둘은 다시 만난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래의 해준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형사와 피의자이다.
사랑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서래는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바닷가에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물이 차오르길 기다린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해준이 바닷가에 도착하지만 이미 물귀신이 되어버린 서래를 찾을 길이 없다.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왜 서래가 바닷속으로 들어갔을까?이다. 이는 해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바다가 바로 해준이었기에. 서래는 해준의 마음을 온전히 얻기 위해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건은 미제로 영원히 남고, 서래는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해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도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벌레가 되기를 선택했고 여동생의 피를 빨아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아버지는 이를 결코 모른다. 한창 성숙해진 딸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기만 한다. 비로소 그레고르는 아버지와의 투쟁에서 승리자가 된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정말 섬뜩하지 않은가 말이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1656년 작품)
1985년 미술 평론가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술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선정했다. 이는 17세기 스페인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1656년 작품인데, 이 그림은 공주와 주변 인물들을 마치 스냅 사진 찍듯이 그린 집단 초상화이다. 화가가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칭얼대는 어린 공주를 달래는 시녀들의 재미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몇 명일까요? 아래 사진은 선명하지 않아서 헤아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아무튼 총 11명이 등장합니다. 정가운데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고, 좌우로 2명의 시녀가 있어요. 오른쪽에 난쟁이 2명과 시종으로 보이는 2명이 있어요. 맨 위에 한 사람이 서 있고, 왼쪽에 화가 본인이 서 있네요. 지금까지 총 9 명입니다. 거울 속에 2명이 더 있는데, 왕과 왕비이므로 총 11명이 됩니다.
굳이 이 그림을 설명하자면 화가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는데 어린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놀러온 상황이며, 시녀들이 그림 그리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칭얼거리는 어린 공주를 달래고 있는 중이네요. 따라서 이 그림 속엔 두 개의 공간이 있어요. 하나는 어린 공주와 시녀들이 있는 공간, 다른 하나는 왕과 왕비가 있는 공간이죠. 거울을 배치함으로써 그림의 앞쪽까지 공간을 확대했다.
화가 벨라스케스(1599~1660년)는 단지 왕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것임에도 철학자들은 여기에 나름의 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년)는 이 그림을 ‘주체가 제거된 표상’이라고 평한다. 즉 왕과 왕비라는 주체가 빠지고, 그들의 눈에 비친 표상만 남았다는 거다.
하지만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1901~1981년)은 푸코의 해석에 반대하며, 이 그림에서는 주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적 주체와 무의식적 주체가 이중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고 평한다. 이를 설명하려면 아래와 같은 소실점이 대두된다.
이같은 철학적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은 엄청나게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벨라스케스는 왕과 왕비의 평범한 일상을 그렸을 뿐인데, 갑자기 철학적으로 비범한 그림이 되었다. 즉 화가의 평범한 의도에 비범한 해석이 붙으면서 <시녀들>은 평범하면서 비범한 그림이 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어떻게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는 격이다.
비트겐슈타인(1889~1939년)의 삶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철강회사를 소유한 엄청난 부자였다. 어느 정도였는가 알게 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브람스, 슈만, 쇤베르크 같은 음악가들이 비트겐슈타인 궁에 초빙되어 연주를 했을 정도였다.
이 집안의 가족들은 우울증 내력이 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형들 모두 자살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동성애자였는데, 당시 시대상으론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이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알려진다.
맨체스터 공과대학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하던 중 그는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쓴 <수학 원리>를 읽고수리철학에 매료되어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사로 근무하던 버트런드 러셀을 찾아가 철학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오스트리아군에 자원입대했다. 죽음과 대면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그는 퇴각 명령도 무시하고 용감하게 싸웠다. 놀라운 점은 포탄이 떨어지는 참호 속에서 글을 계속 썼다. 이글은 나중에 이탈리아 포로수용소에서 마무리되었는데, 바로 <논리철학 논고>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사놓은 미국 채권이 엄청 올라서 오스트리아 갑부를 넘어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돈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다. 전 재산을 자신의 형제와 지인들에게 나눠 주고 방 한 칸과 가구 몇 점만 소유했다.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를 출판한 후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시골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이에 러셀은 계속 캠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오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이때까지 비트겐슈타인은 학위가 없었기에 러셀은 <논리철학 논고>를 논문으로 박사 학위 심사를 했다. 그런데, 도무지 그의 논문을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나이가 많은 비트겐슈타인은 야전병원의 조수를 자원했고, 전쟁이 끝나자 또다시 운둔생활에 들어갔다.
1951년(당시 62세)에 그는 전립선암 선고를 받자 오히려 “아주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쩌면 평생 자살 충동에 시달린 고통스런 삶을 빨리 끝내고 싶어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
“사람들에게 내 삶이 참 멋있었다고 전해주시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이쉬워할까? 좀 더 즐기지 못했고, 불행한 삶이었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헸음을 아쉬워한다. 즉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닌 것이다.
삶의 의미를 되묻다
이밖에도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총 26가지 이야기를 다루면서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비범함을 찾기를 우리들에게 권한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평범한 일상에 대해 철학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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