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홋타 슈고 지음, 정지영 옮김 / 밀리언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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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유일한 것, 바로 오늘 하루 24시간이다. 성별, 외모, 나이, 능력, 자신, 사회적 지위 등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동시에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물음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머리말’ 중에서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은 아주 짧다.”

- 세네카/로마 철학자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아주 적절한 명언이다. 이처럼 시간의 가치를 강조한 명사들은 많다. 괴테는 ‘사람들은 현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른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오늘 하루는 내일보다 2배의 가치가 있다’, 데일 카네기는 ‘인생이란 지금 오늘을 말한다’ 등을 말했다. 또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시간 낭비만큼 커다란 손해는 없다’란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한번 지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해왔다. 우리 모두의 짧은 인생은 순간 순간 흘러갈 뿐이다. 그럼에도 딴생각으로 허송 세월을 할 것인가? 아니다. 하루 24시간을 필사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루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뭘까? 그 해답은 바로 ‘지금 눈앞에 놓인 일에 그저 집중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도서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지적하고 강조한 것처럼, 우리들은 도둑맞은 오늘을 되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눈앞의 일에 집중하면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와 매튜 킬링스위스는 지금 하는 일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논문으로 실렸는데, “행복에 필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지금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결론내었다.


우리들이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 엄청난 성취감, 만족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딴생각을 하지 않음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동물임에도 인간만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인간의 뇌가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지금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 아이로니하게도 행복도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멀티테스킹에 관해 요즈음은 피해야 한다고 경계령을 발동한다.


쓸데없이 정보를 모아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다양한 일을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어 정보에 의존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뿐 인생에서 창조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48쪽)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카피라이터가 있겠는가. 왜 우리들 앞엔 이처럼 많은 선택거리가 놓일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일라고 여겨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불안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먼 옛날 인간들의 불안감은 생존을 위한 무기였다. 캄캄한 밤에 언제라도 들이닥칠지 모를 동물들의 습격이나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 또 죽음으로 몰고가는 몸의 상처나 질병 등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주변 환경에 항상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이처럼 불안감은 생존을 위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유불급 상태이다. 불안해 하는 일의 90%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톰 보코벡 팀은 “걱정거리의 79퍼센트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6퍼센트의 사건은 미리 준비하면 대처할 수 있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걱정거리가 현실이 될 확률은 단 5퍼센트이며,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거나 적절히 준비하면 실제로 일어나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최고의 하루를 만드는 5단계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기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먼저 하기

뭘 할지 헷갈릴 때는 그냥 끌리는대로 선택하기

시간을 돈과 비용의 개념으로 계산하고 결정하기

집중력을 가장 높이는 일을 선택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수로운 메일이나 메신저에 답하고, 별로 필요하지 않는 지루한 회의를 하고, 아무런 이득도 없는 접대나 교제 등 긴급도는 높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귀중한 시간을 점점 빼앗아간다. 이렇게 강탈당한 나의 집중력을 되찾아야 한다.


(사진, 집중력 되찾는 법)


‘나는 내 의사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불안과 불만은 사라지고, 눈앞의 일에 더욱 집중해서 24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자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인 셈이다. 집중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직장인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자기계발 #집중력 #딴생각 #오늘도딴생각에빠진당신에게 #홋타슈고 #밀리언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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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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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며 대학교의 잔디밭을 거닐던 ‘나’를 한 관리원이 막아섰습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자갈길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거친 자갈길을 걸어 대학교 도서관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대학 측은 여자가 도서관에 출입하려면 연구원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불합리한 사회적 제재에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왜 여성은 남성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여성에게만 경제적 풍요와 안정을 누릴 수 없게 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민으로 뻗어 나갑니다.


원한다면 도서관은 잠궈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자유로운 나의 사유를 가로막을 문도, 잠금쇠도, 나사도 없습니다.


유명한 도서관이 여성에 의해 저주받았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대한 무관심이자 무지입니다.


순결이라는 것은 여성의 삶에 있어 여전히 종교적으로 중요하기에, 그것을 자유롭게 벗겨내어 세상의 빛으로 가져오려거든 특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 배경은 대영박물관으로 전환됩니다. ‘나’는 지식인이라 불리는 몇몇 남자가 여성에 관해 저술한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여성을 형편없는 존재로 규정하며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남성들을 그토록 당당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결국 ‘나’가 도달한 답은 ‘고정된 수입’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숙모의 유산이 있었습니다. 유산은 ‘나’의 앞으로 매년 500파운드(약 4,700만 원)가 지급되었고, 이 수입은 키 큰 남자의 고압적인 형상 대신 드넓은 하늘의 경관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에게는 삶을 유지할 수입이 없었습니다.


남성은 정복과 지배를 사명으로 삼습니다. 이때 인류의 나머지 절반인 여성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은, 그들이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되죠. 남성이 여성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원인을 ‘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0년대 말에 이런 선각先覺적인 시선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혜안인가. 여성들이여,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젠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과 비교할 때 약 1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려 한다. 처마 밑에 떨어지던 낙숫물 한방울 한방울이 꿈쩍도 않던 거대한 바윗돌에 큰 구멍을 내고 마침내 이를 부서지게 만들 듯 말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이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고전문학 #버지니아울프문장의기억 #자기만의방 #박예진엮음 #센텐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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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만필 - 야담문학의 새로운 풍경
정현동 지음, 안대회 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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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만필>은 지금으로부터 얼추 40년 전쯤인 1984년 어름에 처음 만났다. 연세대학교에서 고서를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작디작은 글씨로 단정하게 필사한 책을 보았다. 몇 년 사이에 들어온 듯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책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책을 앞 대목부터 읽어 보니 낯설고 재미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 서설 중에서




책의 저자는 지금까지 온전히 무명의 인물로 남아 있던 정현동鄭顯東(1730~1815년)이고, 지은 시기는 1812년이다. 그는 남인南人 사대부로 선대부터 경기도 광주廣州 경안慶安에 살았다. 같은 지역에 거주한 저명한 학자 안정복安鼎福의 문인이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재야 지식인으로 86세를 살면서 견문한 야담과 실화 194화를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야담과 필기로 구성되어 다른 야담집이나 필기류 저술에선 보기 힘든 새로운 이야기를 풍성하게 수록했는데, 상권에는 ‘이어라는 제목으로 86화, 하권에는 ‘고사古事’라는 제목으로 108화가 실려 있다.


비렁뱅이란 거지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는 비렁뱅이의 출세기를 다룬다. 충주에 사는 이씨 성의 한미寒微한 사람이 고아 하나만 남기고 죽었는데, 이 사람의 벗이 고아를 거두어 양육했다. 또 부모를 여읜 여자아이 하나가 있어 서로 엇비슷하므로 둘을 결혼시켰다. 그런데, 1년도 못되어 이 벗이 죽자 의탁할 곳이 없는 이생李生은 영남嶺南이 인심이 후하고 의식이 넉넉한 고장이란 말을 듣고 무작정 쪽박만 챙겨 아내와 함께 길을 떠났다.


웅천熊川(현재의 창원시 진해구 일대에 위치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고을에 이르자 이생은 아내를 시냇가에 남겨 놓고는 한 사대부 집에 들어가 점심밥을 구걸했다. 사내아이는 책을 읽고 있다가 점심밥을 다먹었다고 했다. 잠자던 노인이 소음에 깨어나 비렁뱅이의 밥동냥 얘기를 듣고 밥상을 내오라고 했다.


밥상이 나오자 노인은 이생에게 점심밥을 주었다. 이생이 받은 밥의 반을 쪽박에 나누어 담자 노인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데리고 온 아내 얘기를 들은 노인은 바로 여종을 불러 시냇가에 있는 여인을 모셔오라고 명했다. 이생의 아내도 점심밥을 잘 먹었다.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이생의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노인은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고서 이 고을에서 지내라며 비어 있는 집 한 채를 제공하고 양식거리를 보내 끼니를 해결토록 해주었다. 노인이 이생에게 글 읽기를 권하니 옛 문장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정식程式(표준이 되는 방식)을 대충 이해했다.


몇 년이 지나 임금이 친히 왕림하는 정시庭試(임시적인 특별 과거시험)가 시행되니 노인은 이생에게 상경하여 곽거에 응시토록 했다. 이생은 글재주가 부족하다며 사양했지만 노인은 노잣돈까지 주면서 그냥 한번 해보라는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이생은 밥을 사 먹기도 빌어먹기도 하면서 마침내 도성에 들어섰다. 딱히 갈 곳이 없던 차에 둘러보니 마침 길가에 장대가 가로질러진 문 하나가 보였고, 그 안쪽에 작은 마루가 하나 보였다. 지친 다리를 풀 겸해서 들어가 앉았더니 한 처녀가 중문中門 안쪽에서 이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이후 의관을 갖춰 입은 이가 이생에게 무슨일이냐고 묻자 영남땅에서 과거 보러 온 선비임을 밝히자 자신의 아우가 글씨에 능하니 함께 시험장으로 가면 좋겠다면서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아우는 호조 서리로 일하느라 과거를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금천 고을로 물러나 과거를 준비한다고 했다.


과거 시험 전날 집주인의 아우가 왔다. 한밤중에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을 반쯤 열고 종이에 싼 물건 하나를 던져 놓고 가자, 이생은 바로 주워 이를 소매 속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새벽 과거장에 입장했는데 시권試券(글을 지어 올리는 종이)을 제출할 길이 없어서 36계 줄행랑 궁리를 했다. 소매 속의 종이에 싼 물건을 꺼내 요깃거리를 먹고나니 시제試題가 내걸렸다. 이런 행운이 있을까. 요깃거리를 싸고 있는 종이는 개인 문집이었는데 제목이 시제와 동일한 두 편이 있었다. 이에 이를 몰래 베껴 쓴 다음 서수書手(과거장에서 글씨를 대신 써주던 사람)에게 넘겨 가장 먼저 답안을 과거장에 제출했다.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이생이 갑과甲科로 합격하고 집주인의 아우는 을과乙科로 합격했다. 참고로 최고득점자 3인을 갑과로, 차점자 7인을 을과로, 그 다음 득점자를 병과丙科로 나누어 석차를 매겼다. 이생은 하사받은 말을 타고 유가遊街를 하면서 저녁이 되어 주인집에 도착했다. 이미 동네는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이를 궁금히 여긴 이생이 집주인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집주인 부부가 친척 집의 혼례에 참석하고 딸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집에 귀가하자 딸이 새벽에 꾼 꿈을 말하길 ‘황룡이 하늘에서 내려와 작은 마루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낮이 되어 나그네가 와서 작은 마루에 앉았는데 똬리를 튼 황룡과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집주인은 용꿈은 우연이 아니어서 이런 경사가 생겼다며 딸이 침석枕席을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생이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내다 본 처녀가 바로 딸이었으며, 과거 전날 요깃거리를 싼 종이를 던지고 간 사람 또한 딸이었다. 이 딸은 이생의 첩이 되었다.


이생이 앞서 만난 노인 또한 사람의 관상을 잘 보아 비렁뱅이를 한번 보자마자 집에 머물러 지내게 하였고, 또 과거에 응시하기를 권하였다. 아! 길흉화복은 모두 미리 정해져 있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 볼 것이 아니다.


#야담문학 #만오만필 #정현동 #안대회외옮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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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과거와 달리 캘린더를 제작하는 기업들이 많이 줄었다.

거래하는 은행에 들러 캘린더를 얻으려 했더니 워낙 소량 생산이라 이미 다 출고되어 재고가 없다고 했다.

이제 남은 곳은 우체국인데, 집에서 가까운 우체국을 검색해보니

화전동우체국으로 지도상엔 5.6킬로미터 거리라고 나온다.

그래서 작년에 구입했던 허영만 식객 달력을 올해에도 인터넷서점에 주문했다.





식객食客 캘린더 겉표지






1월은 육회 3종 세트를 실었다. 허영만 화백의 그림과 함께 추천 레시피도 설명하고 있다.


2월 ~대구 내장젓

3월 ~ 된장찌개

4월 ~ 비빔국수

5월 ~ 갑오징어

6월 ~보리밥

7월 ~비단멍게

8월 ~오이소박이

9월 ~전어회무침

10월 ~한방차 황기맥문동차

11월 ~흙돼지구이

12월 ~어묵과 오뎅


♥휴가 때 이용하라고 이런 페이지도 있다.




#캘린더 #2024캘린더 #탁상용 #식객캘린더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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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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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부딪고 깨어지는 누군가의 희생이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남의 아픔을 보고 펑펑 울어도 보는 삶, 머리로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몸 깊숙한 어딘가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절실함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은 주인공인 임승남의 삶을 소개하는 에세이다. 그는 전쟁고아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과 나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남대문 지하도에서 앵벌이, 절도 등으로 사회의 어두움 속에서 지내면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과 7범이었다.


임승남이라는 이름은 삐뚤빼뚤한 선과 도형으로 시작되었다.(59쪽)


어느 날 공부를 한번 해볼까란 생각이 들어 연필을 깎아 ‘임승남’ 석 자를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연필을 깎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깎은 연필로 ‘임’자를 쓰려 하자 연필심이 부러졌다. 재차 연필을 깎아 쓰면 또 부러지고 이러길 여러 차례 반복하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꾹꾹 참아냈다. 교도소에서 아래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손에 힘을 주자 말자.

종이와 친해지자.

연필과도 친해지자.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담장 모서리에 피어 있는 국화꽃 한 송이가 보였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음지에서 꽃망울 하나라도 피워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교도소에 있는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꽃 한 송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애만 쓰다가 끝날지도 모르는 처지이기에.


1976년 8월 8일 대전교도소를 출소한 후, 사회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막노동이었다. 당시 친구들이 살고 있는 성북동 산동네의 방에 얹혀 지내면서 그들과 함께 신길동 개천 콘크리트 치는 현장에 작업나갔다. 벽돌과 시멘트, 모래의 무게에 종일 짓눌린 탓에 녹초가 되어 밤새 끙끙대며 잠을 잤다.


“넌 노가다 체질은 아니지. 어떻게 된 놈이 잡일 좀 했다고 밤새 끙끙거리며 앓니? 우리가 너를 잡는 줄 알았다.”(118쪽)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자 저자는 교도소에서 알게 되었던 정 형을 만나 오랫만에 회포를 풀었는데, 그는 퇴계로 인근에 위치한 태극출판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후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 두 근을 사들고 성남의 형 집에 직접 방문했더니 좀 놀라워 하는 눈치였다. 알고보니 중앙정보부의 감시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소개로 저자는 1976년 11월 초에 신당동에 위치한 태두출판사에 월급 3만 원의 영업 배본사원이 되었다.


이후 정 형이 근무하는 태극출판사 모임에 참석한 일이 계기가 되어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위치한 평민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 이직하게 되었다. 건국대학교 출신들이 주축인 회사였는데, 민청학련 사건(1974년)으로 구속 후 출감한 이해찬이 회사의 편집부 차장이었다. 나중에 이해찬의 소개로 출판사 과학과인간사의 영업부장으로 옮겼다(1977년 말).


‘서당개 삼년이면 농풍월弄風月’이란 말이 있듯이, 저자도 출판계에 종사하다 보니 최인호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등과 같은 좋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자, 이를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는 그에게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그는 전태일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인물 배포로 10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서울대 철학과 출신 ‘창호’라는 하숙집 메이트를 통해 알게되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내의 한 다락방에서 재단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개선해 보려고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기까지 했지만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자 1970년 11월 13일 온몸에 기름을 붓고 화염에 쌓인 채 노동법을 끌어안고 분실자살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사망한 지 몇 개월 지난 시점임에도 사회는 격변의 혼란기에 빠져 있었다. 1980년 1월 말, 몸 담았던 출판사 과학과인간사를 퇴직한 처지인 저자는 공장에 취업하려고 돌베개 출판사로 이해찬(하숙집에서 10개월 간 같은방에서 생활했음)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양 공장은 나중에 가고, 우선 출판사가 위기라며 자기부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저자는 돌베개 출판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독재자의 사망으로 서울의 봄이 찾아오나 했더니 김대중 내란죄가 불거지면서 이와 가까이 한 이해찬(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은 대학생들의 데모를 주동한 우두머리로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있었다. 이튿날 저자(당시 돌베개 부장으로 재직중)는 치안본부로부터 호출되었다. 이해찬 체포를 위해 은신처를 캘 목적이었다.


이후 재정난에 빠진 돌베개를 1981년 가을에 매각하려할 때 저자는 사무실 보증금 100만 원과 백색전화를 넘기는 조건으로 출판사를 인수했다. 어렵게 출판사를 꾸려가던 중 전태일과 관련된 원고를 읽고서 1983년 6월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부제, 전태일 평전)을 출간해 전국 서점에 배포했다.


그러나, 운동권의 시위주도와 친북 행적 작가와 종교인들로 인해 출판사엔 가히 폭탄급 조사들이 들이 닥쳤다. 이들 인사들과 가까이 지냈던 저자에게도 어두운 그림지가 드리웠던 것이다. 결국 그도 체포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법정에 섰다. 1989년 8월3일에 진행되었던 법정에서의 최후진술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려 한다.


‘저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깨닫고, 어둠 속에서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처럼 사회에 작은 보탬이나마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책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진, 뒷표지)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에세이 #이토록평범한이름이라도 #임승남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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