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는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집이다. 기분을 가볍게 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초반에 작가의 자유분방한 학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웃음이 터졌다. ‘학고(학사경고의 줄임말) 김중혁 선생의 학점을 비웃으려는 의도는 1도 없었다. 그가 얘기하는 방식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면 난 진심으로 같이 걱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위로와 격려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얘기하는 방식은 , 나 학사경고 4번이나 받았어. 그래서 F4. 근데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하는 식이다. 그래서 걱정해주지 않아도 잘 살 것 같고, 위로나 격려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할 것 같다. 밝고 씩씩하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학점이 웬만큼 잘 나와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오해하지 마시길,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엔 멋모르고 한 번 받았는데, 그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니까 못 받으면 부모님께 죄스러운 이상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에 밀려서 공부를 했다. 근데 내가 대학을 다닌 시기는 바야흐로 80년대 중반. 영화 <1987>을 본 사람은 알 거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격렬한 시간을 보냈는지. 그러니까 시험 때가 되어 공부를 하는 것이, 장학금을 받는 것이 이게 또 이상한 죄책감으로 작용을 하는 거다. 물론 나도 시위대 가장자리에 끼어보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뭐랄까... 내가 가짜인 것 같은 불쾌함이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괴롭게 했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참아가면서 공부하고, 불쾌감을 견뎌가며 대학을 다녔는데, 막상 졸업하니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냥 학점이 꽤 높은 대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좀 더 많은 일에 도전하고 경험을 쌓을 걸, 신나게 놀아보기라도 할 걸, 후회했다.


얼마 전에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라고 말한다.


작가는 고등학교 때 어렴풋이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국어국문학과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학과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는 학교를 대충 다녔다고 한다. 그때 학점관리를 안하고 시간을 충분히 낭비하며 뇌를 싱싱하게 유지한 것이 소설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현명한 판단이었던 거다.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학생인 이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사람들이 성적을 보면 얘가 성실한 아이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옛날엔 그런가?’했는데, 언젠가부터 말도 안 돼!’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지난번에도 어떤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 공부에 통 관심이 없는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면서 또 그 성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 심지어 하기 싫어 죽겠는 일에 성실하기가 쉬운 일일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3때까지 총 12년을(대학 4년을 더하면 16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한결같이 성실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12년간 성실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싫어하는 일을 12년 동안이나 성실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달리기는 지구력과 심폐기능 향상, 혈액순환에 좋을 뿐 아니라 인내심을 키워주는 훌륭한 운동이니까 앞으로 12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달리세요.’라면서 강요한다고 치자. 그게 사회적으로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매우 중요한 거라서 달리기를 잘해야 취업과 승진에 유리하고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치자. 난 달리기가 싫은데, 달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더러 불성실하다고 하고, 왜 최선을 다해 더 빨리 더 오래 달리지 못하냐고 재촉하고, 이대로 달리기를 못하면 내 앞의 인생이 깜깜해질 것 같고, 난 이미 틀려버린 건 아닐까 불안하고, 근데 난 달리기는 젬병이라 자주 다리에 쥐가 나고 발이 무거워진다면..... 난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어야 그나마 즐겁게 기꺼이 성실할 수 있다. 아이가 공부에 성실하지 못하다면 그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놈의 공부’, 그게 문제인 거다. 노력하면 뭐든지 다 가능하다고 말하지 마라. 아들딸이 엄마아빠는 왜 재벌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셔서 이 모양 이 꼴이세요,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아이에게 성실을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내가 그다지 성실하지 않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난 가끔 슬쩍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오기도 하고, 밥하기 귀찮으면 인심 쓰는 척 자장면 같은 걸 시켜 먹이고, 어쩔 땐 빨래가 밀려서 수건이 없다 양말이 없다 찾게 만들고, 종종 설거지거리가 쌓여있고, 자주 청소를 거르는, 그런 엄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누구에게 완벽을 구하랴.


실패해도, 시간을 낭비해도 좋고(경우에 따라 낭비를 권장하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이 모습대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고, 굳이 애쓰며 살지 말라고 말하는 이 책이 좋다. 게다가 작가는 웹툰 작가의 경험도 있어서 책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만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청년들과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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