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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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1990년대 초반에 동네의 작은 책방에서 <상실의 시대>를 만났었다. 갑자기 낯선 일본 작가(그때만 해도 하루키는 낯선 작가였다)의 소설책을 골랐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에 끌렸던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로 힘들고 불안했던 시기였으니까 상실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놓쳐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시대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 같은 것들을 제목에서 느꼈던 것 같다. (<상실의 시대>의 원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다 읽고 나서는 제목이 무엇이든 상관 없을 만큼 인상깊었다.)


그 때 읽었던 <상실의 시대>는 말할 수 없이 좋았지만 그 이후로 하루키의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다. 내가 읽은 것이라곤 <스푸트니크의 연인>,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정도다. 누군가는 <먼 북소리>가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하루키 하면 <해변의 카프카>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꼭 읽어 봐야한다고도 했지만, 내가 특별히 하루키를 피하는 것도 아닌데 읽어볼까 하면서도 자꾸 다른 책들한테 밀려나곤 했다.


그런 내가 어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읽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2013년에 <1Q84>를 읽고 리뷰에 아주 아주 단단한 밀도와 강도를 가진, 모서리가 날카롭게 빛나는 삼각뿔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라고 적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음,,,, 사람이 그런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런 글들을 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수긍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를 이글이글한 상상초월의 더위를 견디며 달리고, 100km의 울트라 마라톤과 25번의 풀마라톤을 완주하고, 사이클과 수영과 달리기를 해야 하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하고, 그러기 위해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달리고, 매일매일 더 열심히 글을 쓰는 하루키는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라고 말하고 있다. 근성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그의 문학적 성과를 떠나서 그의 근성과 삶에 열심인 모습만으로도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어떤 분이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고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루키의 소설을-겨우 몇 권 읽었을 뿐이지만- 읽을 땐 힘이 잔뜩 들어가지만 에세이는 좀 편안히 읽힌다. 하루키의 생각과 느낌과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정직(?)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하루키의 대부분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남편의 얘기로는 하루키는 재즈나 위스키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재즈나 위스키를 가지고 쓴 글들이 책으로도 나와 있다고 했다. 언젠가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서 술자리를 가졌을 때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인 데다 술기운까지 올라와서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하루키 때문에 내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게 됐지하며 창고에서 꺼내온 위스키 뚜껑을 따고 술잔들을 채우던 게 생각난다. (우리남편은 하루키의 달리기보다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더 인상적이었나 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그 이야기를 글로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하루키는 참 부러운 사람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256)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모습이 아름답다.


트라이애슬러를 준비하기 위해 사이클 훈련을 하는 하루키가 페달을 밟으며 똑같은 일의 끝없는 되풀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들이 그 지겨운 똑같은 일의 끝없는 되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이 책이 나온 게 2007년이다.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1949년생인 하루키는 어느새 일흔의 나이가 되었을 텐데, 아직도 매일매일 달리고 있을까?  아마 하루키는 여전하게 세상에 있는 어느 길을 꾹꾹 열심히 밟으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일의 끝없는 되풀이를 오늘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쪽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40쪽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87쪽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116~117쪽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작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의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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