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그 싹은 2개월이 되도록 별로 자라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7월이 되면서 겁나게 자라기 시작하는데, 자고 일어나 보면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더러 아무리 공부해라 뭐해라 하고 부모가 야단을 친들, 때가 아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어.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언젠가 자신의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기다려 인내하고 있어야지,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아야 '치맛바람'밖에 더 되겠니? 또 그 억지야말로 아이를 죽이는 횡포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제 너도 곧 학부모가 될 사람이니 명심하길 바란다.
---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가슴깊이 들어와 박히는 글.. 인내하고 기다리라..-37쪽
토종이 사라진 사회,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 자꾸 자꾸 되짚어 읽어보게 되는 구절.. 식물의 토종 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에서도 토종인간은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미 없고 삭막하기만 한 변종인간, 괴물같은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진 않은가.. 카프카의 변신에서처럼 나 또한 인간에서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이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짐승과 구분되어지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우리는 제대로 지켜가고 있는 걸까...-72쪽
이 두가지 원칙은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첫째, 실천의 중요성, 실천을 하되 지속성이 있어야 할 것. 둘째, 어떤 일을 할 적엔 반드시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그 일을 추진할 것.
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제로 하지는 않으면서 머릿속으로 쌓고 부수고 쌓고 부수고, 입으로 나불나불 대다가 세월만 보내었던가! 어떤 것이 좋아 보인다고 앞뒤 헤아리지 않고 그것에만 탐닉하고 좇아 다녔던가! "끈기를 가지고 행하되 조화와 균형 속에서!"
--- 딱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네.. 좀 하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거나, 열심히 한답시고 설쳐대다가 다른 사람과 균형을 못이루거나... 당겼다 풀었다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다른이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걸음을 맞추는 능력, 언제나 한결같을 수 있는 그 능력.. 언제쯤에나 그런 경지에 다가갈 수 있을런지..-74쪽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 우물을 파야겠다는 열성적인 힘이 나오기 위해선 먼저 갈증을 느껴야 한다는 말씀.. -76쪽
만(慢), mana(남태평양 연안 원주민의 언어로 형상 뒤에 숨어 있는 초자연적인 힘)의 한역, 영어로는 prkde, 또는 conceit로 번역된다. 아만(我慢). 자신이 남보다 훌륭하다고 망상하여 남에게 뽐내려 드는 방자한 마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학식이나 용모, 혈통 등 자신이 갖고 있는 조검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는 마음은 교(驕)인데 반해, 만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 낫다고 느끼는 본능적 심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교는 우히려 조복(調伏)을 받기 쉽다고 하겠으나, 만은 그 뿌리가 깊고 미묘하므로, 인간의 해탈을 막는 열가지 족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마지막 족쇄에 속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해야 비로소 완전히 소멸된다. 범어의 원래 뜻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자의식(self-conception)을 가리킴. 慢, 요즘 내가 지고 다니는 화두이다.
--- 교만, 그거 무섭더구만. 겸손하게 한결같이 성실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겨.. 어딘가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 그런 사람이 어딘가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살이에 참 큰 힘이 될텐데.. 내 앞에 본보기로 삼을 누군가가 앞서 걷고 있다면 그 뒤를 쫓아가기만 하면 될텐데..나이들수록 삶은 왜 복잡해져만가고, 스스로를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견디기 힘들어지는지. -99쪽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평형(動的平衡)' 상태라는 것이지. 사회가 평화롭다,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고 할 적에는,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 정말 그렇다. 그저 평온하고 고요한 것만으로 평화라 부를 수 없다. '안보면 그만'이라는 식의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니까.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나와 상대가 일치에 이르는 충만상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가보다. 세계평화는 언제쯤 가능해질까? 가능하기나 한가?-109쪽
나는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연요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 물흐르듯, 순리대로 살아가야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나이 탓일까? 내 뜻대로 해보겠다고 아둥바둥거려봤자 내 계획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이만큼의 나이가 필요했던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약삭빠르게 잔머리 굴려봤자 결국 손해라는 걸 알기까지, 그래서 나름대로 너그러워지고 털털해지고 있는 내모습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156쪽
그런데 그저 대상을 오래 바라본다고 해서 관찰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란다. 대상의 각 부분을 서로 비교 대비시켜 가면서 바라보아야 관찰력이 강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대상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사람더러 보지 않고 그것을 설명해 보라(또는 그려 보라)고 하면 탁 막혀 버리는 것을 종종 본다. 관찰하는 데 있어 시간은 별로 중요한 변수가 못된다. 관찰력이 탁월한 사람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 주어져도 단번에 대상의 특징과 디테일을 잡아낸다. (중략) 세상일 또한 그렇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래. 겉으로 보기에 소문이건 자신의 직접 관찰이건 간에 아무리 그럴듯한 사람일지라도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함께 뒹굴어 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설사 같이 산다고 하여도 십 년이 지난 뒤에야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 한길 사람 속을 모릅니다.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살게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보게 될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이, 또는 내가 상대방에게 보여주게 될 새로운 모습이 흉하고 보기싫은 모습이 아니라 좋은 모습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230~232쪽
남을 결코 비판하지 않고 자기 잣대로 남을 몰아세우지도 않는 사람들, 남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이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트러블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을거야.
--- 이해는 되는데, 그렇게 살기는 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그렇게 사는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우리 사회를 이미 알아버려서겠지.. -234쪽
평생을 부엌과 텃밭에서 일하셔야 했던 우리 어머님들의 인고와 희생이 단지 남성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했다면 그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없다. 말없이 그것을 견뎌 낸 여인들의 깨달음의 깊이를 지아비들은 도저히 넘겨다 볼 수 없을 것이거늘, 손에 물 묻히는 행위를 미안해하기는 커녕 수치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여전히 막강하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특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에 우리 여인들의 고달픔은 식구들의 웃음소리에 반비례할 뿐이지.
--- 공감 백배!!! 결혼하고 살림을 하면서 느낀 점. 절대로 어떤 이유로라도 한 가정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거.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가정은 주로 여인들의 희생을 제물삼아서 (특히 며느리들) 행복한 가정 혹은 말썽없는 가정을 이루어간다. 여인들이 다 떨쳐일어나는 날엔 온전할 가정이 몇이나 되랴.. 쯔쯔쯧.. 요즘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 다 이유가 있느니..-246쪽
사회 전체가 이렇게 경제 논리에 의해서 점점 타이트하게 조직되어 가니 기존의 다소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생활양식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느낌이야. 대신 물질은 풍부하니 먹는 것, 입는 것 따위를 고급으로 해서 문화적 상실감을 대신하는 거지. (중략) 이것이 발전인가? 발전은 발전이지. 옛날에 비해서 두 배로 바빠지고 머릿속에 쌓이는 스트레스도 곱으로 늘어나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되돌아볼 여유가 더욱 없어져서 탈이지. (중략) 자본주의는 세계화를 이룬 가장 경쟁력 있는 제도이지만 비인간적이라는 것이 문제야.
--- 세탁기에 전기밥솥, 냉장고, 컴퓨터, 식기세척기,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자동차, 전철, 비행기... 생활이 옛날보다 훨씬, 그것도 엄청나게 훨씬 편리해졌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바쁘고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지.. 어떤 이가 그러더군. 원시시대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들보다 여가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자본주의 경쟁사회..갑자기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 왜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서로 짓밟고 올라서느라고 난리를 치던 애벌레들이 생각나네.-253쪽
특히 여기서 공동체야말로 막강한 제국주의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회구조다,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지금 WTO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농업이 살아날 길이 뭐냐 할 때 저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이 사회가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은 아무런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제가 감옥 들어가기 전까지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 지역공동체.. 가능할까? 이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쟁사회에서 공동체라는 조직이 과연 형성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왜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까? 공동체가 조직되고 제대로 돌아가려면 사회전반적인 제도나 의식들이 재정비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주 근본적인 밑바탕에서부터..-274쪽
그래서 농업문제만큼은 전국에 있는 시민단체나 개인들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고 인색을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도 그렇고 전교조도 그렇고, 경실련이니 할 것 없이, 자기 나름의 생태농장을 가져야 합니다. 농업팀을 다 꾸려야 합니다. (중략) "농업문제는 자기 자신이 해결한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책임진다."앞으로 방법이란 이것밖에 없다고 봅니다. 농업을 상업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 요즘 한창 FTA 때문에 말들이 많다. 난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 지금도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농업에 대해선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농촌현실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농업문제를 내문제로 삼으란다. 옳은 말씀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 막연하다. 그냥 자급자족을 외치던 간디만 생각난다. 농부들에게 미안한 생각만 든다. 자연농법, 유기농법의 농산물을 사먹어야 한다는 걸 알고 그러고도 싶은데, 사실 주머니 사정이 따라가질 못한다.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진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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