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
엄혜숙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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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킁킁>
루스 크라우스(Ruth Krauss)글/마르끄 씨몽(Marc Simont)그림/ 고진하 옮김/비룡소1997

이 한권의 그림책에는 한 편의 드라마가 들어있다. 그 드라마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반복적이고 점층적인 글,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에 의해 진행된다. 그림은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간결한 글이 제시하는 플롯에 풍부한 표정을 담아 표현한다. 글이 서사적, 시간적 진행을 맡았다면, 그림은 묘사적, 공간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110쪽

<알도>
존 버닝햄 글,그림/이주령 옮김/시공주니어1996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어린시절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웠을까? 아니다.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으며,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런데도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의 어두은 기억을 새까맣게 잊고 밝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어한다. 왜 그럴까?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수많은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어른이 된 지금은 행복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행복했고 언젠가는 또 행복해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니까.
어른들에게 '실제 어린이는 이렇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알도>이다. 영원한 어린이 존 버닝햄은 이 그림책에서 어린이의 생생한 생활과 내면을 보여주고, 어린이 눈에 비친 어른들을 보여준다. -112쪽

존 버닝햄이 <알도>에서 보여주는 어린이 세계는 '늘 행복한 어린이'라는 환상을 깬다. 어린이도 이 세계의 일부이며, 폭력에 노출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런 어린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외로운 존재인 '나'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나'사이, '현재의 나'와 '내가 꿈꾸는 나'사이에 상상의 친구이자 특별한 친구인 알도가 있다. -118쪽

예술은 '형상적 인식'이라고 한다. 개념이 아니라 감성적 표현을 통해 삶을 인식하게 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알도>에서 우리는 예술에 다가가는 그림책, 인간에 대한 인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림책을 발견한다. <알도>는 어린이를 다시, 바로 보게 해준다. -119쪽

<리디아의 정원>
쎄어러 스튜어트 글/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시공주니어 1998

관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변화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변화는 늘 일어나며 삶에서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변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또 아이들에게 변화의 의미는 무엇일까?-120쪽

여기서 리디아의 정원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 험난한 세상을 경험한 주인공이 한결 풍부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꽃이 만발한 옥상, 즉 리디아의 정원은 아름답게 성장한 리디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결국 리디아는 정원을 통해 괴팍한 외삼촌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주인공 리디아는 일하는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일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디아는 집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기보다는 낯선 곳에서도 자기가 집에서 즐겨 하던 일을 지속함으로써 자기동일성을 유지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만들어지고 표현되는 것이다. -129쪽

<곰인형 오토>
토미 웅거러 글 그림/이현정 옮김/비룡소2001

곰인형 오토의 시점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자기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곰인형 오토가 늙어버린 다비드나 오스카처럼 안경을 쓰고 타자기 앞에 있는 모습을 보라. 아이는 어른이 된다는 것, 아이의 세계도 어른의 세계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 아이 속에 어른의 씨앗이 들어있고 다 늙은 어른 속에 아이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긴 세월 속에서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지 않는가. -163쪽

<프리다>
조나 윈터 글/아나 후안 그림/박미나 옮김/문학동네 어린이 2002

예술이나 예술가에 관한 지식을 담은 어린이책은 많아도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어린이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술가가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책도 드물다. 예술에 관한 지식보다는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예술가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림책 <프리다>는 멕시코 여성 화가인 프리다 깔로(Frida kahlo,1907~54)의 생애를 통해 예술가의 내면 풍경과 예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190쪽

이처럼 프리다는 그림 그리는 일을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 행위란 자신을 탐구함으로써 감추어져 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새롭게 발견한 삶의 진실을 타인과 공감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기에 예술 행위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공공적인 것이다. -196쪽

어린이문학도 문학인 이상 작품의 진실성을 통해 독자를 감동시켜 끼달음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 이 점에서는 일반문학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어린이 문학은 일차 독자를 거일ㄴ이로 상정함으로써 이에 따른 조건과 제약을 지닌다. 어린이문학의 가장 큰 제약은 어린이의 제한된 생활 경험과 인식 수준일 것이다. 어린이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생활 경험의 폭이나 인식 수준이 낮다. 이런 조건과 한계 속에서 어린이 문학은 독자인 어린이의 정신적, 사회적 성숙에 이바지 해야 한다. -236쪽

어린이 그림책이 어른에게 즐거움을 조는 이유는 단순한 형식에 풍부한 내용, 즉 다의성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몇장 안되는 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욕구를 표현되고 삶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을 본다. 어린이는 덜 자란 어른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세계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어린이 책은 어린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어린이만을 다룬 어린이 그림채은 한 권도 없다. 어린이는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림책 속에는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등장한다. 마치 짧은 시 한 편이 삶의 진면목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그림책 또한 삶의 한 단면을 압축해서 잘 보여준다. -240쪽

어른과 아이가 이와같이 그림책을 함께 읽는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음으로써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 어른은 아이의 세계를 잘 이해하게 된다.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책을 통해 만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하게 된다. 나아가 좀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남으로써 더 큰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림책 함께 읽기야말로 '가족 책읽기(Family Reading)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는 '가족 책읽기'와 가장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부모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겠다는 의도보다는 아이와 그림책을 읽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는 의도가 더 크다. 책을 갖고 함께 하는 가족 놀이인 것이다.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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