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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12월이 되자마자 추위가 득달같이 몰아쳤다.
아이들은 그 추위 속으로 걸어나가 학교를 갔고, 남편은 출근했다. 나는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들 추위를 무릅쓰고 자기 일을 하러 갔는데, 나 혼자 보일러까지 틀고 따뜻한 집안에 있기는 양심에 걸려서
보일러를 끄고 옷을 껴입고 수면양말을 찾아 신고 따뜻한 커피를 끓이고 내내 굴 속에 들어간 겨울 곰처럼 지냈다.
얼마나 좋을까.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찐 다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겨우내내 따뜻한 굴 속에서 잠을 잔다면. 그리고 피둥피둥 쪘던 살은 다 말끔히 사라지고, 잠을 충분히 자서 피곤도 말끔히 사라진 밝고 건강한 얼굴로 새로 봄을 맞이한다면.
해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난 곰을 부러워했다. 추위 앞에서 끈질기게 곰을 꿈꾸는 걸 보면 나는 웅녀의 직계후손인 게 틀림없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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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된지 3일째. 오후에 눈발이 날렸지만 추위는 누그러졌다. 자료조사를 위해 구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연체되어 반납해야 했고, 목요일 문학교실에서 쓸 책을 대출해야했다. '문학교실'보다는 '책놀이교실'이라는 명패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수업(?)을 위해 눈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3권을 골랐다.
<눈 결정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는 과학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글도 적당하고 아름다운 눈 결정 사진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용감한 아이린>과 <눈 내리는 하굣길>에서 눈은 아이들이 극복해야할 재난으로 등장한다. <용감한 아이린>에서 아이린은 엄마가 만든 드레스를 공작부인에게 전달해야하고, <눈 내리는 하굣길>에 나오는 꼬마 유이는 우산도 장갑도 없이 쏟아지는 큰눈을 뚫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둘 다 아이의 용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용감한 아이린>보다는 <눈 내리는 하굣길>이 더 공감하기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3월에 시작한 책놀이교실은 중간에 그만 두는 아이 하나 없이 계속되었고, 이제 12월 4회차 활동만 남아있다. 내년에는 책놀이교실을 원래 맡아 하시던 분이 돌아올 예정이라 난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 책놀이 선생님이다. 그만둬야 하는 게 아쉽냐고 묻는다면.. 글쎄.. 별로..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건 다행이지만, 아이들의 책 읽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서질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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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플. 앱을 깔까 말까.. 고민하다가 깔지 않기로 했다. 난 이 서재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았다. 이 서재 하나도 잘 가꿔가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또, SNS가 좀 피곤하달까..
심지어 나는 요즘 '묵묵부답', 이 네 글자로 된 낱말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질만큼 카톡으로 말하기가 싫어졌다.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고려해볼 때, 북플은 무리다.
책으로 모이는 그 세상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겨울동안은 굴 속에서 잠자는 겨울곰처럼 조용히 있어야겠다.
봄이 되면 또 모르겠다. 굴 속에서 기어나와 소근소근 도란도란 들리는 말소리를 따라 북플을 시작할지도.
겨울동안 굴 속에서 읽어볼까 하고 책장에서 뽑아놓은 책은,
책장 속에서 오랫동안 묵히고 묵힌 겨울곰 같은 책들.
어렵고 무거워 보이는 책들. 읽다가 졸며 자며... 읽기에 딱 좋은?
너무 재미있는 책은 겨울곰의 잠에 방해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