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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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서영재라는 젊고 발랄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책 분석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내 거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뽀개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 작품은 오락이고 휴식이에요. 고통은 작가가 쓰면서 충분히 받았을 테니까 나는 즐기는 거죠. 시간과 돈을 투자한 독자의 위엄입니다. 하하하” (35쪽)

생각해보면 정말 즐기면 그 뿐인데 나는 왜 또 꾸역꾸역 리뷰를 쓰겠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이 곳을 출판물 가락시장이라고 부른다. 글쟁이들이 농사짓듯 써낸 많은 원고들이 이곳에서 책으로 다듬어져 전국으로 유통된다. 이제 책의 운명은 독자의 몫이다. 날로 먹든 가공해 먹든, 삼으로 죽을 써서 개를 주든, 파뿌리를 구워 임금님 상에 올리든, 작가는 그것에 토를 달 수 없다. (63쪽)

그러니까 내가 이 밤에 컴을 켜고 책상머리에 앉아 이러고 있는 건 책을 요리해 먹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

 

『완득이』로 처음 만났던 김려령이라는 작가가 19금 성인 소설을 썼다는 말이 들렸다. 김려령 작가가 쓴 책이라면 첫 책 『완득이』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아서인지 기대감을 갖고 꼬박꼬박 챙겨 읽는 편인데 지금까지『완득이』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래서일까.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라면 완득이만큼 강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훅 밀려오는 감동이라든가 가슴 속에서 한동안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뭔지 모를 단단한 알맹이 하나를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어린이나 청소년 책을 비하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책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제약이 있을 테니까, 다 큰 성인을 상대로 이야기를 한다면 작가 입장에선 더 자유롭게 막힘없이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섣부른 짐작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것 같다.

 

마흔여섯 살의 미남 작가 정수현은 삶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불행한 사람이다. 삶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제대로 끼워져야 할 단추는 바로 가족일 터. 따뜻하고 다정하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태어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고 태어난 거나 다름없다. 비록 살아가는 날들 내내 그럴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유년의 행복한 기억이란 얼마나 값진 것일까. 불행하게도 정수현은 지독하게도 운이 없었다. 책에서는 정수현을 개천에서 난 용으로 표현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나온 곳은 개천이 아니라 수렁이나 늪인 것 같다. 빠져나오려고 기를 써보지만 결국은 붙잡히고 마는. 태어났더니 난 이미 살갗 밑에 불행이라는 진피가 하나 더 끼워져 있더라,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도저히 벗겨낼 수 없는 불행이다.

어머니는 아내가 보통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 정신 똑바로 차려. 여자는 골라도 어머니는 못 고른다고 했어. 발에 채는 게 여자라도 어머니는 하나라고! ......어머니, 내가 고른 사람도 아닌데 평생 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머니인 건 어떠세요? 발에 채는 여자는 좋으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면 되는데, 발에 스치기도 싫은 여자가 어머니라고 딱 붙어 있는 건요?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까지 어머니일 당신, 숨이 막힙니다. (51)

숨막히는 어머니도 그랬지만 갈비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터질 정도로 자신을 두들겨 패는 형이나 그 형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아버지도 수현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였다. 더 불행한 건, 다시 고쳐 끼울 수 없는 첫단추라는 거다.

 

수현의 아내는 모래바람 몰아치는 사막 같이 황량하고, 남극의 겨울처럼 차갑다. 이 여자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레 이리 꼬이고 가시가 돋았을까, 궁금했지만 끝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나름의 아프고 고달픈 상처가 있었겠구나 짐작할 뿐. 그래도 용기내어 수현의 사랑을 얻고자 했던 것 같은데, 캄캄한 밤 차갑게 내리는 '습설'같은 삶을 살아온 수현에게 아내는 또 하나의 습설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집에는 늘 이길 원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첫 자살시도를 막은 건 그런 죽음이 곁에서 벌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까다로운 작가에게도 직업적 친절을 보여야 하는 편집자의 자세, 그것으로 아내를 살렸다.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을 안 아내가 끝내 목숨을 버렸다. 많은 사람이 요절한 아내를 애도하고 아내를 잃은 나를 위로한다. 나도 아내를 애도한다. 그러나 사랑은 아니다. 목숨으로 흥정하는 사랑은 죽어서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다. (64)

 

그렇게 숨막히게 답답하고 눅진하고 무거운 나날을 살아가던 수현 앞에 서영재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영재라는 인물은 가장 도드라지는 매력을 갖고 있다. 수현에게는 영재가, 아마도 온통 눈앞을 가리며 내리던 습설 속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는 동그란 해님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라 했던 수현에게 영재는 싱싱하고 밝고 따뜻한 삶의 면면을 열어 보여주었던 것이다. 수현이 영재의 집을 찾아갔던 날 보았던 노란 패브릭 커텐처럼.

왜 웃어요, 사람 말하는데. 나야 워낙 개 같으니까, 이 새끼 작업 들어갔구나 하고 마는데, 아시잖아요, 글 쓰는 애들 은근히 순진한 거. 가끔 선배님이 하도 유명하니까, 작가답지 않게 좆나게 예쁘게 생겼으니까, 아 뜨거워, 아 씨, 이 담배 왜 이렇게 짧아.”

주유소에서 받은 물티슈로 영재의 손가락을 감쌌다.

왼손. 검지와 중지 안쪽으로 작고 붉은 반점이 돋았다.

이거 봐, 이거! 막 벌렁벌렁해. 이렇게 해서 꼬신 애들 몇 명이에요? 왜 자꾸 웃어요!”

너 예뻐서.”

예쁘죠, 얼마나 예쁘냐면요, 내가 눈가에 주름만 없애면 십대로 회춘한대서 성형외과에 갔잖아요. 나는 단지! 주름 하나 없애려고 갔는데, 거기 간호사 언니가 환자님은 이마랑 눈이랑 코랑 팔자주름이랑, 그러면서 자꾸 나보고 환자래. 내가 아주 중환자였더라고! .......왜 자꾸 해장국이 술처럼 올라와. 내가 지금 어디 아파서 환자는 돼봤어도, 못생겨서 환자 돼보기는 처음이야. 이거 의료보험 적용해야 해. 타인의 생명에 지장이 있어. 나 보는 순간 안구에 치명적인 피해가 간다고! , 우리 엄마 맨날 골골대더니만 못생긴 병에 걸린 거였어. 가족력이야. 왜 자꾸 웃어요? , 그래, 선배님 얼굴은 건강하다 그거죠? 만수무강하세요. , 손 따가워.” (47쪽)

영재가 쓰는 이 언어의 싱싱함이란. 수현은 이런 영재의 말을 '영재의 목소리와 어투가 결합하면서 발생한 화학반응으로 말의 온도가 올라간다. 영재가 따뜻한 이유다.'(101쪽) 라고 했다. 사랑에 대해서 영재는  '사랑은 잘 놀고 있는 고무줄 끊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무거운 쓰레기통을 살짝 들어주는 거거든.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헛갈리게 굴지 않는다고. 고무줄 끊는 건 진짜 나쁜 놈도 하잖아. 사랑은 앞뒤 잴 것 없이 명확한 거야.” (117쪽) 라며 수현을 예쁘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표지의 그림이 말하듯, 수현의 삶에 잘못 끼워진 첫번째 단추, 절대로 다시 고쳐 끼울 수 없는 그 첫 단추는 수현을 음산하고 끈끈한 수렁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수현은 영재와의 사랑이 아프다. '내가 바란 건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101쪽)이라고도 하고,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103쪽)라고 하면서 견디기 힘든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은 왜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고 뭐 하나라도 손에 거저 쥐어주는 게 없는 것인지. 첫번째 단추는 운이 없었더라도 두 번째나 세 번째에서 제대로 끼워서 다시 하나씩 하나씩 잘 끼울 수도 있는 걸 텐데 말이다.  너, 영재 사랑해? 그래, 그럼 그동안 네가 잘못한 거 다 용서하고 없던 걸로 해줄 테니까, 이제 착하고 예쁘게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수현은 영재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디쯤을 계속 분주하게 오간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엉켜 있어서 긴장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번 더 읽으면 이야기의 깊은 속을 좀 더 잘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끌리는 소설은 솔직히 아니었다. '와, 재미있다'와 '와, 감동적이야' 사이의 어중간한 자리에 붕 떠있는 소설이랄까. 그저, 수현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약간의 고단함과 그 고단함을 이기고도 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을 뿐이다. 삶을 온통 사랑으로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내가 그릇이 작고 품도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하고 명확하고 밝고 따뜻한 무언가가 늘 내 가까이에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나 자신이라면 더 좋고.

그것은 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지 않은 모든 만약의 길은 후회와 미련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삶을 지키며 잘 살아내길 바랄 뿐이다. 살아 있는 당신에게 행운이 가닿길.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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