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료의 우리 나라에서 몇 권이나 출간되었는지 찾아보니 대충 20 여 권이 되는 것 같다. 마니아층도 꽤 두터운 듯 한데, 난 <연금술사>랑 <순례자>, 달랑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코엘료의 작품들이 싫었던 건 아닌데, 글쎄,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코엘료의 문장들이 너무 그럴듯한 게 좀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마치 종교윤리도서를 읽고 있거나 까마득한 경지에 다다른 은수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말씀 한 마디 놓치지 않게 조심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이 책은 <연금술사>나 <순례자>보다는 그 느낌이 조금 덜 했지만.

이 책을 독서모임에 추천한 분은 도서관 관장님이다. 관장님 말씀으로는 요즘 코엘료의 책을 보면 '코엘료도 이제 좀 기운이 빠졌구나'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이랑 <11분>은 엄마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욕망하는 식물>로 잠시 현기증을 느꼈던 엄마들이 비교적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한대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책을 읽어왔다.  

선생님은 이 책이 엄마들이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각자 이 책에서 찾아낸 주제를 말해보라고 하셨다. '고정관념 탈피', '틀의 파괴', '자기 존재감 찾기',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욕구' 등등을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이 책이 근대 서양철학에 근거해서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면서 준비해오신 프린트물을 나눠 주셨다. 그 프린트물에는 인식론과 해석학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을 개념으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서양사상에 대해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서양철학이 자기반성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는 해석학이 대두되었는데, 따라서 해석학에서는 '보편적 결론'이라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생님은 현대는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고, 따라서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세상에 대한 '나만의 눈', '나만의 인식'이 중요한 시대라고. 그리고 개별성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서양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덧붙여 죽음에 대한 자각은 현대종교의 역할이고 세상은 아직도 사람을 똑같이 재단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아진다면 그 순간 자기의 존재이유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가"는 질문을 던지셨다.  

너무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고 다들 어쩔 줄 몰라했다. 지금까지 '특별한 나'를 찾기 보다 '평범한 나'에 만족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냥 남들 틈에 눈에 띄지않게 살짝 '묻어가는 인생'이었다는 자괴감.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셨는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특별함'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해 보라고 질문을 고쳐주셨는데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당황하며 자신만의 개성과 엉뚱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사람들을 만나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기는 하다. 그걸 콕 찝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선생님은 책 속의 문장들 몇 개를 짚어주셨다.  
'중요한 건 옳은 답이 아니라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니까.' (p.128) 
그리고 241쪽의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부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합니다.'까지다.(내가 문장을 전부 적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내게 이 책이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보충해 써놔야지!)
128쪽의 문장은 사람을 똑같이 만드려는 세상에 재단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겠고, 241쪽의 이야기는 개인이 가진 '특별함'에 대한 글인 것 같다.
선생님은 이 문장들을 인용하시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세상과 같아지려는 고민과 닿아있는 건 아닌지 조심해서 살피라고 주의를 주셨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부분이라면서 '자아'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주부들의 독서모임, 사실 가볍게 가려면 한없이 가볍고 쉽게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림하고 애들 키우느라 좁아져버린 주부들의 사고의 차원을 끌어올려주려고 매번 애써주시니,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다음엔 노래하는 시인 백창우 선생님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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