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 차이코프스키 발레극
수자 햄메를레 지음, 김서정 옮김, 페터 프리들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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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이다.  아무 구분도 없이 흐르는 시간을 누가 1년 12달 30일 24시간 따위로 구분을 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효율적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늘 이맘때쯤이 되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따위에는 점점 시큰둥해지는데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에는 나날이 예민해지는 것 같다. (나이 많은 티를 내지 말란 말이닷!)  그래도 한 해 마지막 달 끄트머리에 축제처럼 끼어있는 크리스마스가 좀 위로가 된다고 할까.  크리스마스엔 누구나 착해지고 싶고, 누구라도 사랑해주고 싶고,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 순간 한 번쯤 반짝, 웃을 수 있으니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추석 때 춘향전 보듯이 늘 보이는 공연이 있다.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발레 공연이다.  발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직접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없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귀에 익숙하다.  우리집 세 녀석들도 어디선가 '디베르티스망'이나 '꽃의 왈츠' 같은 곡이 들리면 나름대로 아는 척을 하는데, 문제는 그 음악을 듣고 떠올리는 장면이 디즈니사의 오래된 작품 <FANTASIA>에서 본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디즈니의 FANTASIA는 아이에게 굉장히 효과적으로 음악과 영상을 남겨놓는 것 같다.  움직이는 영상과 음악이 '시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무엇보다 제작된지 굉장히 오래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알기로 1960년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의 동작과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제목대로 환상적이다.   그런 FANTASIA를 어릴 때부터 자주 보고 들으며 자란 탓에 '호두까기 인형'에 실린 곡을 들으면서도 '호두까기 인형'보다 FANTASIA에 나오는 요정들이나 춤추는 버섯과 엉겅퀴(?)꽃들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덥석 골라 잡은 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출간되는 미술관련 책들의 양에 비해서 음악과 관련된 책들은 그 양이 좀 적은 편이다.  그 중에서 몇 권을 구입해본 적이 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청각에 의존해야 하는 음악을 텍스트와 조화시켜야 한다는 근본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글과 음악의 조화에 대한 문제를 글에 CD 트랙번호를 표시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처음에 아하, CD를 틀어놓고 나오는 곡에 맞춰서 글을 읽어주면 되겠구나, 했다.  CD에 담긴 곡이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가운데, 곡에 맞춰 글을 읽어주다 보면 글의 내용에 맞춰 음악을 듣게 될 줄 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착각. 




 

 

 

 

 
위의 사진을 보면 트랙번호 11, 12, 13 번이 줄줄이 연달아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문장 하나에 곡 하나.  특히 트랙번호 11번은 다양한 장식춤 '디베르티스망'이어서 러닝타임이 11분 33초다.  글 한 줄 읽어주고 11분 33초를 멍하니 있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결국 그림책을 통째로 먼저 읽어주고 음악은 따로 듣는 수밖에.  좀 아쉬웠다.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음악 그림책은 리즈베트 츠베르거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백조의 호수>다.   그 책에도 페이지마다 CD 트랙번호가 악보 한 줄과 함께 나와있다. 이 책도 CD에 수록된 곡과 글을 맞추어 읽어주기가 힘든 걸 보면, 글과 음악의 조화 문제는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이 책 하나만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글에 음악을 맞추려다 보면 음악을 뚝 잘라서 짧게 들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음악에 글을 맞추려면 글이 길어져서 자칫하면 아이들이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그래서 말인데, 음악 관련 그림책은 당연히 CD의 음질이 좋아야 하고, 글이 음악에 담긴 이야기의 내용을 잘 그려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이가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난 후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더 책의 내용에 빠질 수 있을 만큼 그림이 좋아야 할 것 같다.  '언어'로 표현된 이야기는 아이 가슴 속에서 그림,음악과 만나 더욱 풍부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쥐와 장난감 병정들의 전투장면, 설탕요정의 궁전 안의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섬세한 느낌의 그림은 내가 봐도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호두까기 인형' 곡을 들었을 때 이 장면들이 연상될지 궁금하다.  이야기 따로, 음악 따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방식의 음악관련 책들은 만드는 데서부터 세밀하고 섬세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음악적 지식을 넣어주겠다는 욕심없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소개해 준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그것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에 말이다.  이 책으로 인한 작은 성과 하나를 말하자면, 며칠 전에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 할인 티켓을 보고 유빈이가 "어, 이거 나 아는데.."했다는 것.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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