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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009.11 -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지다. 줄여서 '작아'라고 불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이런 잡지가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다. 운좋게 내 손 안에 들어온 이 잡지는 11월을 '눈마중달'이라고 불러주는 게 정겹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문패를 내건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녹색연합이 펴내는 잡지니까 물론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테지만, 계간도 아니고 격월간도 아니고, 매달 잡지를 펴낼만큼 환경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걸 기뻐해야할까, 속상해해야할까.
11월의 특집은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 특집 기사 부분부터 찾아 읽어보니 전자제품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환경적으로 올바르게다. 그러고 보니 전자제품에 대해서 점점 다양해지는 기능들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법을 '사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의 사용법에 대해선 '플러그 뽑기'정도만 알 뿐이다. 실천도 제대로 안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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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주인에게 7년만에 퇴출당하는 오남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컴퓨터가 그들이다. 구입해서 쓰는 동안만을 생각했지 버려진 전자제품들의 처리문제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아파트에서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 얌전히 내다 놓으면 알아서 수거해가는 게 대부분이고, 재활용 센터에서 수거하지 않는 물품에 대해서만 스티커를 사서 붙이면 그만이니까. 퇴출당한 오남매를 통해 더러는 중고시장을 통해 새 주인을 만나기도 하고, 더러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혀 다른 쓰임새로 활용되기도 하며(여기선 냉장고가 책꽂이로 변신한다), 또 더러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라는 것 에 의해 회수되기도 하고, 또 더러는 그냥 버려지고, 더러는 해외로 수출이 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건데, '생산자가 제품을 생산할 때 재활용 단계까지 고려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산자 쪽에서 회수, 재활용, 폐기처리 등을 물건의 생산단계에서 미리 고려하도록 만든 제도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생산자에게 떠맡길 수는 없는 법.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 번 산 전자제품을 오래오래 잘 쓰는 게 환경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꾸만 크고 기능이 새로운 것으로 전자제품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꼬집는 글도 있다.
'남자 대 전자제품'에서는 '사회적 웰빙'을 지칭하는 로하스가 우리 나라에선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면서 가전제품의 경우 대형화로 치닫고 있음을 비판한다. 심리학자 디히터에 따르면 여성들이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에서 '남성성'을 느낀다는데... 힘세고 든든한 남편을 원하듯 크고 유능한 가전제품을 소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걸까? 예전에 아는 분 집에 갔는데 거실에 17인치 TV가 있었다. 그 앙증맞음에 놀랐고 슬림한 벽걸이 TV가 대세인 오늘날에 17인치 TV로 떳떳할 수 있는 그 분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글에선 그런 생활을 '스스로 하는 소박한 생활'이라고 했다. 1936년 그레그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삶의 불필요한 외형과 치장을 피하고 삶의 모습을 단순화하여 살자고 주장했단다. 193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더 덜어낼 것도 없는 소박한 시대일 것 같은데 말이다.
이 글은 <아름다움의 권력>이라는 책을 쓰신 박은아 님이 썼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다.
전기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세상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에너지를 찾는 사람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SBS 스페셜 <인간동력> 다큐멘터리를 취재했던 유진규 씨에 대한 기사였는데 기사 제목이 "인간동력, 내가 에너지다'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간의 걸음으로 핸드폰이나 MP3를 충전하는 장면을 얼핏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그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다.
'인간동력이 즐겁고 재밌다면 사람들은 움직일 것이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으면 된다'는 그의 말에 희망이 느껴진다. 사무실에서 쓸 55와트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30분씩 페달을 밟는다는 미국인 데이비드 부처씨는 "일년동안 만든 전기가 바로 뱃살인 거죠."라고 말했다는데, 뱃살을 에너지화 한다는 아이디어에 난 무조건 찬성이다.
이 사진은 아프리카에 설치된 '플레이 펌프'란다. 놀이기구가 하나도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플레이펌프를 돌리면서 하루종일 노는데, 회전 한 번 하는데 물이 1리터에서 많게는 150리터까지 나온다고.
아이들은 놀아서 좋고, 물 생겨서 좋고, 에너지 절약되어서 좋고... 인간의 두뇌는 이렇게 쓰여야 하는 건데 말이다.
아프리카 곳곳에 쳔 여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플레이 펌프를 돌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사진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다.
속으로는 "물을 아껴야지, 물을.."하는 죄책감도 살짝 들었다.
본론이다. '전자제품사용설명서'. 5대가전 텔레비젼,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컴퓨터를 시작으로 주방가전인 김치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음식물쓰레기처리기, 전기밥솥, 생활가전에 속하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청소기, 드라이어, 비데, 계절가전인 전기난로, 온풍기, 전기장판, 선풍기 총 19개의 전자제품들에 대해서 소비전력, 한 달 전력소비량, 소비성향, 환경문제, 생태적 사용지침이 세세하게 실렸다. 찬찬히 읽고 있자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럴 때보면 나도 그다지 착하게 살아오질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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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은 어김없다. '2011년 세계 유기농 대회' 개최지로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팔당의 유기농단지가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앞두고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내몰리면서 존립이 어렵다는 기사가 실렸다. 30년 동안 이뤄온 유기농단지를 갈아엎고서 정부가 만들겠다는 게 자전거도로, 야영장, 야외 음악당, 야외 공연장 같은 것들이란다. 기사를 읽는 나도 속이 상한데 당사자들은 어떨까. "다행히 팔당지역 문제는 지면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국정감사에서까지 말이 나오니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국에는 또 다른 '팔당'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팔당 농민의 글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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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나보다. 환경공학과 환경계획학을 공부하고 기후변화 행동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있다는 김미형씨가 쓴 시론을 보면 가끔 사람들이 그런단다. "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커다란 국책사업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태복원 관련 누리방에 정부가 올린 글을 보고는 국가차원에서 환경복원 사업을 하고 있냐며 관심을 보이는 생태복원 전공 외국인 친구도 있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사업을 벌이는 주체가 워낙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도 않고, 지들끼리 들떠서 좋아 난리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신경안정제 주사라도 한방 센 걸로 놔주고 싶은 기분이다. 에휴,,, 그만하자. 이젠 진저리가 난다.
무거운 환경 이야기만 실린 건 아니다. '할아버지 모릎에 앉아서'라는 꼭지는 참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어린 세대가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과 만나는 자리다. 이번 호에는 세상 종말이 두려운 혜진이란 아이의 글이 실렸다. 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해주는 대답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뭐 땜에, 너무 아득해서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걸 가지고 골치를 아프게 해? 혹시 일부러 골치 앓는 게 취미라면 또 모르겠지만....(중략)... 당장 오늘 밤 자기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그 전에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안 해도 될 걱정을 껴안고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좀 우습구나..... (중략)... 너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괜히 겁 먹지 말고 오늘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나 잘 하거라. 아니면 동무들과 신나게 놀든지."
아이 입장에서는 졸지에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아이' 취급을 받은 게 억울하달 수도 있겠지만 독자입장에서는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어둔 밤에 길을 가려면 등불 하나만 있으면 돼.'라며 오늘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을 할아버지의 정감있는 손글씨로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 할아버지의 존함은 이 현자, 주자. 혹시 동화작가가 아니신지???
100쪽이 살짝 넘는 얇고 가벼운 잡지지만 들어있는 내용들은 묵직하고 알차다. 늘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환경문제들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고 흥청망청 단계에 이른 우리 삶을 점검하기에도 적당한 것 같다. 환경과 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까이해 볼만한 잡지일 듯.
E.F.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자발적 가난>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생각만 하지 말고 정말로 읽어보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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