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잃어버리고 이만큼 멀어지고 나서야 그게 빛나는 것인 줄 알았다.  반짝이는 그 안에 머물러 있던 동안에는 그게 빛인 줄도 몰랐다.  은행나무는 빛나던 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비오는 날 하늘도 도시도 회색빛으로 흐릿하게 번지던 저녁무렵 홀로 황홀한 노란빛을 내뿜으며 서있는 은행나무를 본 적이 있다.  모두가 흑백인 사진 속에서 따로 칼러를 따서 붙인 것처럼 온 세상에서 은행나무 하나만 빛깔을 갖고 서 있어서 그 은행나무가 혹시라도 쓰러지는 날엔 온 세상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청춘, 그게 바로 비 내리는 쓸쓸한 가을 저녁에 홀로 빛나는 은행나무 같은 거였다.  청춘의 시기를 건너온 사람들 가슴마다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한 그루씩 우뚝 서있을 것이다.  그 은행나무에 기대어 내 삶에서 빛나던 한 순간이 있었음을 위로받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 청춘의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 이만큼 지치게 걸어와 돌아본 나는 이제서야 그 빛남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여기, 이 회색의 칙칙한 하늘 아래 저만치에서  반짝 노란 불을 켜고 서있는 은행나무는 반갑고 따뜻하고 조금 슬프다.  아니, 슬픈 건 여기 서 있게 된 나다.



표지의 노란 은행잎이 그 순간을 연상시키고, 그 앞의 벤치에 나란히 단정하게 앉은 흑백의 두 남자.  한 사람은 목에 카메라를 걸친 백발의 노인이고 한 사람은 검정 교복의 학생같아 보이는데, 서로 너무나 닮았다.  뒤 표지에서는 두 사람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앉아있던 벤치에는 노인이 매고 있던 카메라만 덩그라니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이라는 명성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빼고는 일본 문학에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의 이름이 내 책읽기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저 표지의 눈부신 노란 빛, 그 앞에 흑백의 부동자세로 앉은 두 남자를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라는 유치하고 감상적인 이유가 전부였다.   

지도 상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 마을 가스미초 아자부 10번지엔 쇠락한 사진관이 하나 있다.  개점 휴업 상태인 그 사진관에는 어용사진가이자 명장이라 불리던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데릴사위로 들어와 가업을 잇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고등학생인 나, '이노'가 있다.  소설에서는 현재를 살고 있는 '나'가 1960년대 쯤의 자신과 가족,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 이야기가 저 표지 속의 은행나무를 닮았다.  내가 생각해오던 은행나무의 이미지와 너무 비슷해서 책을 읽다가 멍하니 내 안의 은행나무를 기억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불안하고 치기어렸던 시절.  무모하고 지나친 감정소모로 쉽게 지치곤 하던 그 어디쯤에서 난 어른의 세계로 훌쩍 건너와 또 이만큼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 속 이노는 어디쯤에서 조금씩 불안한 청춘의 시기를 넘어서 어른의 세계로 가는 다리를 건넜을까.  할머니가 멋진 노신사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지저분한 수로에 던져버렸을 때일까.  아니면 후두암에 걸린 할머니가 가족들이 깨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혼자 병원을 향해 꼿꼿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일까.  어쩌면 여름날 함께 어울렸던 선배 료코와 도키타의 죽음을 알고 영혼을 만나러 음침한 터널을 찾아갔을 때인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고 멍청해보였던 선생 해리가 떠나던 날 '굳바이'라는 말대신 '쌩큐 해리, 씨유 어게인'이라고 인사하던 순간.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졸업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에 친구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던 순간, 서로 너무나 다르고 티격태격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호흡을 맞춰서 꽃전차 사진을 멋지게 찍어냈던 함박눈 쏟아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애지중지하던 카메라 라이카를 손에 들고 스튜디오 등나무 의자에 앉은 채 할아버지가 숨을 거둔 날, 삼촌 신이치가 전쟁으로 군에 끌려가던 날 라이카의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고백....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일, 모든 순간들이 고등학생인 '이노'를 성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겠지, 하며 쓸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건 모든 것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사라진 도시 가스미초처럼, 내가 다른 이름의 다른 거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여운이 향기처럼 남는다.  그것도 지나간 추억,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시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틋한 재생불가능의 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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