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쯤이었나? 책고르미에서 작가 공부를 하면서 크리스반 알스버그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진작 정리를 해두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노느라(?)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거다. 내가 크리스반 알스버그의 책을 처음 만난건, 그러니까 1990년 대 초쯤이 아닐까 싶다. 그 때쯤 군복무를 마친 남편이(물론 그 때는 남편이 아니었지만!) 미국 산타바바라에 사는 친구에게 한달 정도 놀러갔었다. 그 때 '선물로 그림책을 사다달라'는 내 부탁에 사다 준 책이 크리스반 알스버그의 <JUST A DREAM>(번역책으로 <이건 꿈일 뿐이야>)이었다. 그림만 보고도 환경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좀 거부감을 느꼈던 터라 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나 <폴라 익스프레스>, <주만지> 같은 작품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덩달아 관심을 두게 되었던 작가다.
크리스반 알스버그는 1949년 6월 18일에 미국 미시건주의 작은 시골마을 그랜드 래피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버터와 치즈를 가공하는 낙농장을 운영하셨는데, 그 때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살던 집은 버지니아 리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집이었다. 그 후 크리스가 세 살 무렵, 변두리에 있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초등학교 6학년 무렵까지 살았는데 주변에 들판과 강, 연못 등이 있어서 피라미나 개구리를 잡기도 하고, 밤에는 반딧불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다음에 이사한 집은 튜더 스타일의 오래된 벽돌집이었는데, 길가의 느릅나무 가로수가 거대하게 자라서 가지가 반대편 도로에 닿을 만큼 장관을 이루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폴라 익스프레스>에 그 가로수 길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고 한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고등학교 때 미술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미술보다는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미시건 주립대에서 입학담당관이 나와서 우수한 학생들을 면담하고 그 자리에서 입학을 허가하기도 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도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지원학과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입학담당관의 책상 위에 있는 학부목록에서 'college of A & D'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입학담당관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입학담당관은 건축과 디자인 학부라고 대답해 주었고, 크리스는 그 학부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학담당관은 크리스가 미술 수강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크리스는 자기가 사실은 토요일에 학교 미술 수업보다 더 나은 레슨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1967년은 미술학부에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지 않고 입학을 허가했던 마지막해였고, 입학담당관을 멋지게 속인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미시건 주립대 미술학부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매우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결정이었던 셈.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조각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작업실을 차리고 전시회도 몇 차례 열었다. 1975년에 같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초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있는 리사 모리슨과 결혼을 했는데 아내 리사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를 그림책 작가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리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림책을 이용하곤 했는데, 남편의 드로잉을 보고는 이야기책의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을 뿐 아니라 보스턴의 한 편집자에게 크리스의 드로잉을 보여주면서 그림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결혼 후 늦게, 1991년에 첫딸 소피아가 태어났고, 1995년에 둘째딸 애나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크리스는 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코로 리코더를 불어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해주는 재미있는 아빠가 되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자기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뭐냐고 물으면 "My Next One"이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더 나아질 거라는 가능성에 희망을 두고 있는 작가라는 뜻일게다. 그래서인지 2006년도에 나온 <프로버디티!>를 보면 그림의 양감이나 질감이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 든다.
그의 작품 중에는 흑백 톤을 가진 그림책과 색를 쓴 그림책이 섞여 있다. 그 이유는 어떤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머릿 속에 그려지는데, 그 이미지가 흑백으로 떠오르느냐 컬러로 떠오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지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 본인도 모르시겠단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그 경계가 모호해서 교묘하게 섞이는 그 부분에서 미스터리한 색채가 강한 그의 이야기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판타지에 성격이 강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낯선 판타지가 독자에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란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크리스의 첫작품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나오는 불테리어 종의 '프리츠'라는 개다. 이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 '프리츠'를 찾아 볼 수가 있다. 어떤 작품에선 액자의 사진으로, 또 다른 작품에선 소품으로, 장난감으로, 아주 다양하게 등장한다.
<압둘 가사지의 정원>을 만들 당시 처남의 개 '윈스턴'을 모델로 했는데, 이 개와 크리스의 사이가 아주 각별했던 모양이다. 마치 조카같았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불행히도 윈스턴은 아직 강아지 티를 벗지 못했을 때 사고로 죽고 말았고, 이후 크리스는 그의 첫작품에 모델이 되어 주었던 공로를 기리며 모든 작품에 불테리어 종 하얀 개를 그려넣고 있다.
그의 작품을 모조리 늘어놓고 모든 작품에서 "프리츠찾기"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나는 특히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라는 책에서 찾느라 꽤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작품은 1979년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서 2006년 <프로버디티!>까지 총 20권의 책이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4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책은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되었다. 그 책은 탄생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배경을 안고 있다. 미국에선 아이들의 글쓰기 교재로도 쓰인다는데, 정말 웬만한 상상력 없이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1982년 <주만지>, 1985년 <북극으로 가는 기차>로 칼데콧 상을 받았고, 1980년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다.
작품에 대한 소개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아무리 내일이, 아니 오늘이 일요일이라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고, 무엇보다 정신이 혼미해오기 시작한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다음에 정리하자. 그나저나 내일, 아니 오늘 아침은 뭐해서 먹나... 이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