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글쎄... 이 소설을 읽으며 제일 먼저 느낀 건 뭔가 확인되지 않는 모호함이었다. 일반적으로 소설 속에선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뚜렷하고 인상적인 인물이 등장해서 우리에게 잠시 환각현상과 비슷한 간접경험을 하게 해 준다거나, 아니면 평범함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고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 숨겨진 의미들이 작가에 의해 거침없이 까발려져 아주 명료하게 드러나 보인다던가... 그래서 읽고 나면 사는 것이 좀 더 다르게 보이는.. 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소설 안에서는 모호한 인물들이 그들이 처한 일상 속에서 모호한 사건을 만나곤 한다. 그런 이유로 난 글을 읽으며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확인되지도, 설명되지도, 이해할 수도, 명확한 원인을 들이댈 수도 없는 모호한 이유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망가지거나 개인적인 일상의 영역이나 꿈들이 깨지는 것을 나는 <하나코는 없다>, <열 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물방을 음악>, <전쟁들:집을 무서워하는 아이>, <전쟁들:숲 속의 빈터>에서 보았다. 그 특유의 모호함 때문에 소설의 의미가 내게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면서 오히려 글의 의미들이 그 영토를 넓혀가는 인상을 받았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이 모호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산다는 일 자체가 참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 중에 과연 '이거다!'하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랴... 날마다 반복되어 평범하기 그지없고 그 반복의 두께만큼 너무 견고하게 느껴져 답답하기까지 한 나의 이 일상이 따지고 보면 깨지기 쉬운 텅빈 유리상자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설명할 수도, 누구의 탓이라고 명확히 꼬집어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들로 우리의 일상은 상처를 받고 위기에 몰리기도 하며 때론 가차없이 부숴지기도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사실적이고 명료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했다. 작가는 깨지기 쉬운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평범한 일상을 아무 생각없이 깨뜨려 버릴 수 있는 '나'라는 개인 주변의 사회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일상을 깨뜨리는 사회 속에 있지는 않은가... 최윤이라는 작가는 내게 모호함을 통해서 내가 미처 볼 수 없었던 명료함을 던져준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