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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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님의 그림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늘 김동성 님의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이런, 또 당하겠군, 싶었다.  어린이 책답지 않은-이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표지 그림.  표지에 코를 바싹 대고 후읍~ 숨을 들이마시면 오래된 책들에서 나는 독특한 그 향내가 가슴 속에 꽉 들어찰 것만 같았다.  강력한 마력을 가진 김동성의 그림이다.  게다가 제목까지 ‘책과 노니는 집’이라니....‘책’이라면 마구 친한 척하고 싶은 이 몹쓸 버릇과 막연한 동경심까지 겹쳐 올해는 꼭 인터넷 서점의 일반회원으로 내려가고 말리라는 작심이 흔들리고 말았던 거다.  그렇게 내 의지의 나약함을 확인시키며 내 품에 안겨온 책이다.

1800년대 천주교의 탄압과 박해가 이 이야기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신유, 기해, 병오, 병인의 4대 박해 등 구구절절한 탄압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역사동화라고 할 수 있지만 역사적 사건이 지나치게 부각되거나 이야기를 휘어잡고 흐르지도 않는다.  천주학에 관한 책 『천주실의』를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에 끌려가 매를 맞고 숨진 필사쟁이 아버지를 둔 장이라는 소년의 성장 쪽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계책방 최서쾌와 심부름꾼 장이, 도리원의 미적과 낙심이와 청지기, 서유당의 홍교리는 자기가 몸담은 그 시대를 견디며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격랑의 시대를 운명처럼 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비장하다거나 영웅적이지 않다. 그러나 무력하고 소박한, 한없이 작은 사람들의 용기가 역사를 바꾸는 그 시대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가슴이 짠해진다.

사건을 일으키는 허궁제비라는 인물의 인상이 좀 흐릿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쉬웠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서학의 기준으로 볼 때, 포악무도한 허궁제비도 ‘불쌍히 여겨야 할’ 존재이기 때문일까?  기생 미적이 자신을 괴롭히는 허궁제비를 ‘불쌍하다’고 한 것도 어떤 특정한 사연이 있어서라기보다 성서상의 원죄를 진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가엾게 여김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  그래서 ‘불쌍한’ 허궁제비는 안개 자욱한 미궁 속을 헤매는 것처럼 뚜렷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그림도 글도 아름다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서유당 홍교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책에 대한 말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를 테면 『논어』『맹자』같은 책들이 너무 어렵다는 장이의 말에 홍교리는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p.53)라며 위로한다.  또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사 모으냐고 장이가 묻자 홍교리는 “책은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p.78)고 대답한다.

‘이제 책을 그만 사야지..’하고서도 이 책을 보고는 덜컥 사버린 -그것도 사는 김에 몇 권 더 사버린- 나로서는 정말 따뜻한 다독거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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