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롱비치라는 곳이 있다.  그 동네가 얼마나 험악한지 길 가다 언제 총 맞아 죽을지 모르는 살벌한 분위기에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백인과 흑인, 남미계와 아시아계 사람들이 서로 편짜고 총싸움을 벌이고 부모가 마약에 빠져 자녀를 나 몰라라 내팽개쳐두고, 살인과 폭력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아이들도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를 버텨내며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도 힘든 끔찍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바로 그 곳에 ‘윌슨’이라는 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그 구제불능의 아이들에게 에린 그루웰이라는 신참 선생님이 있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변화는 진심이 통하는 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루웰 선생님은 친구를 놀리려고 인종차별적인 그림을 그리며 좋아하던 아이들을 꾸짖다가 아이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공들여 준비한 수업 계획을 포기하고 ‘관용’을 학습목표로 삼고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한다. (우리 청소년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알고 있을까?) 부모에게조차 애정 어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격려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 서서 냉철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가는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그린웰 선생님의 국어수업이 진행되는 203호 교실을 ‘진정한 내 집’이라고, 그 교실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자신들을 믿고 후원해주는 분들에게 기꺼이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진심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현장학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호텔 접수계 일을 하고 백화점에서 란제리를 파는 열정적인 선생님을 아이들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진심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아이들의 변화가 단지 독서와 글쓰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아이들이 그 ‘진심’을 보지 않았다면 독서와 글쓰기도 불가능했을 게 당연하다.

문제아였던 아이들이 진실한 자아를 스스로 발견하고 인종을 넘어서는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며 옳은 것을 위해 행동하는 ‘자유의 작가들’로 우뚝 서는, 그 대견하고 기특한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어떻게 지지하고 격려하며 어른 스스로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이 되어주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교육이 가능했던 미국의 교육환경이 참 부러웠다. 국어 시간에 국정교과서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안네 프랑크의 일기>나 <동물농장>, <호밀밭의 파수꾼>, <컬러 퍼플>등등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그 책과 연관된 현장을 방문하고, 관련된 인사를 초대해 강의를 듣고, 질의와 응답의 시간을 갖고, 그것을 기꺼이 후원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 있고....  일제고사를 보는 날, 체험학습을 허락해줬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해직되고, 일일이 정부에서 나서서 교과서 내용을 점검하고 참견하고 뜯어고치고,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편지 한 통 쓰는 것도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와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에린 그루웰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 오셔서 선생님을 하신다면 아마 해직을 당해도 일찌감치 당했을 거란 생각에 씁쓸하기만 했다. 

이 책은 아이와 함께 다니는 어린이 도서관의 선생님께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자녀 둘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내고 계신 그 분은 늘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는 거”라며 웃으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선생님이 계속 생각난 건, 그리고 이 책은 그 선생님께 가야 더 행복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건, 그 선생님 또한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내가 느끼고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나라에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언젠가 우리의 교육환경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  그 꿈들이 영글어 열매맺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게다.  그럴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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