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는…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장지현 옮김 / 예림당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유빈이가 좋아하는 책이다.  작년 늦가을 무렵에 “어, 미야니시 타츠야다!”하고 그냥 장바구니에 넣어버린 책.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어려서는 <누구 똥?>을, 그러다 <고 녀석 맛있겠다>를, 그리곤 <개구리의 낮잠>,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잠깐만, 잠깐만>까지 유빈이가 미야니시 타츠야의 책에 유난한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해서 유빈인 이 책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달라고 하더니 얼마 안가서 외워버렸고 아직도 유빈이가 매일 읽어달라는 책 5위 안에 당당히 들어가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난 OOO가 싫어/못해/무서워/겁나... 그치만 내일의 나는...”이 반복되고 페이지를 넘기면 앞에서 보여준 부정적 자아를 벗어버리고 멋지게 변화한 아이가 등장하는 패턴이다.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다.  아이가 열광적으로 빠져들지 않았다면 미야니시 타츠야가 슬럼프 중에 출판사의 독촉에 못 이겨 만든 책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고 녀석 맛있겠다>나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같은 작품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개구리의 낮잠>이나 <잠깐만, 잠깐만>처럼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구성도 아니라서 좀 맥이 빠진다고나 할까...  게다가 잘못 보면 아이에게 바른생활 어린이로의 긍정적인 변화를 ‘강요’하는 듯한 인상도 느껴져 읽어주기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계속 읽어주다 보니 이 책 속의 마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른에 비하면 무척 불완전한 존재다. (결코, 어른이 완전한 존재란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고, 극복하고 헤쳐 나가야 할 것들 투성이다.  유빈이는 자기 존재의 그 불안함을 이 책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별로지만 ‘내일의 나는’ 내 주변의 어른들처럼 멋지고 유능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어쨌든 아이의 눈으로 볼 때에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다. 

더구나 이 책대로라면 변하기 위해서 아이는 그냥 ‘내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이처럼 편하고 간단한 방법이 어디 있을까!! 일부러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내일’이 되면 저절로 주사도 안약도 무섭지 않게 되고 피망도 당근도 잘 먹을 수 있으며, 자다가 오줌도 싸지 않고, 캄캄한 밤에도 혼자 잘 수 있고,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버리고 빨리 달리게 되고, 머리도 혼자 감고, 매운 치약으로 상쾌하게 이를 닦고, 무거운 짐도 척척 들고, 철봉도 바다도 무섭지 않은 나로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대로 끝난다면 미야니시 타츠야가 아니다.  아이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변화의 희망이 지겹고 부담스러워질 무렵, 미야니시 타츠야는 아이들의 긴장을 한순간에 녹여버린다.  마치 “그렇지만 이렇게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하고 씩 웃어주는 것만 같다.  마지막은 이렇다.

'난 엄마가 / 안아 주는 게 / 좋은 응석 꾸러기.
그렇지만 / 내일의 나는.....


훨씬 더 응석꾸러기. / 엄마가 꼭 안아 주는 걸 / 정말 정말 좋아하는 / 응석꾸러기!‘

유빈이는 이 마지막 장에서 정말로 나에게 꼬옥 안겨온다. 그리고 그림 속 엄마처럼 뽀뽀를 ‘쪽!’ 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마음을 푹 놓게 된다.  엄마인 나까지도 내 아이가 ‘혼자서 뭐든지 척척 해내는 아이’가 되더라도 우리는 서로 온기를 나누고 따스하게 사랑하며 지내며 언제까지나 서로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사이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며 책을 덮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미야니시 타츠야의 책들을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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