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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빅토르 ㅣ 지그재그 1
드니 베치나 지음, 이정주 옮김, 필립 베아 그림 / 개암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 때 둘째아이가 눈물샘이 막혀서 안과를 자주 들락거렸는데, 그 날도 아침 일찍 안과부터 다녀온다고 서둘러 애들 밥 챙겨 먹여 대충 치우고 부스스한 꼴로 둘째를 들쳐 업고 첫째는 손잡아 끌고, 슬리퍼를 신고 동네 시장 어귀에 있는 안과를 찾았다. 그런데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고 보니 맞은편에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당시 학교에서 미남 선생님으로 유명했던 분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설마 나를 알아보시진 못하겠지? 그래도 인사를 드려야 하나? 이 꼴로 어떻게?’ 별별 생각을 다하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진료 받을 차례가 되어 이름을 부르는데 하필이면 그 체육 선생님과 우리 둘째 이름을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굴이 벌개진 채 치료 받는 동안 울고 불며 버둥거리는 둘째를 끌어안고 진료를 끝내고 나왔는데, 처방전을 기다리는 사이 다시 맞부딪치게 된 상황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안면몰수를 할 수가 없었다.
“저..... 김OO선생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저 OO여중 졸업생이예요.”
선생님, 날 보고 빙긋 웃으시더니만
“그래, 나 너 기억하고 있다.”
그 다음에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너무 사설이 길다고?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우린 숨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예외는 없다. 차라리 어리면 어려서 그렇다고 좀 봐주기라도 하지, 어른은 봐주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도 좀 나은 게 있다면 적어도 옷장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올까봐 걱정하거나 침대 밑에 귀신이 있을까봐 겁을 먹지는 않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아마 어른이 신용불량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거나 아이들이 옷장 속 괴물을 두려워하는 거나 두려움의 강도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문제는 극복이다. 난 옷장 속 괴물을 어떻게 없애버린 걸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빅토르처럼 멋진 갑옷을 만들 재주도 없었는데 말이다. 분명히 내가 무서워할 때마다 안아주는 어른이 있었을 거다. 내가 겁나서 움츠리고 있을 때마다 다독이며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었을 거다. 그게 누구였는지, 그 따뜻한 격려의 말이 어떤 거였는지 세세한 기억이 떠오르진 않지만.
이 책이 조목조목 열거한 아이들이 품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의 내용들을 읽으며 나와 우리 아이들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했고, 그리고 그에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는 이 책의 내용에는 100% 동감하지만, 그렇지만..... 빅토르가 그 무시무시한 갑옷 속으로 들어가 숨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 빅토르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누군가가 왜 하나도 없었는지가 너무 아쉬웠다.
문제에 맞서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기 전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나 감정의 교류를 나눌 수 없다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닐까. 그 점을 작가도 느꼈던 걸까. 책의 마지막 부분의 지은이의 글에서 “의논해서 해결책을 찾”으라고 하고 추천의 글에서는 “필요할 땐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세요”라고 하고 있다. 참 다행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뒷부분의 지은이의 글이나 추천의 글까지 세세하게 읽어줄지, 노파심은 자꾸 가지를 뻗는다. 이쯤에서 가지를 끊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