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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ㅣ 따뜻한 그림백과 2
재미난책보 지음, 안지연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갓 지은 밥에 뜨끈한 국물이 좋아졌다. 나이를 먹으니 밥 좋은 줄을 알게 된 것 같다. 결혼을 해서 주부가 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나서야 하루 세끼의 밥을 챙기는 일의 고단함을 알았다. 결혼 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앉아 맛있게 먹고 일어나면 그만이었던 것이 얼마나 호사였는지도 내 살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살림을 하는 주부들은 “남이 차려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아무리 소박하고 단출한 밥상이라도 그 안에는 차린 이의 심신의 노고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심신의 노고가 쏙 빠진 밥을 먹는 것이 그만큼 맛있고 즐겁다는 표현이다. ‘밥상을 함께 나눈다’는 말의 그 정답고 살가운 의미도 어려서는 몰랐던 것들이다.
그러나 먹을거리가 풍족해진 요즘엔 밥상 안에 담긴 따뜻한 정성들을 살피기가 더욱 어렵다. 대형마트를 가득 채운 다양한 먹거리들은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에 따라 상품으로서의 가치로만 평가되고 바코드를 찍어대고 돈을 지불하면 간단히 내 손에 들어오는 소비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먹을 것이 귀한 것인 줄을 모른다. 먹을 것을 귀하게 여기는 건, 단지 그게 내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작용하는 물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안에 들어있는 정성과 노고를 생각해서이고 내 밥상의 먹을 것이 된 식물들과 짐승의 생명의 가치를 생각해서가 아닐까.
이 책에 ‘따뜻한’이라는 꾸밈말이 붙은 것은 우리가 늘 먹는 ‘밥’을 이야기하면서 사람과 그 사는 모습을 살짝살짝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아기의 그림이 따뜻하고, 밥상 하나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수고가 느껴져 갑자기 밥 한 공기가 정겹고 고마워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렴풋하게라도 농부들의 수고는 물론이고 밥상을 차리기 위해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와 그걸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삶고, 부치고, 굽고, 끓여서’ 반찬을 만드는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누군가, 그리고 먹은 뒤에는 설거지를 해야 하는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이 이야기 한 ‘먹을 것을 나누면 정도 오가’게 되는 그 마법의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성과 노고를 먹는 일이니 사람 사이에 어찌 정이 흐르지 않을 수 있을까.
‘날마다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라고 끝을 맺는 이 책이 세상에 나와준 게 어쩐지 참 고맙다. ‘교육’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나는 지식전달용 그림책이 넘쳐나고 있는데 ‘백과’라는 타이틀을 달고 옷, 잠, 밥, 집, 책과 같은 우리 일상의 당연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아이 수준에 맞게 보여줘서. 그 따뜻함을 책의 둥근 모서리로도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하루 세끼 밥 차리고 먹는 일이 귀찮아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툴툴거리던 나도 정성이 느껴지는 밥상을 차려봐야겠다는 반성인지 작심인지를 하고 말았다.